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 모든 책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게 공표되었을 때 사람들이 받은 첫 느낌은 엄청난 행복감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는 어떤 보물의 주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육각형 진열실에 가면 그 어떤 개인적 문제나 세계 보편적 문제에 대한 명쾌한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중략)

<변론서들>은 존재한다(나는 미래의 사람들, 실제로 존재하게 될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두 권의 책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변론서>를 찾아나선 사람들은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 또는 그 책의 불충실한 해적판들이나마 찾을 수 있는 확률이 <영>이라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중략)

당연히 이 터무니없는 희망 뒤에는 엄청난 절망이 뒤따른다. 어떤 육각형의 어떤 책장에는 틀림없이 진귀한 책들이 감추어져 있겠지만 그것들을 손에 넣을 수 없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만들었다.


<바벨의 도서관 / 보르헤스 전진 2 픽션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민음사> 


스마트폰의 앱 속에 담긴 정보들이 내 머리속에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마다 '아, 보르헤스는 천재였다'는 생각과 함께 <바벨의 도서관>을 떠올리곤 한다.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무슨 영화를 좋아하냐고 질문한다.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은 발열과 소음을 동반한 채 하드를 미치듯이 돌리는 10년 된 컴퓨터처럼 작동한다. 본 영화가 너무 많고, 애초에 괜찮을 것 같은 영화들만 골라서 보기 때문에 대체로 다 좋은 영화들이라서 금방 대답하기가 힘든 것이다. 내가 극장에서 본 영화들을 역순으로 복귀해보지만(현재 수감 중인 내란 주요 임무 종사자인 특전사령관 곽종근이 비상계엄의 밤에 했던 일을 복귀하여 자수서를 써가듯)생각이 안 날 때가 많아서 영화의 전당 앱을 열어 예매 리스트를 찾곤 한다.


무슨 영화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있게 지금 미리 답안을 작성해 둔다.

답안 : 단편적인 영화 제목보다는 좋아하는 감독, 배우별로 답하는 게 효과적이다. 우선 국외는 에릭 로메르(<녹색광선> 등), 켈리 라이카트(<퍼스트 카우> 등), 올리비에 아사야스(<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 등, 데이빗 핀처(<조디악> 등), 미아 한센-러브(<다가오는 것들> 등), 코언 형제(<시리어스맨> 등), 쿠엔틴 타란티노(<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 등), 짐 자무쉬(<데드 돈 다이> 등), 리처드 링클레이터(<비포 선라이즈>등), 드니 빌뇌브(<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 등), 알리체 로르와커(<행복한 라짜로> 등) 더 많지만 일단 생각나는 건 여기까지.

국내는 봉준호, 봉준호,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어 뭐 또 ..이경미(<비밀은 없다>, <미스 홍당무>)..그리고 또..황정민? 박정민? 아 차차 황정민은 배우잖아! 그러니까 황정민의 대다수 영화들. 박정민의 대다수 영화들. 국내는 감독보다는 배우 위주다. 

최근(약 10년 전부터) 보고 또 보고 계속 보고 명절처럼 보는 영화들을 추려보자면 <토니 에드만>, <리버 로드>, <도그빌>, <모비딕>(김민희 보려고), <클레어의 카메라>(홍상수는 싫지만 김민희 존예!!), <어느 멋진 아침>, <로맨틱 홀리데이>, <틱틱붐>(넷플릭스 앤드루 가필드 주연)


책이나 소설가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즉시 생각이 났는데 요즘은 로딩 시간이 필요하고 점점 그 시간이 길어진다. 어...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는 국내는 박완서, 권여선, 김사과, 김영하, 장강명...음... 또... 해방기 소설가는 염상섭, 채만식, 김유정, 이광수, 백석(시인), 국외은 미셸 우엘벡, 에밀 아자르 또... 일단 외국 소설가 중에서 모든 작품을 다 가지고 있는 건 미셸 우엘벡과 에밀 아자르뿐이라서 여기까지만.


