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 머물다
카타야마 쿄이치 지음, 김활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요즘 일본 소설이 참 인기가 많다. 우리 나라에도 일류바람이 불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아무래도 일본 소설은 한국 소설보다는 다가가기 쉬워서 그런게 아닐까? 대부분 나이 많은 어른보다는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읽혀지는 소설이기에 좀 더 가볍고 쉬운 내용이 대부분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 소설이 영화화 혹은 드라마화 되기 때문에 더 접근하기가 쉬운것 같다. 세상의 끝에 머물다 역시, 영화와 드라마로 방영 되었던 그전 소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저자라는 것이 더 눈길을 끄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라는 일본드라마를 앞부분만 조금 봤기 때문에 카타야마 쿄이치씨의 작품이 어떤 경향을 띠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읽고 나서 느낀 것은 마냥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사랑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읽으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했다. 사실 대리모라는 설정은 우리의 정서와는 잘 맞지 않지만, 과대망상 이런 건 현대인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슌이치의 독백과 생각을 통해서 내 안에 누군가가 또 있는 건 아닐까? 아침에 세수를 하고 거울을 바라보면서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한번쯤은 더 생각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간단히 말하면, 슌이치와 사에코의 결혼생활과 사에코가 동생 이즈미 부부의 아이의 대리모 역할을 하게 되면서 겪는 일을 이야기 하고 있다. 뭔가 격동적이고 불같은 사랑이 아니라 잔잔하면서도 뭔가 제시 하고 있는 그런 사랑 얘길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마쓰오씨나 우라베 부인은 병든 우리 현대인들을 대변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말기 암에 걸려 현실 도피를 하는 사람이나 남편의 외도를 의심해서 매일 남에게 묻는 우라베 부인이나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병든 우리 현대인들을 한 번 더 돌아보게 한다. 처음부터 동생 이즈미가 대리모를 부탁 했을때 사에코는 슌이치가 거절 해주길 바랬지만, 슌이치 역시 처음 결혼에서 자신으로 인해 아이를 낳지 못하자 불임 치료를 받게 되었던 기억이나 선뜻 허락하게 되는데, 미리 자신의 배 속에 있는 아이는 이즈미 부부의 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차츰 배가 불러 오면서 아이에 대해서 집착 하는 사에코... 그래서 점점 더 심해지는 과대망상으로 인해서 모든 걸 정리 하고 떠날 준비까지 한다. 참 모성애라는 것이 신기한 것 같다. 내가 아이라는 것을 가져보지 못해서 그런진 몰라도 원래 아이라는 것을 가질 생각도 하지 않았던 사에코가 아이를 임신하고 있으면서 점점 자신의 뱃속에서 자라는 아이에 대해서 집착하고, 누구에게도 빼앗기기 싫어하고, 야반도주까지 결심하는걸 보고 그걸 모성이라고 해야 하나 싶은 게 연민과 함께 말할 수 없는 복잡한 무언가의 생각이 또 들었다.  그리고 그런 과대망상에 시달리는 사에코 곁에 슌이치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싶은 게, 이 소설에서 슌이치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사에코에가 과대망상에 시달렸다면 슌이치 역시 뭔가에 홀린듯한 느낌을 받았다. 뭐랄까 딱히 병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슌이치가 보여 주는 행동들이 솔직히 나에겐 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뭔가 남에게 무관심한 그런 느낌이 드는 게 정말 뭐라 딱히 정의 내리기 어려운 인물 같다. 지금 이 소설을 읽고 나서도 아직 완벽히 이해했다고는 말하기가 좀 힘든 것 같다. 쉬울 줄 알고 무턱대고 들었던 책인데, 흔한 순정소설일줄 알고 들었는데 확실히 그건 아닌 것 같다. 대리모의 모성애와 그들 부부의 이야기... 정말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설정이기에 색다르게 접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쯤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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