어머니를 돌보며 - 딸의 기나긴 작별 인사
버지니아 스템 오언스 지음, 유자화 옮김 / 부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우리 옛말이 있다. 그리고 짧은 투병 생활 또한 흔히들 호상이라고도 한다. 우리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그러셨다. 자식들 복이라면, 내 기억 속 장례식장 분위기는 마냥 슬픔보다는 화기애애했던 것으로 남아있다. 아직도 애잖아 그 무엇가가 끔틀거리며, 아려오긴 하지만, '죽음'은 아직 나와 별개의 문제처럼 무관심한 부분도 있다. 그런데, 최근 나는 살짝 두려움에 몸서리친 적이 있다. 시간이 없다며 다급함과 초조함을 느꼈다. 또한 외할머지의 죽음에 문득, 엄마의 쓸쓸함(? 다른 표현이 더 적절할텐데 떠오르지 않는다)을 느끼며,  삶을 이어주는 하나의 끝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그 허전함 같은 것을 연상하면서 엄마가 오히려 걱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절로 가족의 소중함, 형제의 각별함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책의 소개를 읽으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정도야 다르겠지만 어머니의 두려움은 나의 두려움과 다르지 않다. 우리 둘 모두 그 암흑이 두려운 것이다." (263)

- 두 모녀의 두려움의 또한 나의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두려움이 아닐까?

 

이 책 <어머니를 돌보며>는 그렇게 스쳐갔던 지난 생각들은 곱씹게 해준다. '죽음'과 마주한 엄마의 투병생활,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아주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 담담한 어조가 낯설고 어색하여 처음에는 집중이 되지 않기도 하였다. 올해 초에 읽었던 <고향사진관, 김정현, 은행나무> 속 이야기가 선명하게 기억되어, 격정적이고 감정적인 이야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오히려 담담한 서술이 먹먹하게 가슴을 치고, 냉철함 속에서 나를 또렷하게 응시하게 된다. '과연 내 처지가 저자와 같다면?'을 시작으로 책을 읽으면서 내내 질문하고 또 질문하였다. 또한 나는 '죽음'과 어떻게 마주해야할까? 무성의했던 일상을 뒤돌아보면서, 끊임없이 나의 목소리를 들어야했다. 또한 마지막에 있는 16가지 그녀의 충고를 귀담아들었다.

 

언제나 용기를 북돋아주던, 자기 의지적이고 독립적인 어머니가 병으로 쓰려져간다. 그 자체로도 커다란 시련일 것인데, 아버지의 수술, 자신의 눈의 이상, 그리고 직접 경험하고 느꼈던 의료계의 현실 또한 가중된 버거움이었다. 미국의 이야기임에도 낯설지가 않다. 어쩌면 우리보다 나은 현실인진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면서, 부모, 가족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어머니의 환상, 망각을 통해 육체적 고통 이상의 정신적 고통이 시사하는 바를 똑똑히 목격하기도 하였다. 담담한 어조로 써내린 어머니와의 이별 이야기 속, 더욱 절실한 가족의 사랑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원인을 잊으면 결과적인 고통도 없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정서란 것은 노랫가락처럼 그 원천이 잊혀진 지 한참 후에도 머뭇거린다. 분노, 두려움, 후회는 뇌의 폐허더미에서 귀신처럼 서성거린다. 음악적인 비유를 하자면, 가사를 까먹은지 한참 후에도 머리에 희미하게 달라붙어 있는 곡조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감정이란 것은 그것을 일으킨 사건이 사라진 다음에도 오랫동안 우리에게 달라붙어 있다."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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