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 - 도덕을 추구했던 경제학자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다카시마 젠야 지음, 김동환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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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택근무로 집에서 온 종일 지내게 되면서 뜻하지 않게 TV 시청이 잦아졌다. 어느 드라마 채널은 오래된 드라마들의 전편을 연이어 방영해 준다. 20여 년 전에 방영한 일일드라마를 보다가 고작 20년 만에 우리가 살아가는 양식이 이렇게 많이 바뀌었다는 걸 깨닫고는 적잖게 놀랐다. 삐삐, 구식 전화기(당시에는 분명 예쁜 디자인이었을 게 분명한), 고작 27살을 노처녀라고 부르는 사람들, 한복을 입고 식탁에 4대가 앉아 떡국을 먹는 모습. 20년이 아니라 한 세기 전인 것처럼 저 때가 아득하게 멀리 보였다. 겨우 20년도 이 정도의 거리로 체감되는데, 반 세기는 대체 얼마나 더 먼 걸까. 

 이 책이 일본에서 출간된 지 반 세기나 지난 책이라는 사실은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알았다. [도덕을 추구했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를 지은 다카시마 젠야 저자 역시 30년 전에 고인이 되신 분이다. 출간된 시간으로 치자면 이 책은 찍어 나온지 하도 오래되어 중고시장에서조차 자취를 찾을 수 없는 그런 책인 셈이다. 그런 책이 ‘보이지 않는 손’의 진의眞意를 알아야 한다며 부활하여 독자 앞에 섰다.

 

 

 

 ‘애덤 스미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경제학자와 자유방임이라는 두 가지 단어가 자동으로 연상되기 쉽다. 애덤 스미스가 저술한 [국부론]은 근대사회와 자본주의를 공부할 때에 가장 먼저 언급되는 18세기 저서들 중 하나다. 대충 여기까지만 알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걸 빌미로 무한 경쟁과 비열한 행태를 일삼는 현대 자본주의의 시원 격으로만 인식된다. 그가 [국부론]을 쓰기 전에 도덕, 정치, 법의 세계와 관련한 사회철학원리인 [도덕감정론]을 먼저 발표하여 일약 주목을 받았고, 그가 주창한 경제적 이기성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리公利의 원리 안에서 추구되어야 한다는 점은 웬만한 사람들에겐 생소할 것이다.

 

 

경제의 세계란 무법자의 세계도 아니며 내팽개쳐진 자유방임의 세계도 아니다. 스미스의 저술 어느 곳을 찾아봐도 자연적 자유나 자유경쟁이라는 말을 발견할 수는 있어도 자유방임이라는 말은 끝내 나오지 않는다.

104쪽

 

 자본주의의 뿌리이자 아버지라고 알려진 애덤 스미스의 진짜 목소리. 그것이 [도덕을 추구했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출간된 이유다.
 시간의 바다를 통과하여 애덤 스미스가 하고자 한 진짜 이야기를 건져 올리기 위해 다카시마 젠야 저자는 애덤 스미스가 살았던 시대를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18세기 영국 그리고 유럽의 정치 및 경제적 상황을 설명한 후 애덤 스미스가 자라고 공부하고 활동했던 시기를 간략하게 서술하면서 그가 쓴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사회적, 정서적 배경을 설명한다. 그리고는 애덤 스미스의 저서들을 근거로 그의 사상의 면면, 시민사회의 에토스와 로고스, 공감의 논리 등을 해설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부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풀어놓는다. 이후 ‘보이지 않는 손’의 진짜 의미, 근대화와 스미스, 스미스를 비판했던 시각들 등을 설명하고 애덤 스미스의 사상에 근거한 체제와 현대 등 저자 특유의 분석과 시각이 담긴 논설로 책을 마친다.

