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양치기 소녀 마음을 키우는 문학여행 5
앤 로럴 카터 지음, 박미낭 옮김 / 파라주니어(=파라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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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지역에서 전쟁이 한창입니다.

하마스라는 팔레스타인 무장조직과 이스라엘 정부군간에 치열한(일방적인)전투가 연일 뉴스에 나오고 있습니다.

병원이 폭격을 받았다느니 무고한 민간인이 수백명 희생을 당했다는 뉴스가 계속 나오고 있죠.

중동지역 전문가라는 분들이 여러 매체에서 중동지역의 역사와 지금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열심히 설명하는 프로그램들이 매일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 오스만투르크제국이 영국에게 어쩌고 저쩌고, 영국이 뭐 이중약속을 어떻게 했니, 배경지식으로 영화 [아라비안의 로렌스]등등은 다른 유튜브나 블로그를 보세요.

책이 2009년에 출판되었으니 시대적 배경은 아마 2천년대 초반이겠죠.

여섯 살이 된 아마니는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지만 학교에 가기 싫었다. 아마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양떼를 몰고 산으로 갔던 날 양 한 마리가 새끼를 낳았고 무사히 양의 출산을 도왔던 그녀는 할아버지를 따라 양치기가 되기로 결심했다.

저녁 식사시간에 할아버지는 아마니에게 양치기를 물려주겠다고 말씀하셨고 모든 가족은 반대했지만 단호했던 할아버지의 태도에 가장의 말을 따르는 것이 팔레스타인의 관습이기에 가족들은 할아버지의 말을 뜻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할아버지와 그녀의 어머니는,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어린 양치기가 된 소녀 아마니에게 헬멧을 쓴 군인들이 총을 겨누면 “군인들이 시키는 대로 해라. 그들이 움직여도 좋다고 할 때까지 길 위에서 조용히 기다려라.”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할아버지는 이스라엘인들이 안전지대로 선포한 산의 북쪽 비탈로는 가지 말라고 했고 아마니의 행복한 양치기 생활은 시작되었다. 6~7년의 세월동안 아마니는 ‘양이 새끼를 낳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양 떼를 잘 돌보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학교를 가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

열세살이 된 아마니는 생리를 시작했지만 아마니가 나이를 먹은 만큼 할아버지도 쇠약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니가 사는 마을에도 이스라엘의 정착촌이 들어서고 있었다.

이스라엘인들은 새로운 정착촌을 만들고 팔레스타인의 마을을 관통해서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팔레스타인 곳곳에 이스라엘 정착촌이 건설되었고, 이스라엘 인들은 팔레스타인들의 땅과 물을 비롯한 모든 것을 빼앗았다. 법은 이스라엘인들만을 위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유없이 체포되고, 감옥에 가고, 총에 맞아 죽는일도 계속 생겼다.

큰아빠는 무기를 챙겨 싸우자고 말했고, 아빠는 반대하며 평화시위를 하자고 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당신이 당신의 아버지에게 받았던 양치기 지팡이를 아마니에게 유산으로 남겼다.

꿈이 과학자였던 오빠 오마르는 학교 성적이 좋아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진학했다.

반면 아마니는 여전히 양치기의 상징인 지팡이를 들고 매일 양 떼를 몰고 산으로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씨도(할아버지)의 산봉우리에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인이 정착촌을 건설한 뒤 아마니는 함부로 씨도의 산으로 가지 않았다. 그들과 마주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오아시스 근처에서 양 떼를 방목한 후 산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산을 올랐다.

양들이 풀을 뜯어먹는 동안 아마니는 정착촌 건설 현장을 살펴보았다. 인부들은 아마니를 한번 보더니 일에 열중했고 총을 든 군인들은 아마니에게 떠나라는 손짓을 보였다.

“아마니는 그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이곳은 수천 년도 넘게 우리 조상 땅이었어!”

사헴이 어딘가를 향해 짖었고 곧 엄청나게 큰 총소리가 울렸고 두 번째 총소리에 양 한 마리가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어린 양을 들쳐 안고 산 아래를 내달린 아마니는 이 사건 이후 학교에 가기로 결심했다.

“전 양치기예요. 정착민이 제 양을...... 한 마리 죽여요. 정착민은 영어를 써요. 난 영어가 필요해요. 그들을 말려야 하니까요.”

영어로 말해야 한다는 선생님 말에 아마니는 떠듬거리며 자신이 학교에 온 이유를 말했다. 아마니의 촌스러운 모습을 보고 킥킥거리던 아이들은 곧 웃음을 멈췄다. 아마니의 말이 끝나자 교실에는 침묵이 흘렀다.

