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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서커스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이 분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철학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표제와 시인-서커스가 어떤 운명적 조합일까, 를 호기심 두고 읽어나가면서 차츰차츰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 권의 책을 오래 두고 읽는 편이어서 이 책 역시 거의 삼주가 지나서야 아쉬움의 현장까지 봉착하기에 이르렀다. 1700년 대 후반의 런던사회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런던으로 이주한 순박한 도싯셔 사람들의 체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경험과 그의 아들인 잼과 런던의 왈가닥 아가씨 메기의 순수한 사랑, 나쁜 남자를 사랑하다가 끝내 아픔으로 성숙해버린 안타까웠던 잼의 누나 메이지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옆집의 혁명가이자 시인인 블레이크를 통해 진보하고 세계관은 급속도로 넓어지게 된다. 죽음-삶, 빛-그림자, 남자-여자.. 분명 반대되는 현상은 공존해도 둘은 반대가 아니라 같은 것이 되어버린다는...결국은 우리로 나아가게 된다는(그런 식으로 머릿속에 남았다.)이야기는 아직까지 인상적이다.
불행한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다가 젬을 통해 다시금 구원을 얻은 메기, 철모르게 순진하고 순박했던 도싯셔 시골 아가씨가 자신의 감정을 주체 못하고 존 애스틀리라는 바람둥이에게 사로잡혀 순결을 잃은 메이지.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배나무 밑의 시체로 발견하여 그 뒤로도 슬픔을 안고 매일을 살아가는 젬의 어머니, 한 평생 의자를 만들면서 융통성이 없지만 청렴하고 강직하지만 낮술을 즐겨할 정도의 사교성이 없는 젬의 아버지. 정의롭고 인정많은 잼...
도싯셔 가족은 서커스 단장인 필립 애스틀리의 도움으로 런던을 오고 집을 얻게 되지만 평화롭고 인정 많은 도싯셔에서의 그리움을 간혹 느끼기도 하다. 그 만큼 런던은 길거리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검은 연기를 내뿜는 지독한 공장들과 텃밭을 부지할 공간, 푸른 들판과 졸졸 흘러가는 시냇물이 아닌 홍수로 넘칠 것 같은 템스강이 유유히 흘러갈 뿐이다.
그리고 입담과 사기로 정의롭게 돈을 벌 것 같지 않은 메기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세탁일을 본업이라 생각하고 억척하게 일을 하는 메기의 어머니, 도싯셔 사람들이 자신의 집으로 이사해 오는 것을 결코 탐탐치 않게 생각한 팰럼부인까지... 그들의 왁자지껄한 이야기는 하루하루가 조용할 날이 없다.
어쩐지 그 시대를 같이 살아오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정교하고도 눈에 아른 거릴 듯한 묘사는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정확하면서도 뚜렷하다고 해야 하나, 어떤 대충이나 엉성한 느낌이 들지 않고 탄력적이고 딱 메꾸어지는듯한 느낌이 이 책에선 다분히 개성강한 문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간간히 나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읽으면서 그 시대의 분위기와 공존을 느끼며 런던 사람들의 생활과 다양한 가치관을 엿볼 수 있어서 즐겁고 유쾌하게, 때로는 어둡고 적막하게 읽어내려가 심심하지 않는 책임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