 

 물론 스미스는 이기심의 의의를 크게 강조했다. 또한 인간사회의 행복과 번영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교육, 문화의 제 방면에서 개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이 인정될 때 보다 잘 실현된다고 열심히 설파했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기심의 의의를 강조했다고 해서 그저 편협하게 이해타산만을 따지는 인간을 생각한 것은 아니며 또 그러한 인간을 모델로 상정한 것은 더욱 아니다.
7쪽
 
 이 책은 경제학자의 외연을 넘어 여태껏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사회철학자, 도덕철학자, 사상가, 법률가의 얼굴을 가진 애덤 스미스가 갈피를 잃고 방황하는 시장경제, 자본주의, 시민사회의 미래에 대해 적지않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현대판 고전이라 할 수 있다.
264 역자 후기 중에서

 

 

 이 책에 대한 감탄을 말하기 전에 먼저 <역자 후기>를 읽은 후에 느꼈던 동질감부터 써야 겠다. [도덕을 추구했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를 읽는 독자분들에게는 꼭 이 책의 맨 뒤에 역자 후기부터 읽고 이 책의 독서를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그렇게 분하고 안타까웠는지, 역자 후기를 읽고 난 다음에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실패했고 지금 전 세계는 그 실패의 여파를 온몸으로 앓고 있다. (실패한 당사자들-정치가들, 경제이론가들, 거대 자본가와 대형 금융회사-이 실패의 여파를 앓아야 하는데 왜 시장 참여자라는 이유로 이것을 개미들이 앓아야 하는지 정말 의문이다.) 조타수가 되어 방향을 돌릴 힘이 없다면 적어도 어떤 부분에서 실패했는지, 지난 100~200년 동안 신처럼 모셨던 자본주의 이론이 어디가 불완전한지는 알아야 밥이라도 넘기겠다. (그게 아니면 분해서 어쩌리...) 그런 분함의 살풀이를 이 책이 해주는 셈이다. 자본주의라는 나무를 배양한 그 토양에 실은 정의가 있었고, 윤리(에토스)와 논리(로고스)와 덕virtue이 있었다는, 역사 너머로부터 오는 쟁쟁한 애덤 스미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난 후에는 그 책으로부터 얻은 영감과 지식 덕분에 필연적으로 읽고 싶어지는 여러 개의 책들이 생긴다. 오늘은 [도덕감정론]을 찾아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것 하나 찾아 읽는다고 당장 오늘 내 경제사정에 어떤 호재가 생기진 않는다. 하지만 씨를 심을 때의 마음으로 책을 찾아간다. 흙 속에 씨를 심고 자라기를 기다리며 가꾸고 돌보았다가 나중에야 비로소 그 씨가 주는 응답을 얻듯이, 갈피를 잃고 방황하는 오늘날에, 어떤 신조를 가지고, 어떤 눈을 가지고 가야할지를 살피는 이때에, 한 사람이라도 더 이런 책을 읽고 ‘유덕한 경제인’의 길을 함께 걷는다면 간다면 애덤 스미스가 기대한 시민사회의 번영은 책이 아니라 현실에서 만날 수도 있으리라. 

이 책은 경제학자의 외연을 넘어 여태껏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사회철학자, 도덕철학자, 사상가, 법률가의 얼굴을 가진 애덤 스미스가 갈피를 잃고 방황하는 시장경제, 자본주의, 시민사회의 미래에 대해 적지않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현대판 고전이라 할 수 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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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 - 나의 삶이 너희들과 닮았다 한쪽 다리가 조금 ‘짧은’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한 ‘길고 긴 동행’, 그 놀라운 기적
황정미 지음 / 치읓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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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아이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과 동일시되는 6년의 특별한 경험이 우선인 것은 맞다. 그 아이들의 엄마 아빠, 즉 어른의 무게를 이해하는. 그래서 글을 쓰는 것도 맞다
 그런데,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과거를 비워내기도 했고, 그래서 아픔을 승화하고, 고개 숙인 아이들의 삶을 명료화하면서 아픔의 무게를 쪼개는 그 과정이 결국 나를 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91-292쪽 [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

 