정착촌은 밤마다 불빛이 환했고 고속도로는 마을의 중심을 정확히 관통했다. 아마니 가족의 포도과수원, 올리브과수원은 뭉텅 잘려나가 고속도로가 되었다. 양들에게 풀을 먹일 땅은 점점 줄었다.

포도주스 공장에서 오늘 밤 안으로 포도를 가져오면 모두 구입하겠다고 했다. 알칼릴을 통해 가야하지만 이스라엘 검문소에 막혀 갈 수가 없었다. 고속도로가 있지만 팔레스타인 땅에 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용할 수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황천길이라 부르는 산길 도로를 이용해야 했다. 산길을 이용하면 포도가 다 물러터지기 때문에 큰아빠는 고속도로를 이용하기로 결심한다.

아빠는 반대했지만 큰아빠는 고속도로를 탔다. 전조등을 끄고 어둠속을 달렸지만 이스라엘 군인들이 나타났다. 군인들은 포도상자들을 도로위로 던졌고 가족들을 총으로 위협했고 큰아빠를 끌고 갔다.

올리브 수확 철이 왔고 온 가족이 올리브 수확에 힘들 보태야 했다. 학교에서는 올리브 방학을 주었고 먼 곳에 사는 친척들도 수확을 위해 찾아왔다.

올리브를 수확하는 도중 정착촌 사람들이 보였고 누군가가 올리브 과수원을 향해 총을 쏘았다. 군인과 정착민이 와서 올리브 과수원이 정착촌과 너무 가깝다는 이유러 더 이상 올리브 과수원에 오지 마라고 명령했다. 평화롭게 농사짓는 사람들이라고, 여기는 대대로 우리 집안의 땅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도대체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이러는지 모르겠소.”

그 장교가 냅다 소리를 질렀다. “우리의 안전을 지킬 권리요. 우리의 모든 권리는 거기에서 나온다는 걸 모르겠소?”

정착촌 사람들이 오아시스에 독을 푸는 바람에 오아시스 물을 마신 아마니의 양 떼들이 몰살당했다.

정착민들은 중장비를 동원해 올리브 과수원을 덮쳤다. 한그루의 올리브 나무도 남기지 않고 모두 베었고, 할아버지의 집을 깔아뭉갰고 다음으로 아마니의 집과 큰아빠의 집도 남기지 않았다.

불도저가 아마니의 집을 밀어버리는 순간 아마니는 불도저 앞에 버티고 서서 집과 자신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군인들이 다가와 아마니를 제압했고, 고개만 겨우 든 상태로 잡이 사라지는 장면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나귀를 타고 돌아오시던 아빠가 그 광경을 보고 군인들에게 돌진했고, 군인들은 아빠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나귀가 총에 맞아 쓰러졌고 같이 쓰러진 아빠를 군인들이 발로 짓밟고 질질 끌고 갔다. 아마니 옆에는 총에 맞아 죽은 양치기 개 ‘사헴’이 쓰러져 있었다.

모든 것이 다 사라졌다. 양 떼, 양치기 개 사헴, 올리브 과수원, 할아버지 집 그리고 자기집과 큰아빠의 집까지. 아마니는 돌을 들어 불도저를 향해 던졌다. 하나, 둘, 셋. 계속해서 돌을 던지고 그녀는 뒤를 돌아 도망갔다.

파괴된 아마니 집 아래쪽에 국제 적십자사에서 제공한 큰 텐트가 쳐졌다. 아마니 가족을 돕겠다고 사람들이 찾아왔다. 유대인 랍비도 있었고 미국 출신의 기독교인도 있었다. 텔아비브에 사는 인권 변호사도 와서 법적으로 국제 사회에 호소하겠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마니를 예뻐하던 학교 영어 선생님이 텐트를 찾았다. 선생님은 얇은 꾸러미를 내밀었다. 그 속에는 라말라에 있는 국제 학교 교육 프로그램 자료가 들어 있었다. 아마니만 원한다면 진학을 도와주겠다고 그녀를 설득했다. 하지만 아마니는 자신은 양치기로서 고향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조금 더 생각해보라는 말과 그러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에야 텐트를 떠났다.

