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소설들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었던 건 어릴 적뿐이었다. 이제 나는 중요한 것이 책에 서술된 허구의 사건들보다는 독서 중의 체험, 책 속 이야기가 일으키는 감정 상태, 머리에 떠오르는 질문들이라는 진실을 안다. 

(중략)

나는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은 후 기억에 남는 건 꿀병이 든 소풍 바구니에 대한 묘사뿐이었다고 고백한 소설가를 좋아한다.

<그해 봄의 불확실성 / 시그리드 누네즈>


이미 본 영화들 & OTT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이 재개봉한다. 그러면 나는 그걸 보러 극장엘 간다. 재개봉 영화 중 최근에 본 것들을 적어 보겠다. <아마데우스> <시네마 천국> <바닷마을 다이어리>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칠드런 오브 맨>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그리고 최근 넷플릭스에 올라온 20여 년 전 드라마 두 편 <내 마음을 뺐어봐>(1998년작) <순수의 시대>(2002년작)


이 영화나 드라마들을 보면서 드라마 내용 보다 더 먼저 1990년대의 나 자신, 2000년대의 나 자신을 소환하고 추억한다. 특히 한국 드라마 속의 옛날 거리 풍경, 옷차림, 휴대폰 심지어는 체벌을 보면서까지도 어쩐지 아련한 느낌이 든다. 엘리베이터 걸을 연기하는 배우를 보면서 롯데백화점의 엘리베이터 걸을 떠올렸다. 유니폼이 예쁘다는 생각을 했었다. 김남주는 첫 화에서 그 당시 유행하는 힙합(?) 브랜드 스포츠 리플레이 스타일을 입고 등장했고, 나는 처음 본 배우 전지현이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다. 주인공들의 멜로 서사는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순수의 시대>도 마찬가지다. 나는 김민희를 정말 좋아해서(지금도 좋아한다. 그래서 홍상수가 너무 싫다!) 진짜 열심히 봤는데도 불구하고 멜로 서사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김민희의 스타일만 생각이 남 ㅎ 김민희는 정말 이상한 배우인 것이 혼자 촌스럽지가 않다. 2002년 드라마인데 2025년이라고 해도 믿어질 듯한 비주얼. 이건 영화 <모비딕>에서도 증명되었는데, 영화 배경은 1994년이고 영화는 2011년에 개봉했는데, 그 당시에도 김민희 혼자 실시간 패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비딕>은 2025년에 봐도 김민희는  실시간(2025년)을 살고 있음. 아마 2035년에 봐도 김민희 혼자 예스럽지 않을 거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마지막 장면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고, 학생 때 봤을 때는 그냥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방임과 폭력이 난무하는 어마어마한 아동학대 르포였다! <칠드런 오브 맨>도 분명히 봤는데, 내 기억 속 소녀는 백인이었고, 기억나는 건 전투 씬과 숲 속 오두막의 대마초 씬 말고는 없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도 혹시 내가 어디서 예고편만 본 걸 가지고 착각을 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영화를 보면서 전혀 생각나지 않는 장면이 많아서 내가 이걸 안 봤나 하다가 영화 후반부에 세 자매의 엄마가 등장하는 장면이 정확하게 생각나서 '아 봤구나' 했다. <칠드런 오브 맨>의 전투 씬을 보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총소리 때문에 아기 딜런은 청력을 다 잃었겠구나 하는 것과 태어남 자체가 저 아기 딜런에게는 저주나 다름없겠구나 하는 것. '<칠드런 오브 맨> ㅈ같다.'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알폰소 쿠아론의 휴머니즘도 CJ갬성이었나 싶기도 하고.


다 까먹을 거면 영화를 많이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그해 봄의 불확실성>의 첫 페이지부터 위에 인용한 문장들이 나오길래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하면서 안도했다. 


