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뇌가 나를 움직인다 -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 정상적인 사람들, 그들을 갑자기 돌변하게 만드는 마음 속의 숨겨진 욕구 5가지
데이비드 와이너.길버트 헤프터 지음, 김경숙.민승남 옮김 / 사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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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처럼 내가 나를 이기려면(?) 나를 알아야 한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오늘도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끔은 이런 과학적인 접근의 책이 도움이 된다. 마음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고 그것은 지극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게 할 수 있게 함으로 아프거나 우울하지 않고 그저 담담히 나를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당신이 나약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뇌가 문제입니다."

 나는 아직 대부분의 문제들에 대해 확고한 내 자신의 의견을 갖고 있지 않다.

 언제나 나는 내가 나약하다 싶었다. 누군가 어떤 현상을 하나 가져와 그것에 대한 내 의견을 물을 때 그것에 확고한 내 자신의 의견을 내놓지 못함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오늘 이 책, 정확히 데이비드 와이너 님 덕분에 조금 마음을 놓는다. 고맙다.

 반복되는 문장들과 약간은 전문적인-그러나 과학문외한인 내가 읽어도 충분히 이해가 될만큼 쉽게 쓰여지긴 했다. 조금 지루하긴 하지만, 지루함조차 지은이는 살짝 미소짓게 하는 경고를 주기도 한다.-내용들이 자칫 책읽기를 힘들게 할지도 모르겠다.

결론 역시나 과학적이건(이성적이건) 비과학적인건(감성적이건) 나를 다스리는 방법들은 내 의지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너 더미(Inner Dummy-우리 안의 고집스런 바보)를 관리하기는 쉽지가 않다. 이너 더미의 왜곡된 관점들과 그로 인한 생각들과 행동들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일단 결심을 하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마음의 준비가 된다면 이너 더미가 이성적 관점들을 갖게 만드는 데 성공할 확률은 60퍼센트에서 80퍼센트는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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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1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
 
싸이코가 뜬다 - 제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권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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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책 중 일부가 입수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탓에 1주일 여 아무 것도 읽지 않고 보냈다. 몸이 근질근질했다. 시간이 남아돈 머리는 제 혼자 또 온갖 망상을 해대려했다. 무어라도 읽어야겠구나 책장을 쭉 훓어보다 2년만에 다시 집어들었다. 오랜만에 읽는다는 건 내용은 기억나나 문장은 새로워 빨리 읽히면서도 느낌은 새롭다는 게 이점이다.
 
'바빌론특급우편'과 '싸이코가 뜬다'를 읽은 주기가 촘밀해서인가 문득 '아! 내 성향이 이렇구나' 새로웠다. '정상', '상식', '일반'이 아닌 것들에 대한 관심.-어디선가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이 읽는 책을 보라'했던 게 생각난다. 가만 보면 나도 좀 편식(? 목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특이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
 
어쩌면 모두가 '정상/혹은 비정상'인지 모른다. '정상'의 기준이 다수가 행하는 것이라면 실은 다수가 관심있고 행하면서도 겉으로는, 타인에게는 아닌 척 하고 있을 뿐일지 누가 아는가말이다.
 
고등학교 때 사촌오빠로 부터 '사이코'라는 말을 들었다. 썩 유쾌한 단어가 아님에도 나는 왠지 그 단어가 기분 좋았다. ㅎㅎ 이미 그때부터 나는 사이코였나보다. 아니, 세상에 사이코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다 미쳤고 모두가 다 이상하다. 이상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종종 나의 이런 글들에 행동은 없고 머리만 있다는 친구들이 있다. 그래, 나는 어쩌면 갖은 게 많은 지도 모른다. 주류일 것이다. 나의 표면만 보는 이들에게 내가 비주류임을 눈치채게 할 만한 무엇도 나는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한동안은 미안했다. 그리고 불안했다. 그러나 그렇게는 살 수가 없었다. 그냥 생겨먹은대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나마 편하다. 그거면 됐다.
 
그럼에도 종종 이런 회의가 들기는 한다.
 
