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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ㅣ 범우 세계 문예 신서 3
헤르만 헤세 지음, 홍경호 옮김 / 범우사 / 1999년 12월
평점 :
품절
지난 여름, 엄두가 나지 않았던 먼 여행을 좋은 이웃을 둔 덕에 다녀올수 있었습니다. 휴가기간을 함께 보내자는 강청?에 못이기는 척, 함께 나이애가라폭포로 향했던거죠. 어릴적부터 사진이나 브라운관을 통해 나이애가라를 보면서 일생에 한번은 보아야 할것 같았던 장엄함. 그것을 직접 경험한다는 생각에 하루를 넘기며 달리는 자동차속에서도 피곤을 잊을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폭포보다 더 잊을수 없는 시간을 가지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폭포가까이에 위치한 <나비> 박물관... 그저 박제된 나비들의 전시관인줄 알았거든요, 첨엔. 그런데.. 아담하게 꾸며진 정원 나무들속에서.. 색색깔의 고운 나비들이 끝없이 날아오르는게 아니겠어요?
그때 불현듯 떠오른 책이 헤르만 헤세의 <나비>였습니다. 왜그렇게 이 하챦은 존재들에 매료가 되었나 책을 읽으면서 내내 궁금했었습니다. 물론 헤르만 헤세가 풍기는 고운 문학적 향흥과 함께 책장책장마다 예쁘게 인쇄된 가지가지 나비들이 마음을 설레이게는 했지만. 그런데 앞에서 옆에서 위로 아래로 한꺼번에 팔랑거리며 쏟아지는 나비속에서야 그 황홀경에 동참할수 있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밋밋한 얘기를 요렇게 달짝지근하게 써놓다니. 그것도 몇가지 경험적인 에피소드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나비삼매경?에 빠지지 않으면 결코 묘사될수 없는 세밀한 필적과 함께. 진득하게 엮어가는 헤세의 다른 장편과는 달리, <나비>는 그분의 소박한 일면을 엿볼수 있어서 좋습니다. 인생을 들여다볼때와는 또다른 관찰로,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숨결로 한가닥씩 담아낸 <나비>는 문학이라기 보다 한폭의 그림처럼 <감상>되는 글입니다.
한가지 아쉬움. 언젠가 성지순례차 이스라엘 여정속에 느꼈던 갑갑함이 책속에서도 느껴졌습니다. 어쩜, 수많은 선인들의 발자취 발자취마다 기념관이니 성당이니 성상이니 향내나는 초들이니.. 역사속을 그대로 밟아보고 싶었기에 무척 실망했었습니다. 자연미라곤 하나도 남아있을수없도록 온갖 치장으로 도배되어버린 땅. 나이애가라 역시, 폭포의 경관을 자연속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잘 꾸며진 공원한켠에 거칠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서양사람들의 독특성일까요? 자연속에 잘 사는 동물들 서양으로 가져와 박제로 만들며 동물원 우리속에 가두어 <구경> 하는 습성. 연구관찰에 어떤 업적이 있는지는 몰라도 인공미로 치장해버린 자연속에서는 생명의 경외감을 맛볼수 없지않을까요? <나비>역시 헤세의 집요한 수집벽덕에 핀으로 꽂힌채 다시는 날수없는 나비들을 글로 접하게 됩니다. 내가 가져야, 내가 볼수있어야 한다는 인간의 이기가 마음껏 활개쳐야할 무수한 생명들을 묶어놓는 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더군요. 우정까지 무너뜨리면서.
서점에서 '어? 헤세의 몰랐던 책이 있네'싶어서 우연히 잡은 책. 휘리릭 넘겨보면서 '야~이쁘다, 소장용?으로 좋겠는걸--;;' 하면서 덜렁 사버렸습니다. 두고두고 한번씩 한토막씩 읽으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결국 감수성 고운 친구에게 생일선물로 비싼 책을 쏘고? 말았습니다. 헤세의 약간은 숨겨진듯한 글이라 더 선물하기 좋았던 것 같아요. 이뿐책 ~ 마음이 겨울같다고 느끼는 분들께 권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