 장애인으로, 여성으로, 가장으로 살아오기가 얼마나 고되었을까. 삶이 저마다의 무게만큼 고된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나, 몇 가지 유형의 삶의 무게를 한꺼번에 감당하게 될 때, 그런 생 아래 깔린 운명이란 대체 얼마나 버겁고 숨막힐지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를 쓴 황정미 저자는 30년 간 아이들의 과외 선생님으로 살아왔다. 2살 때 앓은 소아마비로 거동이 자유롭지 않은 다리를 가진 그녀는 평생 목발을 짚고 일어서거나 네 발로 기어야 했다. 저자가 성장기를 거쳤던 1970~80년에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개인적 인식은 무척이나 냉혹했다. 심지어 가족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수용되지 못한 그녀의 아픔은 다리만 짧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부모와 그녀 사이 사랑의 거리, 마음의 거리마저 짧았다는 문장에 함축되어 있다. 종교를 가지게 되고 그토록 신에게 의지하며 결핍과 절망, 자기혐오와 외로움으로부터 구원 받기를 바랐지만 그녀가 바라는 것은 쉽사리 오지 않았다.
 결혼 후 생계가 막막해지자 과외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저자는 그 이후 30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매진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아이들, 고개 숙인 아이들, 상처 받은 영혼을 꽁꽁 감추고 무표정이나 산만함이나 불안감이나 외설스런 욕으로 위장하고 그녀를 만나러 온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학교와 가정에서 늘 고개 숙이며 살아야했던 자신과 같은 표정의 아이들을 거울처럼 마주했을 때, 그녀는 외면할 수 없었다. 성적 향상과 학습 생활을 위해서라도 그녀는 아이들의 마음 속으로, 너덜너덜해진 아이들의 감정의 밑바닥으로 함께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심리를 공부하고 상담을 공부했다. 무엇보다도 한 아이, 한 아이에게 집중했다. 소리 내어 우는 법을 잊은 아이들의 눈물을 듣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아이들의 아픔을 발견했다. 이 책 [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는 그런 저자와 아이들의 솔직한 시간을 담은 심리 에세이다.

 

 

 이 책은 심리 분석이나 용어 설명을 목적으로 하는 이론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좀 더 우리 현실의 눈높이로 내려온 책이다. 사람의 영혼이 왜,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하여 상처 받는지 그리고 그 상처는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들고 그로 인하여 관계는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이 책 [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는 보여준다. 하지만 거기가 끝이 아니다. 저자는 실제 학생들과 그 학부모들과 나눈 대화와 상담, 그 사이에 진행된 일들을 상세히 기술하여 상처를 치유하는 개인과 가정이라는 결과를 수채화처럼 그려 보인다.

 

 

 이 책을 쓰기 위하여 저자는 상담을 녹음한 내용을 수없이 다시 듣고, 수년간 기록해온 자신의 과외 및 상담 기록들을 들추고 확인하며 원고를 다듬었다고 했다. 혹시라도 교사로서, 상담사로서의 자신 그리고 학생과 그 부모의 모습이 사실과 달리 왜곡되게 전달되지 않도록 기울인 세심한 노력이 [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 전반에 무척이나 잘 드러난다. 


 거기에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저자의 태도는 너무나 솔직하다. 꾸밈이 없다. 저자를 전혀 알지 못하는데도, 귓가에 저자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는 듯 저자는 자신이 실수했던 상황, 여전히 타인의 눈을 신경 쓰곤 했던 자신의 약함, 선생과 상담사라는 두 개의 페르소나를 쓰고 있으나 그 속에 상존하는 연약한 자신의 모습을 저자는 진솔하게 털어 놓는다.

 

 

 

 이미 책이 출간되어 나왔지만, 뒤늦게 이 책에 부제를 더한다면 ‘황제들의 치유기’라고 하고 싶다. 황정미(저자) 선생님의 제자를 약칭해서 ‘황제’라고 부르는 그녀의 제자들에게서 힌트를 얻었다. 이 책은 선생님과 그녀를 만난 제자들이 함께 치유되는 과정의 기록이다. 자기 상처가 너무나 아파서, 공기 같은 소리들에 스치기만 해도 바스러지는 영혼을 바싹 부둥켜 안은 채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치유되는 과정이다. 저자가 심리와 과외를 병행한 6년 동안 저자는 학생들의 상처 뿐 아니라 자신의 아픔 나아가 학부모들의 고통까지 들여다보았고, 그 내밀한 대화와 관계의 재건을 통하여 그들 대부분은 크거나 작게 ‘힐링’했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치유기라고 해야겠다. 젊은 시절의 뜨거운 신앙조차 그녀의 상처를 달래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 책에 쓴 간증에는 학생들이 성장하고 변화되는 과정을 통하여 그녀 역시 함께 성장하고 변화했음이, 그 모든 과정이 신이 그에게 선사한 길이었음이 잘 드러난다. 신성한 소명 의식과 절박한 치유기가 교차하는 책이라 이 책의 마지막을 읽었을 때 느껴지는 감동도 남다르다.

