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두렵지 않아 NFF (New Face of Fiction)
니콜로 암나니티 지음, 윤병언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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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도였을까. 2003년? 2004년? 한때는 광주지역을 대표하는 개봉관이었으나, 갑자기 찾아온 멀티플렉스 시대 치명상을 입고 저물어가며 예술영화 전용관 형식으로 마지막 명맥을 유지하던 광주극장이란 곳이 있었다. 지금은 광주에 사는 젊은이들도 알지못하는 이름으로 남아있지만. 지금 아내와 연애하던 그 때 그곳에서 이름없는 영화를 봤었다. '아임 낫 스케어드'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서평을 쓰고있는 니콜로 암마니티의 소설 '난 두렵지 않아'를 영화화했던 작품이었던 거다. 당시에도 극장 개봉은 했지만 막강한 상업영화들 틈에서 제대로 된 개봉관도 찾지 못하고 예술영화로 분류되며 잠시잠깐 매니아들 사이에서만 입소문을 타고 종영했던 영화로 기억한다. 나 역시 이 영화를 일부러 보려고 의도했던건 아니었다. 여자친구가 어디서 구해온 공짜표가 아까워, 또 그 어떤 빌미만 있어도 한번이라도 더 데이트를 하려고 안달이었던 시기라 '나 이런 예술영화도 좋아하는 사람이야' 코스프레를 하며 봤던 영화다. 근데 어라? 꽤 흥미진진했다. 치고 박고, 부수고, 총을 쏴대는 액션영화도,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이 적용된 SF도, 그렇다고 잔잔한 멜로도 없는, 굳이 분류하자면 청소년 영화였음에도 화면이 아름다웠고, 스토리가 있었고, 감동이 있었다. 그 후로 잊어버리고 있던 이 영화를 다시 일깨운건 한 권의 소설을 만나면서부터다.

 

왠지 소설 제목이 낯설지 않은 '난 두렵지 않아' 영어로는 아임 낫 스케어드. 그래 바로 그 영화의 원작소설이었던 거다. 영화가 기억에 남지 않았다면 굳이 다른 읽을 책도 많은데 굳이 이 소설을 다시 펼쳐들지 않았을터다. 하지만 난 이 소설을 발견하고 다시 첫 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얼핏 얼핏 생각나는 영화의 장면들과 더불어 정말 재밌는 작품이다는걸 다시 느낀다. 청소년 성장소설도 이렇게 재밌게 쓸수가 있는거구나...

 

 

 

특히 영화나 소설의 전반부에 묘사되는 공간적 배경 아쿠아 트라베르세 마을의 시골 풍경은 끝없이 펼쳐지며 바람에 넘실대는 밀밭의 풍경을 짜릿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속에서 뛰어노는 아홉살 꼬마 아이들. 우리네 시골에서 흔히 볼수 있듯 막대기 하나만 가져도 하루종일 지치지 않게 놀수 있는 그런 다섯 아이들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집이라야 이들 다섯 아이들의 다섯집이 전부인 외딴 마을에서 벌어지는 어른들의 은밀한 비밀과, 그 비밀을 알게된 주인공 미켈레의 갈등,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 우정, 약속과 믿음을 세밀하게 소년의 감정을 토대로 써나간 명작이다.

 

나는 더듬거리면서 대답했다. "다시는 안 갈게요. 약속해요."

"내 목숨 걸고 맹세해라."

"맹세해요."

"따라해. 그곳에 다시는 안 간다고 아버지 목숨을 걸고 맹세합니다."

나는 그대로 따라했다. "그곳에 다시는 안간다고 아버지 목숨을 걸고 맹세합니다."

"이젠 네 아버지 목숨걸고 맹세한 거다" 아버지는 잠시동안 아무말 없이 내 곁에 앉아 있었다.

 

그냥 약속이 아니었다. 절대로 안할게요. 다시는 안그럴게요. 우리가 어렸을적, 또는 우리 어린 아이들이 부모에게 수없이 많이 했던, 그 나름대로 당시에는 절실하게, 그러나 지나고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똑같은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며 다시 되풀이했던 그 약속이 아니다. 맹세. 그것도 아버지의 목숨을 걸고 맹세를 했다. 하지만 맹세 이전에 주인공 미켈레는 그 아이에게 약속을 했었다. '꼭 다시 오겠다'고.