선생님이 떠난 뒤, 아마니는 학교 소개서를 꺼냈다. 그녀의 발밑에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검은 양, ‘희망이’가 쉬고 있었다. 아마니는 ‘희망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골짜기 건너편으로 시선을 옮겼다. 부서진 집 잔해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오아시스 아래 과수원 자리는 나무 하나 없는 텅 빈 언덕이 되어 있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과 관련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의 56%(56%에는 이 지역의 경제적 핵심인 올리브농장과 곡창지대 80%이다)를 유대인이 차지하도록 한 1947년 유엔 결의안 이후 서로가 서로를 믿지 않고 불신하는 관계가 70년 넘게 이어지고 있죠.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떠나온 나라의 여권을 여전히 갖고 왔고(이중국적으로 언제든지 다시 떠날 수 있게), 팔레스타인 인들은 몇주 후면 집으로 돌아갈 줄 알고 집의 열쇠를 갖고 떠나왔다고 합니다.(팔레스타인 지역에 ‘귀향의 열쇠’라는 세상에서 제일 큰 열쇠상징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중동 각국 간에 여러 차례 전쟁이 있었고 또 평화협상도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있었지만 여기에는 지정학적 문제와 정치, 종교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지인지 이야기하기 전에

올리브를 수확할 때 올리브나무 뒤에 저격수가 숨어있지 않나 의심하는 이스라엘 정착민들에게 그렇다면 당신들의 감시하에 올리브 수확을 하겠다 라고 하는 합리적인(이게 합리적이라고?)제안 조차도 되지 않는 인간관계가 너무 서글프더군요.

아마니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저는 이 책의 제목을 [이렇게 전사가 된다]라고 고쳐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신의 눈앞에서 큰아빠와 아빠가 군인들에게 두들겨맞고 질질끌려가고, 대대로 가문의 땅이었던 올리브농장, 포도과수원이 폐허가 되고, 할아버지의 집, 큰아빠의 집과 자신의 집이 불도저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래도 그것까지는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양들을 죽이기 위해 오아시스에 독을 풀고 양치기 개를 총으로 죽이는 것까지 참을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누가 분노를 누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시위하고 법적으로 법정에서 다투고 국제사회에 호소하자고 하면 올타꾸나 하고 같이 할까? 아닐껄요? 오히려 누군가가 총을 주면서 우리와 같이 싸우자고 하면 땡큐하며 분연히 총을 들고 전사가 되는게 당연한게 아닐까요?

팔레스타인의 어린 소녀가 치마속에 폭탄을 숨기고 자살 폭탄테러를 감행했다는 국제뉴스를 가끔 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말하죠.

어린 소녀에게 얼마나 세뇌를 시켰으면 자살폭탄테러를 하냐 잔인한 놈들이다 라고 욕을 하며 티브이를 보죠. 하지만 당해보지 않았으면 이해하지 못합니다.(그렇다고 제가 경험이 있다는 건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아마니가 존경했거나 좋아했던 사람들인 학교 선생님이나 수의사, 인권변호사들을 보며 그들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르죠.

어떤 길을 하던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팔레스타인분쟁이 빨리 종식되고 완전 평화가 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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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미래 - 오래된 집을 순례하다
임형남.노은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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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알고리즘인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넷 서점에서 보내주는 메일에 이 책이 소개되었다.

출판사의 책소개에는

"우리가 사랑한 오래된 집들을 순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삶이 담긴 살림집과 자연에 스며들어 또 다른 자연이 된 사찰 등 한국의 대표적인 옛집 32군데를 순례하면서 미래의 집을 생각한다.

그 오래된 집들은 정지해 있어도 무척 강한 움직임이 있고, 경계를 넘나들며 독특한 경지를 이룬 우리의 문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제1부는 한국의 옛집을 순례한다. 산천재, 선교장, 임리정, 소수서원, 남간정사, 경복궁 등 우리의 옛집 15군데를 둘러본다.

제2부는 한국의 사찰을 순례한다. 화엄사, 통도사, 선운사, 실상사, 황룡사지, 미륵사지 등 우리의 사찰 17군데를 둘러본다."

라고 되어 있다.

나도 옛집과 사찰 구경다니는 걸 좋아해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구매했다.

처음으로 소개된 집은 산청에 있는 남명 조식선생께서 말년에 지었다는 산천재였다.

책을 주~욱 읽으면서 산천재를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검색을 해보니 산천재 주변에는 남명조식 기념관을 비롯한

여러 건물들이 존재해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도 뇌룡정과 용암서원이 있어 조만간 가볼 생각이다.

하지만 책에 대한 호기심은 여기까지가 끝이었다.

나머지 집들은 대부분 내가 이미 다녀간 집들이었고 내용도 사실 별다를게 없었다.

저자부부의 직업이 건축가이다보니 집에 대한 건축가가 갖고 있는 전문적인 시선과 내용이 필요했는데

오히려 개인적인 감상이 대부분이었다.