음악(가장 관심이 없는 장르)으로 가면 환장 그 자체다. 나는 음악 스트리밍 앱을 메뚜기 하기에 멜론, 유튜브 뮤직, 지니, 바이브를 그때그때 할인과 결합상품에 따라서 옮겨 다니는데, 옮길 때마다 직전에 사용했던 앱의 보관함 리스트를 업데이트하는 게 귀찮아서 요즘은 업데이트는 안 하고 자력으로 생각을 해내서 항상 검색해서 음악을 듣는다. 보관함을 보지 않고 내 두뇌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가수나 앨범, ost가 별로 없다는 사실에 늘 충격을 받는다. 백과사전식 지식 암기가 하대 받는 시대, 창의력이 칭송받는 무한 데이터 정보 AI 시대 속에서 나의 두뇌가 텅 빈 듯한 느낌이 들 때마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이 생각난다. 너무나 방대하기에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무한=0이라는 아이러니!


하지만 내란 우두머리 윤 씨 탄핵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국정원 1차장 홍장원을 보면서 다시금 기억(력)의 중요성과 위대함을 깨닫는다!!! 검색해 보면 알 수 있고, 스마트폰을 열어보면 알 수 있는(특히 메모장, 사진앨범) 사소한 것들을 기억하는 것에 두뇌를 쓰지 않는 것은 어쩌면 두뇌 스트레칭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 아닐까? 내 머릿속에 든 기억은 거의 없고, 기억은 휴대폰 속에만 있는 거라면 그것을 기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며칠 전 데이빗 린치(데이빗 핀처 아니고!!)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린치 작고 기념 특별상영)을 보면서 제대로 된 기억을 하지 못하면 이 영화의 전반부처럼 허상(또는 망상) 속에서 살다가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주인공 배티가 윤 씨 부부처럼 여겨졌다. 윤 씨 부부의 엔딩도 '다이안' 같길!!! 


전자책은 나에겐 바벨의 도서관처럼 거대하게 여겨진다. 조금 전에 알라딘 장바구니에 새로 출시된 크레마를 담았다. 구매하지는 않을 듯. 나는 아직은 전자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바벨의 도서관>을 인용하기 위해서 내 등 뒤에 있는 책장에서 <픽션들>을 꺼내 인덱스를 붙인 페이지들 중에서 해당 문장을 찾아서 타이핑했다. 책의 첫 페이지(흰 종이)에는 내가 이 책을 구입한 날짜가 적혀 있다. 2007년 6월 21일. 이런 아날로그적인 행위를 전자책의 어떤 기능이 대신할 수 있을까? 대신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내가 느끼는 감정을 많이 다를 것이다.


남동생은 매일 증가하는 딸의 동영상과 사진으로 인해서 아이클라우드 용량을 계속해서 늘이고 있다. 반대로 나는 팔만대장경판을 새기는 장인의 심정으로 조카의 사진들을 고르고, 삭제하고, 외장 하드로 옮기고, 현상하고, 포토 앨범 만들고, 또 어떤 건 액장에 넣어서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둔다. 그렇기에 남동생은 자신의 딸의 사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고, 나는 조카의 사진에 대한 기억이 많다. 


시간이 갈수록 외우고 있는 것, 기억하고 있는 정보들이 줄어들고 있다. 이 현상에 대한 나의 문제의식이 크지 않다는 것이 슬프다. 어제의 일, 지난주의 일들을 나는 기억하지 못하고 대신 폰이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 재난처럼 여겨지는 오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 내란 free, 윤 씨 free

지난 1월에 극장에서 본 영화는 단 2편. 

OTT도 구독하는 게 없어서 집에서 본 영화는 0편.

삼체 3도 완독 하지 못했고.

도대체 난 뭘 했나?

뭘 했긴. 

윤 씨 내란 관련 뉴스, 유튜브, 팟캐스트 보고 들었지.

이런 피폐한 생활을 작년 12월 4일부터 두 달 넘게 이어가던 중

어제서야 내란 free, 윤 씨 free한 시간을 보냈다.


무얼 했느냐.

우선 조조할인으로 <리얼 페인>을 봄.

그 다음엔 샤넬에서 커스텀주얼리 팔찌와 귀걸이 세트 삼.

(맥북에어 15 m3을 살까 고민했으나. 결국 샤넬.)

다시 극장으로 가서 <브루탈리스트> 봄.

마지막으로 <쇼잉 업> 보고 귀가.

어제 하루를 <브루탈리스트>의 라즐로 식으로 평하면 어글리(추함)가 전혀 없는 하루라고 할 수 있다. 

