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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의 도시
폴 오스터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워터가이드21호에 실었던 서평
이벤트를 처음 봤을 때 쓰려던 것은 칼럼이었다. 그러나 현재 2키로바이트를 조금 넘기고 본론으로는 들어가지도 못한 체 서두만 맴돌고 있다. 그러던 중에 어제(2002/12/30) 학교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새로 빌린 책이 폐허의 도시이다. 처음에는 약간 지루하다 싶었던 이야기는 상당한 여운을 남기면서 끝을 맺었다. 그리고 그 여운이 여기 남아있다. 언젠가는 사라질 운명이라 해도 말이다.
폴 오스터라는 작가가 누군지 내가 알리가 없다. 일단 내가 지금까지 읽어왔던 책들의 절반가량이 판타지소설들이었고, 그로 인해 얄팍해진 문학적 소양은 유명한 소설가의 이름도 잘 모르는 현재의 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책의 껍데기에 쓰여 있는 작가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면 대중적인 성공과 높은 문학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작가로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라고 한다. 이 유명한 작가를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권이 폴 오스터라는 이름을 알게 된 첫 번째 계기는 동인소설을 쓰시는 누님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일기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그 일기에서 언급한 '빵굽는 타자기'를 제일 처음에 읽어보게 됐다. 두 번째 계기는 스노우캣을 통해서다. 스노우캣에 나왔던 마침 나와준 폴 오스터의 새 책이라는 것이 바로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는 '폐허의 도시'이다.
폐허의 도시는 서간문의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안나 블룸이라는 젊은 여성이 오빠인 윌리엄 블룸을 찾아서 '도시'로 찾아 들어간다. 윌리엄은 신문사의 특파원으로 '도시'에 파견되었지만 소식이 끊어진지 오래다. 폐허의 도시는 그 도시에 발을 들여놓은 안나 블룸이 해주는 이야기이다.
폐허의 도시는 판타지라고 선언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은 소설이다. 귀가 뾰족하고 활을 잘 쏘는 엘프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자기의 몸뚱이만한 크기의 배틀 액스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드워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용이 등장하는 가? 절대로 아니다. 민망스럽게도 폐허의 도시를 판타지라고 부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요소는 현재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 소설의 배경인 도시뿐이다.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무너져가는 도시뿐이다. 안나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도시의 모습은 우리의 미래가 될 것 같은 환상 속의 도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폐허의 도시가 섬뜩할 정도로 흡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주변에서도 무너져가는 것이 있으며, 사라져가는 것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절실히 못 느낄 만큼 우리 곁에는 항상 새로운 것들이 탄생한다. 하지만 폐허의 도시에는 모두 사라져가는 것들뿐이다. 새로운 것이 탄생하지 않는다. 대신 어디선가 폐허의 도시로 흘러들어오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가운데 폐허의 도시가 사라진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 오히려 두툼한 책이 되어 내 손에 전해진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분명 안나는 폐허의 도시에서 사라지는 길을 택했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결국 그 도시에서 안나가 사라졌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만큼 분명한 사실은 우리들도 언젠가는 사라진 다는 것이다. 애써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우리도 결국 폐허의 일부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