'난 어디서 왔고, 내가 있는 곳은 어디며,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그것은 인류의 학문 발전 방향과 흡사했다. 난 어려운 철학 책을 꽤나 읽은 사람처럼 그런 존재론적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개폼이 아닐 수 없다. 2차 대전 이후 시를 쓰는 건 사치라고 했던 한 사상가의 말이 생각났다. 이 모든 게 사치는 아닐까? 책은 딱딱한 껍질에 갇혀 민생을 보지 못하기 일쑨데, 혹은 뒷북만 치면서 마치 모든 것을 아는 양 으스대곤 하는데, 책이란 너무 오만한 사물 아냐? 나는 책의 오만함에 짜증을 내는 방식으로 자신의 오만을 희석시키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어차피 난 벼락치기 인생, 불멸의 벼락치기로 아직도 남아 있을 욕망을 소멸시킬 방법은 뭘까?
이제부터 할 일은 단 하나, 울트라 니폰 행성을 염탐하는 고독한 외계인으로 위장하는 것이다. 화끈하게 커밍아웃 해보자. 나는 대한민국의 변태*다!
 
*변:태(變態)[명사]
1. 모습이 변하는 일.  또는 그 변한 모습
2. 식물의 줄기·잎·뿌리 등이 보통과는 아주 다른 형태로 변하는 일.
3. [하다형 자동사] 동물이 알에서 부화하여 성체(成體)가 되기까지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하는 일, 탈바꿈.
4. '변태 성욕'의 준말.
5. 이상한 사람.
......
(내가 몇 번에 해당하는지는 가르쳐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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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최병수.김진송 지음 / 현실문화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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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을 보면 나는, 무엇을 먹고 사나... 하는 생각부터 든다. 평소 먹고 사는 데 크게 많은 것이 필요하진 않더라 말하고는 있지만 편히 누워 잠을 청할 집도, 밥을 해먹을 밥통도, 빨래를 돌릴 세탁기도, 음식을 넣어놓을 냉장고도 없어 보이는 그-물론, 설마 이 정도이기야 하겠나만은-, 고정적인 수입원이 없어보이는 그에게 살짝 불안감을 갖는, 자본주의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나를 느낀다.
 
이이가 정말 내 곁에 지인으로 있었다면 아마 나는 상당히 불편했을 것이다. 하루에도 마음이 수십번 파도를 타는 나는, 그것이 내 나름의 살아내고자 애쓰는 것이라 합리화시키고 있는 나는, 이이의 강단이 가시같았을 터이다. 고집불통이라 화를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이가 있어야 세상이 살 맛이 나는 세상이 되어가지 않겠나...
 
그니의 머리와 그니의 손끝, 그 재주가 무척 탐나고 부러웠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 재주가 내게 있었으면 나는 그니처럼 살지 못할 것이다 고백한다. 얄팍한 내 마음이 책을 읽는 내내 그니 편에 서 있지는 못했지만 세상에 정말 필요한 사람은 그니임을 인정한다.
 
명화를 보고도 그것이 왜 명화인지를 도통 모르겠던 나는-몇몇 명화는 제외하고- 명화를 이해해볼요량으로 명화이해에 도움을 주기 위해 출간된 책 하나를 샀다. 그러나 그 책은 내게 지루하기만 했다. 몇 페이지 읽고 덮고 몇 페이지 읽고 덮고 근 두달이 되도록 반도 못 읽었다. 그러다 그가 모나리자에 대해 말하는 대목에서 피식 웃으며 아에 그 책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그저 가끔 자료용으로 들춰나 봐야지.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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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 특급우편
방현희 지음 / 열림원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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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뜨거운 감자

'아무리 엽기가 판을 치는 세상이고 아무리 튀고 자극적인 것이어야만 주목을 받는 세상이라지만 이건 해도 너무 하지 않냐'고 말할 자가 있겠다.

 열기를 가누지 못하고 내달리던 수소인 그는 필연적으로 맨 처음 맞닥뜨린 암소를 덮쳤을 뿐이었다.(바빌론 특급우편 中)

 너는 여자? 아니, 남자? 아, 너는 사람. 여자이고 남자이며 할아버지이기도 한 너는 사람. (붉은 이마 여자 中)

 -이외에도 놀라게 할 내용들이지만 혹여 19금을 위해 공개된 문구들만 적는다.-

 아무리 작가 방현희님이 본인의 말 중에

 내게 비정상인은 정상인이 되고 정상인은 비정상인이 된다. 그러므로 내게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아무 소용이 없다. 비정상인인 주제에 허술하기까지 하면 내겐 금상첨화가 된다. 그들과 나는 아주 잘 교류할 수 있다.

 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것은 일반에서 벗어나도 한참은 벗어난 이야기들인 듯 하다.

