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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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술관을 좋아합니다. 박물관과 도서관도 좋아합니다.

제 나름으로는 3관 3방이라 하는데 정신건강을 위해서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을 좋아하고 순간 쾌감을 위해서 3방 피씨방 만화방 찜질방을 좋아하죠.

미술관을 왜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어느 순간부터 자주 다니게 되었죠.

도서관과 미술관 박물관을 좋아하는 저에게 이 책은 정말 딱 좋은 책이네요.


2023년말에 어떤 책을 읽어볼까 검색을 하다 이동진 작가(영화평론가이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작가입니다)가 2023년의 책으로 꼽았더라구요.

흥미롭다고 생각하고 구입했는데 읽어보니 이건 정말 나를 위한 책이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책의 내용은 뉴욕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한 청년이 좋아하던 친 형의 죽음을 맞이하며 삶을 되돌아보면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경비원으로 취직하고 생활하면서 느끼는 여러 감정을 서술한 글입니다.

경비원이 되어 전시관에서 여러 작품들을 만나고 본인의 감정과 생각으로 예술품을 대하고 또 직원들과 어울리며 상처는 점점 아물어가고 새로운 도전과 삶으로 나아간다는 것으로 결말이 지어집니다.


제가 책을 읽으며 밑줄 쳐가며 읽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처음으로 문장을 저장해가면서 읽었습니다.

한참 읽다가 생각해보니 번역이 좀 그렇더군요. 영어식 문체 about를 그대로 번역한 대하여, 관하여 라는 문구가 난무하고 조금 문장이 어색한 느낌이 있었는데 번역이 안 좋다는 생각을 못할 만큼 좋은 문장이 많았어요.

동감되는 문장을 너무 많이 만났어요.

하나씩 찾아볼게요.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근본적으로 예술만이 가진 특별한 힘에 반응하듯 그림에 반응했다. 다시 말해서 그림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음에도 이미 그것을 충분히 경험한 것이다. 그때는 내가 느낀 감상을 말로는 분출할 수가 없었다. 사실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그 그림의 아름다움은 언어적인 것이 아니라 물감과도 같이 과묵하고 직접적이며 물체적이어서 생각으로 번역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듯했다. 그래서 그림에 대한 나의 반응은 새 한 마리가 가슴속에서 퍼덕이듯 내 안에 갇혀 있었다.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p.30-

생각해보니 그랬었어요. 기억은 안나지만 어떤 전시회에서(작가가 누군지 어떤 전시회였는지, 어느 미술관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그림을 보았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아 팔에 닭살이 돋고 모골이 송연하다고 그러죠, 머리털이 삐쭉솟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 있었어요. 이유는 몰라요. 그냥 그랬어요. 그때 이후로 이런 감정을 왜 느끼게 되는건지 궁금해서 더욱 미술관 박물관을 다녔는지도 모르겠네요.


세련되어지고 싶었던 나는 적절한 학문적 도구를 갖추고 최신 용어를 익히면 예술을 제대로 분석하는 법을 배울 수 있고, 따라서 예술을 대하는 데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가슴속에서 작은 새가 날개짓하는 것이 또 느껴졌나?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었다. 나는 이제 그림의 모티프에 정신을 집중하거나 유파의 화풍을 파악하면서 그 묘한 느낌을 가라앉힐 수 있지 않은가. 이러한 전략은 소리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인식을 뛰어넘어 현실 세계에서 나의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줄 언어를 찾기 위함이었다. -p.32-

저자는 정말 제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문장이었어요.

예술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그림과 관련한 책들을 읽고 인상파가 어떻느니 르네상스는 뭐니 중세 유럽의 예술은 어떤 특징이 있다는 둥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비롯해서 진중권의 미학오딧세이 등등 책장에 미술 관련 서적은 점점 늘어나고 저의 지식도 늘어갔지만 어느 순간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교과서 달달 외운다고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건 그냥 저의 지적 허영심만 채우는 거라는 자기비판을 했습니다.