누군가가 그랬다. '일기는 일기장에 쓰라고'

내가 건축에 아주 조예가 깊은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출발전에 미리 한번 읽고 다녀와서 다시 한번 읽어 내 느낌에 깊이를 더해가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도움은 기대할 수 없었다.

오히려 소쇄원 편에서는 " 소쇄원에 대해서는 세상에 너무나 많은 글이 있고 너무나 많은 분석이 있어 따로 떼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당시에 어떤 조영에 대한 원칙을 세웠는지 어떤 의미의 조경을 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글과 그림으로 남아 문중에 잘 보존되어 있다."라고

해놓았다.

내가 한창 서원을 순례다닐 때 하나의 서원을 두세번은 다녔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냥 유명한 서원이라니까 아~여기가 도산서원이구나 병산서원이구나 하면서 다녔고

두번째는 그래도 조금 공부했다고 건물의 배치가 어떻고 출입공간과 강학공간은 어떻게 분리가 되었다는 둥, 현판은 누가 썼고 건물의 명칭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등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세번째는 서원에 모셔져 있는 분의 학문과 철학을 알아가야 하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나의 지식 수준이 한미하다.

다만 책에 소개된 곳들을 읽다보니 예전 다녔던 기억이 떠오르고 또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그리고 그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기 위해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동했기에 이 책 책값은 다 했다 라는 생각입니다.

화엄사, 내소사, 선교장, 해인사, 선운사는 다시 한번 가보고 싶네요.

그런데 왜 책의 제목이 [집의 미래]인가요?

이 책을 아무리 읽어봐도 집의 미래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한 부분도 없는데 말이죠.

그냥 서문 끝머리에 "지금 옛집을 만나는 일은 과거의 시간을 만나는 일이자, 영원한 현재를 살며, 집의 미래를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다."라고 써놓은게 전부인데 말이죠.

옛집을 보면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 라는 의미일까요? 저는 아직 모르겠네요.

ps. 저자가 산청 지역을 여러번 다녔던 것 같은데 지역명을 실수한 것 같네요.

p23 셋째 줄에 생미량은 아마 산청의 생비량을 잘못 표기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오타라고 생각했는데 284페이지에서 또 생미량이라고 한 걸 보면 저자가 생비량을 생미량이라고 알고 있는 것 같네요. 제가 대학시절 생비량면에서 농활을 해서 지역명을 잊지않고 있습니다. 혹시나 생비량의 옛 지명이 생미량인 걸 아닐까 검색해봤는데 그건 아닌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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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브라운 - 2024년 상반기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추천도서
고예나 지음 / 산지니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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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독서모임 송년모임 때 각자 책 한권씩 가져와서 나누는 행사를 했었는데

회원 한분께서 지인이 쓰셨다고 여러권 가져와서 나눠주셨어요.

제가 뭔가 후기를 써야할 것 같은 물건을 누군가에게서 공짜로 받는걸 싫어합니다.

공짜는 항상 댓가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그 많은 협찬, 체험기등등의 글은 모조리 스팸등록 및 삭제를 하거던요.

오래전 지인분들이 글쓰기 강의를 듣고 책을 낸적이 있어 책을 선물받았는데 참 후기쓰기가 어려워요.

뭔가 좋은 말을 많이 쓰고 기계적인 중립을 위해 나쁜 말도 적당히 써야 한다는 강박이 필요하죠.

뭐 어쨌던 리뷰를 써볼까합니다.


책 내용은

1919년 고종 승하 몇 개월 전부터 3.1만세운동까지 시기 동안 조선에서

고종황제를 둘러싼 네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고종황제가 해외망명을 여러번 시도했다는 사실은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하네요.(몰랐습니다)

조선의 최고위층 가문의 자제인 미스터 리.

요한이라 불리는 정체를 숨기고 독립운동을 하는 남자.

경성브라운이라는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는 일을 하는 과거가 궁금한 여급 홍설.

전직 궁녀였다가 지금은 하사정이라는 기생집을 운영하는 명화.

네 남녀는 서로 정체를 숨기며 썸도 타지만 결국은 같은 목적을 향해가는 사이가 됩니다.

고종황제는 파리강화회의를 틈타 중국으로 망명을 하여 조선의 독립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계획을 도와줄 사람을 찾다보니 이 네 남녀가 동참하게 되면서 여러 사건이 벌어진다는 내용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이니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뭔가 되게 불편했습니다.

문체가 좀 거슬리거나 그런 건 아니고 사실과 허구를 적당히 섞은 픽션인데

사실과 너무 어긋난다거나 하는게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작가는 이 책을 4년을 준비했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게 오랫동안 준비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네요.

