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에 책 한권 ''뚝딱''  [05/01/26]
 
[책장을 펼치며] 5일에 책 한권 '뚝딱'

시류 편승보다 양서를

혹시 대우학술총서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대우재단이 의욕적으로 펴내고 있는 학술서적입니다. 지난 1970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설립한 대우재단은 1981년부터 학술사업을 시작했습니다. 1983년 '한국어의 계통'이라는 책이 나온 이래 20여년 동안 모두 580권을 상재했습니다. 한 해에 평균 28권을 내놓은 셈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대우그룹의 해체로 백척간두의 위기에 선 지난 5년간 110권을 발간했습니다. 이 가운데는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38종,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학술도서 21종 등이 들어 있습니다. 책을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학계에서는 대우학술총서가 일본의 이와나미 신서나 프랑스의 갈리마르 총서와 비교될 정도로 이 분야에서 우뚝한 존재로 자리매김을 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사실 학술도서를 내는 것은 시쳇말로 돈이 되지 않는 사업입니다. 대박을 터뜨리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익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남다른 자세가 없으면 한 권의 학술서적도 만들어 내기가 힘듭니다.

을유문화사라는 곳은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전에 출판사 이름을 보면서 '조금 촌스럽다'는 느낌을 가졌는데 을유년인 1945년에 세웠기 때문에 그렇게 작명을 했다는 것은 요즘에야 알았습니다. 설립자이자 회장인 정진숙씨는 아직도 현역입니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시리즈로 성가를 높이고 있는 현암사도 올해 예순번째 돌잔치를 해야 합니다. 70, 80년대 심각한 경영난을 겪기도 했지만 90년대 들어 우리나라의 자연과 문화를 포괄하는 기획물들을 잇따라 발간하면서 확고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들 두 출판사는 오래된 역사와 꾸준한 양서 판매로 만만찮은 지명도를 갖고 있습니다만 크게 돈 버는 책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습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출판계에 흐르는 시류에 쉽게 편승하지 않았던 까닭이라 여겨집니다. 역설적으로 오랜 세월을 버텨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책이 참 쉽게 나옵니다. 일전에 유명 인사의 자서전을 기획하고 있다는 어느 출판사는 맘만 먹으면 늦어도 4~5일이면 서점가에 책을 깔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숙달된 집필 전문 작가가 대상자를 인터뷰하는데 하루, 원고 정리하는데 1~2일가량 걸리고 남은 2~3일 동안 편집을 마치면 인쇄와 제본을 거쳐 손을 털 수가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어떤 출판사들은 매주 신간을 부쳐옵니다. 인력과 능력이 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겠습니다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권의 책을 내려면 적잖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할텐데 틀에서 붕어빵 찍어 내 듯 책이 양산되니 무슨 내용을 담고 있을지 은근히 우려가 됩니다. 이런 출판사들이 독자들의 머리에 오래 남아 있기는 참 힘들겠다는 오지랖 넓은 걱정까지 해 봅니다.

또 하나 이런 생각도 듭니다. 음식 가짓수 많은 집 치고 장사 잘되는 곳이 없고, 업종 자주 바꾸는 식당치고 돈 버는 곳 없다는 것 말입니다. 양은냄비에 물 끓듯 촐랑거리지 말라는 옛 어른들의 이야기가 출판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듯합니다.

(국제신문 염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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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5-01-27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일이면 책을 만들 수 있단 말이죠. 갑자기 솔깃한데요^^(연구점수가 딸려서 책으로 만회하려는데...)

찬타 2005-01-27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의성이 중요한 책이나 이미 베스트셀러가 된 책을 모방한 아류작이 아니면, 5일만에(물론 가능은 하지만, 흔치 않죠..ㅠ.ㅠ.) 책을 내는 일은 아마 없을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