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의 종말 1시간에 50페이지씩 진도 나가는 거 같음.. 왜 이렇게 안 읽히냐.
소유냐 존재냐 생각보다는 수월한 듯. 예전에 반 정도 읽어놔서 그른가.
카라마조프 2권짜리임. 권당 엄청 두껍고 글씨 작음. 최대 관건.
허균평전 아직 손도 못댐 뭔 내용인지 감도 못 잡음.
호밀밭 뭐 재밌겠지.
파이 이야기 뭐 이것도 재밌겠지.
언제 다 읽나!
(빵굽는 타자기 10페이지인가 남겨두고 안 읽고 있음)

다 읽기도 전에 다른 책 기웃거리는 버릇 또 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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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感覺的) : 감각이나 자극에 예민한. 감각 기관으로 포착된 외부의 자극에 의한.
감상적(感傷的) : 어떠한 일에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쉽게 감동하는.
감성적(感性的) : 자극에 대하여 느낌이 일어나는 것과 관계되는. 외계(外界)로부터 받는 자극에 의하여 어떤 인상을 감지(感知)하는 능력이 빠르거나 날카로운.
개성적(個性的) :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그 사람만의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낱낱의 물건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질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개연적(蓋然的) : 확실하지는 아니하나 그럴 것이라고 예견되는.
격정적(激情的) : 감정이 강력하고 갑작스러워 누르기 어려운.
경세적(警世的) : 세상을 깨우치는. 세상 사람을 깨우치는.
고답적(高踏的) : 세상에 초연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지게 사고하거나 행동하는.
공시적(共時的) : 같은 시간, 곧 동시성 위에 존재하는. → 참고 : 통시적
과장적(誇張的) : 실지보다 지나치게 나타나는.
관념적(觀念的) : 구체적 현실에 의하지 않는 추상적인 생각이나 견해에 치우치는.
관능적(官能的) : 육체적 쾌감을 자극하는.
관조적(觀照的) : 대상을 고요한 마음으로 관찰, 음미하는.
괴기적(怪奇的) :  괴상하고 기이한. 가공적이고 황당무계한.
교술적(敎述的) : 사물을 객관적으로 묘사, 설명하여 알리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구상적(具象的) : 사물이 개별적으로 일정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구체적(具體的) : 직접 경험하거나 지각할 수 있는. 일반적, 추상적, 보편적에 대립적인. 모양을 갖춘. 구상적
국수적(國粹的) : 제 나라 것만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극적(劇的) : 극을 보는 것과 같이 감격적, 인상적인. 깜짝 놀랄만한.
낙천적(樂天的) : 세상과 인생을 즐겁게 생각하는.
냉소적(冷笑的) : 쌀쌀한 태도로 업신여겨 비웃는.
달관적(達觀的) :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아니 하는. 세속을 벗어난 높은 견식을 지닌.
당위적(當爲的) : 마땅히 있어야 하는. 마땅히 해야 하는.
대응적(對應的) : 짝을 이뤄 서로 응하는. 어떤 일이나 사태에 맞추어 태도, 행동을 취하는. 상응, 호응.
대조적(對照的) : 서로 반대로 비교되는.
도식적(圖式的) : 일정한 양식으로 나타낸 그림의, 또는 그 양식의. 이미 이루어진 틀이나 공식에 맞추어 보려는.
모순적(矛盾的) :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서로 대립하여 양립하지 못하는 관계의.
목가적(牧歌的) : 전원의 생활의 소박하고 서정적인. 서양의 시골 냄새가 나는.
묘사적(描寫的) : 어떠한 대상이나 형상의 본질적 측면을 있는 그대로 예술적으로 서술하거나 그린.
반어적(反語的) : 표현 효과를 강하게 하기 위하여 실제와는 반대로 강한 긍정의 뜻을 나타내는. 아이러니.
배타적(排他的) : 남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는.
변증법적(辨證法的) : 모순 또는 대립을 근본 원리로 하여 사물의 발전 법칙을 설명하려는 논리의.
보수적(保守的) : 새로운 것을 반대하고 재래의 풍습, 전통을 중히 여기어 유지하려 하는.
봉건적(封建的) : 봉건 제도의 특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분석적(分析的) : 하나의 개념을 각개의 속성이나 단순한 개념으로 가르는.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분해하여 그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개별적 성분·요소를 파악하는.
비약적(飛躍的) : 빠른 속도로 발전, 향상하는. 단계를 밟지 않고 나아가는.
비유적(比喩的) :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그와 비슷한 다른 현상이나 사물을 끌어대어 표현하는.
비판적(批判的) : 옳고 그름을 가리어 판단하는. 인물, 행위, 판단, 학설, 작품 등의 가치, 능력, 정당성, 타당성 등을 평가, 검토하는.
비평적(批評的) : 사물의 미추(美醜), 선악, 장단, 시비를 평가하여 가치를 판단하는.
사실적(事實的) :  실제로 있는, 실제로 존재하는 일의.
사실적(寫實的) : 사물을 실지로 있는 그대로 그려 내려는.
사색적(思索的) : 어떤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찾는.
산문적(散文的) : 글자의 수나 운율 같은 제한이 없이 자유롭게 기술하는.
상대적(相對的) : 다른 것과의 관계가 비교, 대립 등의 상태에 있는.
상보적(相補的) : 서로 보충하는.
상징적(象徵的) : 어떤 개념이나 추상적인 사물을 구체적인 것으로 나타내는. 또는 그렇게 나타낸 사물, 표상, 심벌의.
서경적(敍景的) : 경치를 펴는.
서정적(抒情的) : 사물을 보고 느낀 자기의 감정을 나타내는.
서사적(敍事的) :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은.
서술적(敍述的) : 어떤 내용을 차례를 좇아 설명하는.
선험적(先驗的) : 경험에 앞서 인식을 규정하는 근거가 되는. 논리상 경험에 앞서서 인식의 주관적 형식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고 주장하는.
설명적(說明的) : 내용을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밝히어 말하는.