본인은 지극히 정상(?)이며 일반인이라고 확고하게(?) 세뇌된 사람은 읽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그러나 사랑에 한번쯤 아파해 본 사람이라면,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며 몇 날 며칠을 술과 불면증으로 지새워본 사람이라면, 술인지 눈물인지 콧물인지 알 수 없는 진물에 절어본 사람이라면, 아니라고 안된다고 주문을 걸면서도 제멋대로 내달리는 마음을 아프게 직시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긋히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겠다.

후회하지 않으세요?

그가 마지막으로 대답했다.

사랑한 걸 설마 후회하겠어요?

(말해줘, 미란 中)


 

몇몇 작품의 문장들이 흡사 꿈처럼 느껴졌다.

도대체가 인과관계도 맞지 않고 말도 되지 않는 듯한 상황들이 꿈에서는 그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예를 들어 무협영화에서처럼 내가 하늘을 날듯 뛰어다닌다거나, 비행기를 탔는가했더니 화장실에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거나 해도 꿈에서는 그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듯이-  문장들 하나하나는 앞뒤 상호관계가 없어보이고 생뚱맞게 느껴지면서도 전반적인 상황들은 이해하며 읽어내려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으니까..(물론, 내 지적능력의 한계일수도 있다. ^^;;)

도덕과 윤리로 치장되어 있는 이 세상에서 벗어난 사랑, 그 사랑들이 상식적(?)-도대체 누구의 상식? 다수의 상식? 다수의 권력!-으로는 말도 되지 않는 일일지 모르나 누군가는 하고 있는 일이며 또 누군가는 이해하고 있는 일임을 작품은 온몸던져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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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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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선, 무척이나 힘들었음을 고백한다. 책을 구입한 일자가 4월 19일이었음에도 이제서야 겨우 한번 읽어냈을 뿐임을 고백한다. 지금이 6월 28일 0시 35분이니 두달이 훨씬 지나버렸군.
 
종종 끝까지 읽어내지 못하고 한쪽에 치워두게 되는 책들이 있다. 언젠가 그런 책들을 모아 한번 정리해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책도 거기에 낄 뻔 했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쌀한가마니의 쌀알을 세는 기분으로 끈덕지게 읽었다. 나를 힘들게 만드는 배수아님의 시니컬을 모르는 바 아니었고 그 점때문에 그녀의 책을 구입하게 된 것이니 스스로에 대한 배신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일요일의 스키야키식당'에서 그녀가 보여준 자발적 가난에 대한 시선은 내게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독학자'도 읽었고 새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망설임없이 구입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첫인상부터 왠지 만만치 않아 보였다. 보통 책의 1.5배는 족히 되어보이는 두툼함, 두께를 고려한 듯 약간은 얇은 거친 느낌의 종이, 첫인상의 느낌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7개의 단편들... 배수아, 그녀는 무척이나 시니컬하다.
 
매일매일은 쾌락을 위한 죽임의 향연이며 부유한 자들은 그 피와 살점의 더미 속으로 손가락을 넣어 가장 맛있고 연하며 건강에도 좋은 싱싱한 부위를 골라 찢어내어 입으로 가져간 다음 그 맛을 즐기면서 미소를 지었고 가난한 자들은 그 둘레에 모여들어 찌꺼기라도 얻기 위해 요란하게 헐떡거렸으며 행여나 운이 좋아 자기 몫의 한 점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부유한 자들을 흉내내어 같은 모양으로 입맛을 다시고 쩝쩝거리는 소리를 커다랗게 합장했다. 고통과 죽음, 그런 것 따위는, 자신의 것이 아니기만 하다면, 혀의 향락 앞에서 아무래도 좋은 것인 양 말이다. (회색 時 中)
 
모두들 합창하듯이 똑같은 모양으로 입을 벌리고 "난 말이야. 특별한 사람이니까" 하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훌 中) -훌에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모두가 훌이다. 공통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그들은 모두 자기가 특별한 사람이라 말하고 있다.-
 
그럴 만한 입장이나 자격이 아닐 때 남용되는 표현들은 불쾌함을 자아내는 무례한 행위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 불쾌와 무례가 비록 대상이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쓸쓸할 수 없고 P는 그를 향해서는 고독하다는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검열에 비추어볼 때 영역을 넘어서는 외람된 단어이기 때문이다. (시취 屍臭 中)
 