 

 저자는 앞으로 상담 카페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다리가 불편해서 거동 범위가 적기에, 언제든지 자신이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게 카페를 열고 내담자들을 기다릴 거라고 한다. 자기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아이들과 이미 다 자랐지만 여전히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어른이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저자의 아름다운 마음을 응원한다. 그녀가 새로 여는 상담 카페에 그녀와의 대화가 필요한 사람들이 꼭 찾아가게 되기를 기도한다. 

 

 

 

고개 숙인 아이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과 동일시되는 6년의 특별한 경험이 우선인 것은 맞다. 그 아이들의 엄마 아빠, 즉 어른의 무게를 이해하는. 그래서 글을 쓰는 것도 맞다
그런데,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과거를 비워내기도 했고, 그래서 아픔을 승화하고, 고개 숙인 아이들의 삶을 명료화하면서 아픔의 무게를 쪼개는 그 과정이 결국 나를 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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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사람 - 나의 모든 이유가 되어 준 당신들의 이야기
김달님 지음 / 어떤책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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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편이라는 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내가 아무렇게나 투정을 부리고 못난 얼굴로 칭얼거려도 받아주는 내 편은 내가 실수를 하고 사고를 쳐도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지탱해준다. 어디 가서 누구에게도 빚지기 싫어하는 야멸찬 내가, 주시면 주시는 대로 뭐든지 다 넙죽 받을 수 있는 것도 그 분들이 내 편이기 때문이다.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기대고 의지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나의 두 사람. 내가 여러 번의 실패와 자괴감의 진창에서 뒹굴지라도 끝내 불행해지지 않는 이유가 되어주는 내 편,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는 그것이 누구의 것이라도 개인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공공의 기록으로 확장된다. ‘아빠, 엄마’라고 적힌 글자가 눈동자에 들어오는 순간 우리 대부분은 막 지은 밥내음처럼 따듯한 그들의 얼굴을 떠올려버리는 법이니까.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그런 걸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릴 적에 수련회를 가면 마지막날 밤 꼭 캠프파이어라는 걸 했다. 운동장 가운데에 장작불 피워놓고 우리는 동그랗게 둘러 앉아 촛불을 하나씩 켠다. 그리곤 엄마 얼굴 아빠 얼굴 떠올려보는 것이다. 어느 한 아이가 엄마가 보고싶다며 고개를 떨구는 것으로 스타트를 끊으면 그 뒤로 릴레이하듯 아이들은 순식간에 눈물바람이 된다. “뒤에 계신 분은 제 어머니가 맞슴돠!”를 내지르는 군인 아저씨들의 <우정의 무대>를 우리는 초등학교 수련회 때 예행연습해보는 셈이다. 실제로 부모님 얼굴을 마주보면 서는 짜증을 부리거나 무뚝뚝하게 대꾸하는 주제에, 조용한 데에 홀로 앉아 부모님을 떠올리면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

 

 세상에 부모 심정 다 똑같다면, 세상에 자식 마음도 다 비슷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독립을 하고 그러면서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다가 문득 우리는 화들짝 놀란다. 나는 자라고 어른이 되고 성숙해지는 동안 부모님은 늙어가신다는 사실에 불에 데인 듯 정신이 들고 그제서야 가늠해본다. 부모님과 내가 함께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무심無心은 발이 빠르고 애틋함은 엉덩이가 무겁다. ‘부모님께 잘해야지’, 라는 생각은 자주 무뚝뚝함에게 선수를 빼앗기고 뒤늦게 부모님의 세월을 헤아리며 찾아오는 애틋함은 명치 깊은 곳에 눌러앉아 후회와 아쉬움과 그리움 같은 것들을 자꾸 피워 올린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가 상처를 준 것, 내가 그 상처에 대해 사과를 하기 전에 이미 용서를 받은 것. 이 두 가지 중에 무엇이 더 슬픈걸까.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내 부모라는 두 사람을 떠올릴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이유가 어느 쪽 때문인지 아마 나는 평생 모를 것 같다. 내 아이를 기르는 엄마가 되어 나를 닮은 아이에게서 내 부모의 얼굴을 보고 문득 울게 되는 시간을 통과한 후에 비로소 알게 되겠지, 싶다.

