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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새삼스럽지만, 책을 읽을 수록 세상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쪽이 더 많고,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그 보이지 않는 이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뒤늦게 책에 빠져 들면서 내가 이렇게나 모르고 살았나 싶어 당황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요 며칠 전에도 그러했다. 장하준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는 책이 유명하다는 것도 몇 년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책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을 움직이는 경제학의 이면 또한 말이다.
책에서 말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선진국이다. 선진국들이 내세우는 각종 논리- 신자유주의, 자유무역, 민간기업과 공기업, 지적 재산권-들이 가지는 숨겨진 이야기를 폭로하고 있다. 더불어 세계의 경제를 운용하는 기구들의 실체 또한 말이다. 가장 놀랍고 충격적이었던 것은 지적재산권에 관한 이야기였다. 늘상 학교에서도 방송에서도 타인의 지적재산권은 소중하며 이를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맞다. 개인의 지적재산권은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선진국과 후진국의 경우라면? 우리 동네에는 백합 농사를 짓는 분들이 많다. 백합을 키워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농가도 상당수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 키운 백합임에도 백합 종자에 관해 로열티를 지불해야한다고 한다. 종자를 개발한 다른 나라에게 그 종자의 사용료를 내야하는 것이다. 이 때의 로열티가 일종의 지적 재산권이다. 여기에 어떤 문제도 있어 보이지 않는다. 나도 여태껏 그리 생각했다.
그런데 백합의 역사에 대해 생각해보면 이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량한 백합의 원 종자는 우리 나라의 '나리'라는 꽃이다. 일제 식민 시대에 서양 열강들은 우리나라에서 땅이나 금만 가져간 것이 아니다. 우리 나라의 각종 씨앗들을 자기네 마음대로 가져가서 개량한 것이 '백합'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펜지'는 제비꽃을 개량했고, '키위'는 다래의 변형종이다. 절대적으로 착취당하는 입장이었던 우리나라에게서 강제로 빼앗아간 씨앗들의 사용료를 내야할까?
마찬가지이다. 식민 시대에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은 우리 땅에 철도를 세우고 그 사용료를 지불하라고 하였다. 땅을 착취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은 모두 알 것이다. 일종의 '지적 재산권'과 같은 로열티. 서로 비슷한 능력과 힘을 가졌을 때가 아닌, 선진국과 후진국에 관계에서 '지적 재산권'이라는 개념이 정말 정당한 것일까?
생각지도 못한 '지적 재산권' 의 이면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경제학 개념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누군가를 지능적으로 착취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였다. 구제금융기구나 세계은행도 자본을 빌려주는 댓가로 내정간섭을 정당시하는 기구였다. 누군가 돈을 빌려주고, 당신네 집에 들어와서 살겠다고 한다면 그것이 정말 인본주의적인가? 아닐 것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논리가 경제라고 한다. 경제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벌고 부자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바로 보게 하는 힘이다. 그 힘을 기르는 것이 세상을 좀 더 나아지게하는 방법 같다. 깨달음이 많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