수사적(修辭的) : 말이나 글을 꾸미어 보다 아름다고 정연하게 하는. 또는 그 기술의.
수의적(隨意的) : 자기 뜻대로 하는.
순행적(順行的) : 차례대로 진행되는. 거스르지 아니하고 행하.
시사적(時事的) : 그 당시에 일어난 세상의 여러 가지 일의
심미적(審美的) : 미(美)와 추(醜)를 살펴 미의 본질을 밝히는.
암시적(暗示的) : 어떤 것이라고 꼭 집어서 밝히지 않고 넌지시 깨우쳐 주는.
역설적(逆說的) : 두 가지 사실이 얼핏 보기에는 서로 충돌하는 것 같으나 이치에 맞는. 진리에 모순이 되는.
역학적(力學的) : 부분을 이루는 요소가 서로 의존적 관계를 가지며 또 서로 제약하는. 물체 간에 작용하는 힘과 운동과의 관계를 논하는 물리학의 한 부문의.
역행적(逆行的) : 거슬러 나아가는. 순서를 바꾸어 행하는.
염세적(厭世的) : 세상이 싫어지는.
예속적(隸屬的) : 붙여서 매이는.
예찬적(禮讚的) : 높이고 기리는. 찬양하는.
외경적(畏敬的) : 숭고한 가치를 지닌 대상(절대자, 생명 등)에 대해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유기적(有機的) : 여러 부분이 모여서 전체를 구성하여, 그 각 부분 사이에 긴밀한 통일을 이루어 부분과 전체가 필연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유추적(類推的) : 유사점으로 다른 일을 미루어 생각하는. 특수한 사실에서 이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다른 특수한 사실에 이르는 추리의.
의식적(意識的) : 실제로 체험하는 모든 경험 내지 정신 현상의. 정신 기능에 대한 구체적 경험의.
의지적(意志的) : 목적을 자각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이성적(理性的) : 이치에 따라 사리를 분별하는.
이지적(理智的) : 사물을 분별·이해하는 슬기를 지닌.
일반적(一般的) : 특별히 정한 어떤 일부가 아니라 전체에 두루 해당되는.
임의적(任意的) : 내키는 대로의.
자조적(自嘲的) : 스스로 자기를 비웃는.
자주적(自主的) : 남에게 의지하거나 남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자기 일을 자기가 결정하고 처리하는.
전기적(傳奇的) : 이상하고 진기한.
전기적(傳記的) : 개안 일생의 사적 기록의.
전위적(前衛的) : 예술 운동에서, 선구적이고 실험적인 창작을 시도하는. 또는, 그런 사람이나 집단의.
전지적(全知的) : 신불(神佛)이 그 지닌 바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다 아는.
전통적(傳統的) : 지난 시대에 이미 이루어져 계통을 이루어 전하여 내려오는.
전형적(典型的) : 동류의 사물들 가운데서 그 사물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그 본보기로 삼을 만한.
절대적(絶對的) : 사물이 절대의 상태에 있는 모양의. 또는 절대의 상태로 작용하는.
정서적(情緖的) : 어떤 사물 또는 경우에 부딪쳐 일어나는 온갖 감정의. 그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분 또는 분위기의.
주관적(主觀的) : 자기만의 견해나 관점의. 개인적인 관점이나 견해를 가진.
주술적(呪術的) : 무당 등이 신의 힘이나 신비력으로 길흉을 점치고 재액을 물리치거나 내려 달라고 비는. 또는 그런 술법의.
주정적(主情的) : 이지보다 감정, 정서를 중히 여기는.
주지적(主知的) :  감정·행동보다도 지성·사유 등의 지적인 것을 중심으로 하는.
지사적(志士的) :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자기의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려는 드높은 뜻을 가진 .
지성적(知性的) : 지각(知覺)을 바탕으로 하여 인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기능의.
직관적(直觀的) : 판단, 추리 등의 사유(思惟) 작용을 덧보태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직서적(直敍的) : 상상, 감상을 덧붙이지 아니하고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직설적(直說的) : 바른 대로 직접 말함, 또는, 그렇게 하는.
진보적(進步的) : 사물이 점차 발달하는.
추상적(抽象的) : 낱낱의 대상에서 공통되는 성질을 뽑아 종합한. 실제의 구체적, 개별적 사정이 무시되어 막연한.
참회적(懺悔的) :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깊이 뉘우치는. 신이나 부처 앞에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비는.
철학적(哲學的) :  인생이나 세계의 근본 원리를 추구(追究)하는 학문의.
탐미적(耽美的) :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거기에 빠지거나 깊이 즐기는.
통사적(統辭的) : 문장의 구조의.
통설적(通說的) : 세상에 널리 알려지거나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있는 학설의. 전반에 걸쳐 해석하는.
통속적(通俗的) : 일반에게 널리 통하는 대중적이며 보편적인.
통시적(通時的) : 역사(시간)적으로 파악하는.
퇴폐적(頹廢的) :  풍속, 도덕, 문화 등이 문란하여 건전하지 못한.
특수적(特殊的) : 보통의 것과는 특별히 다른.
풍류적(風流的) : 속된 일을 떠나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운치 있는.
풍자적(諷刺的) : 잘못이나 모순 등을 빗대어 비웃으면서 폭로하고 공격하는.
필연적(必然的) : 반드시 그렇게 되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함축적(含蓄的) : 겉에 드러내지 아니하고 속에 지니고 있는.
해설적(解說的) :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해학적(諧謔的) : 우습고 익살스러운.
향토적(鄕土的) : 지방 특유한 자연과 풍속 또는 생활의.
허구적(虛構的) : 사실이 없는 일을 사실처럼 얽어 만든. 소설, 희곡 등에서 실제로는 없는 사건을 작자의 상상력에 의하여 창조해내는.
현학적(顯學的 : 학식을 뽐내는. 학식의 두드러짐을 자랑하여 뽐내는.
환상적(幻想的) : 현실에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느끼는. 종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생각의.
회의적(懷疑的) : 의심을 품는. 인식의 확실성을 부인하고 진리의 절대성을 의심하는.
희화적(戱畵的) : 익살맞게 그린 그림 같은.

