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폐막한 30th 2025 BIFF 때 연속 나흘을 영화 보러 가서 마지막 상영 영화+GV까지 보고서야 극장을 나왔다. 극장을 나온 때는 대충 23시 전후의 시각. 집에 와서 대충 씻고 간신히 0시 전에 자고 다음날 6시 조금 전에 일어났다. 연속 나흘 평균 수면 시간이 6시간이 조금 모자랐다. 매일 8시간 남짓 자야만 생활이 가능한 나인지라 '사람이 이러다가 과로사하는구나.'를 간접 체험했달까. 그나마 버틴 건 영화제+GV뽕이었다. GV에는 마르코 벨로치오, 션 베이커, 줄리엣 비노쉬 그리고 양조위가 있었다. 이 뽕으로 버틴 것. 내년 영화제 때는 나이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자 다짐했다. 1939년생 마르코 벨로치오 씨도 저렇게 활력 넘치게 일정 소화해 내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청춘(?)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자신을 추앙하는 팬들에 둘러싸인 86세의 이탈리아 노인은 더 심한 뽕에 취해 있을 테니 활력이 넘치는 것이 어쩌면 당연지사!!


그리고 문제의 어제. 이상하게도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서, 영화 5편을 봤다. 영화 시간표가 그렇게 아다리가 맞기도 참 어려운데 그게 됐다. 5편은 역시 과유불급이었다는 반성에 날씨도 동의한 듯 폭우 속의 야간 운전을 해야만 했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였다. 밤에는 그칠 줄 았았는데 폭우로 변해 있었고, 내 옆차로의 자동차가 튀긴 엄청난 빗물이 정면 유리창을 뒤덮어서 순간 시야가 완벽하게 가려졌고, 그 구간은 커브길이었기에 아찔했다. 잘 아는 길이었기에 망정이지 익숙하지 않은 길이었다면 중앙분리대를 박았을지도. 


그리고 문제의 10월. 영화의전당 라인업은 영화 보다가 과로사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러닝타인 4시간이 넘는 <쇼아> 1, 2부 상영이라던가(인터미션 없음), 러닝타인 338분(5시간 38분?? 인터미션 없음)인 실험영화(?)를 무료 상영하질 않나. 아벨 강스 <나폴레옹>(1927년작, 사실 아벨 강스 누군지 모르지만) 국내 최초 개봉!(심지어 무료 상영) 이런 거 하면 엄청 관람 도전하고 싶어 진단 말이야!!!!! 이미 모두 예매 완료. 지금 심정은 한 살이라도 어릴 때(체력될 때) 도전하자. 


