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모르는 누군가가 커튼을 걷는 뒷모습을 보는 게 좋았을까, 왜 냉장고에 있는 채소를 대충 썰어 넣은 수트가 그렇게 맛있어 보였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미지근한 물도, 청소도, 목욕도, 스트레칭도, 그릇 정리도, 전부 주문이었다. 그리고 결계였다. 오늘 나의 하루가 조금이라도 단단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외우는 주문이자, 나의 쉼터가 더 포근해지기를 바라며 만드는 작은 결계.
일상은 얼마나 떠내려가기 쉬운가. 무난하고 평범한 하루를 보내기는 얼마나 힘든가.
<마음이 하는 일 / 오지은>
새해부터 많이 아팠다. 몇 주 전 일요일 극심한 복통으로 인해 119 구급차에 실려 인근 응급실에 갔다. 복통으로 인해 입고 있던 내복 상의가 다 젖을 정도로 엄청난 식은땀을 흘렸다. 배꼽 아래의 배 부위가 뭐라 말할 수 없이 끔찍하게 아팠고, 아랫배 전체가 퉁퉁 부어있었다. 그 부분을 스치기만 해도 벗겨진 살갗에 무언가 닿는 기분이 들었다. 응급실은 고요했다. 침상의 절반 정도에만 응급환자가 있었고, 다들 차분하게 누워서 수액을 맞고 있었다. 머리숱이 별로 없고 야윈 다소 지쳐 보이는 남의사(50대로 추정)는 내 증상을 듣고 배의 부은 상태를 보더니 장염이라고 했다. 나는 제발 복통만 좀 없애달라고 애원했다. 수액을 맞고, 하루치 약이 든 약봉투를 받아 들고 집에 왔다. 나중에 안 사실은 응급실은 하루치 처방만 가능하다고 했다(다음날 방문한 약국의 약사 왈).
다음날, 출근을 할 수 없을 정도의 복통은 여전했다. 미음 한 숟가락을 목구멍으로 넘기자마자 아랫배가 전율하면서 견디기 힘든 복통을 유발했고 나는 당장 변기로 기어가서 먹은 것도 없는데 무언가를 쏟아냈다. 같은 병원에 가서 응급의가 아닌 내과 전문의 진료를 받고 또다시 수액을 맞고 5일 치의 약이 든 약봉투를 들고 집으로 왔다. 약을 먹기 위해서라도 미음을 먹었는데 이번에는 두 숟가락을 넘기자 같은 강도의 끔찍한 복통이 생겼다. 굶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엄마는 무작정 굶으면 안 된다고 입원을 권했지만, 항생제에 절여지고 싶지 않아서 굶으면서 버텼다. 연속 네 끼를 거른 후 먹은 미음은 꿀맛이었다. 탄수화물이, 쌀이 이렇게 달았나 싶었다. 아직도 그 첫 미음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현대인에겐 금기인 탄수화물을 사랑하게 되었다. 5일 치의 약을 다 먹은 후에도 낫지 않아서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아직도 낫지 않는 걸 보면 세균성 장염 같다고 하면서 5일 치의 약을 더 처방해 주었다. 그렇게 딱 2주를 약간의 쌀죽과 삶은 감자와 구운 바나나로 연명하면서 말그대로 쉬었다. 복통이 다시 심해지면 하루 종일 굶기를 반복하면서. 그 결과 인생 최저 몸무게를 갱신하고 있는 중이다... 아까운 내 살들... 다시 찔 수 있겠지만 쉽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안다...