가령 노비로 나오는 훈길이라는 작자가 이야기 도중 동학혁명을 이야기하면서 갑오농민전쟁 이라고 한다던가 그런거죠.

그 시대에 정말 갑오농민전쟁이라는 단어를 썼을까 하는 생각이 불편함을 가져오네요.

이 외에도 시대상과 너무 맞지 않는 단어들이 자주 툭툭 튀어나옵니다.

고종을 미화한다거나 을사오적에게도 그럴싸한 이유가 있었거니 하는 건 오히려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픽션인데 캐릭터를 그렇게 묘사한다고 해서 뭐 어떻습니까.

요즘은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도 독자들이나 관객들은 등장인물의 개연성을 아주 중요시합니다.

이 인물이 이렇게 저렇게 변화를 할때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분명히 필요합니다.

경성브라운에 나오는 인물 중 여럿이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하는지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훈길은 왜 미스터리를 저주했다가 또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주는지, 와타루경사는 왜 슬퍼하는지

저자가 제시한 이유들은 너무 빈약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은 고종이 사망한 그때 글을 완결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오히려 독자들에게 생각할 꺼리를 더 많이 던져줬을지도 모르겠네요.

고종의 사망 이후 3.1 운동까지의 전개는 작가가 욕심을 너무 부렸다는 생각입니다.

일은 엄청 벌려놨고 수습은 제대로 하지 못하지 않았나 합니다.

필력이 딸린다는게 이런거였구나 하고 확실하게 느낀 책 한편이었습니다.

3.1만세운동을 좀더 자세하고 재미있게 알고 싶다면 [만세열전] 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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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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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술관을 좋아합니다. 박물관과 도서관도 좋아합니다.

제 나름으로는 3관 3방이라 하는데 정신건강을 위해서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을 좋아하고 순간 쾌감을 위해서 3방 피씨방 만화방 찜질방을 좋아하죠.

미술관을 왜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어느 순간부터 자주 다니게 되었죠.

도서관과 미술관 박물관을 좋아하는 저에게 이 책은 정말 딱 좋은 책이네요.


2023년말에 어떤 책을 읽어볼까 검색을 하다 이동진 작가(영화평론가이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작가입니다)가 2023년의 책으로 꼽았더라구요.

흥미롭다고 생각하고 구입했는데 읽어보니 이건 정말 나를 위한 책이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책의 내용은 뉴욕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한 청년이 좋아하던 친 형의 죽음을 맞이하며 삶을 되돌아보면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경비원으로 취직하고 생활하면서 느끼는 여러 감정을 서술한 글입니다.

경비원이 되어 전시관에서 여러 작품들을 만나고 본인의 감정과 생각으로 예술품을 대하고 또 직원들과 어울리며 상처는 점점 아물어가고 새로운 도전과 삶으로 나아간다는 것으로 결말이 지어집니다.


제가 책을 읽으며 밑줄 쳐가며 읽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처음으로 문장을 저장해가면서 읽었습니다.

한참 읽다가 생각해보니 번역이 좀 그렇더군요. 영어식 문체 about를 그대로 번역한 대하여, 관하여 라는 문구가 난무하고 조금 문장이 어색한 느낌이 있었는데 번역이 안 좋다는 생각을 못할 만큼 좋은 문장이 많았어요.

동감되는 문장을 너무 많이 만났어요.

하나씩 찾아볼게요.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근본적으로 예술만이 가진 특별한 힘에 반응하듯 그림에 반응했다. 다시 말해서 그림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음에도 이미 그것을 충분히 경험한 것이다. 그때는 내가 느낀 감상을 말로는 분출할 수가 없었다. 사실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그 그림의 아름다움은 언어적인 것이 아니라 물감과도 같이 과묵하고 직접적이며 물체적이어서 생각으로 번역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듯했다. 그래서 그림에 대한 나의 반응은 새 한 마리가 가슴속에서 퍼덕이듯 내 안에 갇혀 있었다.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p.30-

생각해보니 그랬었어요. 기억은 안나지만 어떤 전시회에서(작가가 누군지 어떤 전시회였는지, 어느 미술관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그림을 보았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아 팔에 닭살이 돋고 모골이 송연하다고 그러죠, 머리털이 삐쭉솟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 있었어요. 이유는 몰라요. 그냥 그랬어요. 그때 이후로 이런 감정을 왜 느끼게 되는건지 궁금해서 더욱 미술관 박물관을 다녔는지도 모르겠네요.