작품들을 지켜보는 일을 하는 나는 이 작품을 본래의 의도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14세기 화가는 언젠가 예술품 비평가라는 직업이나 미술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교과서가 등장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베르다르도 다디에게 그림은 고통스럽지만 꼭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생각을 돕는 도구였을 것이다. 나는 예수의 그림들에서 새롭거나 미묘한 뉘앙스를 찾는데 관심이 없다. 내가 이해한 건 다디는 고통 그 자체를 그렸다는 점이다. 그의 그림은 고통에 관한 것이다. 고통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말문을 막히게 하는 엄청난 고통의 무게를 느끼기 위해 그림을 본다. 그렇지 않다면 그림의 정수를 보지 못한 것이다.

많은 경우 위대한 예술품은 뻔한 사실을 우리에게 되새기게 하려는 듯하다. ‘이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하는게 전부다. 나도 지금 이 순간에는 고통이 주는 실제적 두려움을 다디의 위대한 작품만큼이나 뚜렷하게 이해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내 그 사실을 잊고 만다. 점점 그 명확함을 잃어가는 것이다. 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보듯 우리는 그 현실을 다시 직면해야 한다. -P.51-


나도 괜찮은사람으로 산 것 같아. 잠들었는데 그 사이에 누가 비디오를 대여점에 돌려줘버렸어. 누구나 고통을 겪지, 내 차례야. 누구나 죽어, 내 차례고. 고통을 피하는 약을 먹고 싶기도 하고 먹고 싶지 않기도 해. 죽는 건 상관없어. 다만 고통을 겪고 싶진 않아. 모두들 늙어가는 걸 보고 싶은데⋯.크리스타를 행복하게 해줘. 행복한 추억이 많아. 너랑 이야기한 것도 좋은 추억이야. 영화를 보다 잠이 들었는데 다 끝내지 않은 비디오를 누군가가 돌려줘버린 느낌이야. -p.62-

저자의 형인 톰이 저자에게 한 말입니다. 참 가슴아픈 말이기도 한데요, 형은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남아 있는 가족들의 이후의 삶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을 저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책으로 읽는 것과 예술품을 직접 보는 경험이 얼마나 다른지 다시 한번 느낀다. 책 속 정보는 이집트에 관한 지식을 진일보시켰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집트의 파편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나를 멈추게 한다. 이것이 예술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우리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 다음으로 간단히 넘어갈 수 없다. 예술은 어느 주제에 관해 몇 가지 요점을 아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점이야말로 예술이 절대 내놓지 않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말로 단번에 요약하기에 너무 거대한 동시에 아주 내밀한 것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런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p.87-

가끔씩 전시 팜플렛을 읽으며 작품을 보다보면 팜플렛에 있는 설명과 나의 감상이 다를때가 있거던요, 그럴 때 내가 잘못되었나 라는 생각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감상할 수도 있지 뭐 라고 합니다. 특히 예술품의 기본 배경지식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던요. 이 그림은 작가가 누구고 인상파의 그림이며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건 교과서에 서술된 내용이고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감상하면 되거던요. 또 처음볼때와 두 번째 세 번째 볼 때 느낌이 다를때도 많기 때문에 예술품은 여러번 자주 보는게 좋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나만의 방식을 갖추게 됐다. 우선 작품에서 교과서를 쓰는 사람들이 솔깃해할 만한 대단한 특이점을 곧바로 찾아내고 싶은 유혹을 떨쳐낸다. 뚜렷한 특징을 찾는데 정신을 팔면 작품의 나머지 대부분을 무시하기 십상이다. 어느 예술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자신의 눈에게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건 좋다’,‘이건 나쁘다’또는 ‘이건 가,나,다를 의미하는 바로크 시대 그림이다’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상적으로는 처음 1분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해선 안된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p.114-

제가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할 때 세 번 보거던요. 우선 먼저 한번 둘러보며 그림을 봅니다. 이후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다시 보구요, 이후에 다시 한번 봅니다. 그러면 처음 볼때와 세 번째 볼 때 조금 다르게 보여지기도 해서 저만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 -p.143-

이건 아마 분수에 동전 던질 때 부모님께서 해주신 말이었던걸로 기억아는데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써먹어야지 라고 생각하며 저장해놓은 문장인데 참 좋네요.


