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요환이 듀얼에서 탈락했다. 저번 질레트배 탈락 이후로는 처음이다.
온게임넷 스타리그에 임요환이 없다. 이건 예전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는데.

요즘은 그의 패배를 보는 내 마음이 그전 같지 않다.
무감정인건지, 이제 면역이 될 대로 되어서 그런건지 탈락 소식을 듣고도 별 느낌이 없다.
경기도 챙겨보지 못했다.(오후 6시에 하는 줄 알았다)
누구는 하루종일 펑펑 울고 울어도 눈물이 계속 나서 속상해 죽겠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지 모르겠다. 약간 슬프기도 하다. 쪼끔.

나는 언젠가부터 그의 경기가 아니라 임요환이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예전처럼 왜 임요환을 좋아해? 라고 물으면 임요환의 게임은 뭐가 어떻고 뭐가 어떻고 어때서
좋아한다고 신나게 늘어놨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그냥 임요환이라서. 임요환이니까. 골백번을 지든 마이너 탈락을 하든 임요환이니까.

오늘 탈락 소식을 듣고 처음엔 막 임요환 욕을 했다.
3개월 동안 게임이란 게임은 하나도 안 볼꺼라고, 아예 그쪽하고 연을 끊고 살꺼라고
아니면 내가 임요환 안티가 되든지 할꺼라고 했더니 내 동생이
'그럼 다음에 임요환이 우승하면?' 이렇게 묻길래 별 수 없이 대답했다.
그 때는 또 팬해야지 뭐..

팬심이란 단순하다.
애정을 가지고 있는 대상에 따라 천국과 지옥은 종이 한장 차이로 오간다.
하루가 온통 엔돌핀으로 꽉꽉 충전될만큼 기쁘다가도
서러움과 실망에 눈물을 쏟게 되는 것도 한순간이다.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한없이 유치하고, 치졸하고, 감정적이 되어버린다.
후..... 피곤하다 이런 식은.

나는 특이하게도 임요환의 군대 얘기가 나올 즈음부터 '그래 얼른 가라'식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임요환은 지나칠 정도로 위험하기 때문이다.
밥 먹다가도 불쑥, 잠 자다가도 불쑥, 공부하다가도 불쑥불쑥 튀어나올 정도로
일상에 깊이 침범하는 존재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선한 것이든 해로운 것이든
일정부분은 휘둘리고 잠식당하게 마련이다. 나는 그게 두려웠다.
깊게 데인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흔적이 남는다. 얼마나 데였느냐에 비례해서 흔적도 뚜렷해진다.
너무 많이 좋아지지 않기를 바랬다. 지금도 그 마음은 그대로다.

얼른 군대나 갔음 좋겠다. 임요환이가.
이 사람만 없으면 이 바닥에 남아있는 애정도 깡그리 없어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무엇보다 나는 1년만 지나면 고3인 고딩이다. 전력투구하여 공부에만 전념해도 모자랄 판인
불쌍한 고딩에게 이 사람의 존재는 잠보다도 더 치명적이다. 제발 내 눈앞에서 사라져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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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5-04-05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말씀에 공감이어요~ 사실 요즘 워낙 많이 지다보니 이기는 건 별로 기대하지 않다가 이기면 무지 기뻐하긴 하는데, 선수 자신도 스트레스 참 많이 받을거예요. 주위의 기대가 너무 크니... 그나저나 고3을 앞두고 계시군요. 치명적인 사랑에서 잠시 벗어나야하시겠네요. 그래도 응원을!!^^

나른한 오후 2005-05-01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