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보지 못한 국민들
함윤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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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보지 못한 국민


한윤호 지음 | 인물과 사상사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국가의 시선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따라가는 기록이다. 흔히 국가 정책이나 사회 시스템의 중심에 기준 시민이 있다고 한다면, 이 책은 그 기준안에 포함되지 못해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즉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차분히 비춘다.

 

한윤호 작가는 르포 형식과 인터뷰, 그리고 사건의 맥락 설명을 섞어가며, 우리가 일상에서 잘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삶을 독자에게 조심스럽게 건네준다. 그들은 장애인일 수도 있고, 이주노동자일 수도 있고, 공장에서 구조적으로 위험을 떠안는 청년 노동자일 수도 있다. 공공의 혜택에서 놓인 사람들, 안전망 밖에 서 있는 사람들, 사회적 그늘로 분류되지만, 사실은 국가의 가장 큰 책임이 닿아야 할 이들이다.

 

저자는 단순히 불쌍하다라는 감정을 유도하지 않는다. 왜 구조적으로 보이지 않게 되었는지, 행정은 무엇을 놓쳤는지, 국가가 어떤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았으며 그 시선이 어떻게 배제의 형태를 만들어냈는지 차분히 분석한다. 동시에,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경험을 구체적으로 담아, 독자가 국가란 무엇인가?”, “복지와 안전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도록 만든다.

 

책은 한 사람의 개인적 비극이 사실은 사회 구조의 빈틈에서 비롯된 것임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더 읽기 어렵고, 그래서 더 소중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마음 한구석이 오래도록 불편하게 남았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바로 내가 이 책을 계속 떠올리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국가의 역할이란 말이 얼마나 추상적으로 소비되는지, 그리고 그 추상 뒤에서 실제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더 마음이 아프다. 내가 아는 이웃, 지나쳤던 가게 직원, 버스에서 마주쳤던 누군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평범한 사람들이 시스템의 빈틈에 떨어져, ‘보이지 않는 국민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더 크게 와닿았다.

 

읽다 보면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저들을 본 적이 있었던가?”
국가는 왜 이들을 보지 못했을까?”
혹시 나도 외면하는 데 한몫한 건 아닐까?”

 

특히 저자의 서술 방식이 감정 과잉도 아니고, 냉정하게 거리를 두지 않아서 좋다. 담담하지만 깊고, 차분하지만 명확하다.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존중하면서 동시에 구조적 문제도 분명하게 짚는다. 그래서 독자가 판단할 여지를 충분히 남겨둔다. 과하지 않은 울림이 오히려 오래 지속되는 느낌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사회의 약자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동정이 아니라 구조적 질문을 던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개인의 의지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설계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너무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 이동권을 요구하는 일을 많은 사람이 민원으로만 볼 때, 작가는 그것이 사실은 시민권의 문제,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 또 이주노동자나 청년 노동자의 처지를 설명할 때 단순한 사건 기록이 아니라, 그 배경에 깔린 정책, 고용 구조, 사회 인식까지 함께 들여다본다.

 

읽으면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새롭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국가는 거대한 건물도 아니고 추상적인 법조문도 아니다. 결국 국가가 보지 못한 국민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순간부터 국가다워지는 것 아닐까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지만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특히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읽는다면 더 좋겠다. 그러나 사실 우리 같은 시민들이 먼저 읽어야 한다. 그래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책장을 덮고 나면 마음이 조금 무겁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작은 의지가 생긴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아주 작은 행동이라도, 최소한 무관심의 벽을 조금씩 허무는 일이라도. 그 감정이 이 책의 진짜 힘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생활에서 무엇인가 작은 것이라도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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