출처는 오르비/

많기도 하여라.
자주자주 봐둬야지. 모르는 말은 거의 없구나. 으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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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1999년 5월
구판절판


"서른 명의 학생이 하나의 죽은 정물을 바라보는 모습은 전혀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느 젊은 여교사에게 왜 미술시간에 학생들에게 석고 데생을 시키지 않느냐는 질문에.-85쪽

"당신 말이 전적으로 옳소, 무슈 수상."-시락의 "당신을 무슈 대통령이라고 불러 마당하겠으나 지금은 똑같은 후보의 처지로서 만나는 것이므로 무슈 미테랑이라고 부르겠소."에 대한 미테랑의 대꾸-102쪽

토론자의 무기는 칼이 아니라 말이며, 수사법이며, 정연한 논리이며, 정확한 용어와 발음의 구사이다.
"단결로 인내하는 것은 토론이다"-죠스팽-103쪽

어디서나 난시(亂時)에 살아 남는 데에는 양비론보다 더 좋은 보신책이 없는 것 같다. 행동보다 말로 한 몫 보는 현대의 양비론자들은 비유컨대,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양쪽에서 훈수를 두는 사람과 비슷하다. 자신을 내세우면서 싸움의 현장에서 떠나 있다. 현실이란 좌표 바깥에서 고고한 비판 놀음을 즐기는 것이다.-194쪽

....대부분은 동향보고자들이어서 분석도 필요없고 문제의식도 필요없다. 정치인들에게 정책이나 주장을 끌어낼 필요도 없다. 한국의 기자들이 공부를 하지 않고도 기자노릇을 할 수 있는 까닭도 바로 이것이다. 동향보고서를 쓰면 되는데 왜 공부를 하겠는가? 공부를 안 하는 대신에 한국의 기자들이 꼭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다. 술을 잘 마시는 일이다.-207쪽

극우와 광신은 하나의 뿌리에서 자란다. 유신 긴급조치시대의 암울한 공기를 한 웅큼도 숨쉬어 보지 않은 젊은이가 박정희 씨를 숭배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볼테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광신주의자들의 열성이 수치스러운 것이라면 지혜를 가진 사람이 열성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신중해야 하지만 소극적이어선 안 된다."-243쪽

