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장 대신 책 선물을  [04/12/22]
 
[책장을 펄치며] 연하장 대신 책 선물을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청마 유치환 시인의 '행복'이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요즘처럼 이메일이나 휴대전화를 이용한 문자보내기 등이 없었던 학창시절에 저도 남들처럼 연애편지를 꽤 썼습니다. 그때 빠지지 않고 들어갔던 시가 '행복'을 비롯해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로 시작되는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 '얼굴' 등이었습니다. 이런 시에는 편지를 받을 여학생들이 '끔뻑 넘어갈 수 있는' 글귀가 한껏 들어있었던 까닭이었습니다.

연애작업의 성패는 얼마나 여학생들의 가슴을 절절히 흔들 수 있는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고백하건대 남들보다 외모가 상대적으로 뒤졌던 저로서는 글로써 승부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좋은 시(문학적 가치가 아닌 여학생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시)를 찾기 위해 눈에 보이는 시집은 다 뒤적거려 보았습니다. 컴퓨터가 없었던 터라 분홍빛 꽃 그림 등이 그려져 있는 편지지를 수십장씩 구겨가며 밤을 하얗게 지새웠습니다.

최근에 군소 일곱개 출판사들이 힘을 합쳐 '성탄-연하 도서'라는 것을 펴냈습니다. 하도 경영에 어려움을 겪자 독자들의 발길을 서점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머리를 맞댄 끝에 만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나 연말 연초 때 받는 각종 카드와 연하장은 보내준 사람의 성의는 고맙지만 며칠후면 쓰레기통에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이런 낭비를 줄이고 보내준 사람의 마음을 오랫동안 기억하자는 뜻에서 책 속에 연하장을 붙였습니다. 책도 그냥 한번 보고 버리는 가벼운 것들이 아니라 제법 읽을 만한 내용으로 꾸몄습니다.

동보서적 영광도서 등 부산지역 서점들도 출판사들의 이런 뜻에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매장내에 빨간 우체통을 설치하고 우표도 판매합니다. 비용은 책 값 2800원에 우표값 550원을 합쳐 3350원입니다. 웬만한 찻집의 차 한잔 값입니다.

한 출판사에서는 또 독서수첩이라는 것도 내놨습니다. 기존의 포켓수첩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중간중간에 책을 읽은 소감을 적도록 원고지를 삽입했고 편지지도 끼워 넣었습니다. 하루하루 바쁜 생활을 점검하면서 때때로 책도 읽어보고 편지도 써보라는 의도입니다.

글을 쓰다보니 마치 성탄-연하 도서나 독서수첩을 홍보하는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와 관련해 어떠한 제의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금방 잊히는 의미없는 카드나 연하장보다는 감사의 마음도 전하고 책도 선물하자는, 잠깐씩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는 여유를 갖자는 이들의 취지에 공감할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상투적인 인사말보다는 받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할만한 예쁜 말들을 학창시절 연애편지 쓸 때처럼 한번쯤 적어 보내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유치하고 닭살이 돋으면 어떻습니까. 짜릿하지 않습니까.


(국제신문)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만두 2004-12-23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도 책 선물 하려구요. 찬타님도 참여해 주세요^^ 님 메리 크리스마스!!!

찬타 2004-12-23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선물? 저도 참여할게요~ 끼워 주세요~ & 물만두 님도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