그 약속을 지키려 번번히 근처까지 갔다가도 아버지와의 맹세때문에 발걸음을 돌리는 아홉살 소년의 마음. 나도 열살짜리 딸아이가 있다. 아이와 대화하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말들이 어떤 말은 깊은 상처가 됐을터이고, 또 어떤말은 희망에 부풀게 했을터이다. 또 약속들은 어떠한가. 내가 꺼낸 약속을 지키는데 얼마나 신경을 썼을까.

 

미켈레는 생전 처음 보는 아이에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다시는 가지 않겟다고 맹세를 했다. 미켈레는 약속을 지켰을까? 아버지 믿음을 지켰을까? 잔잔한 감동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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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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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이라는 소설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것이다. 워낙에 근대문학에 끼친 영향이 커서 김지하 시인과 함께 거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허나 평소에 신작 위주로, 재미 위주로 책을 읽는 아빠소는 이런 거장의 저서들을 감히 읽을 생각을 못했었다. 왠지 제목만 봐도 어려울것 같고, 평단의 찬사를 받는걸 봐서는 재미도 없을것 같고 (ㅡㅡ; 영화도 평론가들이 평가하는 영화는 재미없지 않은가...), 또 이런분들의 작품은 무~지 길것 같고, 헐... 그만하련다. 여기서 무식하고 얕은 독서취향이 다 들통나버렸다. 


암튼 그래서 그 유명한 이름세에도 불구하고 황석영 작가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었다~ 이말이다. 그나마 태백산맥이나 아리랑 같은 조정래 작가의 작품은 대학때 불어닥친 민족, 민주화 바람을 타고 읽은적이 있다. 태백산맥은 읽었던 때가 1991년이었는데 참 감명깊게 읽었었다. 헌데 훗날 이 책이 새누리당 보수정권 시절(당시는 아마 민자당이었지?) 금서로 규정되기도 해서 이해하지 못했었지.. 아니 왜? 왜 태백산맥이 금서야? 북한을 찬양했다는 이유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작품속 남과 북을 대표하는 주인공들이 '남한=절대선, 북한=절대악,괴뢰,빨갱이' 이렇게 정의되어야 하는데 남과 북 모두 아픈 시대의 피해자들이다~ 뭐 이런 내용이라서 친북으로 분류되었던 모양이다. 바로 그 즈음이다. 황석영이라는 작가가 당시의 과격한 재야의 남북교류 분위기를 타고 정부에 허가받지 않고 문익환 목사등 진보시민단체 사람들과 함께 북한을 방문한 것이 1989년이다. 이 즈음이 전민련, 전대협, 범민련같은 단체들이 결성되던 시기다. 당시 사회상으로 이들 통일단체들은 당연히 불법단체로 규정되었고, 정부의 무자비한 탄압이 실시되었다. 이때 북한방문으로 인해 황석영 작가도 투옥되었다. 지금 세대들이야 김대중, 노무현 정부때 금강산 관광을 하고, 민간교류도 활성화 되고 하니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민주당 정권 이전 새누리당 집권시절에는 북한이라는 말도 입에 담기 어려웠던 시절이다. 통일을 주장하면 좌파라고 했고, 우리민족을 강조하면 빨갱이라고 했다. 어쩜 지금과 똑같을까? 10년이 지나고 다시 새누리당이 정권을 잡으니 지금도 북한과의 교류를 얘기하고, 통일을 얘기하면 종북좌파라고, 빨갱이라고 몰아부치지 않는가...


어쨋든 다시 황석영으로 돌아와서... 황석영 작가가 민족주의 진보의 대표 문학인으로 자리매김한 작품이 그 유명한 '장길산'이다. 1974년부터 한국일보에 연재를 했고 1983년과 84년에 걸쳐 총 열권으로 발간됐다. 북한에 홍명희의 '임꺽정'이 있다면, 남한에 황석영의 '장길산'이 있다는 말이 유행하였다. 방북이후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있었네'라는 작품을 출간했고, 남한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4년간 해외를 떠돌다가 마침내 귀국하고 곧바로 수감되었다. 1998년 출소이후 '오래된 정원'등의 작품으로 다시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동해오고 있다. 서두에 황석영의 작품을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다고 얘기했었다. 솔직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너무 급진적인 성향의 작가라는 이미지때문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고 고백한다.