사실 지난 8월에도 영화지원금, <뉴 멕시칸 시네마와 이란 영화 걸작선> 이어서 진행된 <아세안 영화제> 때문에 본 영화가 서른 편. BIFF 준비 때문에 극장이 영업을 하지 않는 덕분에 한숨 돌리고 나자마자 BIFF 영화 보느라 크레이지 모드 했다가 이제 자제하자 싶었는데 <2025 부산현대미술관 시네미디어-영화 이후> 프로그램에서 희귀 영화들을 무료 상영을 하니 자제도 절제도 되지 않는 상황. 닥치는 대로 매관매직, 뇌물수수, 왕(비)놀이(종묘에 지인 초대해서 놀기, 해군함정 타고 뱃놀이, 공군 1호 대통령 전용기로 명품 보석과 명화 밀수 ㅋㅋㅋ 이런 천하에 몹쓸 년이 있나)를 했던 4398이 조금은 이해되는 순간이다. 그 모든 부귀영화와 권력을 맛본 후 누런 수용복을 입고 닉네임 V0 대신 수감번호 4398로 독방 감옥에 있는 기분이 어떤 걸지 진짜 궁금하다. 만신창이가 되어 있을 거라는 내 기대와 달리 첫 재판에 나온 4398의 꼴은 필요 이상으로 멀쩡했다. 심지어는 머리숱마저도 많아 보였다. 어떻게 묶었길래 머리가 풍성해 보이지? 설마 포니테일용 가발도 지원받은 걸까? 다음 재판에서는 넷플릭스 드라마 <애나 만들기>의 애나 델비의 법정룩의 4398 버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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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불망 기다리던 오지은+서영호의 전주 공연을 다녀왔다. 전주에 가 본 적이 없었기에 겸사겸사 전주 관광도 하고 왔다. 공연장에서 도보 10분 거리의 한옥마을에 숙소를 잡고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운전을 해서 조금 먼 곳을 가보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연화정도서관과 팔복예술공장(전시작품들이 많고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데 무료라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강원도 원주의 특산물이 제설이라면 전주의 특산물은 넓은 차도와 넓은 인도였다. 차로 한 칸이 매우 넓었고 대부분의 도로가 왕복 6차선, 10차선이었고 도로에는 차가 별로 없었다. 한옥마을 주변의 건물들이 매우 낡아있었기에 부산 중구 같은 구도심이어서 그런가 싶어서 일부러 금암면옥 신시가지점을 찾아갔는데, 부산의 신도시 같은 밀도 높은 아파트와 상가 풍경이 아니어서 놀랐다. 비보이 공영주차장이라는 곳에 주차를 했는데 전주의 주차장 인심에 놀라고 말았다. 주차장의 지상은 텅 비어있고(주차장으로 사용하지 않음, 그냥 공터랄까, 여길 활용하지 않고 비워 둔다고?!!!) 주차장은 지하 1, 2층에 있었고 한 칸 한 칸이 넓었다. 전주는 슬로우 시티였다! 북유럽 여행을 했을 때의 여유로움에 받은 충격을 전주에서 또 한 번 느꼈다. 추가로 전주에서 좋았던 점은 지저분한 극우 현수막이 없다는 것!! 유감스럽게도 내가 사는 동네와 회사가 있는 동네에는 극우 현수막이 정말 많다. 부정선거, 독재, 노란봉투법 반대 등등. 

오지은 공연 시작 전 무대에 덩그러니 있는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 1대와 건반 1대를 보면서 정말 악기가 저게 전부란 말인가, 피아노 반주와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공연을 채울 수 있단 말인가, 엄청난 자신감과 내공이다라고 생각했다. 오지은 공연을 보면서 한 생각은 '저렇게 잘 부르는데 가수를 안 하다니 재능이 너무 아깝다'와 '가수는 은퇴하고 작가만 한다고 했는데 노래는 왜 더 잘 부르지? 몰래 매일 연습하나?'였다. 오지은 콘서트를 보는 건 이번이 네 번째다. 노래가 정말 좋았다. 피아노 반주만 있는 극강의 미니멀 공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이 꽉 차는 느낌이었다. 

