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왔어 우리 딸 - 나는 이렇게 은재아빠가 되었다
서효인 지음 / 난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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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실토하고 나면, 여행에 관한 그 지긋지긋한 화제가 바뀌기는 커녕 여행을 기피하는 정당한 이유를 설명해야 해서 아빠는 아주 진땀을 뺀다. 아무리 설명해봐야 상대방은 이렇게 말하고 말아. 여행을 안 다녀 버릇해서 그런 거야. 한번 훌훌 털고 떠나봐. 아니, 그냥, 잘 모르겠어, 여행을 싫어한다니까? 집과 동네가 좋다니까 그러네? 에이, 그런게 어디 있어. 낯선 곳에서 스스로를 찾는.......

 

이렇게 솔직한 말이 있을까. 사람들과 만나면, 요즘은 온통 휴가와 여행이야기뿐이다. 벌써 페이스북에는 해외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동남아의 달콤한 망고 사진에, 유럽 어딘가쯤의 어떤 건물을 배경으로 활짝 웃는 얼굴들에. 일견 부럽기도 하지만, 귀찮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나 여행 싫어해요, 라고 말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일쑤다. 자기계발이나 성찰을 싫어하는 게으른 인간 취급받기 쉽다. 그저, 집이 너무 좋은 것 뿐인데요, 해도 아무도 안믿는다. 마치, 내 딸이 다운증후군이라서 더 예뻐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서효인 시인의 산문집인 <잘 왔어 우리 딸>은 시인의 딸, 은재에 관한 이야기이다. 은재는 동요를 좋아하는 아이다. 잘 웃는 아이다. 사랑의 은과 재능의 재를 한자로 쓴다. 사랑도 많이 받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다.

 

 

다운 같지?

네 그런 것 같아요.

생긴 게 그렇지?

얼른 데려가.

얼른.

 

 

이 문장들을 읽고, 가슴이 아팠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잘 들린다는 시인의 말. 좀 더 다정했으면 좋았겠다. 은재라는 갓 태어난 아이는 없고, 그저 '다운'으로 불린다. 다운이건 아니건, 아이는 소중하고 귀한 것인데, 얼른 데려가라는 의사 말에는 마치 못볼 것을 본 양 어서 내치려는 기색이 보인다. 화가 나고 슬프다.

 

시인도 그러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는 생각하지 않았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같이 하고 싶은 일도 미리 모두 생각했다. 아이와 계획한 핑크빛 미래에는 다운증후군이란, 고쳐지지 않는 특성은 없었다. 울고, 울고, 울었단다. 나도 은재 또래 비슷한 아이를 기르고 있기에 그 마음이 너무나 절실히 느껴졌다.

 

 

그렇게 힘들면, 내가 아기를 데리고 갈게.

 

가기는 어디를 가, 그런 소리 하지 마.

 

멀지 않은 곳에, 손이 닿는 곁에, 아내라는 미래가 있다.

미래를 힘껏 붙잡는다. 남자가 행하는 거의 유일한 현명함이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이기적이게도, 내 아이가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을 했다. 미안하다. 시인에게도 은재에게도 내 아이에게도 미안하다. 은재와 내 아이를 비교해서 은재에게 미안하고, 시인의 울음이 내게는 없는 일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던 것이 미안하다. 내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면 어땠을까, 돌볼 자신이 없는 엄마라서 아이에게도 너무 미안하다. 이렇게 감동스런 문구들로 서효인 시인은 은재를 만나 행복하다고 하는데, 난 그게 아니라서. 다운증후군 아이는 행복하지 않을거란 오해를 해서, 미안하다.

 

 

아이는 부모에게 있어 걱정을 가득 담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평생 너 좁은 방에서 지내서 마음이 안 좋았는데, 결혼해서도 좁은 방에서 지낼 것 같아 그것이 여간 안좋다. 넓디넓은 방에서 큰 책상 놓고 책장에 책들 가지런히 꽂아놓고 큰 창문 내어노고 글을 쓰면 더 잘될 것인데, 뭐든 그럴 것인데. 그렇지?

 

 

어머니는 내게 행복을 요구했다. 역시 그뿐이다.

 

아이가 어떤 모습이건 부모는 언제나 아이를 걱정하다. 특히 내가 눈물을 쏟은 것은 시인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였다. 남몰래 안방에서 우시는 어머니, 오히려 위로를 해주고 기운을 북돋아 주는 장모님. 어머니는 아셨던 것이다. 시인이 은재로 인해 평탄치 않은 삶을 살 것을, 그리고 그로 인해 더 행복해질 것을 말이다. 모든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행복을 요구한다. 행복하게 살기만을 바란다.

 

나도 은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시인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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