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는 왜 서재가 안 보입니까 [04/10/30]
 
[편집자레터] 드라마에는 왜 서재가 안 보입니까

이런 외국 만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책이 가득 꽂힌 서재 앞에서 한 남자가 술잔을 든 채 여인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이 책들에는 한때 내가 되고자 했던 모습들이 담겨 있어요”라고. ‘신유목민’시대라 부피가 많이 나가는 책이 이동에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이 남자의 말은 맞습니다. 처음에는 큰 포부를 지녔다가 차츰 현실과 타협하면서 샐러리맨 등으로 작아진 그 사람의 영혼의 궤적이 그 서재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누군가의 집으로 초대받아 가면 뭐부터 살핍니까. 예의는 아닐지 몰라도 기자는 집주인이 눈치 채지 못하게 그 댁에 책이 어느 정도 있는지, 그리고 어떤 장르의 책이 많은지를 살핍니다. 북섹션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아마 저처럼 책을 유심히 살필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책을 읽지 않는 댁이라 해도 어느 한구석에는 책이 놓여 있게 마련입니다. 별도의 서재를 갖출 공간이 없는 가정이라도 소파 옆의 테이블이나 침대머리맡에는 한두 권의 책이 놓여 있지 않을까요. 예전에 기자는 개그맨 전유성씨의 집을 찾았다가 화장실에까지 책 몇 권을 두고 그 짧은 시간도 그냥 보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적이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TV는 책에 너무 인색합니다. 아무리 영상매체라 해도 읽기 문화를 진작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 마당에 의도적으로 서재를 꾸며 보여줘야 할 판에 많은 사람이 혼을 놓고 보는 드라마에서조차 책을 보여주는 예가 드뭅니다. 그나마 책을 소품으로 이용한 프로그램으로는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정도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리 불황이라지만 세계 10위권 출판 강국의 지위는 그대로이고, 신간 종수도 예년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책을 내는 사람은 여전히 많은데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이 적어졌다는 말이겠지요. 책을 내려고 애쓰기에 앞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게 학자이고 지식인이 아닐까 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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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11-03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만 안보입니까? 책상 있는 집도 없습니다. 잘 산다는 사람들 서재에 꽂힌 책들도 가관도 아니구요. 근데 이제 사실감이 있나 봅니다. 하지만 책꽂이나 서재를 잘 만들고 주인공이 책을 많이 읽게 설정하면 독서 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그들의 생각이 어떨지...

아영엄마 2004-11-03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른 분 집에 가면 책꽂이부터 살핀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