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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기 전에 주의할 점
1. 절대 가볍고 유쾌한 내용이 아니니 그런 것을 기대한다면 책을 내려놓을 것.
2. 철학이나 고전, 서양인의 동양에 대한 동경 등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피할 것.
리뷰를 쓰기 전에 먼저 나의 입장을 밝히겠다.
"나는 철학에 별로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없을 뿐더러
'안나 카레니나' 같은 고전은 고등학교 때 읽은 후로 들춰본 적도 없다.
게다가 평소 서양인들의 어설픈 동양에 대한 동경-禪이니 뭐니 하는-을
동양에 대한 몰이해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정말 취향에서 벗어나도 이만저만 벗어난 게 아니다.
좀 격하게 말을 하자면 나는 출판사에서 보여준 이미지에 '낚인' 것이다.
부자들이 모여 사는 고급 아파트의 일견 무식해 보이지만 실상은 매우 똑똑한 수위 아줌마와
그 아파트에 사는 자살을 결심한 열두 살 천재소녀의 이야기라, 재미있어 보이지 않는가?
애초에 내가 기대했던 것은 이 두 사람이 우연찮은 기회에 서로를 알아보고
조심스럽게 탐색전을 벌인 끝에 우정을 쌓아가면서 팔로마(천재 소녀)는 살아갈 의미를,
르네(수위 아줌마)는 삶의 재미를 찾는 이야기였다.
그러는 와중에 아줌마가 자신의 정체를 들킬 뻔하거나 하는 등의 사건도 일어나고.
그런데 첫장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온갖 철학자와 정치가들의 이야기가 난무하고
안나 카레니나를 비롯한 톨스토이 작품쯤은 내용을 꿰고 있지 않으면 안 될 듯했다.
더불어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비롯한 일본 문화에도 식견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에 정통한 르네와 팔로마의 가르침은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작가의 일본 예찬도.
뒤쪽에 가면 서양인들이 동양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환상의 집약체인 듯한 일본인이 등장한다.
웬지 모를 신비한 분위기에 끝 모를 부에 현명하고 사려 깊은 태도와 지성까지 갖춘 완벽한 남자.
그는 르네의 숨겨진 지성을 한눈에 간파하고 허물 없는 태도로 다가서기까지 한다.
책에 몰입하지 못한 채 이런 저런 거북함에 결국 읽다가 지쳐 책을 덮고 다시 책을 읽고...
책 한 권을 읽는데 몇 달이 걸렸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결코 보여지는 것처럼 가벼운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솔직히 책을 다 읽고나서 어떻게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이 지루한 글을 자기 것으로 소화했단 말인가?
작가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나열하는 듯한 저 글이 정말 재미있단 말인가?
내가 모르는, 놓친 무언가가 이 책에 있는데 무식한 나 혼자 못 알아본 걸까?
정말 궁금하다.
내가 보기엔 출판사에서 보여준 이미지에 속은 사람이 많을 것 같지만 말이다.
책을 60쪽쯤 남겨둔 상태에서 르네와 팔로마가 서로를 알게 된다는 부분이나,
시골에서 태어나 54살까지 수위의 아내로 수위로 살던 중년 여자가
회를 처음부터 아무렇지 않게 먹는 것까진 넘어가자.
내가 특히나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마지막 결말이다.
일본인 남자가 나타나 르네와 만나 핑크빛 무드를 형성할 때 조금 유치하긴 하지만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햇다.
평생 고생하며 살던 르네가 뒤늦게 진심으로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
서로 완벽한 이해 속에서 팔로마 등의 친구들과 함께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것도 좋지 않은가.
그런데 작가는 이런 평범하지만 행복한 결말이 뭔가 자신의 철학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나보다.
어이 없는 사고로 르네를 죽여버리다니.
힘겹게 소설을 다 읽었는데 허탈한 기분이다.
덧붙여 어색한 번역과 덜 다듬어진 문장은 더욱 글에 몰입하는 것을 힘들게 하고 있다.
내가 읽은 것은 6쇄였는데 지금은 좀 고쳐졌는지 궁금하다.
이 책을 읽으면 좋을 사람
*평소 철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 고전을 많이 읽고 잘 아는 사람,
톨스토이를 좋아하는 사람, 현학적인 대화를 즐기는 사람, 일본문화에 이해가 깊은 사람, 소설도 지식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 책을 읽으면 안 될 사람
*소설은 역시 재미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