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남자 12종
조지프 W. 락.배리 L. 던컨 지음, 홍연미 옮김 / 이채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푸하하하~ 우선 한번 웃고 시작하자.
잠깐!
거기 웃지 못하고 인상쓰는 남자분. 너무 불편해마시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싸구려 욕설로 도배되어 있거나 부정적인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 말기를.(p.15)
 
남성들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책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이 책은 아니다. 이 책은 많은 남자들의 참모습이 어떤지를 이야기할 것이니까. (중략) 검열받지 않은 관점들은 거리에서 만나는 평범한 남자들에게도 추한 그림을 덧씌울 수 있다. 남자들을 있는 그대로 보라. 그렇게 되면 당신은 관계를 시작할 때 미리 충분한 경고를 받을 수 있고, 그에 따른 적절한 무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p.18)
 
문제가 많은 남자들을 묘사하고 이해하려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적절한 시작은 왜 그들이 그렇게 되었나를 진단하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진화와 유전적·문화적 요소, 어릴 적 성장한 가정의 분위기가 어떻게 그런 특질을 낳았으며, 우리 사회가 그 남자들로 하여금 변화하지 말도록 어떻게 부추기는지를 살펴본다. (p.30)
 
제2장 왜 나쁜 남자가 되었는가 / 유전자와 진화 / 심리적 영향력과 어린 시절의 훈련 / 문화적 기대치 / 여성의 적(敵)은 여성:그들을 조장하는 여자들 / 집단적 환상 - 세상 만물은 변화한다 / 남자다움, 지나치면 질병이다
 
당신 남자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미안하게도 또 금세 어쩌면 당신을 불편케 할 이야기들로 책은 전개된다.
 
제2부 어떤 남자를 피해야 할까에서는 보스/해결사/척척박사/트집쟁이/탁월한 위장꾼/카멜레온/돈 주앙/마마보이/영원한 틴에이저/오락가락 기회주의자/과묵남/냉혈한 의 나쁜 남자 12종을 분석, 알기쉽게 설명해준다. 뒤이어 제3부 나쁜 남자 조기 발견과 피하기에 바톤을 받아 제4부 나쁜 남자 대처법까지 만약 남자인 당신이 이 책을 읽을 때는 나쁜 남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외되어 있는 듯 불쾌한 감정이 솟구칠 지도 모르니 크게 숨 한번 들이쉬고 읽으라고 충고해주고 싶다.
 
그러나 당신뿐 아니라 내게도 이 책이 재미있진 않았다.
 
괜찮은 사내들과 사귀거나 같이 사는 여자들이 굳이 이런 책을 집어들 이유가 있겠는가? 이 책은 그렇게 운이 좋지 못한 당신을 위한 것(p.16)이라고 애초에 독자층을 지정해둔 채 쓴 것이라서인지 내게도 크게 감흥을 주진 못했다. 다만,
 
이제 남자들은 특정한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거나 특정한 행동을 하는 것이 자신들의 편견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편견 가득한 행동이나 대화는 지하로 침잠해 들어가고 대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겉치장을 하게 된다. 그 방법은 갈수록 더 교묘해지고 있다.(p.42)
 
라는 지은이의 말에 애초 동조하고 있었던 바 한번 살펴줄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뿐이다.
 
이미 임자기 있는 몸이라고? 더 이상 남자를 가려 대할 필요가 있겠냐고? 글쎄, 내가 이성애자 여자인 이상 남자는 끊임없는 내 연구대상이 아닐까 싶다.
 
각설하고, 이 책을 접하면서 생각했다. 왜 만날 여자들만 이런 책을 보는 것이지?
 
'애스홀(asshole)'형 남자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들은 대개 변화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만약 변화하고 싶어한다면 당신이 아닌 '남자'가 자기 관리서를 읽어야 하며, 정신과 상담을 요청하는 것도 그쪽이어야 하고, 친구나 가족들의 조언을 구하는 것도 남자여야 한다. 그런데 정작 그런 책을 읽고 상담실을 찾는 사람은 '제정신인'당신이다. 상처받는 것은 여자들이며, 지금의 상태에 대해 괴로워하는 것도 여자들이며, 결국 뭔가 변화를 꾀하는 것도 여자들이다. 당신이 지금의 상태가 편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 역시 그럴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지는 말기를, 설령 그가 당신 앞에서는 끙끙 신음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다. 정말 마음이 불편하다면 뭔가 방법을 모색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런 경우 이성적인 단 하나의 추정은 그가 지금의 상태에 나름대로는 만족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중략) 하지만 솔직히 상황을 인정한다면 당신은 한층 희망적이고 정확하며 도움이 되는 관점을 가질 수 있다. (p.24~25)
 
결국, '그들을 조장하는 여자들'이라는 말처럼 여자들에게도 일말의('일말의!'다) 책임이 있긴 하다. 그리고 한편으론 또 제 아무리 멋지고 괜찮고 정상적인(?) 남자라 하더라도 그 남자가 과연 내 짝이 될 수 있을만한 '나'인가를 확인함도 우리 여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초간편 '애스홀 선별 테스트'

1.조잡한 문신을 하고 있다.

