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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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술관을 좋아합니다. 박물관과 도서관도 좋아합니다.

제 나름으로는 3관 3방이라 하는데 정신건강을 위해서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을 좋아하고 순간 쾌감을 위해서 3방 피씨방 만화방 찜질방을 좋아하죠.

미술관을 왜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어느 순간부터 자주 다니게 되었죠.

도서관과 미술관 박물관을 좋아하는 저에게 이 책은 정말 딱 좋은 책이네요.


2023년말에 어떤 책을 읽어볼까 검색을 하다 이동진 작가(영화평론가이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작가입니다)가 2023년의 책으로 꼽았더라구요.

흥미롭다고 생각하고 구입했는데 읽어보니 이건 정말 나를 위한 책이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책의 내용은 뉴욕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한 청년이 좋아하던 친 형의 죽음을 맞이하며 삶을 되돌아보면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경비원으로 취직하고 생활하면서 느끼는 여러 감정을 서술한 글입니다.

경비원이 되어 전시관에서 여러 작품들을 만나고 본인의 감정과 생각으로 예술품을 대하고 또 직원들과 어울리며 상처는 점점 아물어가고 새로운 도전과 삶으로 나아간다는 것으로 결말이 지어집니다.


제가 책을 읽으며 밑줄 쳐가며 읽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처음으로 문장을 저장해가면서 읽었습니다.

한참 읽다가 생각해보니 번역이 좀 그렇더군요. 영어식 문체 about를 그대로 번역한 대하여, 관하여 라는 문구가 난무하고 조금 문장이 어색한 느낌이 있었는데 번역이 안 좋다는 생각을 못할 만큼 좋은 문장이 많았어요.

동감되는 문장을 너무 많이 만났어요.

하나씩 찾아볼게요.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근본적으로 예술만이 가진 특별한 힘에 반응하듯 그림에 반응했다. 다시 말해서 그림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음에도 이미 그것을 충분히 경험한 것이다. 그때는 내가 느낀 감상을 말로는 분출할 수가 없었다. 사실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그 그림의 아름다움은 언어적인 것이 아니라 물감과도 같이 과묵하고 직접적이며 물체적이어서 생각으로 번역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듯했다. 그래서 그림에 대한 나의 반응은 새 한 마리가 가슴속에서 퍼덕이듯 내 안에 갇혀 있었다.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p.30-

생각해보니 그랬었어요. 기억은 안나지만 어떤 전시회에서(작가가 누군지 어떤 전시회였는지, 어느 미술관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그림을 보았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아 팔에 닭살이 돋고 모골이 송연하다고 그러죠, 머리털이 삐쭉솟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 있었어요. 이유는 몰라요. 그냥 그랬어요. 그때 이후로 이런 감정을 왜 느끼게 되는건지 궁금해서 더욱 미술관 박물관을 다녔는지도 모르겠네요.


세련되어지고 싶었던 나는 적절한 학문적 도구를 갖추고 최신 용어를 익히면 예술을 제대로 분석하는 법을 배울 수 있고, 따라서 예술을 대하는 데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가슴속에서 작은 새가 날개짓하는 것이 또 느껴졌나?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었다. 나는 이제 그림의 모티프에 정신을 집중하거나 유파의 화풍을 파악하면서 그 묘한 느낌을 가라앉힐 수 있지 않은가. 이러한 전략은 소리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인식을 뛰어넘어 현실 세계에서 나의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줄 언어를 찾기 위함이었다. -p.32-

저자는 정말 제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문장이었어요.

예술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그림과 관련한 책들을 읽고 인상파가 어떻느니 르네상스는 뭐니 중세 유럽의 예술은 어떤 특징이 있다는 둥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비롯해서 진중권의 미학오딧세이 등등 책장에 미술 관련 서적은 점점 늘어나고 저의 지식도 늘어갔지만 어느 순간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교과서 달달 외운다고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건 그냥 저의 지적 허영심만 채우는 거라는 자기비판을 했습니다.


