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1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솔직히 말해 이 책의 성공은 디자인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이라는 알쏭달쏭한 제목도 그렇고.
물론 재미가 없는 건 아니다.
바티스타 수술이라는 색다른 소재도 그렇고 하나하나 살아 있는 인물들도 매력적이다.
분명 책을 단숨에 읽어내렸을 만큼 흥미진진했다.
다만 화자라고 할 수 있는 다구치 선생의 캐릭터가 일관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흠일 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재미라고 할 수 있는 개성적인 캐릭터 묘사 중에
유일하게 화자인 다구치만이 캐릭터의 일관성이 떨어진다.
아무래도 화자의 말을 따라 책을 읽게 되는 독자 입장에서는 재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1층 동쪽 복도의 끝부분, 햇살이 잘 드는 작은 공간. 파티션 세 개로 구분된 방이 내 아지트다.
(중략)
툭하면 수업을 빼먹던 내게는 남들이 모르는 공간을 찾아내는 재능이 있었다. 땡땡이를 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남들이 모르는 공간을 찾아내야 했다. 그래서 찾아낸 비밀기지. 바로 이 방이었다.
이런 공간을 찾아내는 비결은 남다른 호기심이다.

1부에서 묘사되는 다구치는 호기심이 많고 출세에 대한 의욕도 없는, 꽤 독특한 인물이다.
그런데 2부에 괴짜 공무원으로 소개되는 시라토리를 만나면서부터 그 이미지가 사정없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급히 문을 열었다.
내 의자에 낯선 남자가 걸터앉아 뭔가를 정신없이 읽고 있었다.
(중략)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시라토리라는 사내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다구치 선생?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미남이군요. 의외입니다. 별 볼일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이 빗나가 다행입니다."
그가 내민 손을 뿌리쳤다. 다카시나 병원장은 벌레라도 씹은 표정으로 보충 설명을 했다.

1부에서 묘사된 것처럼 개방적이고 호기심 많은 인물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적어도 낯선 인물이 자신의 책상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다고 해서 악수하려는 손마저 뿌리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호기심에 차서 이것저것 질문을 해대지 않을까?
2부 내내 1부에서 느낀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보이는 다구치에게 괴리감을 느꼈다.
일일이 시라토리의 말에 어이없어 하고 짜증내는 고지식한 사람이 과연 1부의 그 사람이 맞나 싶었다.
그러다 3부가 되자 갑자기 반항아적인 모습으로 멋지게 마지막을 장식한다.
나보고 어쩌라고?
어쩔 수 없을 만큼 괴짜로 묘사되는 시라토리의 캐릭터를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된 게 아닐까 추측해보지만
추측은 추측이고 읽는 동안 상당히 불편한 부분이었다.
전체적으로 흠잡을 데 없이 유려한 소설이었는데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고.
가볍게 읽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소설이지만 캐릭터의 일관성과 범인의 동기가 다소 설득력이 부족한 것이 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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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6-18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다구치가 1부에서도 까칠한 성격을 감추고 있었는데, 괴물 시라토리가 합류하면서 조절이 안 되었던 것으로 읽었어요, 다구치의 씨니컬함은 첫장부터 잘 드러난다는 생각. 그의 캐릭터는 초지일관이지만, 저는 시라토리 캐릭터에 감정이입 실패했어요. 3부는 지극히 일본소설다운 결말이죠.^^

보석 2007-06-20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반에 다구치가 소설을 주도하다보니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어서인지 시라토리에게는 정이 안 가더라고요.^^; 개인적으론 다구치도 계속 나왔으면 하지만...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