2.당신보다도 많은 장신구를 주렁주렁 걸고 다닌다.

3.옷장 속의 옷들이 색깔이나 구입 날짜, 옷감에 따라 가지런히 정리 되어 있다.

4.뭐든 비치는 것이 보이면 자기 모습을 들여다본다. 거울, 자동차 미러, 심지어는 토스터기까지.

5.저녁 값을 내려고 할 때면 언제나 카드가 말을 듣지 않는다.

6.옛 애인이 무척 많았는데 그 여자들은 하나같이 '나쁜 년'들이었다.

7.처음 데이트에서 청혼을 한다.

8.차체보다 엔진이 커서 요란한 소리를 내는 차를 몰고 다닌다.

9.자기 성기에 별명을 붙여 주고 그 말을 입에 올린다.

10.이 책 제목(원서명)을 얘기했는데도 웃지 않았다.

 

아까 웃고 시작하자고 했는데 웃지 않았던 사람들 너무 걱정마시라. 10번에서 덜컥 극비도 걸렸다. 책을 읽고 있는데 쓱 처다보더니 "이것도 샀냐?"하고는 똥씹은 표정을 한다. 그러나

 

정상적인 남자는 자기가 변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을 때는 솔직히 인정하고 도움을 청한다. (p.133)니 곧 표정을 풀고 내용을 이해하며 솔직히 인정하는 정상적인 남자일테니까.

 

결국 그 승리는 당신과 그, 두 사람의 몫이 될 것이다.(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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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과 서른살은 열정의 온도가 다르다
박은몽 지음 / 다산북스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20대에, 아니 불과 3~4년전만에라도 이 책을 접했더라면 조금 이해가 힘들었을런지도 모른다.
아니 이해가 다 뭐냐, 오히려 대놓고 '풋내나는 20대'(p.31) '20대는 아직 어리다'(p.26)라고 말하는 작가에게 불쾌해하거나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도 100% 동의할 수는 없었으니...)
 
그러나 서른을 코앞에 둔 나는 이제 조금 알 듯도 하다.
서른, 드디어 인생의 본론이 시작되었음을(p.50)
인생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를 던지고 생각하던 시절은 지났고 '인생에 대해'가 아니라 '인생 속으로' 온몸을 밀고 들어가야 함을(p.47)
 
이 책에서는 서른에 접어드는 여성들에게 '열정'을 품을 것을 요구한다.
 
우리 가슴 속에는 '아직' 뜨겁게 넘실대는 열정이 충만하다. 아니 '오히려'충만하다.(p.66)
 
그것이 바로 서른의 삶이라 말하면서...
 
우리 앞에 놓여진 것은 아직 무수한 기회가 남아 있을 것 같은 20대의 삶도 아니고 이제는 주어진 삶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40대의 삶도 아니라, 바로 30대의 삶인 것이다.(p.64)
 
그러나 나는 굳이 '열정'이 아니어도 좋을 듯 하다. '열정'이든 '안정'이든 오히려 나는 이 책을 그저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의 나로 인정하고 받아안는 데 또 하나의 밑거름으로 삼는다.
 
정신은 제 혼자 달나라도 가고 화성도 간다. 20대의 나는 그 정신이 진실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 서른을 앞둔 나는 몸이 진실임을 안다.(우리 집 안방에 있는 내 몸, 어느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내 몸, 어느 학원 강사 앞에 있는 내 몸, 어딘가를 향하는 내 몸)
 
어쩌면 그저 흔하디 흔한 처세술같은 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엔 다 때가 있고 적절한 때를 잘 맞춰준 책은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 힘이 되어준다. 가끔은 말없이 건네는 술이나 그저 옆에 앉아만 있어 주는 친구로부터 큰 위안을 얻는 것처럼...
 