작품들을 지켜보는 일을 하는 나는 이 작품을 본래의 의도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14세기 화가는 언젠가 예술품 비평가라는 직업이나 미술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교과서가 등장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베르다르도 다디에게 그림은 고통스럽지만 꼭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생각을 돕는 도구였을 것이다. 나는 예수의 그림들에서 새롭거나 미묘한 뉘앙스를 찾는데 관심이 없다. 내가 이해한 건 다디는 고통 그 자체를 그렸다는 점이다. 그의 그림은 고통에 관한 것이다. 고통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말문을 막히게 하는 엄청난 고통의 무게를 느끼기 위해 그림을 본다. 그렇지 않다면 그림의 정수를 보지 못한 것이다.

많은 경우 위대한 예술품은 뻔한 사실을 우리에게 되새기게 하려는 듯하다. ‘이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하는게 전부다. 나도 지금 이 순간에는 고통이 주는 실제적 두려움을 다디의 위대한 작품만큼이나 뚜렷하게 이해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내 그 사실을 잊고 만다. 점점 그 명확함을 잃어가는 것이다. 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보듯 우리는 그 현실을 다시 직면해야 한다. -P.51-


나도 괜찮은사람으로 산 것 같아. 잠들었는데 그 사이에 누가 비디오를 대여점에 돌려줘버렸어. 누구나 고통을 겪지, 내 차례야. 누구나 죽어, 내 차례고. 고통을 피하는 약을 먹고 싶기도 하고 먹고 싶지 않기도 해. 죽는 건 상관없어. 다만 고통을 겪고 싶진 않아. 모두들 늙어가는 걸 보고 싶은데⋯.크리스타를 행복하게 해줘. 행복한 추억이 많아. 너랑 이야기한 것도 좋은 추억이야. 영화를 보다 잠이 들었는데 다 끝내지 않은 비디오를 누군가가 돌려줘버린 느낌이야. -p.62-

저자의 형인 톰이 저자에게 한 말입니다. 참 가슴아픈 말이기도 한데요, 형은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남아 있는 가족들의 이후의 삶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을 저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책으로 읽는 것과 예술품을 직접 보는 경험이 얼마나 다른지 다시 한번 느낀다. 책 속 정보는 이집트에 관한 지식을 진일보시켰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집트의 파편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나를 멈추게 한다. 이것이 예술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우리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 다음으로 간단히 넘어갈 수 없다. 예술은 어느 주제에 관해 몇 가지 요점을 아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점이야말로 예술이 절대 내놓지 않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말로 단번에 요약하기에 너무 거대한 동시에 아주 내밀한 것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런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p.87-

가끔씩 전시 팜플렛을 읽으며 작품을 보다보면 팜플렛에 있는 설명과 나의 감상이 다를때가 있거던요, 그럴 때 내가 잘못되었나 라는 생각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감상할 수도 있지 뭐 라고 합니다. 특히 예술품의 기본 배경지식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던요. 이 그림은 작가가 누구고 인상파의 그림이며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건 교과서에 서술된 내용이고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감상하면 되거던요. 또 처음볼때와 두 번째 세 번째 볼 때 느낌이 다를때도 많기 때문에 예술품은 여러번 자주 보는게 좋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나만의 방식을 갖추게 됐다. 우선 작품에서 교과서를 쓰는 사람들이 솔깃해할 만한 대단한 특이점을 곧바로 찾아내고 싶은 유혹을 떨쳐낸다. 뚜렷한 특징을 찾는데 정신을 팔면 작품의 나머지 대부분을 무시하기 십상이다. 어느 예술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자신의 눈에게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건 좋다’,‘이건 나쁘다’또는 ‘이건 가,나,다를 의미하는 바로크 시대 그림이다’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상적으로는 처음 1분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해선 안된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p.114-

제가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할 때 세 번 보거던요. 우선 먼저 한번 둘러보며 그림을 봅니다. 이후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다시 보구요, 이후에 다시 한번 봅니다. 그러면 처음 볼때와 세 번째 볼 때 조금 다르게 보여지기도 해서 저만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 -p.143-

이건 아마 분수에 동전 던질 때 부모님께서 해주신 말이었던걸로 기억아는데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써먹어야지 라고 생각하며 저장해놓은 문장인데 참 좋네요.


