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멘털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나는 막눈에 막귀에 막입이라 나 스스로를 말한다.
며칠 전 시에서 열리는 종합예술제에 갔다가 자주 얼굴을 본다며 알은 체를 해 오는 이에게 "이런 걸 좋아하거든요"라고 답했다. 그 사람은 "그러시면 함께 참여하시지요?"하고 제안했다. 나는 "재주는 없어서요"라고 답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내겐 다른 이의 작품을-영화든 연극이든 책이든 사진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평가할 재주는 없다. (물론 만들 재주는 더더욱 없다.)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보기를 읽기를 듣기를 좋아한다. 처음엔 재주없는 내가 조금 부끄럽고 싫었다. 막눈에 막귀에 막입이라는 말이 자조의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작가, 작품, 관객 이 세박자가 어우러질 때 작품이 작품다워지는 거 아니겠냐고 작품을 보아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작품이 더욱 빛나는 것 아니겠냐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내 몫에 충실하자고 나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이런 변명과 안전망을 약간 비겁하지만 바탕에 깔고) 나는 이 소설을 쓴 작가가 '천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 '센티멘탈'에는 총 4개의 단편들이 있다.
청수淸水, 다카세가와, 추억, 얼음 덩어리
그 중 추억과 얼음덩어리는 내겐 산뜻한 충격이었다.
옮긴이(양윤옥)의 말을 빌자면 "추억'은 한 걸음 더 들어가 대단히 파격적인 실험을 하고 있다. 시어들을 낱낱이 해체하여 단순히 여기저기에 흩어놓은 듯이 보이지만,-실로 이 부분에서 나는 당황했다. 페이지 하나에 적게는 3단어가 흩뿌려져있고 그러한 페이지가 무려 45페이지나 이어져있다.-실은 여기에도 공들인 트릭이 숨어 있으니, 마지막 페이지까지 눈치채지 못한 독자분께서는 다시 처음부터 꼼꼼히 살펴보아 꼭 발견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란다."라고 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발견의 기쁨을 누리지는 못했다. 그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수준이다. 누군가 발견의 기쁨을 내가 발견하기 전에 발견한다면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얼음덩어리'는 한 페이지를 두 단락으로 구분지어 소설이 적혀있다. 처음에는 왼쪽단락을 읽고 오른쪽 단락으로 넘어가면 되는 것인 줄 알고 그저 새로운 형태의 편집법이려니 했다. 그러나 양 단락의 이야기는 독자적인 것이었다. 다시 말해 동일한 사건을 지녔으나 왼쪽 단락은 A라는 주인공의 시선이고 오른쪽 단락은 B라는 주인공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나가고 있다. 왼쪽 단락만을 읽었을 땐 시간이 좀 걸리던 것이 오른쪽 단락을 읽을 땐 30분도 채 걸리지 않고 빨리 읽혔다. 우리가 어딘가를 찾아갈 때 갈 때는 오래걸리지만 올 때는 금방 오는 것처럼 이미 익숙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 전개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쨋거나 그런 단락 구분의 전개 역시 무척이나 새로웠고 재미있었다. 문득 '냉정과 열정사이'가 이런 식의 전개방식으로 쓰여진 책이였다면 훨씬 재미있었지 않았을 까, 훨씬 잘 읽혔지 않았을 까 싶었다.(더욱 놀라운 것은 중간 중간 두 이야기가 만나 한 문장을 이루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 두 주인공이 공유하게 되는 시간, 기억들)
 
나는 이 두 단편만으로도 이 작가가 '천재'라고 불리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뭐, 물론 다른 작가가 이미 사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내게는 처음이었으니까 ^^;;
 
이외에 청수淸水나 다카세가와도 내용면에서 우수했다.
 
개인적인 말알 두개
 
1. 소년은 어린애처럼 쉽게 흐트러지는 자신에게 실망했다. 그리고 그 사람 앞에서도 자신은 항상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다가 그 부주의한 독백을 서둘러 정정했다.
 
2. 그렇지만 기왕이면 작고한 사람의 작품과 눈싸움을 하는 것보다, 아직 그 재능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현역작가와 직접 교류하며 그 작품을 알리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책을 사들일 때 이와 비슷한 심정이다. 어떤 이들은 명작은 몇 십년 혹은 백여년전에 소설들이라며 칭송을 마다치 않지만 나는 나마저 그렇게 과거의 작가와 작품에 매달려 현재의 작가와 작품을 등한시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내 기준에서... 다독(多讀)을 하지 못하는 나로썬 과거의 책과 현재의 책 모두를 읽어내는 건 좀 버거웠거든 ^^;;)  물론 칭송받는 책들 역시나 팔려나가며 현재의 출판업자들에게 이익을 주겠지만 그러한 이익보다 중요한 이익을 창출해주고 지지해주며 지금 내가 나가야 할 바는 현재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거는 이들, 그리하여 그것으로 살아가는 이들, 그들의 재능 그것이 빛나고 인정받기를 더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사들인다고 꼭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 어쨋거나 오늘 이 땅에 선 우리가 바로 명작이며 역사가 아니겠는가)


'일본','일본인'이라는 것이 묘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월드컵을 응원하고 흥겨워하지 않으면 매국노나 되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 팽배한 당연함에 나도 모르게 세뇌당한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다른 외국 소설에 비하면 일본 소설이 잘 읽히며 이해하기도 쉽다. 아마도 정서가 비슷한 탓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소설과 우위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일본소설이 좀더 몽환적이라는 내 주관적인 고정관념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곤 (좀 더 몽환적이라는 것이 좀 더 우월하다는 뜻은 아닐테니까)

도 모르게 내면화되는 환경의 영향을 깨닫게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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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08-22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은, 마지막 두 페이지의 전체 문장을 바탕으로 단어를 뽑아내서 새로이 앞 글을 만들었다는 게 트릭인 것 같습니다. 앞 페이지들에 흩뿌려진 단어의 위치가 마지막 두 페이지와 정확히 겹치거든요.
히라노 게이치로의 다른 소설들을 읽어보셨는지? 제 경우엔 이 단편집이 가장 떨어진다는 판단입니다만.

흑비 2006-09-07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늦게 봤군요. 아무튼, 실은 다른 소설들은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평이 있더군요. 이 단편집이 가장 떨어진다는... 다른 소설들도 찬찬히 훑어볼 계획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