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04 문학결산, 번역소설 웃고 국내소설 울다 [2004. 12. 28]

통속대중소설에 가까운 번역소설들이 베스트셀러 최상위를 차지한 가운데 국내 소설들은 독자를 찾지 못해 악전고투한 한 해였다.

2004년 한국의 문학 독자들은 〈다빈치 코드〉와 〈연금술사〉 같은 번역소설의 마술에 사로잡혀 국내 소설들에는 좀체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늦깎이 신인 김훈씨가 기존의 〈칼의 노래〉에 더해 올 초 내놓은 새 장편 〈현의 노래〉로 독자 몰이를 이어갔다. 김씨는 또 유일한 단편 〈화장〉으로 권위의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다빈치코드’ 마술에 사로잡혀

김훈씨와 함께 올해 소설계를 양분한 작가가 김영하씨라 할 수 있다. 젊은 김씨는 책 판매량에서는 김훈씨에 뒤지지만, 동인문학상, 이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세 개의 문학상을 휩쓸면서 동료 작가들의 부러움과 시새움을 불러일으켰다.

양 김씨의 활약 앞에 주눅들어 있던 여성 작가들은 하반기 이후 잇따라 신작을 발표하며 기지개를 켰다. 전경린씨가 역사소설 〈황진이〉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박완서씨는 장편 〈그 남자네 집〉으로 노익장을 과시했으며, 공지영씨도 5년 만의 소설집 〈별들의 들판〉으로 독자를 다시 찾았다.

최일남씨 역시 연륜이 묻어나는 소설집 〈석류〉로써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였으며, 서정인씨는 연작소설집 〈모구실〉로 입말투 소설을 향한 모색을 계속했다. 윤흥길씨의 소설집 〈소라단 가는 길〉과 박범신씨의 연작소설집 〈빈방〉 역시 중진들의 건재를 확인케 했다.

김훈-김영하씨 소설계 ‘양분’

김용성씨는 장편 〈기억의 가면〉에서 태평양전쟁에서 한국전쟁을 거쳐 베트남전쟁에 이르는 전쟁의 역사를 반추했고, 임철우씨도 제주 4·3 사태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과 광주 5·18 등 현대사의 굵직한 국면들과 대결한 장편 〈백년여관〉을 내놓았다. 올 한 해 화두였던 국가보안법은 이인휘씨의 장편 〈내 생의 적들〉에서 그 추악한 정체를 드러냈으며, 방현석씨는 베트남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상흔을 소설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에서 되새겨 보았다.

심윤경씨는 두 번째 장편 〈달의 제단〉으로, 천운영씨와 윤성희씨는 각각 두 번째 소설집인 〈명랑〉과 〈거기, 당신?〉으로, 그리고 정지아씨는 첫 소설집 〈행복〉으로 성가를 높였다.

시집이 예전만큼 팔리지는 않는 가운데, 중견급 시인들은 꾸준히 제 목소리를 낸 한 해였다. 김혜순씨의 〈한 잔의 붉은 거울〉, 안도현씨의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나희덕씨의 〈사라진 손바닥〉, 문태준씨의 〈맨발〉, 유홍준씨의 〈상가에 모인 구두들〉과 같은 시집들, 그리고 김윤배씨의 서사장시 〈사당 바우덕이〉는 올해 한국 시단의 성과로 꼽을 만하다. 이시영씨는 백석문학상, 지훈상, 현대불교문학상을 독차지했다.

시집도 예년만큼도 안팔려

창작 이외의 올해 문학계 최대 사건은 지난 13일 금강산에서 있은 만해문학상 시상식이었다. 출판사 창비가 제정한 이 상은 남쪽 문학상으로서는 분단 이후 최초로 북쪽 작가에게 주어졌다.

수상자인 장편소설 〈황진이〉의 작가 홍석중씨와 백낙청 창비 편집인 등 남북 양쪽 문인들은 문학상 시상식을 계기로 회동해 문학적 분단의 극복을 위한 공감대를 쌓았다. 역시 이달 11일 일본 도쿄에서 총련계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과 남쪽 문인들이 공동 심포지엄을 연 일 역시 분단 극복을 위한 진일보로서 주목할 만하다. 반면 8월로 예정되었던 남북작가대회가 무기한 연기된 것은 아쉬움을 남겼다.

북작가, 분단뒤 첫 남쪽 문학상

전통의 문학 월간지 〈현대문학〉이 12월호로 통권 600호의 금자탑을 쌓았다. 신생 문학 계간지 〈문학동네〉는 창간 10주년을 맞이하며 ‘초고속 성장’을 자축했다.

김춘수 김상옥 구상 시인 작고

12월 1일자로 경춘선 철도에 김유정역이 생겼으며, 그에 앞서 10월 30일에는 경부선 고속철에서 시 낭송회가 열렸다.

소설가 방현석·김영하씨와 시인 안도현·남진우씨가 대학에 자리잡은 반면, 박범신씨는 창작에 전념하기 위해 교수직을 그만두어 대조를 보였다. 소설가 황석영씨는 영국 런던으로 어학 연수를 떠났다. 그리고 모더니즘 시의 대가 김춘수와 시조시인 김상옥, 시인 구상 등이 세상을 뜬 해이기도 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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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4-12-29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헌법의 풍경' 읽다가 가방에 넣고 지하철 내려서 계단 올라오는데, 어떤 젊은이가 손에 '연금술사'를 들고 가더군요. 읽진 않았지만, 하도 유명해서 책표지만 봐도 알 수 있는 책들. 그와 더불어 '다빈치 코드'도... 오죽하면 우리 동네 도서관 추천코너에 '다빈치 코드'가 있네요. 우리나라 작가가 쓴 좋은 글도 많은데...

찬타 2004-12-29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 님 방가방가^^ 우리 작가들이 좋은 글을 못써서가 아니라 돈 쏟아붓는 광고와 마케팅에 밀려 묻힌 책들이 참 많죠... 이런 공간에서 많은 알라디너 님들 서재를 돌아다니다보면, 좋은 책 정보를 많이 얻게 되서 참 좋더라고요... 관심 못가졌던 책 이야기도 접하게 되고... 출판시장에서 베스트셀러 만들기는 계속 되겠지만, 이런 블로그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주목받지 못해온 많은 우리 작가들도 회자되고, 그렇게 되면새로운 출판 문화도 자리를 굳히겠죠? 하루 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