전주여행 기념으로 전주공식기념품가게에서 자개 반지, 자개 귀걸이, 전주 향교 무늬의 미니 자개 보석함, 갓 모양 키링을 샀다. 방문한 곳은 팔복예술공장, 한지박물관, 경기전+어진박물관, 연화정도서관, 동학혁명기념관. 전주 향교와 국립무형유산원을 못 간 것이 아쉽다. 먹은 것은 현대옥 남부시장점 오픈런(아침 6시 오픈런으로 먹어보고 싶었다). 콩나물국밥 먹고 다시 한옥 숙소로 가는 길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관광객 커플이 저기다 저기 하면서 어묵 가게에서 어묵을 사길래, 어묵, 핫바 같은 걸 싫어하지만 나도 따라 사 봄(진심어묵). 금암면옥 신시가지점. 그리고 가격에 비해 시시했던 모 식당의 (익힌) 육회비비밤... 먹는 것에는 별 흥미가 없어서 먹은 것은 이 정도다. 한옥마을 내에서 사람들이 줄 서서 먹는 걸 보면서 저걸 왜 먹지라고 생각한 것은 오징어 튀김과 닭꼬치. 오징어 다리가 위로 치솟은 오징어 튀김을 꽃다발처럼 들고 사진을 찍는 여자와 그걸 찍는 남자 커플이 괴이하다 생각했고, 고속도로 휴게소서나 먹을 법한 길고 긴 닭꼬치를 사람들이 먹는 풍경이 한옥마을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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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고 또 미루고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었던 위내시경 검사를 드디어 했다. 위가 딱히 불편하지도 않은데 위 속으로 내시경을 집어넣는 게 싫었다. 아프지도 않은데 왜 검사를 하라는 거야! 또 다른 이유는 수면내시경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내 또래의 그 누구보다 CT, MRI를 많이 찍어서(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찍을 ct를 다 찍고, 조영제도 다 맞았을지도 ㅜ 라고 생각하면 피눈물이 난다. 그럴 때마다 HBO 드라마 <체르노빌>에서 엄청난 피폭을 당했지만 정상 아기를 출산하고 70세 넘도록 살았던 실제 인물을 떠올리면서 위안을 얻는다.) 방사능과 조영제를 건강기능식품 또는 비타민 수액처럼 몸속으로 집어넣고 사는 내가 고작 수면내시경 진정제 약물과 부작용(가끔 보는 수면내시경 받고 사망했다는 뉴스)이 두려워서 내시경을 미루는 것이 어딘가 부조리해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는 현시대의 과잉의료가 싫고, 최대한 피하고 싶기에, 병원에 가서 뭔가를 검사하는 거 자체가 건강하지 않은 내 입장에서는 질병에 대한 확인사살 같은 거라서... 꺼려지기 때문이다.

과거의 위내시경 검사에서 위염 진단을 받긴 했지만, 의사가 따로 약처방을 해준 것도 아니고 내가 불편한 걸 느끼지도 못해서 시력저하 같은 거로 가벼이 여기며 지냈다. 위? 나는 더 심각한 곳에 질병이 있어서 위 따위 돌볼 여유가 없기도 했다. 

수면이냐 비수면이냐도 고민이어서(비수면 위내시경은 해본 적 없었다) 주변에 물어보니 희한하게도 다들 비수면 위내시경을 받고 있었다. "그거 뭐, 우엑 서너 번 하면 끝난다."는 게 공통의 후기였다. 병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수면할지도 모르니까 자가용 대신 버스 타고, 이 병원은 처음 가는 병원인데 지인이 항상 여기서 비수면 내시경 한다고 해서 추천받음), 병원에서 접수를 기다리면서도 수면이냐 비수면이냐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간호사는 당연하다는 듯 "일반으로 할 거죠?" 그래서 나는 "수면 안 해도 할 만해요?"라고 물으니 간호사는 "3분만 참으면 돼요. 금방 끝나요."라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위내시경 관련 유튜브 영상의 댓글에서 요즘 내시경은 선이 가늘어서 비수면하기 쉽다는 걸 읽고 휴대폰 충전선 굵기 정도를 예상했는데 내 눈에 보인 내시경 선은 과거의 TV유선 케이블 선만큼이나 굵어 보였다. 하지만 비수면 위내시경 검사에서 공포 그것이 전부였다. 실제  내가 체험한 비수면 위내시경은 목구멍이 꽉 차는 느낌과 세 번의 트림(이것이 그 우엑 서너 번인 듯)과 약간의 눈물이 전부였다. 간호사는 검사 시간을 3분 정도라고 했지만, 내가 느끼기엔 1분 정도. 십이지장 입구까지 내시경이 들어갔는데도 뱃속에서 별 느낌이 없었다. 


내가 이렇게 둔감한 인간이었다니!!!  