 

 

 

 김달님 작가는 1939년생 김홍무 씨, 1940년생 송희섭 씨의 손녀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모가 되기에는 너무 일러, 88년에 태어난 달님 씨는 조부모의 품에서 생을 시작했다.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 배를 타거나 공사장을 다니며 가정을 부양하는 할아버지. 세상에 자기 편이 없다고 생각했던 할머니에게 달님씨는 늦은 나이에 얻은 딸이자 든든한 자기 편이었고, 아들 딸이 모두 똑똑한 것이 평생의 자랑이었던 할아버지에게 그중에 제일 똑똑한 달님씨는 언젠가 꼭 글 쓰는 사람이 될, 제일 든든한 자식이었다.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부모님과 살았기에 추억과 고민, 불행과 행복도 여느 가정과는 조금 달랐다. [나의 두 사람]은 그 ‘조금’ 만큼의 다름에 채색된 봄나물, 제철 채소, 핫핑크 스웨터, 새 스포츠브라, 직접 지은 벽돌집의의 냄새가 난다. 자신과 조부모 사이에 놓인 50년을 조급해하던 김달님 작가는, 자신의 평생을 마련해준 늙은 부모님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

 

 

 돌이켜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상하게 그들 앞에선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자식이 된다. 그 두 마디를 제대로 전하지 못해서 굳이 긴 글을 적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렴풋하게 알 것 같다. 그들이 나의 사진을 남겨 주었던 것처럼, 어쩌면 그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나의 몫이라는 걸. 더 늦기 전에 말할 수 있어 다행이다.
 책 217쪽

 

 [나의 두 사람]은 경남 창원에서 사회적기업 공공미디어 ‘단잠’의 기획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달님 작가가 2017년 카카오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다. 이 글은 ‘브런치북 프로젝트’ 금상을 수상하고 책으로 나왔다.
 작가가 기억하는 어린 날의 시절,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처녀와 총각으로 만났던 오래전의 언젠가, 유년과 소녀 시절을 거치며 예민한 감수성으로 진통했던 그때와 저자가 독립한 이후 창원과 고향집에 차곡차곡 쌓인 애틋함과 그리움들이 에세이로 기록되어 잔잔히 펼쳐진다. 한 장 씩, 한 꼭지씩 넘어갈 때마다 가슴에 그 고향집의 노란 불빛이 환하게 밝아진다. 저자가 성장하는 동안과 마침내 어른이 된 후에도 고추장에 절인 장아찌처럼, 짠하고 구수한 사랑을 그치지 않는 두 사람의 온기 덕분이다.

 

 

 한 인간을 세상을 사랑할 줄 아는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시킨다는 건 위대한 일이다. 이 위대한 일은 그치지 않는 사랑 없이는 안 된다. 사랑이라는 작은 단어로 표현되는 서럽고 고된 밥벌이와 궂은 살림과 온갖 수고로움을 자기 몫으로 삼키는 존재들이 없이는 결코 이 위대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이 뭐 어디 멀리 있거나, 대단히 별건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먹었던 김치국밥 한 사발이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랑으로 충분하다. 


 슬프거나 때로 힘들 수는 있어도 결코 불행해지지 않는다. 형편이 어려워서, 서로의 속사정이 달라서 우리가 잠간은 슬퍼지기도 하고 즐겁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미, 서로가 서로에게 준 삶의 의미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의미는 우리가 함께 눕고 먹고 서로를 보면서 울고 웃었던 시간만큼 켜켜이 채워져, 그날이 그리운 어느 날 추억을 돌이킬 때 고향 벽돌집처럼 노란 전등을 밝히고 거기 있다.

 

 

  [나의 두 사람]은 참 좋은 에세이다. 늙은 부모를 간직하려는 자식의 애틋한 시선에 이끌리면 나 역시 전화를 하기 위해 휴대폰을 찾게 된다. 수련회날 마지막 밤의 그 장작불을, 별자리처럼 동그랗던 촛불을 여기다 피워놨네. 시간은 누구의 편도 아니라서 오늘도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또 하루가 간다, 다시 오지 않을 너머로. 세상 가장 든든한 내 편인 두 사람의 기록을 글로 남길 수 있는 건, 저자의 말처럼 다행이고 참 다행한 일이다. 이렇게 다행한 기록이 세상에 더 많아지면 좋겠다.