세련되어지고 싶었던 나는 적절한 학문적 도구를 갖추고 최신 용어를 익히면 예술을 제대로 분석하는 법을 배울 수 있고, 따라서 예술을 대하는 데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가슴속에서 작은 새가 날개짓하는 것이 또 느껴졌나?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었다. 나는 이제 그림의 모티프에 정신을 집중하거나 유파의 화풍을 파악하면서 그 묘한 느낌을 가라앉힐 수 있지 않은가. 이러한 전략은 소리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인식을 뛰어넘어 현실 세계에서 나의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줄 언어를 찾기 위함이었다. -p.32-

저자는 정말 제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문장이었어요.

예술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그림과 관련한 책들을 읽고 인상파가 어떻느니 르네상스는 뭐니 중세 유럽의 예술은 어떤 특징이 있다는 둥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비롯해서 진중권의 미학오딧세이 등등 책장에 미술 관련 서적은 점점 늘어나고 저의 지식도 늘어갔지만 어느 순간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교과서 달달 외운다고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건 그냥 저의 지적 허영심만 채우는 거라는 자기비판을 했습니다.


작품들을 지켜보는 일을 하는 나는 이 작품을 본래의 의도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14세기 화가는 언젠가 예술품 비평가라는 직업이나 미술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교과서가 등장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베르다르도 다디에게 그림은 고통스럽지만 꼭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생각을 돕는 도구였을 것이다. 나는 예수의 그림들에서 새롭거나 미묘한 뉘앙스를 찾는데 관심이 없다. 내가 이해한 건 다디는 고통 그 자체를 그렸다는 점이다. 그의 그림은 고통에 관한 것이다. 고통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말문을 막히게 하는 엄청난 고통의 무게를 느끼기 위해 그림을 본다. 그렇지 않다면 그림의 정수를 보지 못한 것이다.

많은 경우 위대한 예술품은 뻔한 사실을 우리에게 되새기게 하려는 듯하다. ‘이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하는게 전부다. 나도 지금 이 순간에는 고통이 주는 실제적 두려움을 다디의 위대한 작품만큼이나 뚜렷하게 이해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내 그 사실을 잊고 만다. 점점 그 명확함을 잃어가는 것이다. 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보듯 우리는 그 현실을 다시 직면해야 한다. -P.51-


나도 괜찮은사람으로 산 것 같아. 잠들었는데 그 사이에 누가 비디오를 대여점에 돌려줘버렸어. 누구나 고통을 겪지, 내 차례야. 누구나 죽어, 내 차례고. 고통을 피하는 약을 먹고 싶기도 하고 먹고 싶지 않기도 해. 죽는 건 상관없어. 다만 고통을 겪고 싶진 않아. 모두들 늙어가는 걸 보고 싶은데⋯.크리스타를 행복하게 해줘. 행복한 추억이 많아. 너랑 이야기한 것도 좋은 추억이야. 영화를 보다 잠이 들었는데 다 끝내지 않은 비디오를 누군가가 돌려줘버린 느낌이야. -p.62-

저자의 형인 톰이 저자에게 한 말입니다. 참 가슴아픈 말이기도 한데요, 형은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남아 있는 가족들의 이후의 삶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을 저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책으로 읽는 것과 예술품을 직접 보는 경험이 얼마나 다른지 다시 한번 느낀다. 책 속 정보는 이집트에 관한 지식을 진일보시켰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집트의 파편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나를 멈추게 한다. 이것이 예술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우리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 다음으로 간단히 넘어갈 수 없다. 예술은 어느 주제에 관해 몇 가지 요점을 아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점이야말로 예술이 절대 내놓지 않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말로 단번에 요약하기에 너무 거대한 동시에 아주 내밀한 것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런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p.87-

가끔씩 전시 팜플렛을 읽으며 작품을 보다보면 팜플렛에 있는 설명과 나의 감상이 다를때가 있거던요, 그럴 때 내가 잘못되었나 라는 생각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감상할 수도 있지 뭐 라고 합니다. 특히 예술품의 기본 배경지식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던요. 이 그림은 작가가 누구고 인상파의 그림이며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건 교과서에 서술된 내용이고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감상하면 되거던요. 또 처음볼때와 두 번째 세 번째 볼 때 느낌이 다를때도 많기 때문에 예술품은 여러번 자주 보는게 좋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나만의 방식을 갖추게 됐다. 우선 작품에서 교과서를 쓰는 사람들이 솔깃해할 만한 대단한 특이점을 곧바로 찾아내고 싶은 유혹을 떨쳐낸다. 뚜렷한 특징을 찾는데 정신을 팔면 작품의 나머지 대부분을 무시하기 십상이다. 어느 예술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자신의 눈에게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건 좋다’,‘이건 나쁘다’또는 ‘이건 가,나,다를 의미하는 바로크 시대 그림이다’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상적으로는 처음 1분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해선 안된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p.114-

제가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할 때 세 번 보거던요. 우선 먼저 한번 둘러보며 그림을 봅니다. 이후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다시 보구요, 이후에 다시 한번 봅니다. 그러면 처음 볼때와 세 번째 볼 때 조금 다르게 보여지기도 해서 저만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 -p.143-

이건 아마 분수에 동전 던질 때 부모님께서 해주신 말이었던걸로 기억아는데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써먹어야지 라고 생각하며 저장해놓은 문장인데 참 좋네요.