잠시 뒤 진료실에 가서 나의 위 내부 사진을 봤다. 경악하고야 말았다. 의사는 "이 정도면 아팠을 텐데." 라고 말하면서 약 먹으면 낫는다고 2주치 약을 처방해 주었다. 내 위산이 피가 날 정도로 위 점막을 손상시켰는데도 통증을 못 느꼈다니... 이러니 내가 타인의 고통을 어찌 예상하겠는가 말이다. 내 고통도 제대로 못 느끼는데... 


내가 이렇게 둔감한 인간이었다니!!!!!!! 



내 위가 왜 이렇냐고 물으니 의사는 "스트레스, 수면부족, 맵고 짠 음식이 원인일 수도 있다."라고 했다. 난 셋 다 해당 안 되는데... 더 나아가 기름진 음식, 과식, 야식도 안 하는데.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이것 또한 지나가겠지!! 2년 전 검사에서 공복혈당과 간수치가 지나갔듯이. 그 언젠가에는 빈혈이, 또 다른 언젠가에는 HDL이 그렇게 지나갔다. 중요한 것은 회복력! 내 위도 회복하겠지... 지나가지 않으면 건강하지 못한 위가 버틸 때까지 살다가 죽는 거지, 별 수가 있나. 어차피 죽으려고 태어난 건데. 


위내시경 결과는 맘에 들지 않지만(약 먹으면 낫는다고 하니 희망을 가져보기로) 미루고 미루던 위내시경을 해서 홀가분하고 비수면 위내시경 검사를 무사히 마쳤다는 것에 기분이 더없이 좋은 날이다. 


ps. 어제부터 지금까지도 유튜브 명의들의 위염 관련 영상을 숨 쉬듯 듣고 있다. 손빨래를 하면서, 설거지를 하면서, 양배추를 채 썰면서, 집 정리는 하면서,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면서 듣고 있다. 조물주가 있다면 인간의 몸을 왜 이리 복잡하고 나약하게 만들었는지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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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들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었던 건 어릴 적뿐이었다. 이제 나는 중요한 것이 책에 서술된 허구의 사건들보다는 독서 중의 체험, 책 속 이야기가 일으키는 감정 상태, 머리에 떠오르는 질문들이라는 진실을 안다. 

(중략)

나는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은 후 기억에 남는 건 꿀병이 든 소풍 바구니에 대한 묘사뿐이었다고 고백한 소설가를 좋아한다.

<그해 봄의 불확실성 / 시그리드 누네즈>


이미 본 영화들 & OTT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이 재개봉한다. 그러면 나는 그걸 보러 극장엘 간다. 재개봉 영화 중 최근에 본 것들을 적어 보겠다. <아마데우스> <시네마 천국> <바닷마을 다이어리>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칠드런 오브 맨>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그리고 최근 넷플릭스에 올라온 20여 년 전 드라마 두 편 <내 마음을 뺐어봐>(1998년작) <순수의 시대>(2002년작)


