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평점 :
1989년에 출간된 스페인문학이다.
스페인문학이지만 배경은 멕시코다.
아마도 멕시코가 많은 중남미 국가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식민지였기 때문에 스페인문화가 주류를 차지하기 때문일거라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중남미의 많은 문학도 대부분 스페인문학으로 분류된다.
멕시코혁명이 나온 것으로 보아 시대배경은 1910년 이후로 생각된다.
농장을 경영하는 어느 집안에는 딸이 셋 있다.
주인공은 셋째딸인 티타이다.(스페인 발음으로는 띠따가 맞을 것 같다)
티타는 막내딸이 부모님을 부양해야 한다는 가문의 관습으로 인해 결혼을 할 수가 없다.
어느날 한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페드로와 결혼을 하고자 하나 가문의 관습을 철저히 지키고자 하는 어머니 마마 엘레나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다.
마마 엘레나는 큰딸인 로사우라와 결혼시키려고 하고 페드로는 로사우라와 결혼하는 것이 티타와 가까이 있는 방법이라 생각하고 로사우라와의 결혼을 승낙한다.
티타와 페드로는 어머니의 감시로 인해 거의 마주할 수가 없다.
이후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이야기는 진행이 된다.
목차를 보면 1월부터 12월까지 되어 있고 각 달마다 음식이 나오고 어떻게 음식을 만드는지가 설명되어 있다.
티타는 농장의 주방을 전담하며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만드는데 음식을 만들면서 티타의 감정이 음식에 녹아들어 먹는 사람들이 티타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되면서 여러 사건들이 벌어진다.
가령 둘째언니는 페드로가 티타에게 선물해 준 장미를 티타가 버리지 못하고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함으로 인해 사랑의 감정을 너무나도 심하게 느껴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뛰쳐나가 혁명군의 장교와 사랑을 나누고 집을 나가버린다는 식이다.
여타의 다른 리뷰와 다르게 세 딸의 입장에서 한번 읽어보고자 한다.
첫째딸 로사우라
로사우라는 마마 엘레나에게 단 한번도 거역함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의 명으로 처음 본 페드로(심지어 동생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와 결혼을 한다.
사랑없는 결혼생활을 지속했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페드로와 티타가 사랑하는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둘 사이를 인정하고 같이 지내고자 한다.
태어났기에 살아간다는 말이 딱 맞는 삶이다.
인생에서 행복이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한번도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 시대의 대부분의 여성이 이런 삶을 살았을 것이다.
둘째딸 헤르트루디스
헤르트루디스는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나간 가장 주도적인 인물이다.
물론 첫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이후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갔다는 것은 이미 본인은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본능적으로 주도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티타가 만든 음식을 먹고 성욕이 치솟아 제어가 안되어 혁명군 장교와 몸을 섞고 그걸로도 모자라 스스로 사창가에 찾아가서 성욕을 모두 해소한 사람.
이후 혁명군에 투신하여 혁명군 장군이 되고 혁명에 큰 공을 세운 인물.
어쩌면 이 소설이 페미니즘 문학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는 티타도 있겠지만 헤르트루디스의 몫도 있다고 판단된다.
셋째딸 티타
티타는 어릴때부터 부엌에서 지내 자연스레 요리와 친해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운명에 순응하며 지냈으나 로사우라와 페드로의 자식(본인이 젖먹여 키운)이 죽게 되자 처음으로 어머니 마마 엘레나에게 반항하게 된다.
대부분의 자식이 부모에게 반항을 하면서 본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면서 한명의 사람이자 성인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티타도 그러했다. 반면 로사우라는 그러지 못했지만.
아마도 우리네 인생살이도 비슷하겠지.
주위에 둘러보면 저 세명의 사람 중 한명은 꼭 보이게 마련이고 본인도 꼭 한명의 삶을 사는게 아니고 어쩔때는 운명에 순응하며 또 한편으로는 스스로 삶을 개척하며 살아가기도 하죠.
문학을 읽으며 등장인물의 삶에 때로는 공감하며 때로는 이해를 못해(대체 페드로의 결혼결정은 이해할 수가 없죠)반감을 갖기도 하죠.
그렇게 여러 인물군상들을 보며 나를 되돌아보며 반성과 공감, 후회를 반복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감정을 카타르시스라고 하더군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게 문학의 목적이라면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은 충분히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