계획이 뒤죽박죽된 채로 메트를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이 말이 되지, 보는 것마다 성큼성큼 받아들이는 유식한 사람들이 오히려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당황한 사람들은 놀라운 것들을 보고 놀란다. 이럴 때마다 내 안의 그 어떤 우월감을 뽐내고 싶은 충동이 일지라도 억누를 뿐 아니라 그런 충동이 어리석고 터무니없다고 치부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 중 누구도 이 주제, 그러니까 이 세상과 그 모든 아름다움에 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한다. 미켈란젤로가 태어난 해와 죽은 해를 알지언정 막상 그의 작업실이나 페르시아의 세밀화가, 나바호족의 바구니 짜는 장인의 작업실 등등 예술의 현장에 가면 자신의 무지를 얼마나 압도적으로 실감하게 될 것인가. 심지어 그 예술가들조차도 거대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기 일쑤인 이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p.148-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재킷 주머니에서 작은 공책을 하나 꺼내 들고 머리에 떠오르는 포부들을 몇 개의 문장으로 적는다. 과거에는 대부분 수동적인 태도로 메트와 메트의 소장품들을 일종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관찰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을 흡수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그러는 대신 예술과 씨름하고, 나의 다양한 측면을 모두 동원해서 그 예술이 던지는 질문에 부딪쳐보면 어떨까? 미술관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덤벼볼 만한 가치가 있는 숙제 같다. 예술을 경험하기 위해 사고하는 두뇌를 잠시 멈춰뒀다면 다시 두뇌의 스위치를 켜고 자아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p.194-


너무 많은 방문객들이 메트를 미술사 박물관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술에서 배우기보다는 예술을 배우려 한다. 또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는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이 감히 작품을 파고들어 재량껏 의미를 찾아내는 자리가 아니라고 넘겨짚는다. 메트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나는 이곳의 주된 역할이 미술사 박물관이 아니라는걸 더욱 확신하게 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관심 영역은 하늘 높이 솟았다가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지하무덤까지 내려가고, 그 둘 사이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란 어떤 느낌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거의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다. 그런 것에 관한 전문가는 있을 수 없다. 나는 우리가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가까이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예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p.206-


그녀의 작품을 생명력 없이 흉내낼 수는 있지만 재현하기는 불가능하다. 정리하자면 나는 그녀의 그림이 얼마나 훌륭한지 믿을 수도 없어서, 아주 오랜만에 그저 깊이 흠모하며 바라보기만 했다. 이제 이런 순간들은 예전만큼 자주 오지 않고 그 사실을 인정하며 슬퍼진다. 위대한 그림은 경외감, 사랑 그리고 고통같은 잠들어 있는 감정들을 불러 일으키고, 그것은 메자닌의 골동품들에 대한 호기심과는 다르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격렬한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삶의 중심에 구멍을 냈던 상실감보다 그 구멍을 메운 잡다한 걱정거리들을 더 많이 생각한다. 아마도 그게 옳고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p.256-


“끔찍한 순교”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어떤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창문을 열고, 별 생각없이 그 옆을 걸어간다.”나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가운데 부분이 혼란스러운 일상생활을 제대로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p.320-


살다보면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자주 있죠. 삶이 항상 평탄할수는 없는거잖아요.

어떤 철학자는 '지속적 슬픔과 간헐적 행복'이라고 했는데 매 순간이 즐겁거나 행복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힘들고 짜증나고 하기 싫을때도 많습니다.

이럴때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한데 저자는 어릴적 어머님과 미술관에 다녔던 좋은 기억때문인지 미술관으로 숨어듭니다.

저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취미를 가지면 삶의 질이 엄청 달라진다고 합니다.

주말 또는 휴일에 시간이 나면 보통은 소파에서 뒹굴거리면서 TV를 보는 둥 마는둥 하다 졸기도 하고 그러죠.

하지만 취미가 있으면 달라집니다. 취미는 시간이 나면 하는게 아니라 시간이 없는 와중에도 짬을 내어서 하는거죠.