.......1961년 10월 17일의 증언을 전한 <르 몽드>의 기자는 이렇게 적고 있다.
"프랑스를 사랑한다는 것, 그 정체성을 쓰다듬는다는 것, 그 미래를 건설한다는 것이 다만 잃어버린 위대한 과거를 돌이키는 것이 아니다. 그 이름으로 저질렀을 수도 있는 잘못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컨대 <아사히신문>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는가?-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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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199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광신주의자들의 열성이 수치스러운 것이라면 
지혜를 가진 사람이 열성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신중해야 하지만 소극적이어선 안 된다." -볼테르


작년의 일이었다. 갓 입학한 고등학교 생활에 슬슬 적응해가고 있을 무렵,
내가 몸 담고 있던 동아리 회장 선배의 같은 반 남자선배가 홍세화 씨를 학교에 초빙한 적이 있었다.
독서토론 동아리 회원이었던 나는 홍세화의 책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읽은 적이 있어
실제로 저자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그의 이미지는 지적이었고, 진보적이었고, 뜨거웠다.

나는 그의 강연을 그렇게 열심히 듣지는 않았다. 시작하고 처음 몇분간은 거의 대놓고 졸았다.
옆에 같이 수다를 떨 친구가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쨋든 나는 그의 강연이 나와는 동떨어진 내용이라고 생각했고 별 흥미도 느껴지지 않았다.
보다 못한 옆 자리에 앉아 있던 2학년 선배가 '바쁘신 분 초빙해서 불렀는데, 졸면 안돼죠.'
라고 따끔하게 질책을 해주어서, 그 때부터 비로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제대로 강연을 듣기 시작한 건 그제서야였다. 나는 졸았다는 게 창피하기도 했고
꾸중을 들었다는 사실에 기가 올라서 홍세화 씨의 눈을 강연이 끝날 때까지 뚫어지게 바라봤다.
나중에는 열성적으로 수업을 듣는 학생이 된 것 처럼,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해서 정말 재미있게 강연을 들었다. 강연이 끝나고 난 뒤에서야 집에 고이 모셔둔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와 '빨간 신호등'-그것도 새 책-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다른 애들은 앞 다투어 책장에 싸인을 받고, 사진을 찍느라 난리였는데 나는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 싸인을 받지 못한 것이 참 아쉽다. 쩝.

홍세화는 진보적 지식인이다. 그것도 망명자라는 굴레를 쓴 조금 특이한 케이스의.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다른 사회와의 만남을 가진 방랑자이자 이방인이었던 사람.
그는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신념'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고고하게 꺾이지 않을 강인한 신념을 품으라고 말했다.
강연을 들으면서 나는 여러번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의견에, 신념에 마음 속으로 동의했다.

나는 그가 말하는 '사회정의가 질서보다 우선하는' 프랑스가 보고 싶다.
지하철 노조 직원들의 파업으로 몇주동안 도시가 마비되어도
어느 시민 하나 그들을 나무라지 않는 프랑스를 보고 싶다.
아슬아슬 좌우 동거를 하는 그들의 정치판을 들여다 보고 싶다.
그가 느끼고, 경험했고, 보고 들은 프랑스의 똘레랑스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쎄느강 다리 위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르 몽드'를 읽어보고 싶다.

그런 책이다. 이 책은. 가만히 일상에 조용히 녹아들어있는 사람을 확 깨워버린다.
막연한 기대와 환상을 품게 한다. 설령 그것이 허상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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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랑 이모부가 보고 싶었다.
못본 지 너무 오래 됐고.. 사촌 언니, 오빠도 정말 보고 싶었다.
외숙모, 외삼촌, 사촌 동생들..
모두 내가 시험만 끝나면, 방학이 되면 만나야지 만나야지 다짐했던 사람들.

내가 이기적인가 보다.
오늘 외갓집 가자는 엄마의 말에 '나 공부해야 돼~'
결국 같이 가지 못하고 누워 잠만 잤다.
혼자 밥 먹는데 그냥 따라 갈껄 생각했다.
이모부가 너무 보고 싶어져서.
근데 낼은 언어 시험 보는 날이잖아. 난 셤 공부 한자도 안 했고. 그렇지..?

독서실에서 다녀오니 세종이가 외갓집서 자고 온다고 하고 안와있더라.
나쁜 놈. 어제 사촌 언니한테 문자까지 하고 시험 때도 반드시 놀러간다 그랬었는데
모야... 내가 미워. 독서실에서도 잠만 잤자너ㅠㅠ

으휴.. 낼 아침 일찍 일어나 책만 디립다 봐야겠다. 시험 통과는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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