이 영화나 드라마들을 보면서 드라마 내용 보다 더 먼저 1990년대의 나 자신, 2000년대의 나 자신을 소환하고 추억한다. 특히 한국 드라마 속의 옛날 거리 풍경, 옷차림, 휴대폰 심지어는 체벌을 보면서까지도 어쩐지 아련한 느낌이 든다. 엘리베이터 걸을 연기하는 배우를 보면서 롯데백화점의 엘리베이터 걸을 떠올렸다. 유니폼이 예쁘다는 생각을 했었다. 김남주는 첫 화에서 그 당시 유행하는 힙합(?) 브랜드 스포츠 리플레이 스타일을 입고 등장했고, 나는 처음 본 배우 전지현이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다. 주인공들의 멜로 서사는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순수의 시대>도 마찬가지다. 나는 김민희를 정말 좋아해서(지금도 좋아한다. 그래서 홍상수가 너무 싫다!) 진짜 열심히 봤는데도 불구하고 멜로 서사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김민희의 스타일만 생각이 남 ㅎ 김민희는 정말 이상한 배우인 것이 혼자 촌스럽지가 않다. 2002년 드라마인데 2025년이라고 해도 믿어질 듯한 비주얼. 이건 영화 <모비딕>에서도 증명되었는데, 영화 배경은 1994년이고 영화는 2011년에 개봉했는데, 그 당시에도 김민희 혼자 실시간 패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비딕>은 2025년에 봐도 김민희는  실시간(2025년)을 살고 있음. 아마 2035년에 봐도 김민희 혼자 예스럽지 않을 거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마지막 장면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고, 학생 때 봤을 때는 그냥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방임과 폭력이 난무하는 어마어마한 아동학대 르포였다! <칠드런 오브 맨>도 분명히 봤는데, 내 기억 속 소녀는 백인이었고, 기억나는 건 전투 씬과 숲 속 오두막의 대마초 씬 말고는 없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도 혹시 내가 어디서 예고편만 본 걸 가지고 착각을 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영화를 보면서 전혀 생각나지 않는 장면이 많아서 내가 이걸 안 봤나 하다가 영화 후반부에 세 자매의 엄마가 등장하는 장면이 정확하게 생각나서 '아 봤구나' 했다. <칠드런 오브 맨>의 전투 씬을 보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총소리 때문에 아기 딜런은 청력을 다 잃었겠구나 하는 것과 태어남 자체가 저 아기 딜런에게는 저주나 다름없겠구나 하는 것. '<칠드런 오브 맨> ㅈ같다.'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알폰소 쿠아론의 휴머니즘도 CJ갬성이었나 싶기도 하고.


다 까먹을 거면 영화를 많이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그해 봄의 불확실성>의 첫 페이지부터 위에 인용한 문장들이 나오길래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하면서 안도했다. 


중고등학생 때에는 절대적으로 콘텐츠가 귀하기도 했고, 용돈도 충분하지 않아서 비디오를 빌리면 최소 두 번을 봤고, 책을 사도 최소 두 번을 읽었고, 영화 잡지의 광고 글자까지 전부 다 읽었다. 극장에서 본 영화가 비디오로 나오면 또 빌려봤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기억을 많이 하고 있는데, 요즘은 영화를 보면서도 책을 읽으면서도 실시간으로 까먹는 것 같다. 구매한 책들 중에서 아예 시작도 안 했거나 읽다가 중단한 책도 많고. 심각하다 진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열풍이라서 며칠 전에 영화를 봤다. 모든 것을 3배속 한 듯했다. 영화가 진공 압축팩에 들어가 있는 겨울 패딩 점퍼 같이 느껴졌다. 잘 만들었다 아니다 그런 걸 떠나서 99분이라는 시간 속에 너무 많은 것이 들어있어서 다 소화하기 힘들었달까. 30분이라는 시간 제한이 있는 20코스짜리 미슐랭 요리를 먹어야 하는 듯한. 이렇게 만들어야 세계 1등을 하는 거구나 깨달음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케데헌>보다 더 재미있었던 것은 작곡자 이재의 서사였다. '와, 사람이 저렇게도 성공을 할 수 있구나.' 이재에게 작곡을 처음 권한 사람이 신사동 호랭이라고 했다. 신사동 호랭이가 만든 노래를 들으면 이제는 슬프고, 나는 아직도 이선균이 나오는 영화를 보지 못하고 있다. 어제도 <끝까지 간다>가 다시 보고 싶어서 용기를 내어서 재생했다가 첫 장면부터 이선균 등장, 30초를 못 버티고 껐다. (한국에서는 윤석열, 김건희처럼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수치심도 없는 인간들만 생존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윤 씨 그 자는 자신의 온몸에 자기 똥 처바르는 퍼포먼스로 정신병동에서 여생을 보낼 거라고 나는 200% 확신한다. 똥을 몸에 바르는 건 약한가? 그렇다면 교도관이 보는 앞에서 자기 똥을 먹을지도.)