중고등학생 때에는 절대적으로 콘텐츠가 귀하기도 했고, 용돈도 충분하지 않아서 비디오를 빌리면 최소 두 번을 봤고, 책을 사도 최소 두 번을 읽었고, 영화 잡지의 광고 글자까지 전부 다 읽었다. 극장에서 본 영화가 비디오로 나오면 또 빌려봤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기억을 많이 하고 있는데, 요즘은 영화를 보면서도 책을 읽으면서도 실시간으로 까먹는 것 같다. 구매한 책들 중에서 아예 시작도 안 했거나 읽다가 중단한 책도 많고. 심각하다 진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열풍이라서 며칠 전에 영화를 봤다. 모든 것을 3배속 한 듯했다. 영화가 진공 압축팩에 들어가 있는 겨울 패딩 점퍼 같이 느껴졌다. 잘 만들었다 아니다 그런 걸 떠나서 99분이라는 시간 속에 너무 많은 것이 들어있어서 다 소화하기 힘들었달까. 30분이라는 시간 제한이 있는 20코스짜리 미슐랭 요리를 먹어야 하는 듯한. 이렇게 만들어야 세계 1등을 하는 거구나 깨달음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케데헌>보다 더 재미있었던 것은 작곡자 이재의 서사였다. '와, 사람이 저렇게도 성공을 할 수 있구나.' 이재에게 작곡을 처음 권한 사람이 신사동 호랭이라고 했다. 신사동 호랭이가 만든 노래를 들으면 이제는 슬프고, 나는 아직도 이선균이 나오는 영화를 보지 못하고 있다. 어제도 <끝까지 간다>가 다시 보고 싶어서 용기를 내어서 재생했다가 첫 장면부터 이선균 등장, 30초를 못 버티고 껐다. (한국에서는 윤석열, 김건희처럼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수치심도 없는 인간들만 생존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윤 씨 그 자는 자신의 온몸에 자기 똥 처바르는 퍼포먼스로 정신병동에서 여생을 보낼 거라고 나는 200% 확신한다. 똥을 몸에 바르는 건 약한가? 그렇다면 교도관이 보는 앞에서 자기 똥을 먹을지도.)


20년 전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들이 말을 하는 속도가 느리다' '말투가 부드럽다'라고 생각했다. 말의 속도가 느리고 말투가 부드러워서 귀가 편했달까. 맵고 짠 음식이 혀에 거슬리는 것처럼 음향+대사+등장인물의 움직임+배경 등등이 너무 압축적으로 한 장면(몇 초 사이)에 너무 많이 들어있는 걸 보면 숨이 찬다, 갑갑하다 그런 느낌을 받는다. 영화 <F1 더 무비>를 보면 너무 갑갑한 것이다. 처음에는 브래드 피트가 헬맷을 쓰고 있어서 볼살이 짓눌린 장면 때문에 내 마음이 갑갑했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밀도가 지나치게 높은 영상을 155분 동안 보는 게 갑갑했던 것이다. 


영화 <봄밤>에서 주인공 한예리는 김수영의 봄밤을 읊는다. 그 장면이 진짜 좋았다. 나중에 팟캐스트 필름클럽에서 임수정이 같은 시를 낭송하는데 진짜 좋았다. 와 이게 배우의 힘이구나 싶었다. 아무튼 겸사겸사 요즘 내 최애 시인의 최애 시를 외우고 있다. <추운 계절의 시작을 믿어보자> 이제 겨우 한 바닥 외웠지만, 반복해서 외울 때와 그냥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갈 때의 감상(느낌)은 정말 다르다. 또한 아직은 암기할 수 있는 나의 두뇌에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소설 10편 읽는 거보다 시 한 편 외우는 게 감상의 깊이가 넓고 깊지 않나 싶기도 하고. 


콘텐츠 과잉의 시대에 여백이 많은 시집 속의 시를 암기하는 것으로 뇌의 간헐적 단식을 하는 중. 유튜브와 인스타그랩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현대인의 몸과 정신 건강의 많은 부분이 해결될 거라고 200% 확신한다. 유튜브도 거의 안 보고, 인스타도 안 하는 내가 그것들의 해악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겠지만, 영화 <시네마 천국> 속 1950년대 전후의 초딩이들은 담배의 해악을 알지 못했기에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처럼, 요즘 사람들도 그것의 해악을 알지 못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스마트 폰 속의 영상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매우 위태로워 보인다. 


ps. 시를 외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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