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두렵지 않아 NFF (New Face of Fiction)
니콜로 암나니티 지음, 윤병언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몇년도였을까. 2003년? 2004년? 한때는 광주지역을 대표하는 개봉관이었으나, 갑자기 찾아온 멀티플렉스 시대 치명상을 입고 저물어가며 예술영화 전용관 형식으로 마지막 명맥을 유지하던 광주극장이란 곳이 있었다. 지금은 광주에 사는 젊은이들도 알지못하는 이름으로 남아있지만. 지금 아내와 연애하던 그 때 그곳에서 이름없는 영화를 봤었다. '아임 낫 스케어드'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서평을 쓰고있는 니콜로 암마니티의 소설 '난 두렵지 않아'를 영화화했던 작품이었던 거다. 당시에도 극장 개봉은 했지만 막강한 상업영화들 틈에서 제대로 된 개봉관도 찾지 못하고 예술영화로 분류되며 잠시잠깐 매니아들 사이에서만 입소문을 타고 종영했던 영화로 기억한다. 나 역시 이 영화를 일부러 보려고 의도했던건 아니었다. 여자친구가 어디서 구해온 공짜표가 아까워, 또 그 어떤 빌미만 있어도 한번이라도 더 데이트를 하려고 안달이었던 시기라 '나 이런 예술영화도 좋아하는 사람이야' 코스프레를 하며 봤던 영화다. 근데 어라? 꽤 흥미진진했다. 치고 박고, 부수고, 총을 쏴대는 액션영화도,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이 적용된 SF도, 그렇다고 잔잔한 멜로도 없는, 굳이 분류하자면 청소년 영화였음에도 화면이 아름다웠고, 스토리가 있었고, 감동이 있었다. 그 후로 잊어버리고 있던 이 영화를 다시 일깨운건 한 권의 소설을 만나면서부터다.

 

왠지 소설 제목이 낯설지 않은 '난 두렵지 않아' 영어로는 아임 낫 스케어드. 그래 바로 그 영화의 원작소설이었던 거다. 영화가 기억에 남지 않았다면 굳이 다른 읽을 책도 많은데 굳이 이 소설을 다시 펼쳐들지 않았을터다. 하지만 난 이 소설을 발견하고 다시 첫 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얼핏 얼핏 생각나는 영화의 장면들과 더불어 정말 재밌는 작품이다는걸 다시 느낀다. 청소년 성장소설도 이렇게 재밌게 쓸수가 있는거구나...

 

 

 

특히 영화나 소설의 전반부에 묘사되는 공간적 배경 아쿠아 트라베르세 마을의 시골 풍경은 끝없이 펼쳐지며 바람에 넘실대는 밀밭의 풍경을 짜릿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속에서 뛰어노는 아홉살 꼬마 아이들. 우리네 시골에서 흔히 볼수 있듯 막대기 하나만 가져도 하루종일 지치지 않게 놀수 있는 그런 다섯 아이들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집이라야 이들 다섯 아이들의 다섯집이 전부인 외딴 마을에서 벌어지는 어른들의 은밀한 비밀과, 그 비밀을 알게된 주인공 미켈레의 갈등,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 우정, 약속과 믿음을 세밀하게 소년의 감정을 토대로 써나간 명작이다.

 

나는 더듬거리면서 대답했다. "다시는 안 갈게요. 약속해요."

"내 목숨 걸고 맹세해라."

"맹세해요."

"따라해. 그곳에 다시는 안 간다고 아버지 목숨을 걸고 맹세합니다."

나는 그대로 따라했다. "그곳에 다시는 안간다고 아버지 목숨을 걸고 맹세합니다."

"이젠 네 아버지 목숨걸고 맹세한 거다" 아버지는 잠시동안 아무말 없이 내 곁에 앉아 있었다.

 

그냥 약속이 아니었다. 절대로 안할게요. 다시는 안그럴게요. 우리가 어렸을적, 또는 우리 어린 아이들이 부모에게 수없이 많이 했던, 그 나름대로 당시에는 절실하게, 그러나 지나고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똑같은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며 다시 되풀이했던 그 약속이 아니다. 맹세. 그것도 아버지의 목숨을 걸고 맹세를 했다. 하지만 맹세 이전에 주인공 미켈레는 그 아이에게 약속을 했었다. '꼭 다시 오겠다'고.

그 약속을 지키려 번번히 근처까지 갔다가도 아버지와의 맹세때문에 발걸음을 돌리는 아홉살 소년의 마음. 나도 열살짜리 딸아이가 있다. 아이와 대화하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말들이 어떤 말은 깊은 상처가 됐을터이고, 또 어떤말은 희망에 부풀게 했을터이다. 또 약속들은 어떠한가. 내가 꺼낸 약속을 지키는데 얼마나 신경을 썼을까.

 

미켈레는 생전 처음 보는 아이에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다시는 가지 않겟다고 맹세를 했다. 미켈레는 약속을 지켰을까? 아버지 믿음을 지켰을까? 잔잔한 감동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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