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 대유행으로 가는 어떤 계산법
배영익 지음 / 스크린셀러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랫만에 또 한번 홀딱 빠져버린 소설이 등장했다.

최근 취향이 그러는지, 출간작품들이 그러는지 모르지만 한국소설은 주로 여성작가들에 의한

'여성스러운' 소설들이 많았던 기억이다. 그러던 차에 정말 '남성스러운' 작품이 나타났으니

바로 '전염병(대유행으로 가는 어떤 계산법)'이 바로 그것이다.








많은 분들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실거다. 바로 2009년 겨울과 2010년 한해를 온통 공포에

떨게 했던 신종플루의 공포를 말이다. 건강한 성인들을 제외하곤 영,유아, 노인, 학생 거의 모두가

자의든 타의든 신종플루 백신을 맞아야 했다. 그리고 날이면 날마다 감염자수의 증가와 그에따른

사망자 소식을 뉴스시간을 통해 들어야했고 그때마다 느끼던 공포는 다시 생각하기도 싫을정도로

끔찍했었다. 그렇다... '끔찍했었다'란 과거형으로 표현하기엔 아직 이른감이 있는데 우리는 벌써

신종플루의 공포에서 벗어나 과거를 회상하듯 얘기하곤 한다. 올해도 곳곳에서 신종플루가 발병

하고있고, 벌써 두명이 사망했는데 말이다.



조금 더 거슬로 올라가보자. 2004년으로 기억한다. 조류독감이란 이름으로 퍼져나갔고, 나중에

조류 인플루엔자라고 이름을 바꾼 AI는 어떠한가! 신종플루에 비해 사람의 감염 가능성이 적어서

그렇지 가금류 수백만마리가 매몰되고, 양계업자들을 회복 불가한 나락에 빠뜨렸으며 '걸리면

죽는다'라고 온 국민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AI.  이 역시 오래전 이야기라고 치부할수 있을까?

아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어서 그렇지 올해 역시 충남 천안에서 시작된 AI가 전남,

전북, 경기 지역까지 퍼져가며 지금까지 닭, 오리 357만마리를 살처분 하고 있다.



굳이 몇년전 얘기를 꺼낼 필요도 없다. 바로 지금 전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구제역 소동만 봐도

유행성 전염병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발칵 뒤집어 놓을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지 쉽게 알수있다.

예로 든 신종플루, 조류 인플루엔자, 구제역 등은 모두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이라는것. 흔히 사람을 포함해 동물들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로 나눌수 있다. 책 이야기에 앞서 간단히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차이를

살펴보자.



세균의 종류인 병원균은 박테리아로 분류된다. 박테리아는 상대적으로 바이러스에 비해 큰 몸집을

갖고 스스로 호흡하며 활동할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굳이 다른 생물체에 기생할

필요가 없다.(경우에 따라 기생하는 종류도 있다) 인체 내에서 적당한 생존 환경이 주어지면

자리를 잡고 살다가 각종 병을 일으키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인간과 공생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우리 입속이나 콧속같은 점막, 또는 대장, 소장등 내장기관에는 수없이 많은 박테리아가 살고있으며

이들은 인체에 유익한 역할도 하고있기도 한다.

반면에 박테리아보다 더 원시적인 구조를 가진 바이러스는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살기위해서는 숙주에 붙어 기생하는 방법밖에 없다. 숙주가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이용해 살아가는데

그러면서 점차 숙주를 말려죽인다. 하지만 숙주가 죽으면 숙주에 기생하던 자신도 죽게된다.

사람들이 많이 걸리는 감기와 같은 호흡기질환도 바이러스가 원인인 경우도 있고, 박테리아가 원인인

경우도 있다. 치료의 관점에서 보자면 박테리아는 치료가 상대적으로 쉽다. 이미 강력한 항생제를

통해 박테리아를 어느정도 통제할수 있는것이다. 반면 바이러스는 아직까지 확실한 치료방법이 없다.

타미플루 같은 항바이러스제가 나와있긴 하지만 치료효과가 미비하고 완치율도 떨어진다.

흔히 감기에 걸렸을때 물 많이 마시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라고 하지 않는가. 그건 바이러스에 의한

감기일경우 치료약이 없기 때문에 면역력을 키워서 스스로 치유하란 얘기와 다름아니다.

바이러스에는 항생제가 듣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의원에서 항생제를 처방하는 경우는

항생제 오남용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오히려 무분별한 항생제로 인해 내성을 가진 돌연변이를

불러올수 있어 위험하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신종플루 걸렸을때 유일한 치료약이 타미플루이지만 치료효과가 크게 기대할

수는 없는 이유다. 



흔히 공포스러운 전염병을 말할때 '스페인 독감'을 빼놓을수 없다. 1918년 발생해 2년동안 전세계

약 5천만명을 죽음으로 몰고간 근래 최악의 전염병이었다. 오늘 당장 우리나라에 그런 병이 돌지

말란 법이 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수 없다.

소설 '전염병'은 바로 이러한 가정하에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상 최악의 바이러스로 인한 정체불명의 질병. 치사율이 90%를 넘어 걸리면 죽는 이 병이 어느날

갑자기 서울에 상륙하면서 벌어지는 가상의 이야기가 하루 하루, 매 시간 단위로 사실감 있게

묘사된다. 질병관리센터, 국립의료원, 국가위기관리본부, 보건복지부, 건국대등 실제 기관과 지명이

사실감을 배가시킨다. 바이러스의 유입과정, 전파과정,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죽어가는

과정, 백신 개발과정등이 세세하게 묘사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잘 찍은

헐리웃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또 어찌나 의료지식에 대해 해박한지 작가의 이력이 궁금해

책을 읽다말고 작가를 검색해 보기도 했다.



배영익.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나오고 LG CNS에서 엔지니어로 2년간 근무, 영화사 미로비젼

에서 2년간 영화기획자로 활동.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력도 꽤나 특이하지만

아직 작품내역이 없는걸로 봐서 이 작품이 처녀작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잘 씌여진

작품이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듯이 박진감 넘치게 사건을 구성해 나가고 있고, 보통 일본소설들이나

국내 소설들에서 흔히 보여지듯 거창하게 사건을 전개시켜 나가다 흐지부지 끝맺는 용두사미식의

과오도 범하지 않는다. 사건의 발단과 전개, 절정, 결말 모두에서 아주 만족스럽다.



 




소설의 내용에 대해 좀더 자세히 얘기하고 싶기도 하지만 참기로 한다. 혹시나 독서에 목말라 하고계신

분이 있다면 이렇게 잘 씌여진 소설은 직접 읽어보기를 권해야 하니까.

의학상식 하나 알고가자. 바로 '장티푸스 메리' 라는 단어.

정작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숙주면서도 본인은 건강하게 바이러스와 공생하는 관계를 유지한다.

숙주로부터 감염된 다른 이들은 치명적인 병으로 발전하고 죽기도 하지만 본인은 건강하다.



소설과 전혀 다른 얘기지만 혹시 지금 우리 사회도 이런 '장티푸스 메리' 가 존재하지 않을까?

본인은 건전한척, 올바른척 가식적인 미소를 띄면서도 우리 사회를, 평화를 후퇴시키는 암적인 존재.

이 글을 읽는 우리들만이라도 장티푸스 메리가 되지말고 백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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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1-02-08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 가득한 서평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