주기적인 복통(장이 심각하게 부어 있어서 아랫배가 엄청나게 부풀어 있었다)과 간헐적인 설사에 시달리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있었다. 하루 종일 굶을 때는 팟캐스트를 듣거나 유튜브에서 일상 브이로그를 볼 에너지조차도 없어서 그저 눈을 감고 선잠에 들다 깨기를 반복했다. 내 몸의 모든 기력은 장속의 세균을 죽이는 것에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날의 미밴드 측정 수면 시간은 14~15시간. 죽과 미음 사이의 어떤 것을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유튜브에서 발견한 작은 시골집 일상 브이로그. 구독자 120만 명의 이 유튜버가 만 7년 동안 만든 동영상 128개를 다 봐 버렸다. 영상의 구성은 이렇다. 요리, 텃밭 채소 키우기와 수확, 사계절 시골 풍경, 고양이. 이 영상을 모니터 표면이 얼룩덜룩 엉망인 10년 된 맥북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발열을 해소하기 위해서 아이스팩을 맥북 아래에 요령껏 받쳐 두고서. 진작에 맥북을 샀더라면 아팠을 때 더 편하고 선명하게 시골 브이로그를 봤을 텐데... 기력이 없어도 너무 없었기 때문에 아프기 전에 보던 <모범택시3>을 이어서 볼 수도 없었다. 통증을 망각하기 위해서 범죄 수사물을 보는 것도 어느 정도 기력이 있을 때라야 가능하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렇게 2주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쉬었다. 말 그대로 공백의 시간을 보냈다. 책은 당연히 못 읽고 넷플릭스에서 영화라도 봤다면 좋았겠지만 그 정도의 생산성(??)을 만들 기력조차 없었던 것이다. 요리하고 고양이랑 놀고 텃밭 채소 수확하는 정도의 정보값이 0에 가까운 영상 정도나 볼 수 있었다. 반 평생을 살면서 이렇게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낸 것은 처음이었다.
죽 정도는 먹을 수 있고, 복통도 줄어들고, 복통이 있더라도 참을 만해져서, 설사도 없어지고, 부은 장도 제자리를 찾아서 아랫배도 원래 대로 홀쭉해졌다. 즉 출근을 해도 될 정도로 회복했고, 출근이라는 일상을 되찾고 싶어서 도시락(죽)을 챙겨서 출근을 했다. 힘이 없어서 모닝 홈트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화장하고, 무엇보다 드립 커피도 마시고!!! 운전을 하고 회사에 가서 일을 했더니 마냥 집에 누워 있을 때보다 기력이 더 생기는 것 같았다. 아직 다 나은 것은 아니지만 거의 다 나은 것 같다.
장염 22일째... 그동안 내가 먹은 항생제는 내 장의 유익균도 모조리 다 죽여버렸겠지... 이걸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지만 그래도 회복한 것에 감사해야지.
보온병에 들어 있던 하루 지난 페퍼민트 차를 마신 것이 세균성 장염의 원인 같았다. 그 몇 모금의 실수가 지옥행 복통을 유발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억울하기도 하고. 어째서 몸이라는 것은 이런 끔찍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걸까. 복통이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제일 많이 한 생각은 '지금 당장 AI가 되고 싶다!!'였다. 이런 비루한 몸 따위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고 싶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고통=몸이 없는 AI는 얼마나 좋을까, AI가 되어서 무한의 시공간 속에서 책과 영화를 학습하고 싶다!!!!! 는 생각을 간절히 했다. 이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나는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편해진 인간이 되기보다는 나 자신이 AI가 되어서 인류의 지식을 즐기다가 소멸하고 싶다. 이것이 내가 이번의 지옥행 복통을 체험하면서 얻은 결론이다.
보름 넘게 하지 않은 저녁 홈트(스쿼트 동작이 많음)를 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앓는 동안 안 그래도 부실한 허벅지는 더 부실해져 있었다. 거의 매일 저녁 홈트를 할 때는 힘들지 않았던 연속 스쿼트들이었는데, 내 허벅지가 지구를 들어 올리는 지렛대처럼 여겨질 정도로 힘들었다. 후들후들. 후들후들. 그래도 존버정신으로 끝까지 했다. 예상했던 대로 다음날 하루 종일 엄청난 근육통에 시달렸다. 이것이 내 몸의 열악한 스펙이다. 보름 정도 앓아누우면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스펙. 다시금 'AI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타올랐다. 허벅지 힘(근육)은 언제쯤 원상 복구될까...
AI가 되고 싶지만, 나는 몸(복통, 통증, 고통 그 자체)을 가진 인간인지라 먹어야 하고(아직도 두 끼 정도는 죽을 먹어야 하지만), 운동도 해야 하고(스쿼트가 너무 힘들지만), 노동이라는 미션 수행이 주는 쾌감(아드레날린과 도파민) 속에서 활력을 얻어야 하기에 나만의 작은 결계를 만드는 행위(모닝 루틴: 홈트, 드립커피, 화장, 액세서리, 출근 운전 그리고 내란 이후엔 화장을 하면서 듣고 보는 실시간 뉴스공장)를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떠내려 가기 쉬운, 부서지기 쉬운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 매일의 소소한 루틴을 수행하는 것에 많은 시간과 체력을 써야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이러니 인간이 AI와 경쟁이 될 수가 없는 것.