이제 더 이상 '부럽다'는 말을 남발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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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의 할 말 안할 말 - 대중문화의 예술을 찾아서
김정환 지음 / 열림원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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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진보, 좌파 그런 거창한 거 말고 시비쟁이쯤 되는 나는 이렇게 할말 안할말 시비거는 사람들의 말이 좋다. 내 보기엔 김정환님도 진보, 좌파 그런 거창한 거 말고 시비쟁이쯤 되시는 군요 해도 "그래?"하곤 말 분같다. 좋게 말하면 소탈하고 나쁘게 말하면 제 멋에 사느라 남의 말엔 크게 신경쓰지 않을 듯 보인다.
 
이 책은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같은 제목으로 연재되고 있는 글을 모은 것이란다. '대중문화의 예술을 찾아서'라는 부제아래 현재 활동하는 연예인 혹은 이슈가 되었던 연예인들과 실제 취중인터뷰 혹은 가상인터뷰 형식으로 쓰여진 글들에는 김정환님만의 언어적 효모가 첨가되어 맛있게 발효되어 있다.
 
전인권, 박진숙, 오기만, 오정해, 서갑숙, 홍세화, 임창재, 표민수, 채희완, 한국문학예술학교, 임옥상, 김혜경, 정재환, 유영표, 임영숙, 김태홍, 전경린, 문부식, 양동복, 최만수, 황수정, 주홍미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이다.
 
대중문화에서도 예술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딱히 재주가 없어 뭐라 내뱉지 못하고 있었던 사람에게(나처럼), 시비쟁이들의 소탈한 시비도 웃으며 들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물론, 한자리에 앉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엔 곤란할지도 모른다. 괜찮다. 어차피 각각 독립된 구조의 이야기들이니 맘 내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부터 읽어도 된다. 몇 사람 읽고 덮어두었다 심심하면 또 꺼내 읽어도 무방하다.
 
가끔 오징어를 잘근잘근 씹듯 대중문화도 잘근잘근 씹어보는 김정환님만의 어법에 카타르시스를 느껴보아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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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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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이 더 재미있는 영화가 있듯 평가글이 더 재미있는 소설도 있다.
 
(상략) 병이란 사람 몸에 피는 꽃 같은 것이었나봅니다. 산다는 게 죄다 그렇게 제 몸 안에 꽃피우는 일인가봅니다. 앓는 일이라는 게 이토록 아름다운 일이었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자기 몸에 꽃피우고 이 풍진 세상 건너가는 사람들 얘기 읽으며 저도 조금 병들었습니다. 치명적입니다.(하략) -김연수(소설가)
 
위 평가때문에 이 책을 집었다.
그러나
내내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내가 힘겨웠다. 책읽기가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인 내게 내 눈은 가려진채 다른 이의 눈으로 봐야 하는 세상은 곤욕이었다. 때때로 이렇게 내게 곤욕을 주는 책도 있다.
그러나
내 눈만이 세상에 전부가 아니듯 또 다른 눈이 세상엔 존재하는 것이라 위안한다. 이 소설의 눈으로 세상보기가 편안한 이, 혹 이 글을 본다면 부탁컨데 이 소설의 눈으로 세상보기를 불편해하고 곤욕스러워한 한 여인이 있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당신을 이해하려 노력했듯이...
 
 
『바자』2006년 3월호에 실린「배웅」
『문학동네』2003년 여름호에 실린「화장火裝」| 2004 이상문학상 수상작
『창작과비평』2005년 겨울호에 실린「항로표지航路標識」
『문학동네』2006년 봄호에 실린「뼈」
『현대문학』2005년 1호에 실린「고향의 그림자」
『문학동네』2005년 여름호에 실린「언니네 폐경」| 2005 황순원문학상 수상작
『문학동네』2004년 겨울호에 실린「머나먼 俗世」
『내일을여는작가』2006년 봄호에 실린「강산무진江山無盡」
 
 이렇게 여덟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중가요라 불리워지는 노래가 모든 연령대에 동일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인 내 동생이 부르는 노래와 내가 부르는 노래 그리고 나의 부모님이 부르는 노래들은 각자가 현재의 자신을 가장 잘 흡입하는 듯한 노래일 것이다.

소설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소설 자체의 결함이나 문제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감명받는 때가 다 있는 것이라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배웅」과「화장火裝」에서 풍기는 수컷의 냄새는 미안하지만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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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문학사
김종광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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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린지...
 