이번에 등단 5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신작소설 '여울물 소리'를 읽게 됐다. 무엇보다 시간이 흐르고, 사회분위기도 바껴 급진적인 이미지가 희석된데다, 무엇보다 두께가 얇은(!) 소설이라 무심결에 읽게됐다. 게다가 핑크빛 표지는 또 얼마나 세련됐든지...



이 책을 읽고서야 왜 사람들이 그를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느니, 거장이라느니 하는 찬사를 보내는지 알게됐다. 이전까지 내가 읽어왔던 현대작가들의 작품과는 왠지 차원이 다르게 느껴진다. 이제 한 작품 읽어보고 그의 작품세계를 논한다는건 터무니없는 일이고, 이 작품만 놓고 보더라도 민족, 민중(국민,백성) 중심의 가치관이 엿보인다. 19세기 조선말기 일본과 청나라의 주도권 싸움과, 민비와 대원군의 세력다툼,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민비일파의 개화정책이 치열하게 진행되면서 결국 죽어나는 것은 탐관오리들의 횡포와 높은 세금으로 하루아침에 산적이 되고, 살기위해 민란을 일으키는 백성들뿐이었다. 이신통이라는 인물과 그를 사랑한 여인, '나'를 중심으로 이시대 시대상과 동학운동의 진행과정을 흡입력 있게 풀어냈다. 노작가인데다 시대가 조선말기다 보니 소설의 문체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적응하기 다소 어렵겠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동학운동의 사상을 설명하는 주요 스토리가 겉핧기 식으로 읽는 이들에게는 따분하고, 재미없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독하며 읽기 시작한다면, 다소 어려우면서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매력을 만끽할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을 여자로 설정한 것도 흥미롭고, 지금 관점으로는 상상조차 되지않는 남성우월주의 사회하에서 여성으로서의 삶과 결혼생활을 읽는 재미도 있다.  



제목 그대로다. 역시 거장은 달랐다. 나처럼 아직 황석영의 작품을 접해보지 못한 분들은 이번에 나온 신작 '여울물 소리'를 읽어보시기 바란다. 참, 그런데 왜 제목이 여울물 소리일까? 


여울이라는게 빠른 물살로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을 말한다. 여울목, 여울물.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제목을 소개하면서 대략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깊은 산속 암자나, 혹은 시골 할머니 집에만 가도 평소에는, 낮에는 들리지않던 소리가 밤에 자려고 누우면 갑자기 들리기도 한다. 시냇가에 흐르는 물소리도 그러한데 벌레소리 같기도 하고, 재잘재잘 시끄럽게 얘기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때론 웃음소리, 울음소리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우리 서민들의 삶이, 이런 소리들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는... 정확히 이렇게 얘기한건 아닌데 내가 이런 뜻으로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신작소설 검색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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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과외 제1교시 - 한국 남성 30-50대가 제일 재미있어하는 몇 가지 비공식 역사
이동형 지음 / 왕의서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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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치관과 소위 '코드'가 맞는 작가 이동형의 세번째 책을 읽었다. <정치과외 제1교시>. 자신의 생활 전반 모든것이 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에도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말 한마디로 모든게 용서가 되는양 착각하며 살아가는 분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겠지만, '나는 꼼수다'에 열광하며 날카로운 정치 비판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동형의 이름을 기억해 두시기 바란다. 정치평론가들이 자웅을 겨루는 정통 강호가 아니라 재야의 무림고수로 조용히 이름을 떨치는 떠오르는 태양쯤 되는 인물이니. <영원한 라이벌 김대중 VS 김영삼> 이라는 책으로 데뷔를 했는데 이 책을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을만큼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나이도 어린 친구가 (아니다. 실제 나이를 모르니 어리다고 단정지을순 없지만 왠지 나이 어린 느낌이 든다) 어찌 이리도 오래전 한국 근대 정치사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을까~ 하는 놀라움, 그리고 어찌 이리도 눈치보지 않고 속시원히 할 말을 쏟아 붓는지 그 용기에 감탄했었다.