어제 하루를 <브루탈리스트>의 해리슨 식으로 평하면 지능이 더 좋아진 하루.

진짜 오랜만에 추한 것(윤 씨)이 없는 아름다운 것들로만 가득한 하루를 보냈더니 

머리 속이 10년 된 구형 맥북에서 최신형 맥북이 된 듯했다.

모든 정보들이 머리 속에 쏙쏙 들어와 박혔다, 설렜다, 마치 첫 장거리 해외 배낭여행처럼!


2) 각자의 사치

나의 샤넬에 대해서

전자제품이 가장 좋은 가성비라고 주장하는 남동생은 맥북15 m3이 훨씬 좋았을 거라고 했고,

(1월 내내 애플 공홈 장바구니에 각종 맥북을 넣고 저울질 함)

감가가 발생하는 것에는 돈을 쓰지 않는 여동생은 보석보다는 골드바가 좋은데라고 했다.

이에 대해서 남동생에겐 내 맥북프로(2015년) 아직 멀쩡하다고 답했고

여동생에겐 골드바는 어떻게 몸에 달고 다니냐고 물어봤다.


나의 사넬에 대해 토를 다는 나의 이촌들의 사치를 따져보면,

남동생은 이젠 타지도 않는 수 천만 원 대의 자전거를 소유중이며

여동생 남편은 M호텔 vip를 매년 갱신 중이다.


내 말은 사람마다 각자의 사치의 영역이 있다는 것이고

인간은 사치없이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인데

어찌하여 나의 샤넬만 이렇게 하대받느냐 하는 것이다.

금도 아닌 기타금속으로 만들어진 가짜를 왜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사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그러니까 구입한다고 답하고 싶다.

고생해서 번 돈을 쓸모없는 것에 낭비하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돈돈 거리면서, 자산 자산, 재테크 재테크 하면서 살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 인간이 싫으니까.


3) 각자의 윤리

여행과 과도한 레저(운동)에 대해서 이 시대의 사람들은 너무나 관대하다.

이것은 작년 아카데미(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이어서 올해도 유대인 관련 영화(리얼 페인, 브루탈리스트)가 아카데미 후보에 있는 것과 같다(또한 언론이 국힘에 관대한 것과 같다). 특히 <브루탈리스트>에서 나를 굉장히 불편하게 한 인물은 '조피아'이다. 조피아의 예루살룸 행과 조피아의 마지막 연설..하... 내가 가자지구 주민이라면 이 장면 보고 이 영화에 거대한 증오를 품었을 것이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영화는 이렇게나 차고 넘치는데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학살에 대한 영화는... 없다.


4) 각자의 인권

국가인권위가 내란수괴 윤 씨의 인권을 지켜야 한다 어쩐다 하는 걸 보고 생각난 화재 사건이 있다. 2010년 해운대 마린시티 금색주상복합건물(우신골든스위트)에 불이 났다. 해운대구는 이재민에게 인근 이재민숙소(체육관이던가)를 제공했다. 하지만 우신골든스위트 주민들은 호텔 또는 지인의 집(아마도 게스트 하우스가 있는 아파트에 사는)에 가서 숙박했다고 함. 그 누구도 이재민 수용 체육관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이 당시에 인권위가 '사람이 어떻게 체육관에서 자냐, 호텔 숙박권 내놔라, 체육관에서 숙박하는 건 인권 침해다.' 라고 해운대구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고 생각해보라.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이 웃긴 짓거리를 지금 인권위가 하고 있는 것!!! 

윤 씨도 지금 그러고 있지 않나? 국가가 제공하는 인권의 마지노선을 넘은 특혜를 받고 있지 않나? 아무리 우리 집에 불이 났기로서니 내가 어떻게 체육관에서 자나? 내 돈으로 호텔 갈란다 하는 행위와 내가 아무리 구속 중이지만 난 현직 대통령인데 내 권력으로 경호받고, 메이크 업 받을 란다하는 게... 유사하게 느껴졌다. 난 부잔데, 난 권력자인데, 내가 어찌 그런 하급 대우를 받을 수 있나! 내가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인데!! 에휴... 그걸 다 들어주는 주변 인간들은 또 뭔지...(그나마 화재 이재민들은 자기 돈으로 해결했으니 정당하다지만.. 윤 씨 너는 내란수괴인데? 구속 상태인데?)