계획이 뒤죽박죽된 채로 메트를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이 말이 되지, 보는 것마다 성큼성큼 받아들이는 유식한 사람들이 오히려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당황한 사람들은 놀라운 것들을 보고 놀란다. 이럴 때마다 내 안의 그 어떤 우월감을 뽐내고 싶은 충동이 일지라도 억누를 뿐 아니라 그런 충동이 어리석고 터무니없다고 치부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 중 누구도 이 주제, 그러니까 이 세상과 그 모든 아름다움에 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한다. 미켈란젤로가 태어난 해와 죽은 해를 알지언정 막상 그의 작업실이나 페르시아의 세밀화가, 나바호족의 바구니 짜는 장인의 작업실 등등 예술의 현장에 가면 자신의 무지를 얼마나 압도적으로 실감하게 될 것인가. 심지어 그 예술가들조차도 거대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기 일쑤인 이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p.148-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재킷 주머니에서 작은 공책을 하나 꺼내 들고 머리에 떠오르는 포부들을 몇 개의 문장으로 적는다. 과거에는 대부분 수동적인 태도로 메트와 메트의 소장품들을 일종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관찰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을 흡수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그러는 대신 예술과 씨름하고, 나의 다양한 측면을 모두 동원해서 그 예술이 던지는 질문에 부딪쳐보면 어떨까? 미술관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덤벼볼 만한 가치가 있는 숙제 같다. 예술을 경험하기 위해 사고하는 두뇌를 잠시 멈춰뒀다면 다시 두뇌의 스위치를 켜고 자아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p.194-


너무 많은 방문객들이 메트를 미술사 박물관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술에서 배우기보다는 예술을 배우려 한다. 또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는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이 감히 작품을 파고들어 재량껏 의미를 찾아내는 자리가 아니라고 넘겨짚는다. 메트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나는 이곳의 주된 역할이 미술사 박물관이 아니라는걸 더욱 확신하게 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관심 영역은 하늘 높이 솟았다가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지하무덤까지 내려가고, 그 둘 사이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란 어떤 느낌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거의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다. 그런 것에 관한 전문가는 있을 수 없다. 나는 우리가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가까이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예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p.206-


그녀의 작품을 생명력 없이 흉내낼 수는 있지만 재현하기는 불가능하다. 정리하자면 나는 그녀의 그림이 얼마나 훌륭한지 믿을 수도 없어서, 아주 오랜만에 그저 깊이 흠모하며 바라보기만 했다. 이제 이런 순간들은 예전만큼 자주 오지 않고 그 사실을 인정하며 슬퍼진다. 위대한 그림은 경외감, 사랑 그리고 고통같은 잠들어 있는 감정들을 불러 일으키고, 그것은 메자닌의 골동품들에 대한 호기심과는 다르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격렬한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삶의 중심에 구멍을 냈던 상실감보다 그 구멍을 메운 잡다한 걱정거리들을 더 많이 생각한다. 아마도 그게 옳고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p.256-


“끔찍한 순교”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어떤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창문을 열고, 별 생각없이 그 옆을 걸어간다.”나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가운데 부분이 혼란스러운 일상생활을 제대로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p.320-


살다보면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자주 있죠. 삶이 항상 평탄할수는 없는거잖아요.

어떤 철학자는 '지속적 슬픔과 간헐적 행복'이라고 했는데 매 순간이 즐겁거나 행복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힘들고 짜증나고 하기 싫을때도 많습니다.

이럴때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한데 저자는 어릴적 어머님과 미술관에 다녔던 좋은 기억때문인지 미술관으로 숨어듭니다.

저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취미를 가지면 삶의 질이 엄청 달라진다고 합니다.

주말 또는 휴일에 시간이 나면 보통은 소파에서 뒹굴거리면서 TV를 보는 둥 마는둥 하다 졸기도 하고 그러죠.

하지만 취미가 있으면 달라집니다. 취미는 시간이 나면 하는게 아니라 시간이 없는 와중에도 짬을 내어서 하는거죠.

몰두 몰입하다보면 잡생각이 안나서 좋고 적당한 양의 땀은 기분전환도 이루어주죠.

힘들때 버티게 해주는 그 무엇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갖고 있는데 당신은 갖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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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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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에 출간된 스페인문학이다.

스페인문학이지만 배경은 멕시코다.

아마도 멕시코가 많은 중남미 국가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식민지였기 때문에 스페인문화가 주류를 차지하기 때문일거라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중남미의 많은 문학도 대부분 스페인문학으로 분류된다.

 

멕시코혁명이 나온 것으로 보아 시대배경은 1910년 이후로 생각된다.

