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폴 -상
로버트 실버버그 외 지음 / 작가정신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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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밤이 없는 세계에서 낮의 종말이 다가왔다. 종말을 알고 그에 대처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 종말 가운데 붕괴된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종말 이후 세계의 변화, 이 모든 것들이 내게 섬뜩하게 다가왔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항상 기술이라는 거대하고도 수 없이 많은 밝은 태양 가운데를 살고 있다. 자연스럽게 그 태양아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느 날 갑자기 태양들이 모두 사라지고 밤이 다가온다면, 당장 우리가 사용하는 것들 중 전기만 사라진다 해도 그것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나이트 폴은 조금은 섬뜩하게 그 태양이 모두 사라진 밤을 예견하고 있다. 이 세계가 동시에 바에 들어가 버린 순간의 혼란 그리고 그 이후까지... 물론 이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칼캐쉬를 살아가는 그들과 똑같다고 할 수 없다. 그래도 나는 두려워진다. 우리를 언제나 환하게 비춰주고 있는 기술이라는 저 태양들이 갑자기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길함에 두려워진다.

200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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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의 도시
폴 오스터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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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워터가이드21호에 실었던 서평

이벤트를 처음 봤을 때 쓰려던 것은 칼럼이었다. 그러나 현재 2키로바이트를 조금 넘기고 본론으로는 들어가지도 못한 체 서두만 맴돌고 있다. 그러던 중에 어제(2002/12/30) 학교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새로 빌린 책이 폐허의 도시이다. 처음에는 약간 지루하다 싶었던 이야기는 상당한 여운을 남기면서 끝을 맺었다. 그리고 그 여운이 여기 남아있다. 언젠가는 사라질 운명이라 해도 말이다.

폴 오스터라는 작가가 누군지 내가 알리가 없다. 일단 내가 지금까지 읽어왔던 책들의 절반가량이 판타지소설들이었고, 그로 인해 얄팍해진 문학적 소양은 유명한 소설가의 이름도 잘 모르는 현재의 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책의 껍데기에 쓰여 있는 작가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면 대중적인 성공과 높은 문학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작가로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라고 한다. 이 유명한 작가를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권이 폴 오스터라는 이름을 알게 된 첫 번째 계기는 동인소설을 쓰시는 누님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일기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그 일기에서 언급한 '빵굽는 타자기'를 제일 처음에 읽어보게 됐다. 두 번째 계기는 스노우캣을 통해서다. 스노우캣에 나왔던 마침 나와준 폴 오스터의 새 책이라는 것이 바로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는 '폐허의 도시'이다.

폐허의 도시는 서간문의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안나 블룸이라는 젊은 여성이 오빠인 윌리엄 블룸을 찾아서 '도시'로 찾아 들어간다. 윌리엄은 신문사의 특파원으로 '도시'에 파견되었지만 소식이 끊어진지 오래다. 폐허의 도시는 그 도시에 발을 들여놓은 안나 블룸이 해주는 이야기이다.

폐허의 도시는 판타지라고 선언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은 소설이다. 귀가 뾰족하고 활을 잘 쏘는 엘프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자기의 몸뚱이만한 크기의 배틀 액스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드워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용이 등장하는 가? 절대로 아니다. 민망스럽게도 폐허의 도시를 판타지라고 부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요소는 현재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 소설의 배경인 도시뿐이다.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무너져가는 도시뿐이다. 안나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도시의 모습은 우리의 미래가 될 것 같은 환상 속의 도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폐허의 도시가 섬뜩할 정도로 흡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주변에서도 무너져가는 것이 있으며, 사라져가는 것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절실히 못 느낄 만큼 우리 곁에는 항상 새로운 것들이 탄생한다. 하지만 폐허의 도시에는 모두 사라져가는 것들뿐이다. 새로운 것이 탄생하지 않는다. 대신 어디선가 폐허의 도시로 흘러들어오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가운데 폐허의 도시가 사라진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 오히려 두툼한 책이 되어 내 손에 전해진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분명 안나는 폐허의 도시에서 사라지는 길을 택했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결국 그 도시에서 안나가 사라졌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만큼 분명한 사실은 우리들도 언젠가는 사라진 다는 것이다. 애써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우리도 결국 폐허의 일부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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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고 예측가능한 결말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영화의 중반을 지나자 결말은 예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 결말까지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재미있고 개성넘치는 인물들을 어떻게 엮어나갈지 정말 궁금했다.