법정에 나올 때마다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해서 메이크 업, 헤어 업, 드레스 업하는 걸 보면서 넥플릭스 드라마 <애나 만들기>가 생각났다. <애나 만들기>의 실제 인물 애나 델비는 법정에 나갈 때마다 스타일리스틀 고용해서 전략적으로 의상을 입고 등장함! 미국에는 <애나 만들기>, 한국에는 <윤 씨 만들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북유럽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멀고도 먼 감정적인 거리는 어려서 형성되기 시작해서 날마다 강화된다. 누구에게도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는 문화에서 자라는 것, 상상해본 적 있는가? '어떻게 지내니?'하는 일상적인 인사도 아주 개인적인 질문이어서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문화 말이다. 나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를 무슨 일이 있어도 다란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 훈련을 받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문제는 그 사람이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절대 입에 올리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고 배우는 문화 말이다. 완전히 고립된 공간에서 식량을 비롯한 자원이 점점 고갈되어가는 길고도 어두운 겨울을 지나면서, 불필요하게 서로를 죽이는 일을 피하기 위해 침묵을 지켜야 했던 바이킹의 생존 전략이 흔적인지도 모른다.

<랩걸 / 호프 자런>



주변 사람들의 대소사가 전혀 궁금하지 않다.

그래서 마땅히 물어야 안부들 마저도 묻지 않게 된다. 

묻지 않게 되는 안부에는 1) 지금 물어보지 않아도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에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 2) 굳이 내가 몰라도 되는 사소한 것들 3) 알아도 몰라도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들(오히려 모르는 것이 더 이득이 경우가 많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너에 대해서 손톱만큼도, 눈곱만큼도, 치석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태도가 사회생활(가족 내, 직장 내 등등)에서 도움이 되어서 더 안물안궁하게 된다. 어떤 도움이냐 하면, 일반적인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인사치레(감사와 답례 등)를 나는 매우 하기 귀찮아하는데, 남들에게 '원래 주변의 대소사에 관심이 없는 자'로 인식되고 나면 남들이 나에 대해서 기대하는 바가 전혀 없게 되어서 편하다, 매우 편하다. 당연히 나 또한 남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다. 남들에게 바라는 것이 많으면 어떻게 되느냐? 야당 놈들이 나에게 손뼉 쳐 주지 않는다고, 나를 환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삐져서 계엄을 저지르는 내란수괴가 된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를 좋아해 주고, 내 말을 잘 들어야 해. 내가 원하는 건 다 들어줘야 해.'라는 세 살 아이 같은 태도를 환갑 넘은 노친네가 하고 있다는 게, 그런 놈이 대통령이었다는 게 가소롭기만 할 뿐. 이 세상에는 '나만은 특별 우대'해달라는 인간들이 어찌나 많은지. 나는 그 모두를 공평하게 무시해 준다. 특별 우대는 소비금액에 따라 고객등급을 촘촘히 나누고 있는 백화점에 가서나 해달라고 하시라고요.