두번째 책은 현재 여의도에서 왕성히 활동하는 현역 철새 정치인들을, 그것도 실명을 거론해 가며 신랄하게 비난한 책 <와주테이의 박쥐들>이다. 이 책 역시 출간되자마자 읽었었다. 이미 전작을 통해 작가 이동형의 해박한 정치상식과 과감한 필력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김문수, 이재오, 심재철, 홍준표 등 옛 한나라당, 지금 새누리당의 떵떵거리는 실세들은 물론이고 전여옥, 홍정욱, 변희재, 신지호같은 보수 인사들, 게다가 김진표, 손학규등 민주통합당 정치인들까지 성역없이 박쥐같은 행태를 비난하며 쓴소리를 직설적으로 퍼부었기 때문에... 그때 책 리뷰를 쓰면서 나는 조만간 이들중 한명이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이라도 내서 이 책이 서점가에서 사라질거라고 생각했었다. 다행히(?) 아직도 팔리고 있는 중이다 ^^ 아마도 워낙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책이라 그런 모양이다.



마침내 그의 세번째 책이 나왔다. 바로 <정치 과외 제1교시>라는 책이다. 표지에는 '안철수, 정봉주, 그리고 유력 정치인들이 거친다는 단기 속성 정치 과외 재현 시나리오'라는 문구가 있다. 이 책을 비롯해 앞으로 시리즈 형식으로 나올 정치 과외 시리즈의 특징을 설명한 문구인데 어떤 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판에 나아가려 할때 방대한 정치사를 단기간에 다 파악하기 힘드니 한국 근현대 정치사의 민감한 부분과 핵심만 끌어모아 재미와 풍자를 섞어 초단기에 마스터 시켜주겠다는 취지다. 실제로 안철수, 정봉주가 이런 과외를 받았다기 보다는 이런 비슷한 코치를 받지 않았을까~하는 작가의 추측이다. 



이런 취지로 독자를 상대로 작가 이동형이 초단기 속성코스로 정치과외를 시작하고자 한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과외를 시키기 위해서는 일단 선생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하고, 독자 입장에서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첫번째 1교시의 주요 소재는 한국 남성 30~50대가 제일 재미있어 한다는 뒷담화, 야사들로 구성돼 있다.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정치야사, 현대, 대우, 삼성, 롯데등 재벌들의 탄생에 얽힌 경제야사, 그리고 야사 하면 빠질수 없는 돈과 권력에 얽힌 숨겨진 섹스이야기가 언급된다.





목차를 살펴보면 대략 어떤 내용의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감이 올터이다. 이번 책에서도 역시 해박한 지식과, 과감한 글쓰기, 대담한 용기등이 모두 집약된 내공을 보여준다. 또 비록 야사라고 이름 붙여놓긴 했지만, 읽어보면 대부분의 사건들이 실화에 근접해 있다. 다시 한번 감탄하지 않을수 없다. 도대체 작가는 이 많은 정보와 지식들을 다 어떻게 얻게 되었을까? 작가의 나이는 몇이나 됐을까? 책 본문에도 나오지만 이런 사건들을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말그대로 금기사항이었고, 만약 그 당시였다면 남산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었을 발언들이다. 우리는 다행히 시대를 잘만나 이런 이야기들을 집에서 편히 읽을수 있는거다.


이 자리에서 책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 하고 싶지 않다. 정치를 좋아하는 분들이나, 정치를 혐오하는 분들이나, 남자나 여자나, 성인이나 청소년들이거나에 관계없이 온 국민 모두에게 이동형의 책들은 권장하고 싶다. 가장 공정한 시선에서 한국 정치를 들여다보고 있고, 아무나 쉽게 할수 없는 말들도 직설적으로 던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그의 글은 재미가 있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혹은 국민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머릿말속에 아래 문구에 다 나와있다. 1992년 대선때 김영삼이 당선되고, 김대중이 낙마한 후 가슴을 치며 했던 말이라고 한다. 이 포스팅을 읽고 있는 분들도 아래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시길.


