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사과가 데굴데굴 심미아의 그림책 2
심미아 글.그림 / 느림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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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생각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참으로 궁금한 것들이 많다. 전에는 외국 그림책에 유난히 많이 보이는 무당벌레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여러 군데 물으러 다닌 적도 있었다. 누구든 딱히 이렇다할 대답을 해준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이번에 만나게 된 책은 또다른 궁금증을 일으켰다. 어쩌서 사과가 소재인 그림책이 많을까, 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물론 사과라는 것이 정말 흔한 과일이긴 하다. 아이들이 가장 접하기 쉬운 것들이 그림책의 소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사고의 체계는 나와 내 주변의 것들로부터 시작하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사과라는 것이 단순히 과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플 컴퓨터의 한 입 베어 문 사과 로고도, 뉴턴의 사과도, 이제는 견과류로 밝혀졌지만 흔히 사과라고 생각하는 이브의 선악과도, 어떠한 깨달음을 암시한다. 그것이 전자기기와 인문학의 결합이라던지 새로운 물리법칙의 발견으로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쥐는 커다란 사과를 발견한다. 나한테 데굴데굴 왔고 내가 처음 봤으니까 내 사과라고 말한다. 영차 영차 사과를 끌고 집에 가는데 애벌레와 개를 만난다. "나는 사과가 좋아"라며 침을 흘리는 애벌레에게 온 몸의 털을 곤두세우고 외친다. 이건, 내 사과야. 어후. 이 때 생쥐의 모습이 얼마나 날이 서있는지, 책을 같이 읽던 아이가 "생쥐 무서워"라고 말했다. 나도 좀 섬짓할 정도였으니.


마지막으로 곰이 뛰어 오며 "내 사과가 여기 있었네!"라고 말한다. 생쥐는 내가 처음 봤으니 내 사과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사과 나무에 걸려 있는 곰의 사진과, 내 사과나무에서 떨어졌으니 내 사과라는 곰의 말에 충격을 받는다. 사과가 내 것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의 생쥐의 표정은 실로 놀라웠다. 충격과 실망, 슬픔 등 복잡한 감정이 들었을 텐데 이를 어떻게 그림으로 나타낼까 걱정했었다. (이런 류의 쓸데없는 걱정 또한 내 전공이다) 까만 배경에 그려진 생쥐의 절망적인 표정과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었다. 내가 처음 봤다고 모두 내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미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상태에서 아무리 졸라보았자 곰이 줄리가 없다. 밤새 엉엉 울다 지쳐 잠든 생쥐에게 누군가 찾아온다. 똑똑 소리에 나가보니, 커다랗고 새콤하고 달콤하고 고소한 사과 파이다. 내가 처음 보았다고 내 것이 아니란 것을 안 생쥐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맛있는 사과 파이를 누가 두고 갔지?" 자연스럽게 소유의 개념을 익힌 것이다.


동물 친구들 모두 사과 파이를 먹으면서 누가 두고 갔을까 생각한다. 아마 어제 엉엉 울며 조르던 생쥐의 표정을 본 곰이 한 일일 것이다. 나라도 생쥐의 표정을 보면 그냥 사과를 나 혼자 먹을 순 없을 것 같다. 아니, 처음부터 곰은 나누어 먹기 위해 생쥐에게서 사과를 돌려받은 것이 아닐까? 이 모든게 사과 한 알로 시작한 생각이다. 역시 사과는, 그냥 과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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