해외여행에 숙달된 우리나라 국민께 바치는 귀여운 똥침같은 것이라는「율려탐방기」,(제목에서도 눈치챘겠지만 허생전과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그 이상국가의 만남이 바로 율려국이다. ㅎㅎ) 탄광을 나와 진폐증으로 병상 생활을 하다 스러져간 허다한 광부 어르신들께 삼가 조의를 표한다는「낭만삼겹살」(제목이 깜찍하지 않은가?), 여전히 소를 키우며 농사를 짓고 계신 아버지가 준 30매의 원고를 10매도 못 되게 줄여 넣어 액자소설형태가 되었다는「김씨네 푸닥거리 약사」,본인을 모델 삼아, 본인이 겪은 그대로를 써도 이야기가 될 때가 있다는「단란주점 스타크래프트」,3S로 먹고사는 어느 국가를 대 혼란에 빠드리며 축구 월드컵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전 세계인에게 바치는 서정시라고 자부한다는 「절멸의 날」,한때 명성을 날리다가 한순간에 소멸된 어느 기업을 모델로 했다는 「쇠북공기전 망징패조편」,쓰레기(엽기) 더미를 제재로 풀뿌리 민주주의 시대의 지방정치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싶었다는 「조싼은 헤맨다」,문학의 본질, 문학을 한다는 것, 작가라는 존재, 독자의 정체, 작가와 독자를 매개하는 출판시장과 그 관계자들, 이러한 엄청난 문제들을 소설로써 탐구해보겠다는 각오로 기획했다는 「낙서문학사 창시자편」과 「낙서문학사 발흥자편」까지 2002년에서 2006년 사이에 쓰여졌다는 작가의 아홉 단편들이 묶여 나온 책이 바로 이 「낙서문학사」다.(각 단편들에 대한 짤막한 소개글은 작가의 말에서 직접 따왔다.)
 
낙서문학... 나는 오히려 이 소설이 어쩌면 낙서문학이고 낙서문학사를 쓰게 된다면 그 역사에 큰 획을 그을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임을 또 해야할 것 같다. 내가 즐겨쓰는 괄호안에 주절대기는 이 소설에서도 종종 볼 수 있어 반가웠다. 각설하고 낙서문학이라는 것이 이 소설에서는 자본의 논리, 사회적 형식의 틀 안에서 굴절되고 왜곡되는 사이비 문학의 또 다른 이름-최성실님 해설에서 빌려오다-으로 불려졌지만 여기서 내가 쓴 낙서문학은 기존문학의 도전장 같은 의미로 썼음을 밝혀둔다. 아래를 보면 내 의도가 확연해질 것이다.)
 
나는 문학이라는 게 영 사기판 같았거든요. 그의 낙서문학 때문이죠. 그가 낙서문학을 했을 당시에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가 죽고 한참 뒤에 모두들 그의 낙서문학을 떠받들고 있어요. 과거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쩐지 사기 같단 말입니다. 「낙서문학사 창시자편 中」
 
사기같은 문학판에서 도도한 고개 빳빳히 들고 이건 어쩔껀데? 하는 것만 같다. 이 소설
 
초지일관 우긴다고 해서 다 뭐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사풀이처럼 우겨서 되는 경우도 가끔은 있지요. 한국 문학사를 살펴보면 그런 일이 종종 있어요. 1960년 초반에 한 젊은 평론가가 어떤 소설가의 소설이 한국 문학을 혁신했다고 주장했을 때 문단의 반응이 어땠는 줄 알아요? 돌았다, 였어요. 그런데 어떻게 됐나요? 10년도 못 되어, 그 젊은 평론가의 말은 문단적 합의가 됐잖아요. 그 젊은 소설가는 한국 문학을 혁신한 최고의 소설가가 됐고요. 서른 갓 넘은 나이에 말이에요.「낙서문학사 창시자편 中」
 
우겨보자. 내 입맛에 안 맞다고 소설이 아닌 건 아니니까. 우겨보자. 그렇게 우겨대는 소설이 넘쳐나는 시대 아닌가.
 
우리한테 돈으로 문학했다고 욕하는 새끼들, 그 새끼들은 대체 얼마나 깨끗했다는 거야. 내가 보기엔 개나 소나 다 돈 보고 문학하던데, 왜 우리만 보고 지랄들을 했는지 이해가 안 가.「낙서문학사 발흥자편 中」
 
이 책을 읽으며 가수 이적이 썼다는 지문사냥꾼이 떠올랐다. 솔직히 말하면 책을 구입하거나 진득하니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다. (읽지도 않고 뭐라고 입을 떼는 것이니 그것이 마뜩치 않은 사람은 이 부분은 건너뛰길 요망한다.) 그러나 몇몇 그 소설의 지문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고 그 지문들은 내게 난해하기 그지없으며 무슨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린가.. 싶었다. 김종광님의 이번 소설에서도 몇몇 부분에서 나는 읽으면서도 이 무슨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린가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바로 '현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죽으라고 책은 읽지 않는 요즘 것-미안하다. 것이라고 해서. 그러나 너무 분노치마시라. 나 역시 것이다-들에게 장난삼아라도 읽으라 말하는... 그러나 정작 장난이 아니였음을 말하는 소설.
그리하여 이 소설은 바로 오늘의 소설이 아닐까 한다.
 