비효율이 없는 AI가 되고 싶다!!!
인생 첫 장염을 이렇게 지독하게 앓다니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너무 억울해서 어떻게든 이 복통에서 깨달음을 찾아내려고 필사적으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다. 이 일기도 이런 이유로 쓰고 있는 것. 그건 아마도 내가 몸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 먹고 자고 운동하고 일하고 하는 일상이 최선이라는 것, 내 생애에 수행해야 하는 미션은 이것이 유일무이하다는 것. 딴 맘먹지 말고 현재 가진 일상이나마 잘 지켜내라는 것. 그것 아니었을까 싶다.
살면서 장염으로 병원에 간 적은 처음이다. 처음엔 2~3일 정도만 고생하면 회복할 줄 알았다. 2~3일 정도 고생하고 자연 치유하는 건 피지컬이 좋은 사람이나 가능한 것이고 나 같은 약골은 아프면 기본 4주 진단인 것이다. 몸이 낫지 않아서 진단서 연장하면서 한 달을 병가 낸 게 벌써 몇 번인가 ㅠ 사람들은 쉴 수 있어서 좋겠다고 하지만 약골인 내 입장에서는 회복력 좋아서 며칠만 쉬고 출근할 수 있는 사람들의 체력이 부러울 뿐이다. 내가 출퇴근하는 쳇바퀴 같은 일상을 긍정하게 된 것도 몸이 회복하지 않아서 긴 병가를 몇 번 사용해 본 후부터였다. 쉰다=아프다 동의어가 되면서부터 출근=건강하다가 되었던 것. 내 직업을 긍정하게 된 것도 아플 때는 충분히 쉴 수 있어서가 가장 큰 이유다(가장 큰 복지!).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하향지원하지 말걸 그랬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내가 하향지원을 했던 이유는 '공부하다가 죽을지도 몰라'하는 공포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내 능력치의 60~70%만 사용해도 평균 이상은 할 것 같은 길을 택했다. 때론 그게 바보 같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내 상태를 보면 내 능력치의 100%를 사용하는 진로를 택했다면 난 이미 죽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든다. 과거의 나는 50살까지만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존버했는데, 요즘은 조금 더 오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한 인공지능의 시대를 체험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더 이상 노동하는 인간이 없는 시대, 자본주의가 자연소멸한 시대를 체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육체를 버리고 인간도 인공지능이 될 수 있는 기술력이 도래하 시대를 체험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 자신이 인공지능이 되어서 인류의 지적 유산을 다 이해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체력과 건강 상태가 정신력 혹은 지적 능력 발현의 전제조건이 아닌 존재가 되고 싶다!!!
열흘 정도 시달렸던 끔찍한 복통과 기아에 가까운 단식과 절식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 그 차체였다. 왜 병든 닭이 꾸벅꾸벅 조는지도 알게 되었다. 기력이 없으니 계속 자거나 선잠을 자기만 하는 것이다. 며칠 연속 14~15시간 정도 잔다는 게 건강한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몸을 긍정하는 사람은 뱃속의 장기를 모조리 다 없애버리고 싶을 정도의 끔찍한 복통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복통, 누군가 창자와 위를 걸레 짜듯이 쥐어짜는 듯한 복통, 누군가 내 아랫배 아마도 대장에 손가락 1개를 넣고 죽이 눌어붙지 않게 천천히 주걱으로 젓듯이 내 대장 속을 젓는 듯한 통증(이게 제일 불쾌하다, 참을 만은 하지만 정말 불쾌함), 십 여 개의 장침으로 창자를 인정사정없이 찌르는 듯한 느낌의 복통, 뭔지 모르지만 장이 뒤틀리는 느낌, 피부가 벗겨진 생살이 어딘가에 스치듯이 베이는 듯한 느낌의 복통. 그 모든 기괴한 복통은 매우 견디기 힘들고, 숨조차 쉬어지지 않고, 한기가 들면서, 식은땀은 샤워하듯 흐른다. 옷을 벗듯이 이 몸뚱이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간절한 바람 속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119 버튼을 누른다. "배가 너무 아파요, 죽을 거 같아요."라고 애원하게 된다.
몸을 긍정하는 당신이라면 내가 위에서 말한 복통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