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199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광신주의자들의 열성이 수치스러운 것이라면 
지혜를 가진 사람이 열성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신중해야 하지만 소극적이어선 안 된다." -볼테르


작년의 일이었다. 갓 입학한 고등학교 생활에 슬슬 적응해가고 있을 무렵,
내가 몸 담고 있던 동아리 회장 선배의 같은 반 남자선배가 홍세화 씨를 학교에 초빙한 적이 있었다.
독서토론 동아리 회원이었던 나는 홍세화의 책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읽은 적이 있어
실제로 저자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그의 이미지는 지적이었고, 진보적이었고, 뜨거웠다.

나는 그의 강연을 그렇게 열심히 듣지는 않았다. 시작하고 처음 몇분간은 거의 대놓고 졸았다.
옆에 같이 수다를 떨 친구가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쨋든 나는 그의 강연이 나와는 동떨어진 내용이라고 생각했고 별 흥미도 느껴지지 않았다.
보다 못한 옆 자리에 앉아 있던 2학년 선배가 '바쁘신 분 초빙해서 불렀는데, 졸면 안돼죠.'
라고 따끔하게 질책을 해주어서, 그 때부터 비로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제대로 강연을 듣기 시작한 건 그제서야였다. 나는 졸았다는 게 창피하기도 했고
꾸중을 들었다는 사실에 기가 올라서 홍세화 씨의 눈을 강연이 끝날 때까지 뚫어지게 바라봤다.
나중에는 열성적으로 수업을 듣는 학생이 된 것 처럼,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해서 정말 재미있게 강연을 들었다. 강연이 끝나고 난 뒤에서야 집에 고이 모셔둔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와 '빨간 신호등'-그것도 새 책-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다른 애들은 앞 다투어 책장에 싸인을 받고, 사진을 찍느라 난리였는데 나는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 싸인을 받지 못한 것이 참 아쉽다. 쩝.

홍세화는 진보적 지식인이다. 그것도 망명자라는 굴레를 쓴 조금 특이한 케이스의.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다른 사회와의 만남을 가진 방랑자이자 이방인이었던 사람.
그는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신념'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고고하게 꺾이지 않을 강인한 신념을 품으라고 말했다.
강연을 들으면서 나는 여러번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의견에, 신념에 마음 속으로 동의했다.

나는 그가 말하는 '사회정의가 질서보다 우선하는' 프랑스가 보고 싶다.
지하철 노조 직원들의 파업으로 몇주동안 도시가 마비되어도
어느 시민 하나 그들을 나무라지 않는 프랑스를 보고 싶다.
아슬아슬 좌우 동거를 하는 그들의 정치판을 들여다 보고 싶다.
그가 느끼고, 경험했고, 보고 들은 프랑스의 똘레랑스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쎄느강 다리 위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르 몽드'를 읽어보고 싶다.

그런 책이다. 이 책은. 가만히 일상에 조용히 녹아들어있는 사람을 확 깨워버린다.
막연한 기대와 환상을 품게 한다. 설령 그것이 허상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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