이렇듯 그녀의 시니컬함은 잘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힘이 들었다. 어쩌면 그녀는 그녀 스스로도 그녀가 지닌 이러한 시니컬을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우리는 각자 고독하게 늙어갔으며 차가운 천성 때문에 주변에 가까운 사람을 남겨두지 못했다. 아니, 우리는 지금 각자 혼자 있는 것이다. 혹은 우리들, 우리들 세 사람 중의 누군가 단 한 사람만이 이곳에 앉아 있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의 기억 속에서 우리의 의식이 노래하고 있으나 그것이 누구인지는 지금은 알 수 없으며 중요하지 않았다. 혹은 그렇지 않다면 이 식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비어 있는 빵 바구니와 바람의 영혼뿐이다. (회색 時 中)
 
본인도 잘 알고 있을 뿐더러 나도 일찌감치 눈치 챈 시니컬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또 그녀의 책을 드는 것은 무더운 여름 견딜 수 없는 갈증에 냉동실을 열어 꽁꽁 언 얼음하나를 입안으로 얼른 집어넣었는데 그 얼음이 혀에 딱 붙어 따닥 소리를 내며 혀를 갉아먹는 아픔을 주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 얼음을 입안에서 요리조리 살살 잘 구슬리면 사르르 녹아 혀도 놓아주고 더위와 갈증도 삭혀주는 것처럼 나는 배수아님의 시니컬함을 통해 내가 놓칠 수 있는 시각의 사각지대를 다시 한번 일깨운다. 혹여 내가 그런 모습은 아닌가. 혹여 내가 인간을 배려치 못하는 시니컬은 아닌가. 혹은 인간을 배려한다는 명목 하에 가려진 이들을 은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옳은 말이라 할지라도 독선과 아집이 가득 묻어나는 어투일 때면 우선 반항부터 하고 보는 심리, 그래서 난 이번 책 '훌'이 힘들었다. 인간에 대한 배려라고는 전혀 없는 시니컬 아니냐고 혼자 역정도 내어보았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 또 그녀의 글이 그리웠다. 나태해지고 적당히 타협해가는 내게 힘들면 그럴 수 있지 뭐, 괜찮아, 원래 다 그런거야. 따위의 달콤한 말들만 하던 적당히 친분있던 친구가 아닌 그딴식으로 살지마, 네가 하는 게 그렇지 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냐? 하고 매섭게 쏘아붙이면서도 결단코 내곁은 떠나지 않는 한 친구녀석처럼 배수아님의 글들에 상처입고 헤지면서도 끝까지 읽지 않고 외면한다는 것은 마음 편히 잊혀지는 일이 아니었기에 다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또 은근슬쩍 손을 뻗어 책을 펼친 것이다.
 
나만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이에게는 무릎 탁 치며 옳거니, 잘한다. 할런지도 모른다. 그녀는 세상에 일반보다 이반, 주류보다 비주류를 위한 글을 쓰고 있다고 보아지기 때문이다.
 
나는 완벽히 소외된 자였습니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사방에 무수히 많은, 그런 식으로 소외된 자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나는 그들처럼 그의 공간과 환호를 채우기 위해 징집된 존재였습니다. 내 탄생은 예술을 위한 징집이었을 뿐입니다.(양곤에서 온 편지 中)

 
어쨋거나 나는 힘든 여정을 끝마치고 한숨 돌린 기분이다. 그러나 한켠으로는 읽는 데 걸린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에 놓쳐버린 맥을 위해 한번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려면 단련이 좀 필요할 것 같다. 산정상을 향한 등산을 위해 조깅따위로 기초체력을 쌓는 것처럼...
이번 책이 유독 힘들었던 건 어쩌면 지금 내가 나태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매섭게 쏘아붙여주던 친구녀석도 멀리 떨어져 있으니 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글을 그나마 정리해보고자 문학평론가 김미정님의 글 일부를 따올까한다.
 
도플갱어 윤리학 혹은 어떤 구애의 형식
 
배수아의 '나'들은 애초에 타자로부터 무차별적으로 부여받은 보편성에 환원되지 않기 위해 갖가지 익숙한 정체성의 징표들을 버리고 '구별된 나'를 선언했다. 즉, 부당한 보편성이나 선험적 공통감각으로 환원되지 않는 단독성에 기반한 '나'를 재발견하기 위해 배수아의 소설은 여행을 계속해온 셈이다. 가족과 성(性)과 국적과 이름을 거부함으로써, 그리하여 원치 않는 규정과 정체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이들. 이때 자발적 고독은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역으로 그들을 가두는 동굴이 되기도 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이 고립과 고독은 일종의 심연을 경험케 한다. 이 어두운 심연은 돌파와 탈출의 극적 조건이다. 심연에서 '도약'은 비로소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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