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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이 뒤바꾼 자폐의 삶
존 엘더 로비슨 지음, 이현정 옮김 / 동아엠앤비 / 2019년 8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사실에 기반한 소설인가, 아니면 경험담을 쓴 책인가, 연구 보고서인가? 헷갈렸다. 무려 443 페이지의 책을 읽었는데,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자폐에 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소제목으로 짧게 나누어진 책의 구성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은 자폐의 진단을 받고도 여러 방면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음향, 자동차 엔지니어일 뿐 만 아니라 책도 쓰고, 사진도 찍고, 강연도 하고 돈도 많이 벌고, 심지어 결혼도 3번을 한다. 일반 사람(자폐 진단을 받지 않은)도 하기 힘든 일을 해 냈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폐의 삶은 아니다.
p.37
감정적인 반응이 결여됐다는 사실이 무관심 또는 도덕적 관념의 부재와 같은 의미는 아니다. 물론 나는 선악의 구별은 잘했다. 다른이에게도 최대한 올바르게 대했다. 단지 내 감정적 능력이 제한적이라 남들의 기대에 맞게 행동하지 못할 뿐이었다.
자폐 진단을 받은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 자폐 그리고 우울증, 기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 사람들은 감정이 둔마된다고 한다. 감정이 없거나 감정이 부적절하다. 하지만 주인공이 말했던 것처럼 무관심이나 도덕적 관념의 부재는 아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대인관계가 지속되지 않는 것보다. 대인관계 자체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p.94
뇌과학을 잠깐 공부해서 알아낸 게 있다면, 뇌 속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원인을 찾아내고, 해결방법을 찾아내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인공도 TMS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건 해결방법에 있어 뭔가 새로운 걸 찾아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둔마된 감정을 다시 찾게 되고(완전하진 않지만) 그 감정을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 좀 더 성숙해 진다. 하지만 완벽한 치료법은 찾을 수 없다. 주인공이 말했듯 뇌 속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p. 214
나는 인간의 마음 한편에는 매우 논리적인 사고가, 또 다른 한편에는 감정적 반응이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둘이 연속체를 이루는 거다.
주인공은 매우 논리적인 사고가 주를 이룬다. 감정이 없기 때문에, 하지만 TMS 프로젝트를 하면서 감정을 찾게 된다. 원래부터 감정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감정을 담당하는 뇌가 자극되지 않아서, 혹은 감정을 담당하는 뇌를 논리적인 부분으로 다 써버려서..... 여러 방면으로 분석해도 딱 떨어지는 답은 없다. 주인공은 논리적인 사고로 상당히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두 번째 결혼한 부인의 우울증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아이러니하게 이런 상황이 결혼을 지속시키기도 했다. TMS 프로젝트 이후 감정을 찾게 되면서 부인의 우울증에 대해서도 감정적으로 대하게 되고 이혼을 하게 된다. 특히, 타인의 감정을 알아채고 받아들이는 것도 다 좋은 게 아니라는 것.
p.406
결국 문제는 모든 차이점을 장애로 단정 짓는 데서 온다. 그건 틀렸다.
병을 진단을 하는 이유가 있겠지만 진단을 하게 되면 그 병명으로 사람을 보게 된다. 그렇게 되면 문제만 찾게 되고 문제만 보인다. 다름에서 오는 부분을 인정하기가 어려워 진다. 특히 자폐는 어떤 영역에 특출한 경우가 있는데, 치료의 입장에서 보니까 그 부분을 자꾸 억누르게 된다. 정신과적 질환은 양상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지금 있는 진단 안에 다 넣기도 어렵다. 그리고 보호자의 말, 환자의 말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진단을 하기 때문에 진단하는 것도 쉽지 않고 진단을 하더라도 그 진단이 100% 옳은 것도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너무 신기했던 건, 한 사람이 자신에 대해 관찰, 통찰, 분석하는 과정이 대단하다는 점이었다. 내가 한 말, 내가 한 행동, 내가 살고 있는 모습 등에 대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분석한다. 처음에는 이성적, 논리적으로만 탐구하다가 TMS 프로젝트 이후로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탐구하게 된다. 한 사람이 성숙해지는 과정은 병명이 무엇인지와 상관없이 자신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것 같다. 또한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자신을 내던지는 주인공을 보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자폐에 대한 치료방법이 좀 더 발전하기 위해, 자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는, 지금까지의 삶이 180도 바뀔지도 모르는 TMS 프로젝트에 기꺼이 들어간다. 흥미진진하다. TMS를 한 번, 두 번..... 하면서 주인공이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서,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고 믿겨지지 않는다. 작가가 자폐라는 것도. 훌륭한 책이다.
자폐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 주변에 자폐 진단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추천한다. 뇌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도 꼭 읽어보길 바란다. (TMS 총 책임자 알바로 교수는 정말 일관적인 태도로 주인공을 대한다. 친절하게, 자세하게,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