 

농장을 경영하는 어느 집안에는 딸이 셋 있다.

주인공은 셋째딸인 티타이다.(스페인 발음으로는 띠따가 맞을 것 같다)

티타는 막내딸이 부모님을 부양해야 한다는 가문의 관습으로 인해 결혼을 할 수가 없다.

어느날 한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페드로와 결혼을 하고자 하나 가문의 관습을 철저히 지키고자 하는 어머니 마마 엘레나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다.

마마 엘레나는 큰딸인 로사우라와 결혼시키려고 하고 페드로는 로사우라와 결혼하는 것이 티타와 가까이 있는 방법이라 생각하고 로사우라와의 결혼을 승낙한다.

 

티타와 페드로는 어머니의 감시로 인해 거의 마주할 수가 없다.

이후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이야기는 진행이 된다.

 

목차를 보면 1월부터 12월까지 되어 있고 각 달마다 음식이 나오고 어떻게 음식을 만드는지가 설명되어 있다.

 

티타는 농장의 주방을 전담하며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만드는데 음식을 만들면서 티타의 감정이 음식에 녹아들어 먹는 사람들이 티타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되면서 여러 사건들이 벌어진다.

 

가령 둘째언니는 페드로가 티타에게 선물해 준 장미를 티타가 버리지 못하고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함으로 인해 사랑의 감정을 너무나도 심하게 느껴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뛰쳐나가 혁명군의 장교와 사랑을 나누고 집을 나가버린다는 식이다.

 

여타의 다른 리뷰와 다르게 세 딸의 입장에서 한번 읽어보고자 한다.

 

첫째딸 로사우라

로사우라는 마마 엘레나에게 단 한번도 거역함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의 명으로 처음 본 페드로(심지어 동생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와 결혼을 한다.

사랑없는 결혼생활을 지속했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페드로와 티타가 사랑하는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둘 사이를 인정하고 같이 지내고자 한다.

태어났기에 살아간다는 말이 딱 맞는 삶이다.

인생에서 행복이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한번도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 시대의 대부분의 여성이 이런 삶을 살았을 것이다.

 

둘째딸 헤르트루디스

헤르트루디스는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나간 가장 주도적인 인물이다.

물론 첫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이후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갔다는 것은 이미 본인은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본능적으로 주도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티타가 만든 음식을 먹고 성욕이 치솟아 제어가 안되어 혁명군 장교와 몸을 섞고 그걸로도 모자라 스스로 사창가에 찾아가서 성욕을 모두 해소한 사람.

이후 혁명군에 투신하여 혁명군 장군이 되고 혁명에 큰 공을 세운 인물.

어쩌면 이 소설이 페미니즘 문학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는 티타도 있겠지만 헤르트루디스의 몫도 있다고 판단된다.

 

셋째딸 티타

티타는 어릴때부터 부엌에서 지내 자연스레 요리와 친해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운명에 순응하며 지냈으나 로사우라와 페드로의 자식(본인이 젖먹여 키운)이 죽게 되자 처음으로 어머니 마마 엘레나에게 반항하게 된다.

대부분의 자식이 부모에게 반항을 하면서 본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면서 한명의 사람이자 성인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티타도 그러했다. 반면 로사우라는 그러지 못했지만.

 

아마도 우리네 인생살이도 비슷하겠지.

주위에 둘러보면 저 세명의 사람 중 한명은 꼭 보이게 마련이고 본인도 꼭 한명의 삶을 사는게 아니고 어쩔때는 운명에 순응하며 또 한편으로는 스스로 삶을 개척하며 살아가기도 하죠.

 

문학을 읽으며 등장인물의 삶에 때로는 공감하며 때로는 이해를 못해(대체 페드로의 결혼결정은 이해할 수가 없죠)반감을 갖기도 하죠.

그렇게 여러 인물군상들을 보며 나를 되돌아보며 반성과 공감, 후회를 반복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감정을 카타르시스라고 하더군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게 문학의 목적이라면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은 충분히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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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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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사실 좀 많이 궁금했었다.

오래전 태백산맥을 읽은 후에 살아남은 빨치산들은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빨치산 중 대부분은 지리산에서 총에 맞아죽고 얼어죽고 굶어죽었다는데 그 중에 살아남아 체포된 사람들은 이후에 어떻게 살았을까?

