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의 작은 냄비 신나는 새싹 2
이자벨 카리에 글.그림, 권지현 옮김 / 씨드북(주)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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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나도 장애인이었다. 심한 눈병으로 한 쪽 눈의 시력을 90% 잃어버려 잘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나톨처럼 숨고 싶었다. 목에는 500원만한 커다란 점이, 한 쪽 눈은 시력을 거의 잃어버려 잘 보이지 않는 내 모습이 너무나 싫어 말도 안하고 지냈다. 누구의 책임도 잘못도 아님에도, 마음을 닫고 말을 끊고 살았다. 내가 가진 장애는 눈도, 점도 아니라 그걸 불행하게 여기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아나톨의 작은 냄비>를 읽고 눈물이 계속 나왔다.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냄비로 평범한 아이가 될 수 없었던 아나톨. 빨갛고 작은 냄비는 아나톨에게 매달려 떨어지지 않는다. 상냥하고 그림을 잘 그리고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이지만, 사람들은 아나톨의 냄비만 쳐다본다. 빨갛고 작은 냄비만 본다. 냄비가 이상하고, 냄비가 무섭기 때문이란다. 아나톨이 냄비를 가지고 다니는 건, 아나톨의 잘못이 아닌데도 말이다.

 

 

읽는 내내 어릴 적 내가 떠올랐다. 눈이 잘 안보인다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피했기 때문이다. 괜히 병이 옮을까봐, 똑같아질까봐. 어린 마음에, 바보 같은 생각으로 나는 내자신을 학대하고 얼마나 아프게 했을지, 아나톨을 보면서 깨달았다. 남보다 먼저 내 자신에게 먼저 손내밀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다. 남과 같아 지려면 남보다 두 배는 더 노력하는 아나톨의 모습은 바로 나였다. 그리고 그저 냄비를 끌고 다니는 이상하고 무서운 아이도 바로 나였다.

 

 

나처럼 아나톨은 너무나 힘들어 숨어버리려고 하였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아나톨을 도와주는 사람을 만나, 냄비를 가지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냄비를 담을 가방도 받고 말이다. 세상에 자신과 같은 사람이 혼자가 아님을 깨닫고 다시 한 번 용기내어 살아가는 아나톨. 아나톨의 삶은 예전과 달라졌다. 친구들과 함께 웃기도 하며,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도 한다. 여전히 아나톨은 예전의 아나톨인데 말이다.

 

 

말도 않고 방구석에만 있던 나를 정신차리게 한 것은 아빠의 한마디였다. 언제나처럼 병원에 다녀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빠는, 목을 꾹꾹 눌러 말했다. "아빠 눈 줄게." 누군가에게 이렇게 커다란 사랑을 받아도 될까, 내가 원한 것은 결코 아빠의 그것이 아니었다. 아빠의 큰 사랑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찾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나톨을 도운 사람은, 아마 아나톨의 엄마가 아니었을까. 커다란 사랑은 자신이 행복해도 된다고 믿게 한다. 용기를 준다. 아나톨도 나처럼 이겨냈다.

 

 

내 냄비는 이제 잘 보이지도 않는다. 더이상 냄비를 숨기지도 않는다. 살아갈 수록 느끼는 것이, 사람은 누구나 '장애'라는 냄비를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를 불쌍히 여길 때 불행해지는 것이다. 장애가 있던, 없던, 크던 작던 그것이 우리의 본 모습을 가릴 수는 없다. 빨간 작은 냄비를 가지고 다니는, 누구보다 반짝 반짝 빛나는 소녀 아나톨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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