몰두 몰입하다보면 잡생각이 안나서 좋고 적당한 양의 땀은 기분전환도 이루어주죠.

힘들때 버티게 해주는 그 무엇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갖고 있는데 당신은 갖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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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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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에 출간된 스페인문학이다.

스페인문학이지만 배경은 멕시코다.

아마도 멕시코가 많은 중남미 국가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식민지였기 때문에 스페인문화가 주류를 차지하기 때문일거라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중남미의 많은 문학도 대부분 스페인문학으로 분류된다.

 

멕시코혁명이 나온 것으로 보아 시대배경은 1910년 이후로 생각된다.

 

농장을 경영하는 어느 집안에는 딸이 셋 있다.

주인공은 셋째딸인 티타이다.(스페인 발음으로는 띠따가 맞을 것 같다)

티타는 막내딸이 부모님을 부양해야 한다는 가문의 관습으로 인해 결혼을 할 수가 없다.

어느날 한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페드로와 결혼을 하고자 하나 가문의 관습을 철저히 지키고자 하는 어머니 마마 엘레나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다.

마마 엘레나는 큰딸인 로사우라와 결혼시키려고 하고 페드로는 로사우라와 결혼하는 것이 티타와 가까이 있는 방법이라 생각하고 로사우라와의 결혼을 승낙한다.

 

티타와 페드로는 어머니의 감시로 인해 거의 마주할 수가 없다.

이후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이야기는 진행이 된다.

 

목차를 보면 1월부터 12월까지 되어 있고 각 달마다 음식이 나오고 어떻게 음식을 만드는지가 설명되어 있다.

 

티타는 농장의 주방을 전담하며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만드는데 음식을 만들면서 티타의 감정이 음식에 녹아들어 먹는 사람들이 티타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되면서 여러 사건들이 벌어진다.

 

가령 둘째언니는 페드로가 티타에게 선물해 준 장미를 티타가 버리지 못하고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함으로 인해 사랑의 감정을 너무나도 심하게 느껴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뛰쳐나가 혁명군의 장교와 사랑을 나누고 집을 나가버린다는 식이다.

 

여타의 다른 리뷰와 다르게 세 딸의 입장에서 한번 읽어보고자 한다.

 

첫째딸 로사우라

로사우라는 마마 엘레나에게 단 한번도 거역함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의 명으로 처음 본 페드로(심지어 동생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와 결혼을 한다.

사랑없는 결혼생활을 지속했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페드로와 티타가 사랑하는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둘 사이를 인정하고 같이 지내고자 한다.

태어났기에 살아간다는 말이 딱 맞는 삶이다.

인생에서 행복이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한번도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 시대의 대부분의 여성이 이런 삶을 살았을 것이다.

 

둘째딸 헤르트루디스

헤르트루디스는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나간 가장 주도적인 인물이다.

물론 첫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이후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갔다는 것은 이미 본인은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본능적으로 주도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티타가 만든 음식을 먹고 성욕이 치솟아 제어가 안되어 혁명군 장교와 몸을 섞고 그걸로도 모자라 스스로 사창가에 찾아가서 성욕을 모두 해소한 사람.

이후 혁명군에 투신하여 혁명군 장군이 되고 혁명에 큰 공을 세운 인물.

어쩌면 이 소설이 페미니즘 문학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는 티타도 있겠지만 헤르트루디스의 몫도 있다고 판단된다.

 

셋째딸 티타

티타는 어릴때부터 부엌에서 지내 자연스레 요리와 친해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운명에 순응하며 지냈으나 로사우라와 페드로의 자식(본인이 젖먹여 키운)이 죽게 되자 처음으로 어머니 마마 엘레나에게 반항하게 된다.

대부분의 자식이 부모에게 반항을 하면서 본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면서 한명의 사람이자 성인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티타도 그러했다. 반면 로사우라는 그러지 못했지만.

 

아마도 우리네 인생살이도 비슷하겠지.

주위에 둘러보면 저 세명의 사람 중 한명은 꼭 보이게 마련이고 본인도 꼭 한명의 삶을 사는게 아니고 어쩔때는 운명에 순응하며 또 한편으로는 스스로 삶을 개척하며 살아가기도 하죠.

 

문학을 읽으며 등장인물의 삶에 때로는 공감하며 때로는 이해를 못해(대체 페드로의 결혼결정은 이해할 수가 없죠)반감을 갖기도 하죠.

그렇게 여러 인물군상들을 보며 나를 되돌아보며 반성과 공감, 후회를 반복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감정을 카타르시스라고 하더군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게 문학의 목적이라면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은 충분히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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