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양치기 소녀 마음을 키우는 문학여행 5
앤 로럴 카터 지음, 박미낭 옮김 / 파라주니어(=파라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지금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지역에서 전쟁이 한창입니다.

하마스라는 팔레스타인 무장조직과 이스라엘 정부군간에 치열한(일방적인)전투가 연일 뉴스에 나오고 있습니다.

병원이 폭격을 받았다느니 무고한 민간인이 수백명 희생을 당했다는 뉴스가 계속 나오고 있죠.

중동지역 전문가라는 분들이 여러 매체에서 중동지역의 역사와 지금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열심히 설명하는 프로그램들이 매일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 오스만투르크제국이 영국에게 어쩌고 저쩌고, 영국이 뭐 이중약속을 어떻게 했니, 배경지식으로 영화 [아라비안의 로렌스]등등은 다른 유튜브나 블로그를 보세요.

책이 2009년에 출판되었으니 시대적 배경은 아마 2천년대 초반이겠죠.

여섯 살이 된 아마니는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지만 학교에 가기 싫었다. 아마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양떼를 몰고 산으로 갔던 날 양 한 마리가 새끼를 낳았고 무사히 양의 출산을 도왔던 그녀는 할아버지를 따라 양치기가 되기로 결심했다.

저녁 식사시간에 할아버지는 아마니에게 양치기를 물려주겠다고 말씀하셨고 모든 가족은 반대했지만 단호했던 할아버지의 태도에 가장의 말을 따르는 것이 팔레스타인의 관습이기에 가족들은 할아버지의 말을 뜻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할아버지와 그녀의 어머니는,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어린 양치기가 된 소녀 아마니에게 헬멧을 쓴 군인들이 총을 겨누면 “군인들이 시키는 대로 해라. 그들이 움직여도 좋다고 할 때까지 길 위에서 조용히 기다려라.”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할아버지는 이스라엘인들이 안전지대로 선포한 산의 북쪽 비탈로는 가지 말라고 했고 아마니의 행복한 양치기 생활은 시작되었다. 6~7년의 세월동안 아마니는 ‘양이 새끼를 낳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양 떼를 잘 돌보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학교를 가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

열세살이 된 아마니는 생리를 시작했지만 아마니가 나이를 먹은 만큼 할아버지도 쇠약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니가 사는 마을에도 이스라엘의 정착촌이 들어서고 있었다.

이스라엘인들은 새로운 정착촌을 만들고 팔레스타인의 마을을 관통해서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팔레스타인 곳곳에 이스라엘 정착촌이 건설되었고, 이스라엘 인들은 팔레스타인들의 땅과 물을 비롯한 모든 것을 빼앗았다. 법은 이스라엘인들만을 위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유없이 체포되고, 감옥에 가고, 총에 맞아 죽는일도 계속 생겼다.

큰아빠는 무기를 챙겨 싸우자고 말했고, 아빠는 반대하며 평화시위를 하자고 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당신이 당신의 아버지에게 받았던 양치기 지팡이를 아마니에게 유산으로 남겼다.

꿈이 과학자였던 오빠 오마르는 학교 성적이 좋아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진학했다.

반면 아마니는 여전히 양치기의 상징인 지팡이를 들고 매일 양 떼를 몰고 산으로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씨도(할아버지)의 산봉우리에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인이 정착촌을 건설한 뒤 아마니는 함부로 씨도의 산으로 가지 않았다. 그들과 마주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오아시스 근처에서 양 떼를 방목한 후 산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산을 올랐다.

양들이 풀을 뜯어먹는 동안 아마니는 정착촌 건설 현장을 살펴보았다. 인부들은 아마니를 한번 보더니 일에 열중했고 총을 든 군인들은 아마니에게 떠나라는 손짓을 보였다.

“아마니는 그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이곳은 수천 년도 넘게 우리 조상 땅이었어!”