계획이 뒤죽박죽된 채로 메트를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이 말이 되지, 보는 것마다 성큼성큼 받아들이는 유식한 사람들이 오히려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당황한 사람들은 놀라운 것들을 보고 놀란다. 이럴 때마다 내 안의 그 어떤 우월감을 뽐내고 싶은 충동이 일지라도 억누를 뿐 아니라 그런 충동이 어리석고 터무니없다고 치부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 중 누구도 이 주제, 그러니까 이 세상과 그 모든 아름다움에 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한다. 미켈란젤로가 태어난 해와 죽은 해를 알지언정 막상 그의 작업실이나 페르시아의 세밀화가, 나바호족의 바구니 짜는 장인의 작업실 등등 예술의 현장에 가면 자신의 무지를 얼마나 압도적으로 실감하게 될 것인가. 심지어 그 예술가들조차도 거대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기 일쑤인 이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p.148-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재킷 주머니에서 작은 공책을 하나 꺼내 들고 머리에 떠오르는 포부들을 몇 개의 문장으로 적는다. 과거에는 대부분 수동적인 태도로 메트와 메트의 소장품들을 일종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관찰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을 흡수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그러는 대신 예술과 씨름하고, 나의 다양한 측면을 모두 동원해서 그 예술이 던지는 질문에 부딪쳐보면 어떨까? 미술관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덤벼볼 만한 가치가 있는 숙제 같다. 예술을 경험하기 위해 사고하는 두뇌를 잠시 멈춰뒀다면 다시 두뇌의 스위치를 켜고 자아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p.194-


너무 많은 방문객들이 메트를 미술사 박물관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술에서 배우기보다는 예술을 배우려 한다. 또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는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이 감히 작품을 파고들어 재량껏 의미를 찾아내는 자리가 아니라고 넘겨짚는다. 메트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나는 이곳의 주된 역할이 미술사 박물관이 아니라는걸 더욱 확신하게 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관심 영역은 하늘 높이 솟았다가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지하무덤까지 내려가고, 그 둘 사이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란 어떤 느낌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거의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다. 그런 것에 관한 전문가는 있을 수 없다. 나는 우리가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가까이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예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p.206-


그녀의 작품을 생명력 없이 흉내낼 수는 있지만 재현하기는 불가능하다. 정리하자면 나는 그녀의 그림이 얼마나 훌륭한지 믿을 수도 없어서, 아주 오랜만에 그저 깊이 흠모하며 바라보기만 했다. 이제 이런 순간들은 예전만큼 자주 오지 않고 그 사실을 인정하며 슬퍼진다. 위대한 그림은 경외감, 사랑 그리고 고통같은 잠들어 있는 감정들을 불러 일으키고, 그것은 메자닌의 골동품들에 대한 호기심과는 다르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격렬한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삶의 중심에 구멍을 냈던 상실감보다 그 구멍을 메운 잡다한 걱정거리들을 더 많이 생각한다. 아마도 그게 옳고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p.256-


“끔찍한 순교”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어떤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창문을 열고, 별 생각없이 그 옆을 걸어간다.”나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가운데 부분이 혼란스러운 일상생활을 제대로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p.320-


살다보면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자주 있죠. 삶이 항상 평탄할수는 없는거잖아요.

어떤 철학자는 '지속적 슬픔과 간헐적 행복'이라고 했는데 매 순간이 즐겁거나 행복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힘들고 짜증나고 하기 싫을때도 많습니다.

이럴때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한데 저자는 어릴적 어머님과 미술관에 다녔던 좋은 기억때문인지 미술관으로 숨어듭니다.

저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취미를 가지면 삶의 질이 엄청 달라진다고 합니다.

주말 또는 휴일에 시간이 나면 보통은 소파에서 뒹굴거리면서 TV를 보는 둥 마는둥 하다 졸기도 하고 그러죠.

하지만 취미가 있으면 달라집니다. 취미는 시간이 나면 하는게 아니라 시간이 없는 와중에도 짬을 내어서 하는거죠.

몰두 몰입하다보면 잡생각이 안나서 좋고 적당한 양의 땀은 기분전환도 이루어주죠.

힘들때 버티게 해주는 그 무엇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갖고 있는데 당신은 갖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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