이적의 유명세(≒돈)만 김종광님에게도 있었다면(돈은 좀 있는 거 같긴 한데 잘은 모르겠다. 신문에 광고가 좀 크게 나는 거 보면 있는 것두 같고... 혹, 내막을 아시는 분 내가 내막도 모르고 주절댄다고 씹지마시고 조용히 좀 알려주시기를...) 지문사냥꾼의 난리법석 버금가게 법석 떨어대지 않았을까. 이 소설...
 
참,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풍자적이다. 풍자적 소설. 뭐라고 하지 마시길, 나는 전문가는 아니니깐. 또한 최성실님의 해설에서 빌자면 이야기적 성격이 강한 소설이다. 김종광 작가에 있어, 소설이란 언어를 향유하고 즐기면서, 서로 소통·교감하는 난장(亂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김종광은 이 난장을 실험할 수 있는 소통 전략으로, 발화로써 소설 텍스트의 가능성을 새롭게 열어가고 있다. - 최성실님의 해설 中
 
"너처럼 도망치는 것들이 살아남지. 또한 나처럼 교활한 작자들이 살아남지. 아무리 많이 죽어도 누군가는 생존하게 돼 있어. 그들 생존자들은, 다시금. 자신들을 스스로 지배하기 위한 체제를 만들 것이고. 자신들의 사상을 흐릴 언론을 만들겠지. 인간은, 자신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체제와 언론에 지배당하지 않고서는 불안해서 살 수 없는 족속이거든. 저 총성과 불꽃은, 또 다른 지배체제가 만들어지는 필연적인 과정일  뿐이야." 「절멸의 날 中」
 

난 문학을 모른다. 예전 센티멘탈의 감상문을 썼을 때도 잠깐 언급한 바가 있다. 그러나 블로그를 하면서 너무나 많은 글들을 접했다. 왠만한 글솜씨부터 고만고만한 글솜씨까지 본인 스스로는 한다하는 생각에 휘갈겨놓은 글들이려니... 물론, 나 역시 끄적이고 쓴다.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쓴다. 쓰고나면 마음이 편해지니 쓴다. 그러나 내 글을 문학이라고, 글 좀 쓴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가끔 아무 것도 모르는 내 눈에도 쓰레기처럼 넘쳐나는 글의 냄새에 숨이 막혔다. 그래서 나 역시 쓰기를 주저한 적도 있다. 그럴 때 눈에 들어온 책이다. 이 책... 사실은 그런 낙서같은 글들. 그것들에 대한 환멸에 몸서리칠 때 눈에 띈 제목에 손을 뻗은 책이다. 그러나 그런 얄팍한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이 역시나 담겨있다. 내가 모르는 문학세계에 대한 자책의 목소리같기도 하다. 내가 주제넘게 끼어드는 건 아닐런가 살짝 겁이 나기도 하지만

 '시는  시화호처럼 썩었고, 소설은 폭격 맞은 산처럼 황폐해졌고, 수필은 문학이기를 포기했고, 희곡은 연극의 노예가 되었고, 평론은 출판사의 애인이 되었습니다.'「낙서문학사 창시자편 中」

 그렇다면 바로잡을 힘이 있는 건 바로 나, 독자가 아닌가 한다.

 

하해(海)와 같은 마음은... 훗, 사실 나약해빠진 마음은... 생각한다.

 유희가 소설을 쓴다면 아마도 엽기적이고 기상천외할 것이다. 그러나 곧 마음을 바꾼다. 아주 오래전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후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출판된 후에,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게 소설이라면, 나도 그 정도는 쓸 수 있다.'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그 작품이 소설로 통용된다면, 누구나 그 정도는 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적어도, 그런 말을 한 사람 어느 누구도 소설을 쓰지 않았다. 아마 써야 할 필연성이 없었던 것이리라. 필연성이 없으면 - 가령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해도 - 아무도 소설 따위는 쓰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썼다. 그것은 역시 내 안에 그럴 만한 필연성이 존재했다는 뜻이리라.

박주영의 「백수생활백서」 中

애초에 낙서문학사를 집어들게 만들었던 내 마음은 사실 위 글에서 치유를 받았다. 그래, 필연성이 존재한다면 써야겠지. 그게 낙서든, 소설이든, 시든.... 써라. 그리고 그 다음은 읽어주마. 읽어줄만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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