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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 최선을 다해 대충 살아가는 고양이의 철학
보경 지음, 권윤주 그림 / 불광출판사 / 2017년 12월
평점 :
어느날 고양이가 내게 왔다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 왔다』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내가 기르고 있는 까망이와의 만남이 떠올랐다. 녀석을 만나게 된 것은 어느 인터넷사이트에 길고양이 분양글을 보고나서이다. 길고양이인데 곧 겨울이 닥칠텐데, 먹이와 추위가 걱정된다는 분양 글이었다. 무료로 준다는데, 딸아이 정서상에도 녀석을 데려다가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에, 수원 화성행궁까지 가서 고양이를 데려왔다. 무료로 분양한다고 했지만, 초코파이 두 상자를 건네고 고양이가 든 상자를 건네받았는데, 상자가 생각보다 컸다.
상자를 여는 순간, 나는 앗...하고 소리를 질렀다. 상자 안에는 고양이가 한 마리가 아니고, 두 마리나 들어있었다. 한 마리만 데려가시면 아기가 혼자 외로울 것 같아서 두 마리를 가져왔다는 말에, 나는 그만 거절을 못하고 두 마리를 가져왔다. 고양이를 풀어놓으려니, 비릿한 고양이 냄새가 집안 가득해서 목욕일 시키기로 했다.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담고....아이를 물에 넣는 순간, 녀석이 내 검지를 콱 물었다. 순간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이빨자국이 푹 들어간 손가락, 그 자리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서 고양이를 야단을 쳤다. 손으로 얼굴을 한 대 줘박으며 야단을 쳤는데, 녀석은 앙칼지게 하악거리고 있었다. 쪼그만 녀석이 그렇게 무섭게 화를 내는 것은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것 같다.
두 녀석은 정말 무서웠다. 누가 옆에 가서 쓰다듬기라도 할라치며 하악거리고, 다가가려면 어디론가 숨어버리기 일쑤였다. 마침 이갈이를 하는지 컴퓨터에 연결된 선들을 씹으려고 잘근잘근 물어댔다. 결국 목줄로 묶어놔야하는 지경이 됐다.
어느 정도 정이 들어서 하악거리지 않게 되고, 졸졸 따라다닐 때 녀석들을 풀러서 길렀다. 어느 날부터 우리들은 옷에 고양이털을 하얗게 붙여가지고 다니게 되었는데, 사랑하면 눈이 먼다더니, 털이란 털은 정말 질색하는 우리 식구들, 참 대견하기 짝이 없었다. 다 그 털을 극복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청소를 하려고 놓여있는 가구나 짐을 들어 올리면 고양이털이 한 줌씩 뭉쳐있었다. 정말 평소 같으면 기절할 노릇인데 그 털조차도 이젠 대수롭게 여지기 않고 넘기게 되다니, 놀라운 장족의 고양이 사랑, 장족의 발전이었다.
내 고양이 육아기를 떠올리면서 저자의 책들을 읽다보니 하룻저녁에 다 읽어제꼈다. 재미가 나니 도대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고양이와 생활하면서 고양이 관찰 일기 비슷한 느낌도 나고, 고양이와 함께 어우러져서는 생활 일기 느낌도 나는, 수필 같은 일기, 일기 같은 수필을 한 편 읽은 느낌이다. 고양이와 함께하는 삽화 그림이 굉장히 정겨웠다. 이 책에 나오는 고양이는 중성화수술을 한 수컷으로 나이는 대략 짐작했을 때 사람 나이로는 청년을 지난 중년에 접어드는 고양이라고나 할까... 홀로 고독하게 살아가는 참선하는 스님처럼... 느껴지는 고양이의 삶, 스님과 잘 어우러지는 동물이야기이라서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방문 앞에 집을 지어주고, 보일러실에 집을 지어주고, 또 대여섯 군데 집을 만들어주고, 급기야는 방안에 방석을 깔아서 녀석을 쉼터를 마련해주는 여정이, 꼭 우리가 사람을 사귈 때 마음에 들여놓고 점점 더 가까워지는 그런 과정처럼 세밀하게 고양이와 친해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데, 정말 내가 고양이를 기르는 것처럼 환하고 선명하게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담담하고 조요조용하게 펼쳐지는 수채화 한 폭 같았다. 읽는 내내 가슴이 따스해졌다. 고양이의 일상생활을 묘사하면서 세상 살아가는데 대한 이야기, 어느 종교 서적에 나오는 이야기, 옛 문헌에 나오는 말씀 등등... 귀한 옛 선인들의 말씀들이 갈피사이에 한 꼭지씩 집어넣어 이 책을 구성하신 것도 재미가 쏠쏠하게 읽혔다.
고양이를 기르는 분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거나 사색하는 분들께 권하고픈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