대부분은 감옥살이를 하였을테고 전향을 하는 사람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을게다.

장기수라는 이름으로 길게는 30여년의 감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예전에 신춘문예가 한창 잘나갔을 때 해마다 신년에는 신문에 자기 신문사에서 당선된 신춘문예를 실었더랬다.

기억에 남는 소설 한편이 빨치산의 아들이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았다가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 사실을 알고 매주 지리산을 등산하며 뭐 어쨌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때부터였을까.

우리 사회에서 빨치산을 조금씩 빨갱이로 매도하던 시선에서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되었 시기였을 테다.

물론 신문에서 그 소설을 읽었던 나는 아마 청소년시기여서 빨치산이라는 존재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하였을테지만 뭔가 아들과 아버지가 화해의 길을 걷는 내용에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 소설은 빨치산의 딸이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자신이 알고 있던 아버지와 또다른 아버지를 알아가고 아버지에게 무심했던 자신을 반성하는 말로 마무리가 된다.

생각해보면 우리 주위에 아버지 같은 분이 꼭 한분씩은 계신 것 같다.

가족에게는 무심하지만 동네일에는 발벗고 나서시는 분들.

연좌제 때문에 조카는 육사 지원했다 떨어지고(모래시계 박태수가 그랬던 것처럼) 동생은 평생을 형을 원망하며 술만 마시면 집에 쳐들어와서 난장판을 피우고는 돌아갔다.

가족들은 당신에게 무심함을 원망하고 화를 내지만 주위분들은 늘 고마워하고 힘든일이 있으면 와서 도움을 요청하는 분.

아버지 고상욱님도 그런 분이셨다.

농사는 잼병이지만(문자 농사라 일컫는 <새농사>잡지에서 말하는 대로 농사짓는)종교에 빠진 조카도 다른 가족들에게 인정받도록 해주시고, 암내가 심해 결혼은 힘들겠다는 친구딸도 수술시켜 좋은 가정을 꾸려갈 수 있도록 해주셨다.

어머니가 한탄을 늘어놓으면 모두가 민중이라며 당신은 사회주의를 왜 했냐며 꾸지람을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도 보인다.

자주 보지 않았던가? 친구에게 보증을 섰다 빚을 잔뜩 떠 안았다던가, 속아서 필요도 없는 물건을 사온다던가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이 책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삶은 가족에게만 있지는 않았다.

딸이 장례식장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아버지와 여러 인연으로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장례식장 황사장, 민노당원 박동식씨, 학수오빠, 순경이었지만 아버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분등 너무나도 많은 분들이 아버지의 장례식에 다니러 왔다.

빨치산의 동료들과 출옥 이후에 만난 이들, 민노당원과 가톨릭농민회 회원분들도 그렇다.

빨치산으로 살아오셨지만 가장 친한 친구는 직업군인이었다가 교련선생으로 평생을 조선일보만 읽는 국민학교 동기동창. 왜 만나냐는 물음에 사람이 제일로 낫다고 대답하는 아버지와 아버지와 매일 만나 서로 욕을 해대지만 쏘주한잔 같이 걸치는 박선생.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빨치산 분들은 아마도 저렇게 살아오셨을 테다.

가족은 경제난으로 힘들고 친지들은 연좌제로 출세길이 막혔지만 본인의 사상과 생각을 버리지 않고 꾸준히 이땅의 진보와 통일을 위해 힘써 살아오신 분들.

누구는 그들을 여전히 빨갱이라고 하고 누구는 진보인사라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면 아버지와 박선생, 작은아버지 그리고 베트남전 상이용사 사이처럼 서로 화해하고 지내는 법인가보다.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난다.

19484월 제주에서의 민주항쟁이 있은 이후 제주민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나의 아버지와 삼촌을 죽인 사람이 저쪽 마을 누구인 걸 분명히 알고 있고, 나의 아버지가 죽인 사람의 자식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누구인 줄 뻔히 서로 알고 있는데 그들은 어떻게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살아내었을까?

제주도만이 그러지는 않았을게다. 14연대가 있었던 여수, 순천이 그러했을테고 지리산 인근 구례, 하동, 남원, 산청 등 많은 동네가 같은 삶을 지내왔을거다. 거기에는 구상욱씨도 있을테고 큰집오빠도 작은아버지도 베트남전 상이용사도 박선생도 살고 있을테지.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 부모님 세대의 삶은 다들 비슷하겠지.

