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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도를 사랑한다 - 경주 ㅣ 걸어본다 2
강석경 지음, 김성호 그림 / 난다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경내만 이만 사천여 평이 되는 드넓은 터를 신라인이 지름 칠 센티미터의 봉으로 일일이 다진 자국이 드러났는데, 불심의 봉 자국으로 덮인 땅이라니. 황룡사지에 서 있으면 경건하기까지 하다. 나는 영혼을 과연 얼마나 다졌던가?
처음에 강석영 저의 <이 고도를 사랑한다>를 접하고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 중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누가 경주를 이야기할 것인가, 였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봤음직한 불국사의 나라, 경주. 너무나도 흔해져서 이제는 그 귀함조차 알기 힘든 지경아닌가.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외국에는 높고 넓고 웅장한 건물들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다 쪼그맣다고. 그래서 좀 부끄럽다고.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러나 이런 건 어떨까. 어느해 어느 잡지였던가. 전문가들이 뽑은 한국의 건축물 1위가 불국사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피자에, 파스타에, 딤섬에 무얼 먹어도 결국에는 밥을 찾는 것처럼, 여타 다른 건축물들이 아름답다해도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이 바로 불국사라는 것이다. 꼭꼭 씹어 맛을 봐야 하는 것 같은 불국사. 그리고 경주. 그런 경주를 누가 이야기할지 기대가 되면서 걱정도 되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너무나 마음에 드는 글들이었다. 실제로 경주에 거주하는 작가가 경주에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가이드식 나열이 아닌, 경주를 산책하며 드는 삶의 사색에 관한 것들이었다. 황룡사지를 보며 자신의 영혼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교동 최부잣집을 이야기하며 아름다운 양반문화에 대해 찬미한다. 특히 경주박물관의 그릇들을 보며 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었다.
비어 있음은 빈곤이 아니라 풍요이며 근원에 다가가는 계단이다. 가득찬 것은 혼란스럽다. 영혼을 탁하게 한다. 집에 가득찬 물질에선 부패의 냄새가 나고 가슴에 가득찬 욕망에선 폐수의 냄새가 난다. 그릇을 보면서 그릇처럼 비우라. 집착도 분노도 비우고 새로 태어나듯 공으로 돌아가라. 인연도 비우고 겸허하게 기다려라. 잎을 떨구고 늦가을 숲처럼 나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기 위해.
경주의 지도를 펴놓고 저자를 따라 책 산책을 하는 내내 행복하였다. 평온하였다. 삶이란 계속 걷는 것이라 누가 이야기했던가. 경주 속에서 나를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