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한 그림책에만 익숙해 있던 제게 존 버닝햄 님의 책들은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리다 만것 같은 인물소묘. 이해하기에 이른 탓도 있겠지만 두돐박이 아들녀석도 조금 뒤적거리다가 물러앉구요. 물론 개인적으로는 애니매이션같은 원색 찬란한 책보다는 고운 수채화같은 그림들을 더 선호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존 버닝햄 님의 책들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선상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특히 구름 나라는 첫 만남에서 실망이 무척 컸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진한 하늘 사진이 푸르고 담백한 색상을 원한 제 기대에 못미쳤었거든요. 그런데 하루 이틀 관심없는 아들녀석대신 제 손에 머문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 그만 책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았음직한 하늘나라에 대한 상상들. 그런 소박한 에피소드를 곱게 엮어놓았던걸요. 이야기속 아이들과 함께 천둥 번개속에서 요란한 악기도 연주하고 빗줄기들을 따라 다이빙도 하다가 어느새 무지개를 만났습니다. 무지개. 어린 시절, 언제나 <행복>과 <환상>이라는 두 단어속에 펼쳐졌던 무지개가 아닌가요? 미끄럼을 타거나 옷을 지어 입거나 하는 <익숙한> 패턴으로 생각은 이어졌는데.. 이런! 아이들이 하는 짓?좀 보세요. 물감과는 도저히 비교도 안될 빛의 색깔들.. 빛들을 붓에 흠뻑 묻히고 있네요!!그림 하나하나 스토리 라인 하나하나에 설명을 달지 않은 구성이 아주 돋보입니다. 오히려 말없이 단순하게 그린 아이들의 몸동작이 더 많은 상상과 재미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것 같아요. 작가도 그걸 원하지 않았을까요? 작가가 제공하는 글 틀을 애써 따라갈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래서인지 <구름 나라>는 다 읽었다 끝!하는 그림책이 아닌것 같아요. 안단테나 라르고 같은 음악속도처럼, 천천히 한장 한장을 흡수하듯 느끼는 것이 책맛을 더해줘요. 구름 나라를 다녀온 알버트를 이해해줄 사람이 있을까요? 창밖으로 구름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 주인공 알버트 뒤로 친구들이 웃으며 쑥덕거려요. 하지만 책을 덮는 저는 어느새 알버트의 친구가 되어 있네요. 알버트의 비밀을 알고 있으니까요. 혼자 구름 나라를 바라보고 있는 알버트에게서 동질성마저 느껴봅니다. 운동장에서 놀고있는 친구들 속에서 항상 '머리속으로' 놀고있던 제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어서 그런가봐요. 아니, 오히려 제가 친구를 얻은 것 같네요. 알버트 같은 멋진 친구를!제가 살고 있는 워싱턴 D.C.에서는 제퍼슨 대통령 기념관 앞이 최고의 노을을 즐길수 있는 장소랍니다. 기념관 돌계단에 앉아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뒷쪽으로 늘어선 단풍입은 나무들, 살짝 보이는 백악관과 고풍스런 건물들... 그 모든것을 한꺼번에 덮으며 내려앉는 노을빛을 보는 일은 말로 형언이 안되요. 세상에 어떤 조명이 그런 찬연한 빛깔을 만들수 있을까요? 달 사람이 오기전 내려앉은 노을빛속에 춤을 추고있는 알버트와 아이들을 보며 제 마음이 황홀해지는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이제 돌계간에 앉아 노을을 보면 아마 경치의 아름다움보다 노을 빛 속에 제 마음을 춤추게 할것 같아요... 가을이 지기전, 구름나라에 뛰어들수 있는 높은 산에나 올라볼까요? Shall we clim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