시간이 세월이 약이 된 것일까?

소설 태백산맥을 불온서적이라 판금해야 한다던 게 20년이 조금 넘었다.

이제 살아계신 빨치산들은 거의 없을테지만 우리는 이렇게 산을 내려온 빨치산들이 이렇게 살아왔을거라는 걸 이렇게 책으로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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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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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소설을 만났다.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큰 갈등상황없이 밋밋한 내용이지만 그게 오히려 더 마음에 와 닿았다.

힐링이라는 단어를 이럴때 쓰면 딱이다 싶은 책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꿈꾸는 서점대표.

나도 동네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은 로또당첨으로 건물주나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서점과 관련한 책을 몇권 가지고 있다.

[어느날 서점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http://aladin.kr/p/oGGga

[섬에 있는 서점] http://aladin.kr/p/PUo60

[서점일기] http://aladin.kr/p/NykdL

이 외에도 동네서점을 탐방하는 책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책방을 하겠다는 꿈을 버리지는 못한 것 같다.

한때는 서점이 사양산업이라 서점이 줄어들고 있다고 언론에 많이 나왔지만 어느새 동네서점, 독립서점이라는 형태로 많이 생겨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곳만 해도 여러군데이고 집 주위에도 [당신의 글자들]이라는 동네서점이 있다. 



이 책은 영주라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 같지만 사실 보면 가장 많이 등장한다 뿐이지 대부분의 사람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한사람씩 소개하면서 리뷰를 해보고자 한다.


영주는 휴남동 서점의 대표이다. 성공이라는 목표를 갖고 직장생활을 치열하게 하고 같은 목표를 가진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으나 어느날 번아웃이 와서 남편과 이혼하고 청소년 시기에 가졌던 꿈인 책방을 열었다. 처음에는 그냥 시작했으나 어느 순간 책방을 얼마나 오랫동안 꾸려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가면서 사람들과 어울려가는 사람이다.


민준은 대기업 입사라는 대부분의 사람이 갖고 있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대학생활을 하고 취준생 시절을 거쳤으나 목표는 이루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다 휴남동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커피를 만들게 된다. 커피를 만들다보니 로스팅업체에도 자주 방문하게 되고 점점 바리스타로서 전문성을 갖추게 된다(피동형문장은 나쁜 문장인데 이건 정말 피동이기 때문에 피동형 문장을 씁니다. 피동형문장과 관련해서는 책 중간에 내용이 나와서 일부러 강조합니다). 취업문제로 부모님과 갈등이 있으나 스스로 자신의 길을 생각하며 고민을 정리해 나간다.


전희주는 본캐는 민철엄마 부캐1은 휴남동서점 단골고객, 부캐2는 독서모임운영자인 사람으로 아들인 민철 때문에 속을 많이 썩어 영주와 고민을 많이 나누고 방법을 찾아나가며 한편으로 주부들로만 이루어진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정희주라는 사람 본캐를 찾기도 한다.


민철은 희주의 아들이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것은 다른 고등학생과 다를바 없는데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세상 모든 일이 시큰둥한 청소년이다. 엄마의 강요로 휴남동 서점에서 일주일에 책 한권씩 읽고 영주와 대화하는 타협을 한다. 하지만 책 읽기는 뒷전이고 주로 영주와 대화를 나누지만 차츰 서점의 많은 단골들과 대화를 나누며 청소년시기의 방황을 정리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나간다.


지미는 휴남동 서점에 커피원두를 공급하는 로스팅업체의 대표이며 그러다보니 영주와도 친해진 사람이다. 남편 때문에 속을 썩어 항상 남편 욕을 입에 달고 살지만 영주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이며 민준에게는 좋은 스승이기도 하다.


정서는 휴남동 서점 단골고객이다. 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멍때리고 시간을 보낼 공간을 찾던 중 휴남동 서점을 찾아내고 자주 들러 시간을 보낸다. 처음에는 그냥 멍때리다가 이제는 뜨개질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마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수 없어 세시간에 한번씩 음료를 주문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차츰 휴남동 서점의 중요한 인물이 되어가고 있다. 영주에게는 친구가, 민준에게는 커피맛을 감별하고, 민철에게는 좋은 대화상대가 되어준다. 차츰 자신의 속을 다스려 다시 취업의 길로 나서고자 한다.