사헴이 어딘가를 향해 짖었고 곧 엄청나게 큰 총소리가 울렸고 두 번째 총소리에 양 한 마리가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어린 양을 들쳐 안고 산 아래를 내달린 아마니는 이 사건 이후 학교에 가기로 결심했다.

“전 양치기예요. 정착민이 제 양을...... 한 마리 죽여요. 정착민은 영어를 써요. 난 영어가 필요해요. 그들을 말려야 하니까요.”

영어로 말해야 한다는 선생님 말에 아마니는 떠듬거리며 자신이 학교에 온 이유를 말했다. 아마니의 촌스러운 모습을 보고 킥킥거리던 아이들은 곧 웃음을 멈췄다. 아마니의 말이 끝나자 교실에는 침묵이 흘렀다.

정착촌은 밤마다 불빛이 환했고 고속도로는 마을의 중심을 정확히 관통했다. 아마니 가족의 포도과수원, 올리브과수원은 뭉텅 잘려나가 고속도로가 되었다. 양들에게 풀을 먹일 땅은 점점 줄었다.

포도주스 공장에서 오늘 밤 안으로 포도를 가져오면 모두 구입하겠다고 했다. 알칼릴을 통해 가야하지만 이스라엘 검문소에 막혀 갈 수가 없었다. 고속도로가 있지만 팔레스타인 땅에 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용할 수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황천길이라 부르는 산길 도로를 이용해야 했다. 산길을 이용하면 포도가 다 물러터지기 때문에 큰아빠는 고속도로를 이용하기로 결심한다.

아빠는 반대했지만 큰아빠는 고속도로를 탔다. 전조등을 끄고 어둠속을 달렸지만 이스라엘 군인들이 나타났다. 군인들은 포도상자들을 도로위로 던졌고 가족들을 총으로 위협했고 큰아빠를 끌고 갔다.

올리브 수확 철이 왔고 온 가족이 올리브 수확에 힘들 보태야 했다. 학교에서는 올리브 방학을 주었고 먼 곳에 사는 친척들도 수확을 위해 찾아왔다.

올리브를 수확하는 도중 정착촌 사람들이 보였고 누군가가 올리브 과수원을 향해 총을 쏘았다. 군인과 정착민이 와서 올리브 과수원이 정착촌과 너무 가깝다는 이유러 더 이상 올리브 과수원에 오지 마라고 명령했다. 평화롭게 농사짓는 사람들이라고, 여기는 대대로 우리 집안의 땅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도대체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이러는지 모르겠소.”

그 장교가 냅다 소리를 질렀다. “우리의 안전을 지킬 권리요. 우리의 모든 권리는 거기에서 나온다는 걸 모르겠소?”

정착촌 사람들이 오아시스에 독을 푸는 바람에 오아시스 물을 마신 아마니의 양 떼들이 몰살당했다.

정착민들은 중장비를 동원해 올리브 과수원을 덮쳤다. 한그루의 올리브 나무도 남기지 않고 모두 베었고, 할아버지의 집을 깔아뭉갰고 다음으로 아마니의 집과 큰아빠의 집도 남기지 않았다.

불도저가 아마니의 집을 밀어버리는 순간 아마니는 불도저 앞에 버티고 서서 집과 자신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군인들이 다가와 아마니를 제압했고, 고개만 겨우 든 상태로 잡이 사라지는 장면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나귀를 타고 돌아오시던 아빠가 그 광경을 보고 군인들에게 돌진했고, 군인들은 아빠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나귀가 총에 맞아 쓰러졌고 같이 쓰러진 아빠를 군인들이 발로 짓밟고 질질 끌고 갔다. 아마니 옆에는 총에 맞아 죽은 양치기 개 ‘사헴’이 쓰러져 있었다.

모든 것이 다 사라졌다. 양 떼, 양치기 개 사헴, 올리브 과수원, 할아버지 집 그리고 자기집과 큰아빠의 집까지. 아마니는 돌을 들어 불도저를 향해 던졌다. 하나, 둘, 셋. 계속해서 돌을 던지고 그녀는 뒤를 돌아 도망갔다.