"숱한 비도덕적 행위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국민이 기억하지도 따지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회의 목탁이 되어 권력과 강자들의 비리를 폭로, 심판해야 할 언론들이 그 임무를 태만히 하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잘나야 합니다. 국민이 현명해야 합니다. 국민이 무서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민족 정통성, 민주 정통성, 정의 사회, 양심 사회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제값을 가지고 사는 사회를 만들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시시비비를 먹고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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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메 그린다 - 그림 같은 삶, 그림자 같은 그림
전경일 지음 / 다빈치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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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지적 갈증을 해소해주는 시원한 책을 만났다. 제목은 '그리메 그린다' (다빈치북스, 2012). 올 초 문득 중고교 미술 교과서를 구할수 있으면 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학창시절에는 음악, 미술과 같은 예체능 과목은 학교에서도 주변과목으로 치부했었고, 학생들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과목이었다. 뭐 요즘은 더하겠지만...그런데 학교를 졸업하고 수십년이 흐르고나니 별안간 그때 미술교과서에 천연색 화보로 실렸던 명가들의 명화가 새삼 그립더라. 교과서를 구할수 있으면 구해다 가위로 오려 벽에 붙여놓고 최소한 그렇게 유명한 작품을 누가 그렸는지 정도는 공부하고 싶은 뒤늦은 만학열이 솟구쳤다.

 

화가라고는 고흐, 고갱, 마네, 모네, 피카소 처럼 유명한 이름만 알고있지 그들이 그린 그림, 대표작 하나 제대로 알지를 못하니 그쪽으로의 지적 목마름이 심해져 가는 중이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메 그린다'. 일면 유명 화가들이 그린 유명작품을 소개하고, 설명해주는 책이라는 점에서 딱 내가 찾던 바로 그 책이긴 한데, 대상이 좀 다르다. 서양화가 아닌 동양화, 조선시대 화가들의 생과 그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책이었다~ 꿩대신 닭이라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신선한 지적 충격을 받았다. 그래.. 내게 부족했던 미술상식은 서양화 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동양화로 따져보니 이건 더 일자무식이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분들도 나와 대동소이 하지 않을까? 그나마 서양화가들에 대해서 조금 알고있는 분들이라도 우리나라, 조선이나 고려시대 유명한 화가들에 대해서는, 그리고 그들이 남긴 작품들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아는 분들이 없을터이다.

 

 

 

 

안견, 김홍도, 장승업, 이정, 김명국, 최북, 윤두서, 이징, 김시, 심사정, 허련, 임희지, 신윤복, 김득신, 정선 등 15명의 대가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아래는 안견이 그린 역작, <몽유도원도>.

 

 

안견은 신라시대 솔거, 고려시대 이녕과 더불어 우리 민족 3대 화가로 불린다고 한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가 아니라 반만년 우리 역사를 통틀어 꼽는 3명중에 한명이라고 하니 그가 얼마나 대단한 화가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세종때 안평대군의 후원을 받아 승승장구하다가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안평대군과 단종이 죽임을 당하고 세조가 즉위하면서 안견의 출세가도도 끝이나고 한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안견하면 떠오르는 일생의 대작, <몽유도원도>도 안평대군과 사연이 깊다. 안평이 하루는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도원(桃源)을 보고, 꿈에서 깬후 안견을 불러 꿈얘기를 해주고 그림을 그리게 하니 이때 탄생한 그림이 바로 <몽유도원도>다. 당시 안평대군은 예술을 사랑해서 재능있는 예술인들을 불러모아 후원하는 낙으로 살았다고 한다. 안평 그 자신도 대단히 뛰어난 글과 그림을 많이 남겼다. 이때 함께 어울렸던 학자들이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김종서등인데 이들은 후에 계유정난때 신숙주가 배신하고 양대군의 편에 서면서 모조리 죽음을 맞게된다.