나는 나에 대해서, 나의 대소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거의 안 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의 길고 긴 대소사를 듣고 있는 것이 고역이기 때문이다. 헌재 판사들은 윤 씨와 윤 씨 변호인들의 개소리를 어찌 다 듣고 있는 것일까... 나는 <분노의 포도>의 톰 조드(주인공)가 출소하고 걸어서 고향집으로 가던 중 거북이를 발견하고는 '저 거북이를 잡아가서 동생들에게 선물로 줘야지.' 하는 장면에서의 길고 긴 풍경 묘사, 거북이의 느린 걸음을 묘사하는 페이지를 전혀 지루하게 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눈앞의 흥미롭지 않은 실제 인간의 TMI는 정말 견딜 수가 없고, 말 그대로 머릿속이 '멍'해진다. 내용의 절반 이상은 정치 윤리 철학에 대한 빅토르 위고의 위대한 랩이었던 소설 <레 미제라블>(혜원세계문학 상 권 532쪽, 중 권 550쪽, 하 권 536쪽, 대략 삼체 시리즈와 맞먹는 페이지 수이며 글자 폰트는 더 작기 때문에 글자 수는 삼체 보다 많으리라) 도 한 글자도 빠짐없이 재미있게 읽었던 나인데, 내 눈 앞의 개성도 모험도 없는 사람(인원???)의 TMI는 정말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역지사지로 나의 TMI도 나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 남들에게는 듣기 싫은 정치인의 성명 발표와 같겠지 하는 생각에서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TMI를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남들에게 내 얘기 좀 들어봐 식의 TMI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이렇게 일기를 쓰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기를 쓰고 나면 어딘가 대나무숲을 찾아가서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이 해소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낭만주의가 진짜 위험한 이유는 자기 스스로를 예술가의 범주에 속한다고 여기게끔 착각하게 만들고, 그것이 어쩔 수 없는 법칙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행복에 대한 갈망을 갖는 것,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대한 비애가 있는 것, 삶과 행위에 대한 의욕이 부족한 것. 이런 것들이 마치 천재나 재능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한 기준인 것처럼, 이런 욕구를 느끼거나, 이런 비애를 가지거나, 이런 의욕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즉각 예술가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잘난 개인은 스스로가 이러한 갈망, 이러한 고통, 이러한 좌절이 모두 자신의 운명이 이끄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러한 좌절은 암묵적으로 위대한 깨우침을 위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낭만주의와 개인주의 / 이명의 탄생 /페르난두 페소아>


 <오지은 임이랑의 무슨얘기> ep 46에서 임이랑이 말하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전혀 와닿지 않는다. '불안해서 수전을 닦는다고? 수전은 당연히 닦아야 하는 거잖아.' 다이소에서 물때 제거 전용 스펀지가 파는 이유가 뭔가. 위에 인용한 글을 떠올리며(요즘 <이명의 탄생>을 읽고 있다)오지은의 우울과 임이랑의 불안은 예술을 하는 사람의 기본 스펙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불안이 싫다. 내가 불안해하는 것이 싫다. 그래서 내가 불안해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 예를 들면 자동차 오일칸이 60% 일 때 주유를 해서 90%로 만들어 둔다거나 갑자기 목돈을 써야 할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입출금 통장 잔고는 1000만 원 내외로 유지하는 것(예적금 일부 해약 같은 제도도 있지만, 왠지 싫다), 나는 건강 문제가 있고 그로 인해 불안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모닝홈트와 양배추를 토템으로 모시고 있다. 불안해하면서 불안한 상황 속에 나를 방치하는 것은 있을 수 없이다. 불안한 상황, 불안정한 상태가 싫기 때문에 나는 투자(재테크)도 일절 하지 않는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우울과 불안을 거름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우울과 불안을 껴안은 예술가가 될래? 머리가 베개에 닿으면 자는 생활인이 될래?라고 한다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생활인을 택할 것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요가 매트를 깔고 모닝홈트 10분을 하고 양배추와 렌틸콩 샐러드를 아침 식사로 먹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은, 오히려 하지 않으면 고등어구이 먹고 나서 양치질하지 않은 찝찝한 기분이 드는 생활인이 나 인 것이다. 


내가 쓴 글이 인기가 없으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하는 류의 걱정으로 인해서 발생한 불면과 우울과 불안을 줄이고자 우울증 약을 처방받고 상담을 받으러 다니는 것이 예술가의 숙명이라면 입시 경쟁 속에서 고등학교 3년을 보낸 뒤 내가 한 선택처럼 난 그냥 생활인으로 사는 걸 택하겠다. 고등학교 3년은 나를 상대평가, 등수 같은 것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는 삶을 지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성취지향적인 사람들은 늘 변두리를 선택하는 나를 패배주의자의 전형이라고 한심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한국의 일반적 직장인이 겪는 전형적인 번뇌(승진과 퇴사, 내 집 마련 등 준거집단 속에서 경제적 우위에 위치하는 것)가 전혀 없는 내 생활이 만 배는 더 지혜롭다고 장담한다.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기도 싫고, 약점을 잡히기도 싫다. 타인의 인정, 타인의 평판, 인기 같은 것이 내 수입을 결정하게 되는 상황도 싫다. 그래서 나는 기본적으로 타인의 평가는 0점에 수렴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소설 읽기를 좋아하고,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해서 작가가 되면 어떨까(feat. 회사도 다니기 싫었고) 하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맥북을 구매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세상에 내놓을 글을 쓰고 있지 않고, 이젠 쓸 생각조차 없고, 내가 나에게 바라는 것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 즉 세상 모든 부모들이 자신의 낳은 아기가 0세일 때 바라는 것과 같다.


p.s.