파괴된 아마니 집 아래쪽에 국제 적십자사에서 제공한 큰 텐트가 쳐졌다. 아마니 가족을 돕겠다고 사람들이 찾아왔다. 유대인 랍비도 있었고 미국 출신의 기독교인도 있었다. 텔아비브에 사는 인권 변호사도 와서 법적으로 국제 사회에 호소하겠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마니를 예뻐하던 학교 영어 선생님이 텐트를 찾았다. 선생님은 얇은 꾸러미를 내밀었다. 그 속에는 라말라에 있는 국제 학교 교육 프로그램 자료가 들어 있었다. 아마니만 원한다면 진학을 도와주겠다고 그녀를 설득했다. 하지만 아마니는 자신은 양치기로서 고향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조금 더 생각해보라는 말과 그러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에야 텐트를 떠났다.

선생님이 떠난 뒤, 아마니는 학교 소개서를 꺼냈다. 그녀의 발밑에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검은 양, ‘희망이’가 쉬고 있었다. 아마니는 ‘희망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골짜기 건너편으로 시선을 옮겼다. 부서진 집 잔해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오아시스 아래 과수원 자리는 나무 하나 없는 텅 빈 언덕이 되어 있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과 관련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의 56%(56%에는 이 지역의 경제적 핵심인 올리브농장과 곡창지대 80%이다)를 유대인이 차지하도록 한 1947년 유엔 결의안 이후 서로가 서로를 믿지 않고 불신하는 관계가 70년 넘게 이어지고 있죠.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떠나온 나라의 여권을 여전히 갖고 왔고(이중국적으로 언제든지 다시 떠날 수 있게), 팔레스타인 인들은 몇주 후면 집으로 돌아갈 줄 알고 집의 열쇠를 갖고 떠나왔다고 합니다.(팔레스타인 지역에 ‘귀향의 열쇠’라는 세상에서 제일 큰 열쇠상징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중동 각국 간에 여러 차례 전쟁이 있었고 또 평화협상도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있었지만 여기에는 지정학적 문제와 정치, 종교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지인지 이야기하기 전에

올리브를 수확할 때 올리브나무 뒤에 저격수가 숨어있지 않나 의심하는 이스라엘 정착민들에게 그렇다면 당신들의 감시하에 올리브 수확을 하겠다 라고 하는 합리적인(이게 합리적이라고?)제안 조차도 되지 않는 인간관계가 너무 서글프더군요.

아마니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저는 이 책의 제목을 [이렇게 전사가 된다]라고 고쳐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신의 눈앞에서 큰아빠와 아빠가 군인들에게 두들겨맞고 질질끌려가고, 대대로 가문의 땅이었던 올리브농장, 포도과수원이 폐허가 되고, 할아버지의 집, 큰아빠의 집과 자신의 집이 불도저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래도 그것까지는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양들을 죽이기 위해 오아시스에 독을 풀고 양치기 개를 총으로 죽이는 것까지 참을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누가 분노를 누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시위하고 법적으로 법정에서 다투고 국제사회에 호소하자고 하면 올타꾸나 하고 같이 할까? 아닐껄요? 오히려 누군가가 총을 주면서 우리와 같이 싸우자고 하면 땡큐하며 분연히 총을 들고 전사가 되는게 당연한게 아닐까요?

팔레스타인의 어린 소녀가 치마속에 폭탄을 숨기고 자살 폭탄테러를 감행했다는 국제뉴스를 가끔 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말하죠.

어린 소녀에게 얼마나 세뇌를 시켰으면 자살폭탄테러를 하냐 잔인한 놈들이다 라고 욕을 하며 티브이를 보죠. 하지만 당해보지 않았으면 이해하지 못합니다.(그렇다고 제가 경험이 있다는 건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아마니가 존경했거나 좋아했던 사람들인 학교 선생님이나 수의사, 인권변호사들을 보며 그들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르죠.

어떤 길을 하던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팔레스타인분쟁이 빨리 종식되고 완전 평화가 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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