 

 

김홍도는 풍속화로 유명해서 나는 풍속화만 그린줄 알았다. 그런데 김홍도도 왕실의 도화원에 속해 정조임금의 어진을 그리기도 한 당대 최고의 왕실화가이기도 했다. 후에 정조가 죽은 이후 보수파의 미움을 사서 화단의 중심에서 쫒겨난 이후에는 말년을 비운속에서 지냈다고 한다. 돈이 없어 아들의 월사금도 제때 내지 못했고, 끼니를 굶을정도의 가난속에 살다가 조용히 숨을 거뒀다. 위 그림은 <송호도>라는 그림인데 김홍도를 발굴해서 키웠던 스승 강세황과 함께 그린 작품이다. 위에 소나무는 강세황이, 아래 호랑이는 김홍도가 그리고 각각 자신의 파트 옆에 이름을 새겼다.

 

 

오래전 영화 <취화선> 속 주인공이기도 했던 장승업. 천재 화가라 알려져있다. 천민 출신으로 종살이를 하다 주인을 잘만나 그의 재능을 알아본 주인이 맘먹고 키워준 덕분에 천부적인 재능을 세상에 맘껏 펼치고 살았다. 지금으로 따지면 까칠한 문화평론가 황현조차도 장승업의 그림을 보고 '신품'이라 칭했단다. 고종임금이 소문을 듣고 대궐로 불러 그림을 그리라 했지만,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왕명도 거스르며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재능에 자아도취되어 술로 방탕한 삶을 살다가 역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워낙 기인이었고, 신의 재능을 갖고있었기에 혹자들은 금강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설이 민간에 널리 퍼져있다. 위는 장승업의 그림 <호취도>.

 

이 책에 소개된 화가 한명, 한명이 소설같은 생을 살다가지 않은 이가 없으나 마지막으로 이 사람을 소개하지 않을수 없다. 바로 혜원 신윤복. 드라마 <바람의 화원>으로도, 영화 <미인도>로도 소재가 되었던 풍속화가의 대가다. 그때까지 이름높은 화가들은 인물화, 산수화, 매난국죽등을 그리면서 품위를 지켜왔는데 신윤복은 그 틀을 깨고 기생과 서민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혜학적으로 그려냈다. 또한 춘화에 가까운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그림도 그려냈다. 그때까지 '사랑'을 그림으로 다룬 이들이 없었기에 '사랑'이라는 소재를 그림으로 표현한 최초의 화가가 아닐까? 아래 그림은 그중에서도 신윤복을 대표하는 그림 <미인도>다.

 

 

그저 이 그림을 통해 조선시대 미인상을 알수 있는 자료로만 쓰인게 아니라 자세히 뜯어보면 여인의 얼굴표정부터 손짓 하나, 입고있는 옷에서도 당시의 사회상과 유행을 알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화가 신윤복이 남장 여자라는 설이 제법 사실처럼 야사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까 언급했던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도 문근영이 신윤복 역을 연기했고, 영화 <미인도>에서는 김규리가 신윤복을 연기했다. 두 작품 모두 신윤복이 사실은 여자였을 거라는 설에 기반한 작품들이다. 왜 유독 수많은 화가들중 신윤복만을 여자라고 가정하는걸까? 남자에게서는 도저히 찾을수 없을만큼의 섬세한 붓놀림과 관찰력,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의 감정표현이 그를 남장여자로 알려지게 된 계기라고들 한다. 이런 내용은 책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책에서는 당연 남자로 보고 있다 ^^

 

책 제목 <그리메 그린다>는 무슨뜻일까? 그리메는 그림자의 옛말이기도 하고, '그림에'를 소리나는 대로 읽어 그리메라고 읽을수도 있다. 책 뒷 표지에 나와있는 이 글귀가 제목을 잘 설명해 준다.

"내가 산 것이 그림자냐, 그림자가 나를 산 것이냐?

내가 그린 그림이 그림자냐, 그림자가 나를 그린 것이냐?"