20년 전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들이 말을 하는 속도가 느리다' '말투가 부드럽다'라고 생각했다. 말의 속도가 느리고 말투가 부드러워서 귀가 편했달까. 맵고 짠 음식이 혀에 거슬리는 것처럼 음향+대사+등장인물의 움직임+배경 등등이 너무 압축적으로 한 장면(몇 초 사이)에 너무 많이 들어있는 걸 보면 숨이 찬다, 갑갑하다 그런 느낌을 받는다. 영화 <F1 더 무비>를 보면 너무 갑갑한 것이다. 처음에는 브래드 피트가 헬맷을 쓰고 있어서 볼살이 짓눌린 장면 때문에 내 마음이 갑갑했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밀도가 지나치게 높은 영상을 155분 동안 보는 게 갑갑했던 것이다. 


영화 <봄밤>에서 주인공 한예리는 김수영의 봄밤을 읊는다. 그 장면이 진짜 좋았다. 나중에 팟캐스트 필름클럽에서 임수정이 같은 시를 낭송하는데 진짜 좋았다. 와 이게 배우의 힘이구나 싶었다. 아무튼 겸사겸사 요즘 내 최애 시인의 최애 시를 외우고 있다. <추운 계절의 시작을 믿어보자> 이제 겨우 한 바닥 외웠지만, 반복해서 외울 때와 그냥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갈 때의 감상(느낌)은 정말 다르다. 또한 아직은 암기할 수 있는 나의 두뇌에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소설 10편 읽는 거보다 시 한 편 외우는 게 감상의 깊이가 넓고 깊지 않나 싶기도 하고. 


콘텐츠 과잉의 시대에 여백이 많은 시집 속의 시를 암기하는 것으로 뇌의 간헐적 단식을 하는 중. 유튜브와 인스타그랩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현대인의 몸과 정신 건강의 많은 부분이 해결될 거라고 200% 확신한다. 유튜브도 거의 안 보고, 인스타도 안 하는 내가 그것들의 해악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겠지만, 영화 <시네마 천국> 속 1950년대 전후의 초딩이들은 담배의 해악을 알지 못했기에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처럼, 요즘 사람들도 그것의 해악을 알지 못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스마트 폰 속의 영상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매우 위태로워 보인다. 


ps. 시를 외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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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정작 당사자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죽음이란 결코 찾아오지 않는 미래입니다. 아니 그보다, 죽음이라는 미래는 닥쳐오지만 결코 현재가 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바로 이 순간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는 말입니다. 자신의 죽음이라는 미래는 현재화 될 수 없기 때문에 쉽게 추상적인 성격을 띱니다. 그 날짜가 불확정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죽음이 꼭 이 순간이거나 저 순간이어야만 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무기 연기하기 십상입니다. 

사람이 죽음을 실감하는 것은, 그리고 고뇌 속에서 실감하는 것은, 최후의 미래도 중간의 작은 미래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자신에게 닥쳐오기 만들어졌음을 이해할 때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종말이, 생의 사이사이의 작은 종말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날 자신의 현재가 되리라는 것을 발견할 때입니다.

<죽음: 이토록 가깝고, 이토록 먼 /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


1. 홈트

어린이집 원아의 포도송이 100개 채우기 미션처럼 홈트를 수행했을 때마다 달력에 스티커를 붙였다. 이걸 꼬박 24개월 넘게 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운동(?)은 여전히 하기 싫다. 처음 홈트를 했을 때는 어떤 영상이 나에게 제일 잘 맞는지, 같은 시간에 가장 많은 운동량을 주는지 몰라서 계속 다른 영상들을 골라가면서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나에게 제일 효과적인 영상을 찾게 되었고, 이제는 매일 그것만 보면서 하고 있다. 같은 영상 속의 같은 동작만 하니까 더 지겹긴 하다. 그래서 두어 달 전부터는 mbc 라디오의 정치뉴스를 들으면서(보면서) 홈트를 하고 있다. 그랬더니 좀 할만했다. 덜 지겹게 느껴졌다.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폰으로는 정치 뉴스 유튜브를, 10년 전에 사용했던(무려 아이폰6) 폰으로는 홈트영상을 메트로놈처럼 켜두고 운동을 하고 있다. 


