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문득 생각난 내가 처음으로 귀신을 본 이야기.(아마 마지막일 것 같기도 하다)
대학교 2학년 때 일이다.
4월초에 동아리에서 엠티를 갔다.
아마 청도 운문사였을 거다.
산 아래 드문드문 민박집이 모여 있고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 동네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꽤 시골이라 가로등조차 없었다.
저녁을 먹고 가볍게 술을 한잔씩 걸친 후 술기운에 다들 담력훈련 어쩌고 하면서
가로등 하나 없는 깜깜한 길을 걸어 절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후에는 당연히 술판이 벌어졌다.
한참 술이 돌고 분위기가 흥청망청한데 동기 여자애가 옆구리를 찔렀다.
화장실에 같이 가자는 거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화장실은 시골답게 본채에서 떨어진 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가로등조차 없이 깜깜한 밤.
설상가상으로 화장실에도 조명이 없었다.(그 흔한 알전구 하나조차!)
내가 앞장을 서고 동기는 내 팔을 붙잡고 화장실로 향했다.
드디어 화장실 도착.
멀리 비치는 본채의 불빛을 빼면 정말 깜깜했다.
한쪽 팔에는 동기를 매단 채 화장실문을 열었다.
화장실을 둘러보는데 한쪽 구석에 뭔가 희끄무레한 것이 보였다.
멈칫해서 찬찬히 살펴보니 그것은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었다.
동기는 내 등에 가려 미처 안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머릿속으로 순식간에 온갖 생각이 스쳤다.
'이게 바로 귀신이구나.'
'어떻게 하지? 무서워하는 티를 내면 오히려 역효과겠지?'(전설의 고향을 너무 많이 봤다)
몇 초 사이에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 간신히 입밖으로 나온 말.
"이게 뭐야?"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유난히 장난끼가 많던 1학년 후배 하나가 튀어나왔다.
"에이, 1시간이나 기다렸는데 놀라지도 않고!"
그렇다. 그녀석은 화장실 오는 사람을 놀래키려고 그 냄새나고 좁은 곳에 1시간이나 있었던 것이다.
(귀신보다 더 무서운 녀석 같으니)
몰랐는데 내 앞에 왔던 어떤 선배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주저 앉았더란다.;
이 일 때문에 나는 두고두고 간 크고 겁없는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솔직히 말해 나도 그때 정말 놀랐었다.
진짜 귀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다만, 내가 거기서 소리를 지르고 겁을 먹으면 안 될 것 같아 애써 마음을 다잡았을 뿐이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공포나 두려움은 대부분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실체를 알고보면 별거 아닌데 우리가 마음속에서 점점 부풀리기 때문에 더 무서워 보이는 것.
결국 마음의 문제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