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므랑 이영민
배상국 지음 / 도모북스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이영민 (李榮敏, 1905년 12월 1일 ~ 1954년 8월 12일)은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대한민국의 축구 및 야구 선수로 활약한 체육인이다.


축구인 활동[편집]

이영민은 1905년 12월 1일에 경상북도에서 출생하여 경상북도 대구 계성고등보통학교에서 경성 배재고등보통학교으로 스카웃 된 이영민은 재학 중 전조선 축구대회에서 활약하였으며 경평축구대항전에서 활약하였으며 경성축구단의 일원으로 1935년 천황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또한 조선축구협회의 창설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육상인 활동[편집]

경평(京平)축구선수로 육상대회 400m에서 54초6의 신기록으로 우승하였다.

야구인 활동[편집]

교내 야구선수를 하면서 장타를 뽐내어 4번타자로 기용되기도 하면서훗날에 감독으로 출전할 정도로 발군의 기량을 가진 만능 스포츠맨이였다. 배재학당 졸업 이후 이영민은 지금의 연세대학교인 연희전문학교로 진학한후 야구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야구에 집중하기 시작했던 이영민은 1928년 경성 운동장에서 열린 제 2회 지금의 서울대학교 의대인 경성의학전문대 주최로 개최된 야구 대회에서 경성의전과의 정기전에서 이영민은 3번타자로 출전하면서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그 기록은 바로 한국인 1호 담장을 넘긴 홈런이자 야구장 개설 이래 처음으로 담장을 넘긴 선수가 되어 대회에서 홈런왕이 된다. 이후 일본 야구 대표 선수로 선발되어 미국 직업 야구단과의 경기에도 출전하는 등, 19세기 후반에 한국보다 먼저 야구단을 창단하여 활동했던 일본 선수들에게도 뒤지지 않는 기량으로 당시의 한국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는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일제 강점기의 "천재 야구 선수"로 알려져 있다. 학창 시절에 조선 축구 대표 선수로 선발되기도 하였던 그는 1933년 창단한 경성 축구단에서도 선수로 뛰는 등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현역 은퇴 이후[편집]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활발한 야구 관련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 야구 발전에 공헌했다. 8·15해방 후 조선야구협회 초대 이사장을 지냈으며, 1948년 제14회 런던 올림픽에 조사 연구원으로 파견되어 대한민국 체육계의 활성화를 위한 기반을 다지기도 했다.1950년 일본에서 열린 넌-프로 (Non-Pro) 야구 회의에 대한민국 대표로 참가했으며, 1954년에는 대한야구협회 (KBA) 부회장과 아시아 야구 연맹 (BFA)의 대한민국 대표를 지내는 등 대한민국 야구 발전을 위한 기초 마련에 크게 공헌했다.

말년[편집]

그러나 그의 사생활은 이혼과 가정 불화 등으로 좋지 못했고, 자녀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954년 8월 12일 종로구 필운동의 자택에서 셋째 아들의 친구가 쏜 총에 맞아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한다.

학력[편집]

이영민 타격상[편집]

이영민 타격상은 대한야구협회에서 천재 선수이자 한국 야구 발전의 토대 역할을 한 이영민을 기리기 위해 1958년에 제정하여 고교 야구 선수 중 매년 9개의 전국 고교 야구 대회중 5개 대회 이상, 15경기, 60타석 이상을 기록한 선수들 중에서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한 선수에게 상을 수여한다.




서평을 쓰기 전 아니 책을 읽는 내내 이영민이란 사람이 실존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존재했던 만능 스포츠맨 이영민의 이야기를 다룬 <호므랑 이영민> 이 책은 낯선 시대와 그 시대만큼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먼저 이영민의 실존에 대한 말을 하자면, 정말로 있었던 인물이었다. 위의 글은 위키백과에서 퍼온 글로 나처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 담아왔다. 그런데 한가지 더 궁금한 점은 어째서 우리가 모르고 있었냐 하는 일이다. 야구에 무지한 나도, 야구라면 보통의 남자만큼은 알고 있는 남편도 이영민이란 사람은 처음 들었다. 오히려 책의 나운규나 심훈이라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보니 다소 어둡고 진지한 느낌이 있을거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깐이었다. 일제 시대에 체육대회며, 일본인과 조선인과의 대결과 갈등은 여전하였고, 잘나가는 도련님들의 기생집 이야기도 종종 나온다. 이거 일제시대 맞아? 하는 생각이 정말 여러번 들었다. 솔직히 부자들은 시대에 관계없이 사는구나 싶었다. 조선에 단 하나 밖에 없다는 한정판 시계를 차고 다니는 나운규의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동안의 독립투사 이미지는 저리가라였다. 배경만 일제시대고 지금과 비슷한 '그들만의' 리그였다.


물론 그들이 했던 모든 것은 조선인들을 위한 승리, 조선인들을 위한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영민도 그러했다. 일본과 미국과의 경기에서 일본의 대표로 뛰고 승리를 얻었다. 일본의 프로구단에 입단하라는 제의도 있었다. 그것을 뿌리치고 조선인을 위한 경기를 하겠다, 조선으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발언은 그가 한국인임을 증명하였다. 그럼에도 내 낡은 편견 때문인지, 일제시대에도 이렇게 호의호식하던 사람도 있었구나 싶어 진실성을 느끼긴 다소 힘들었다. 


전체적으로 영화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읽는 내내 익숙한 전개가 그려졌다. 시합날 기생과 퍼질러 자고 있는 이영민을 찾아다니는 친구의 모습이나 그런 영민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감독들의 모습이 영화의 익숙한 시작과 같았다. 아주 익숙한 스포츠 영화의 구성이다. 소설의 좋고 나쁨을 떠나 이런 인물이 있었구나, 나운규가 이랬구나 하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