그랬는데, 어제는 운동이 너무 하기 싫어서 나에게는 시청금지영상인 건강 관련 유튜브를 보면서(들으면서) 운동을 했다. 그만큼 절박했다는 소리다. 왜 운동은 매일 꾸준히 하는데도 주기적으로 권태기가 오는 걸까. 무엇 때문에 나는 이렇게 절박하게 운동을 하는 걸까. 딱히 살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이유는 하나다. 운동을 안 하면 찝찝하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찝찝함 같은 감정이 들기 때문이다. 그 기분이 운동을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편안함보다 더 싫기 때문에 운동을 하긴 한다. 



2. 죽음에 관한 창작물 3편

홈트를 시작했을 즈음, 나의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홈트를 시작했고, 마침 <죽음: 이토록 가깝고, 이토록 먼>이라는 책이 출판되었고 코 앞에 다가온 죽음을 맞이하고자 바로 구입했다. 책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비닐 포장이 되어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포장을 뜯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비닐 포장 그대로 2년 넘게 책장에 꽂아두었다. 책을 구입한 지 24개월이 더 지난 얼마 전에야 비닐 포장을 뜯고 책을 첫 페이지를 읽었다. bgm은 주제 맞춤으로 모차르트의 레퀴엠. 책을 펼친 지 열흘도 더 지난 거 같은데 아직도 프롤로그에서 헤매고 있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같은 말을 끝없이 변주하고만 있다. '죽음이라는 당연한 순리를 왜 인간들은 자신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어떤 불길한 사건으로 여길까요?'라는 말을 오만가지 다른 표현으로 쓰고 있는데, 너무 지나친 TMI 아닌가 싶기도. 


죽음에 관한 영화 두 편을 봤다. 

소마이 신지 <여름정원>(1994년작, 2024 4K 리마스터링으로 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1999년작, 필름 상영으로 봄)

두 영화 모두 같은 주제다. '죽음'을 관음 하고 싶은 욕망. 두 영화 모두 주인공이 조만간 죽을 노인을 몰래 훔쳐본다. 죽음의 순간을 목격하고 싶어서. 


세 개의 죽음에 관한 창작물 중에서 우승작은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이다. 이 영화는 죽음을 관음 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천천히 집요하게 보여준다. 장켈레비치가 프롤로그에서 끝없이 변주하고 있는 '인간은 결코 죽음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죽음은 타인의 불상사로만 받아들인다'를 118분짜리 영화로 보여준다. 


3. 방탕, 유흥 그리고 부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면 

나에게도 방탕(?)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어차피 죽어야 하는데 굳이 왜 태어났을까'하는 생각을 하염없이 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술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배달 음식, 탄산음료, 액상과당 같은 거 아예 먹지 않는다. 유튜브 등도 잘 안 본다(영화 볼 시간도 없는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불면증 없다. 두통 없다(머리가 아픈 게 어떤 건지 잘 모름). 매일 아침에 모닝홈트 한다(이 점이 가장 미친 거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꾸준히 영화를 본다. 꾸준히 책을 읽는다. 꾸준히 일기를 쓴다. 꾸준히 출퇴근을 하고 있다(이것이 두 번째로 미친 거 같다). 해야 할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하고 싶은 것을 조금 하고, 잘 시간이 되면 잔다. 


스마트폰 중독과 관련된 건강 영상을 보면 생기는 의문: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밤에 잠이 저절로 오지. 숏폼 영상과 불면이 무슨 상관이지? 잠이 오는데 숏폼 영상을 어떻게 봐? 