영화 <살인의 추억>의 명대사 송강호가 박해일에 하는 말 "너 밥은 먹고 다니냐?"를 패러디해서 

성취지향적인 삶을 사는 속물들에게 "너 잠은 제대로 자냐?"라고 묻고 싶다.

요즘은 특히 권한대행 최 씨에게 묻고 싶다. 내란수괴 윤 씨는 금치산자 정도로 뇌가 박살 난 거 같아서 잘 먹고 잘 쳐 잘 거 같은데, 권한대행 최는 아직 일말의 수치는 있는 듯하여 분명 수면체 처방받았을 거라고 장담한다. 정화조 속의 똥덩어리보다 못한 놈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여행하면 할수록 더 넓게 여행하게 된다. 카스카이스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느끼는 피로는 마치 그 짧은 시간 동안 네다섯 개 나라의 시골과 같은 도시 풍경들을 모두 지나가며 받는 피로와 같다.

지나치는 모든 집들, 오두막집, 하얗게 회칠한 고요한 외딴집 - 이 모든 집들이 그 순간에는 마치 처음에는 살아 있는 것처럼 행복하게 느껴지다가, 곧 지루해지고 나중에는 피곤하게 느껴진다. 저 집들은 이제 생각에서 내버려두고 그곳에 살았던 그 시대에 대한 깊은 그리움이 몰려오는 것이다. 이렇듯 나의 모든 여행은 커다란 기쁨, 지독한 권태, 셀 수 없이 많은 가짜 그리움의 즐겁고도 고통스러운 수집인 것이다. 

<여행하면 할수록 더 넓게 여행하게 된다 / 이명의 탄생 / 페르난두 페소아>


점점 더 여행이 싫어진다. 이번 연휴에도 공항에 몰린 여행객 관련 뉴스를 보면서 '여행이 그렇게 좋은가?' 하는 생각을 했고, 팟캐스트 오지은 임이랑의 무슨얘기 ep42. 연말결산 에피소드에서도 오지은과 임이랑은 어찌 저리도 여행을 좋아할까 하는 의문이 많이 들었다.


그러던 중 위에 인용한 글을 읽고, 내가 왜 여행에서 지루함을 느끼는지 알게 되었다. 또한 왜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지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여행을 지루하게 여기는 이유는 매일매일 나 자신을 변주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었다. 매일 나 자신을 변주한다는 것의 구체적인 의미는 옷, 액세서리(특히 귀걸이. 귀걸이는 작긴 하지만 작은 만큼 또 분실의 위험이 크고, 분실의 위험이 있기에 명심하고 짐을 싸려고 하다 보면 정신 에너지가 많이 사용됨), 가방, 신발의 변화를 의미한다. 나는 일상이라는 반복 속에서 소소하게 의생활의 변화를 추구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인데, 여행에서는 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만큼의 변화를 주기 위한 여행짐(옷, 가방, 액세서리)을 짊어지고 다닐 여력이 이젠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조카를 보러 서울에 다녀왔다. 짐을 줄이기 위해서 갈아입을 양말, 속옷만 챙겼다. 나흘을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귀걸이를 끼고, 같은 가방을 들고, 같은 신발을 신었더니 매일 새로운 장소에 가고, 서울에만 있는 맛집들을 두루 갔는데도 불구하고 그날이 그날 같고 지루했다. 이제 막 돌이 지난 귀여운 조카와 함께 였는데도 불구하고 지루했다. 


낯선 것, 새로운 것이 설레임이나 호기심으로 다가오기 보단 새롭지만 어떤 면에서는 전혀 새롭지 않은 것을 것이 분명한(돌고도는 유행처럼, 쉐이크쉑은 신선했지만 파이브 가이즈는 전혀 새롭지 않게 여겨졌던 것처럼) 경험들. 그런 경험들에 굳이 시간, 체력, 돈을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점점 커지기에 국내든 국외든 여행에 대해 시큰둥해지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