이야기의 중심과 종심이 뚜렷하고 크게 어긋나는 부분이 없이 잘 맞아들어갔다. 결말이 예측가능하다는 것은 이야기에 있어서 치명적인 단점인데 이 단점을 뛰어넘을 만큼 흥미진진하고 볼거리가 많았다.
또한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이 여럿 나온다.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잘못하면 이야기에 섞이지 못하고 자기주장만 해버리는데 그렇지 않았다. 군더더기 없이 날씬한 이야기로 Happily Ever After에 이르는 이야기였다. 재미있게 봤다.




닐 게이먼의 원작으로 나온 소설이 어떨지 궁금하다. 기회가된다면 원작의 힘은 어떠한지 한 번 확인해 보고 싶다. - 2007/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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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3부작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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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삼부작은 그다지 재미있다거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연신 하품이 나오게 만들고, 눈이 반쯤 감기게 만드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 삼부작은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들어있다. 그래서 나는 연신 하품을 하면서도 뉴욕 삼부작을 끝까지 다 읽고 말았다.

뉴욕 삼부작에서 한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을 쫓는다는 기본구조는 전반적으로 긴장감이 흐르도록 만드는 요인이면서 동시에 핵심이 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사이의 미묘한 감정의 대립은 쫓는 자에게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빛의 굴절과 반사가 자신이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자신을 비추기 시작하자 등장인물들은 생소한 자신의 모습에 당황하고 놀라워한다. 독자 역시 그 이야기 속에서 함께 당황하고 놀라워하다 보면 어느 샌가 자신이 새로운 한 사람의 추적자가 됐음을 알게 된다.

세 편의 이야기는 도무지 무슨 연관이 있는 지 알 수 없다. 단지 손에 잡힐 듯 말 듯한 흐릿한 연결고리가 그 가운데 부유하고 있을 뿐이다. 누가 폴 오스터이고, 누가 헨리 다크이며, 누가 펜쇼이고, 누가 퀸인지... 세 편의 이야기는 일그러진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고 있다. -- 2003/1/7


오래된 서평도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요즘 읽은 책들에 대해 쓰고 있는 1000번 서가의 내실을 다져야 할텐데 심력이 지치기 쉬운 나날들과 생활의 무게는 녹록지 않다. 오래된 서평을 올리다 보면 꼭 다시 읽어보고 다시 서평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인데 뉴욕3부작은 반드시라고 할 만큼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든다. 폴 오스터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가이고 폴 오스터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을 쓴다. 4년 반 전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그 매력을 강변한다. -- 2007/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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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0℃ 최고의 나를 만나라
김범진 지음, 임승현 그림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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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중의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이 책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도착할 무렵 본문의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었다.

이 책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각색해 요즘의 세태를 풍자하며 짧고 강렬하게 메세지를 전달한다.

최고의 도자기가 되기 위해서는 자화를 일으켜야한다. 자화는 1250℃에서 이루어진다. 자화가 일어났을 때 흙은 내면에 감추어두었던 성질을 겉으로 드러내며 고운 빛깔을 가진 도자기로 다시 태어난다. 물론 흙은 800℃에서도 구워지지만 그렇게 낮은 온도에서 구운 흙은 1250℃로 구운 도자기에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 이 책은 단순히 남을 이기는 경쟁인 800℃짜리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현시킬 수 있는 1250℃ 경쟁에 몸을 던지라고 말한다.
조금 어리석어 보이고 돌아가는 것 같아도 진정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에서 자신과의 경쟁을 펼쳐 나갈 때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들이 알고 있는 진정 아름다운 사람들은 남과의 경쟁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이 책의 내용은 짧고 직설적이다. 이러한 이 책의 내용은 주인공으로 내새운 느린 거북이 슬론과 묘한 모순을 일으키지만 반드시 악덕은 아니다. 오히려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경쾌하고 명료하게 드러내는 장점이기도 하다. -- 2007/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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