시사 프로에서 위고비(이게 뭔지 이제야 알았다) 방송을 보고 든 의문: 배가 부르면 그만 먹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살아오는 동안 음식 자체가 맛있어서, 계속 먹고 싶어서 먹은 적이 없다.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체질인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많이 먹어본 적 자체가 없어서 내가 어떤 체질인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먹는 행위에서 즐거움을 크게 느껴본 적이 없다. 나는 인간 위고비인가ㅋㅋㅋ

흥청망청 충동적으로 돈을 쓰지 않는다. 나는 내가 의류비에 돈을 얼마나 쓰지는, 식비에 돈을 얼마나 쓰는지 알고 있다. 의류비의 경우 내가 정한 금액 안에서 명품 한 개를 사는 것일 뿐. 세일하는 것, 싼 것 여러 개를 충동적으로 구입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아 내가 저렇게 살지 않아서 괜히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저런 생활을 하면서 그걸 즐길 수 있는 기질이어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최고지 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학생 때 친구들이 나의 시험공부계획표를 보여달라고 한 적이 많다. 보여주면 다들 "이걸 어떻게 지켜?"라고 물었다. 그러면 나는 "그냥 내가 짠 계획대로 공부를 하면 되지. 이대로 해야 시험범위를 다 공부할 수 있어. 벼락치기하면 힘들잖아(공부할 체력 없음 ㅠ). 나는 자야 돼." 계획대로 공부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덕질(유흥)'을 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마음이 힘들 땐 윤동주의 <쉽게 씌여진 시>를 패러디해서(늙은 교수 대신 선생님 별명을 넣는다던지) 말하곤 했다.  HOT의 we are the future를 불렀어야 했는데, 윤동주의 <쉽게 씌여진 시>가 훨씬 더 내 마음에 와닿았었다. 문학을, 특히 시를 오지선다형 문제로 풀어야 한다는 것에 어떤 모멸감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모멸감과 달리 나는 국어 성적이 너무 좋았다. 문제를 너무 잘 풀었다. 


가끔 김건희를 보면 부럽기도 하다. 뭐가 부러우냐 하면 돈에 대한 맹목, 집착.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는 것에 인생을 올인하는 거 보면 적어도 저 자는 태어난 게 허무하진 않겠네 싶어서. 김건희 같은 기질의 사람에게 최적화된 세상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김건희 같은 사람은 절대 자살 안 할걸. 자기 돈 아까워서 못 죽을 걸. 어차피 50년도 더 못 살고 죽을 건데 이 돈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 자체가 없을 걸. '정작 당사자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죽음이란 결코 찾아오지 않는 미래입니다.' 이 문장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이 김건희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내 인생관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 한정치산자로 의심되는 사람(자기 객관화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이 김건희지만, 이기적 유전자적 관점에서 보자면 생을 철저히 긍정하고 죽음을 완벽하게 부정하는 김건희 부류의 인간이야 말로 적자생존 아닌지. 자본주의 환경에 최적화된 인간 군상으로서 적자생존. 환경에 적합한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의미에서. 



ps. 시집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는 내가 제일 아끼는 시집이다. 이 시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시는 <추운 계절의 시작을 믿어보자>이다. 너무 좋아서 암기하려고 했는데, 20페이지 정도 분량이라서 포기하고 한 권을 더 구매했다. 한 권은 집, 한 권은 회사에 두고 <추운 계절의 시작을 믿어보자>가 필요할 때마다 읽으려고. 물론 타이핑해서 출력한 A4용지를 회사에 둘 수도 있고, 한글 파일로 꺼내 읽을 수도 있고, 시집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어서 시가 필요할 때마다 폰을 열어볼 수도 있겠지만, 시는 종이로 된 시집으로 읽어야 제 맛. 이 시집도 출판되자마자 샀다. 나라도 사야지 하는 그런 오만한(?) 마음. 아무튼 그래도 존버하면서 살다 보니 이 영화를 극장에서 필름 상영으로 보게 될 날도 오는구나 싶어서 약간의 위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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