현승우는 블로그에 글을 쓰는 작가지만 실제는 직장인이다. 한 곳에 꽂히면 끝을 보는 성격으로 어느날 한국어에 꽃혀 공부를 하다보니 어느새 문장 전문가가 되었다. 블로그에 좋은 문장과 나쁜 문장을 가려 글을 쓰다보니 어느새 유명한 블로거가 되었다. 어떤 책의 문장을 감별하다 출판사 대표와 온라인 상에서 논쟁을 벌여 유명세에 불이 붙었다. 작가와의 대화 이벤트로 휴남동서점을 방문했으며 이후 좋은 글쓰기 강의로 휴남동 서점의 주요인물이 되었다. 영주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라고 쓰면 스포일러이겠지만 무시하겠다.


책의 내용은 이 사람들이 휴남동 서점이라는 공간속에서 서로 얽혀 생활하지만 다들 자신만의 고민과 걱정이 있고 어떻게 성장해가는지를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동네서점의 고충도 중간중간 들어있다.

현실적으로 동네서점이 운영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장기적으로 운영은 가능할 것인지, 생계는 충분한지등 서점운영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갖고있는 나같은 사람들에게 함부로 쉽게 생각하면 안된다는 지점을 보여준다.

영주 또한 끊임없이 서점의 미래를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자리를 잡을 것인지 걱정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p57. 책은 뭐랄까,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몸에 남는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아니면 기억 너머의 기억에 남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기억나진 않은 어떤 문장이, 어떤이야기가 선택 앞에 선 나에게 선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하는 거의 모든 선택의 근거엔 제가 지금껏 읽은 책이 있는 거에요. 전 그 책들을 다 기억하지 못해요. 그래도 그 책들이 제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그러니 기억에 너무 집착할 필요 없는 것 아닐까요?”

이 부분이 내가 책 읽는 것과 너무 비슷해서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책을 읽을 때 굳이 다 기억하려고 하지도 않고 책에 줄을 치거나 메모를 하면서 읽지도 않는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머릿속에 남은 것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인데 없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라 책에 쓰여있는 것처럼 기억 너머의 기억에 남아 언젠가는 무의식으로 내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생각하기 때문에 작가의 생각에 많이 동감을 했다.

책에서는 마음에 와 닿은 좋은 구절이 많은데 위에 쓴 것처럼 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찾아서 쓰고 싶으나 굳이 그렇게 해야 할까 싶어서 이렇게 마무리하고자 한다.


또 한 구절 생각이 났다.

“하루를 무지 바쁘게, 무지 빡세게 보냈는데 시간만 흘려보낸 것 같은 기분이 싫었던 것 같아. 너는 나중에 이런 기분 느끼지 마. 뿌듯함을 느껴.”

그런 날이 있다. 정말 하루가 너무 바빠서 정신없이 보냈는데 지나고 보면 한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스>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누구에게나 24시간이 똑같이 주어진다. 하지만 그와 나의 시간은 밀도가 다르다. 시간을 밀도 있게 알차게 써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쉬어도 어영부영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알차게 쉬어야 하고 놀아도 재미나고 신나게 놀아야 한다. 카르페 디엠은 그냥 유명한 명언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을 현명하게 보내야 한다는 말이다.


ps. 책속의 인물 현승우가 쓴 [문장 잘 쓰는 법]이라는 책이 진짜 있는지 검색해봤으나 없었고 현승우라는 인물도 작가 현승우는 없고 다른 일을 하는 현승우는 있었다. 하하하


ps. 책에서 거론된 책 몇가지는 읽고 싶어졌다. 아리....(왜 아리...인지는 책을 읽어보세요)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랫동안 고민했던 행복이라는 개념에 대한 약간의 실마리가 있을 것 같다. 행복과 행복감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봐야겠고 느낌과 감정은 어떻게 다른지도 알고 싶어졌다(역시 피동형이지만 지금 감정은 책에 의해서 알고 싶어진게 분명하므로 피동형 문장이 맞는 문장이다).

박완서 작가의 [서있는 여자]는 정말 오래전 읽었던 책인데 기억은 잘 안나는데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여주인공의 좌절과 실패 뭐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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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 어느 여성 청소노동자의 일기
마이아 에켈뢰브 지음, 이유진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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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스웨덴에 살았던(1989년에 사망) 한 여성의 일기소설입니다.