그림자를 그리기도 하고, 그림속에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그리메 그린다> 기억해 둘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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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철학하기 - 낯익은 세상을 낯설게 바꾸는 101가지 철학 체험
로제 폴 드르와 지음, 박언주 옮김 / 시공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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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고 하면 일단 어렵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어렵다. 무겁다. 특별한 사람이 하는 학문이다. 가끔 또라이들이 많다 등등...밝고, 가볍고, 유쾌하고, 재미있는 것들과는 정반대에 위치한 듯한 난해한 학문. 그 어렵다는 철학을 직접 한번 경험해 보고 싶으신 분은 바로 이 책을 집어들고 책에서 하라는 대로 따라하기 바란다. 제목은 '일상에서 철학하기'. 제목 그대로다. 철학책이라고 해서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되는 고대 철학자들의 족보를 외우는 책도 아니고, 철학이란 무엇인가 부터 시작하는 개론서는 더더욱 아니다. 말 그대로 일상에서,  집에서, 길거리에서 짧게는 1~2분, 길게는 20~30분 투자만 하면 된다. 그럼 정말로 그럴듯한 철학자가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나도 해봤다. 진짜진짜 쉬운 철학하기가 여기 있었다.






저자는 프랑스인 로제 폴 드르와라는 분이다. 프랑스 국제철학학교 교수, 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르몽드지 고정 칼럼니스트도 했다. 많은 책을 썼는데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의 삶과 죽음의 명장면>, <사물들과 철학하기>, <철학자들과 붓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철학이야기>, <간단하게 보는 철학의 역사>, <사유의 스승들>이라는 책을 펴냈다. 제목들을 살펴보면 지금 소개하는 책 <일상에서 철학하기>와 일맥상통하는 책들이다. 철학의 대중화? 쉬운 철학 체험하기? 등이 저자의 모토인가 보다. 덕분에 어렵게만 느껴지던 철학이 한결 친근하게 다가오게 됐다. 다음 목차에서 소개하는 몇가지 실천철학을 당장이라도 따라해보길 바란다. 





목차만 봐도 엉뚱하지 않은가? '내 이름 불러보기'라~ 이게 무슨 철학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본문을 들여다보면 그리 만만한 과정은 아니다. 먼저 소요시간이 약 20분,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방이 필요하다. 처음 얼마동안은 방안의 고요함을 느끼다가 내가 말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듣는 사람이라는걸 인식해야 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내 이름을 불러본다. 큰 소리로. 처음엔 어색하고 이상하다. 그러나 내 이름 부르기가 반복될수록 어색함은 사라지고, 마침내 나를 부르는 또 하나의 목소리가 느껴질때까지 반복한다. 

"당신 이름을 부르는 자는 분명 당신인데, 당신은 그 목소리의 진짜 주인공이 누군지 모른다. 그러나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신은 당신이 그 둘 다인 것을 너무나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 '두개의 당신'이 결국은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당신도 그걸 알고있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허황된 말장난 같은가? 그건 이 '철학 체험하기'를 실제로 따라해보지 않고 눈으로만 읽어서 그렇다. 여기서 저자가 말한 말장난 같은 얘기를 사실이라고 그대로 믿고 따라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사색과 철학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재미있는 체험이 많이 있다. '반짝이는 별 내려다보기', '순간적인 고통 유발하기', '낯섦의 틈새로 전화걸기', '오줌누면서 물마시기', '버스 기다리며 무서운 상상하기', '상상으로 사과 깎아보기' 어떤가? 이 정도면 따라할만 하지 않을까? 어렵거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도 않다. 딱 하나 걸리는거라곤 남들 시선이 의식된다는 건데 그래서 이런 철학체험은 아무도 없는 나만의 공간, 내 방에서 하는게 많다. 





책에서 언급하는 철학놀이(철학체험인데 사실 놀이에 가깝다)를 다 해봤다면 이번엔 창의력을 발휘해서 -너만 이런 엉뚱한 상상할줄 아냐? 나도 기발한 상상력이 있다구! - 내가 개발한 나만의 철학체험을 만들어서 실행해 볼수도 있다. 뭐 예를들어 이런거? 

'1인2역 연극하기', '취조실의 형사 되보기', '타임머신 타고 10년후의 나를 만나보기', '노팬티로 외출하기', '사람들 관찰하기'...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이런 행동들이나 생각들이 모두 철학의 틀 안에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철학이란 무엇일까? 바로 우리 삶과 생각 그 자체다. 우리가 하는 말, 행동, 생각 모두 철학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책에서 백번 철학에 대해 설명을 해놔도 이해되지 않던 낯섬과 어려움이 이런 철학체험, 철학놀이를 통해 금새 이해되버리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나도 당신도 이젠 철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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