책의 내용은 많은 분들이 리뷰를 작성하셨기도 하고 딱히 내용이 스토리가 있는 것은 아니기에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일상(일기니까 일상이겠지요)을 담담히 써내려간 책입니다.

결혼생활 17년만에 남편과 이혼하고 5남매와 함께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초등학교만을 졸업했기에 수입이 많은 직업을 가질 수 없어 청소부로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1965년부터 1969년까지의 일상이 쓰여있습니다.

사회성짙은 이야기부터 정책에 대한 불만, 빈부격차, 국제뉴스에 대한 관심까지 일기에는 다양한 내용들이 적혀있습니다.

책에서 언급되는 국제정세(베트남전쟁, 중동전쟁, 아프리카내전등)나 국가정책에 대한 내용을 제외하면 이 책은 그냥 어떤 한 사람의 일상이 적혀있는 일기 그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제가 느낀 여러 감정들을 적어보겠습니다.

 

우선 그녀는 왜 야간학교를 다니려고 했을까요?

처음에는 그녀가 자주 언급했듯이 스웨덴어(그녀에게는 국어이겠지요)를 잘 몰라서 글도 잘 못쓰고 말도 잘 못해서라고 생각했는데 다만 그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저임금노동자라면 야간학교에서 좀 더 나은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직업교육이나 자격증 등을 취득할 수 있는 교육을 받을거라 생각하겠지만 그녀는 예상외로 역사라던가 문학등 인문학 수업을 주로 수강을 했습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쩐지 이런 장면이 떠오르더라구요.

tv프로그램 중에서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북유럽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항상 박물관을 제일 먼저 방문하더라구요.

북유럽 국가들의 국민성이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한 나라를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역사를 아는 것이다 라는 교육을 받고 자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두 번째는 흔히 북유럽국가에 갖게 되는 복지국가라는 환상을 조금 달리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시대배경이 1960년대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스웨덴이라는 국가도 빈부격차도 크고 실업문제도 심하게 겪고 있다는 점이죠.

그녀와 그녀의 자식들은 끊임없이 직업을 구하고 찾아야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지 못해 짧은 기간 일하고 또 다른 직업을 구하고 항상 경제난에 시달려야 했지요.

그녀는 끊임없이 소유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자신의 경제난에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일상을 꾸역꾸역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빈곤층이 갖게 되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삶에 대한 악과 독기가 그녀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자존감이 높다라고 해야 할까요?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겠지만(아마도 그 시대에는 자존감이라는 개념조차 없이 않았을까요?)그녀는 분명 자존감이 높고 삶에 대한 자세가 진지한 사람입니다.

 

다음으로 사람이 살면서 힘들 때 숨통을 트일 수 있는 무언가를 갖고있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녀에게는 일기를, 또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는 형태로 끊임없이 글을 써내려갑니다.

요근래 방송에서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사람이 취미를 갖고 있는 것은 삶의 질 측면에서 정말 중요한 것 같다구요.

취미가 있으면 시간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취미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구요.

취미가 없으면 시간이 있으면 그냥 소파에 드러누워 TV를 보던가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며 하릴없이 시간을 때운다구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제가 책을 좋아하는 취미가 있다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더군요.

저 역시도 주말에는 그냥 아무생각없이 멍때리면서 TV를 보는 시간이 많거던요.

하지만 책을 읽거나 밖으로 나가서 잠시 걸으며 바람이라도 쐬면 하루를 정말 알차게 보냈다는 느낌을 갖거던요.

이런 느낌을 갖는게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크게 작용하는 것 같네요.

그녀 또한 글을 쓰는게 취미는 아니겠지만 글을 쓰면서 경제력이 빈곤한 삶을 너무 나락으로 떨어뜨리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에 대한 소감은 이렇게 마무리하겠습니다.

책을 처음 읽을 때 문장이 깔끔하지 못해서 뭔 번역을 이따구로 해놓았나 생각을 했지만 읽으면서 아마도 저자의 문장에 원래 이러했겠구나 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아마 원전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려고 했겠다라고 이해했습니다.

왜냐하면 초등학교만 졸업해서 글쓰는 재주가 없다고 저자가 수차례 밝혔거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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