돌이켜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상하게 그들 앞에선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자식이 된다. 그 두 마디를 제대로 전하지 못해서 굳이 긴 글을 적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렴풋하게 알 것 같다. 그들이 나의 사진을 남겨 주었던 것처럼, 어쩌면 그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나의 몫이라는 걸. 더 늦기 전에 말할 수 있어 다행이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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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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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심리학]을 쓴 심리학자 데이비드 마이어스는 사람에겐 누구나 이기적 편향이 있다고 말한다. 이기적 편향이란 잠재적 편견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고하는 습관이다. 사람은 스스로를 꽤 나쁘지 않은, 괜찮은 사람이라 믿고 자신의 약점이나 악한 면은 외면하거나 무시하여 자신을 미화한다. 은희경 작가는 신작 [빛의 과거]에서 이기적 편향을 중력 삼아 각자의 궤도를 돌고 있는 별들의 세계, 우리라는 우주를 그렸다.

 

 

  [빛의 과거]는 1977년 청파동 여대의 기숙사 풍경과 그때 함께 생활했던 대학 동문들의 노년을 그린 소설이다. 세상을 바꾸려는 청춘들이 대학가에서 몸부림을 치는 와중에도 기숙사 안은 견고했다. 또래의 다른 여자들이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고 있을 때 대학에 입학하여 화장이니 옷차림, 민주주의나 성평등을 관심사로 삼았던 그들은 진정 공주들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나이, 뜨겁고 빛나는 청춘을 보내고 있던 그들은 대학 밖의 혼란한 상황엔 적당히 무심한 상태로 남편감을 찾기 위한 데이트나 졸업 후 진로에 매달렸다. 화학과 3학년 최성옥, 교육학과 2학년 양애란, 의류학과 1학년 오현수, 최성옥과 절친한 송선미와 그녀의 룸메이트인 곽주아, 이재숙 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1학년 김유경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유경은 긴장을 하면 말을 더듬는 소극적인 인물이다. 자기 감정과 욕구에 충실해 본 적이 없는 유경의 얌전함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그 이기적 편향을 신랄하게 꿰뚫어 본 또 다른 공주가 있었으니, 바로 김희진이다.
 희진은 함께 기숙사 생활을 했던 인물들을 모티프로 소설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쓴다. 유경은 희진이 쓴 첫 작품을 뒤늦게 읽어보며 자신의 청춘을 반추하는데, 희진이 작품 속에 그린 기숙사 인물들과 유경이 기억하는 인물들은 마치 다른 인물인 듯 너무나 다르다. 유경은 시니컬하고 욕망에 충실한 희진의 눈에 비친 그때의 자신을 회상하며  대학교 1학년이었던 그때로부터 현재까지의 자신의 삶을 다른 각도에서 해체해 본다. 

 

 

 

 어차피 우리는 같은 시간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고 우리에게 유성우의 밤은 같은 풍경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책에서 말하듯 과거의 진실이 현재를 움직일 수도 있다. 과거의 내가 나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아니라면 현재의 나도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다.
 335쪽
 
 이기적 편향은 어쩌면 생존의 본능과 연결되는 기능일 수도 있겠다. 자신의 약함과 악함으로부터 가장 상처 받는 건 자기 자신이니 우리는 어떻게든 이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다.


 유경은 첫사랑에 빠져 있던 그때를 두고 ‘자신이 가장 예뻤던 때’라고 회상한다. 그토록 빛이 났던 그 시절이건만 그때 자신의 행동과 내렸던 선택, 이런저런 일들 속에서 느꼈던 온갖 감정들을 40년 뒤에 뒤돌아보면서 비로소 유경은 발견한다. 빛의 과거, 빛의 뒤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자신의 약함과 악함으로부터 도망쳤던 유경과 그런 타자들을 비웃으며 이용하는 희진, 그리고 빛이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런저런 한계와 타성 속에서 억눌려 살아가야 했던 수많은 공주들은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별이 되어 그 빛만을 밤하늘에 남겨두었다.

 

 독자는 각양의 공주들에게서 때로는 자신을, 때로는 지인의 얼굴을 본다. 빛을 받아 하얗게 도드라지는 부분만을 나의 삶이라고 인식하며 살아가는 건 이 책의 공주들 뿐 아니라 독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빛의 그림자까지 들여다보며 살기에 시간은 너무나 빠르고 우리의 정신은 그리 강하지 못하니까. 이기적 편향이란 사람이 자신의 약점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쌓게 되는 성곽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희진이 그토록 신랄하게 조롱했던 공주들을 변호해본다. 더불어 나라는 빛의 과거 속에, 약하고 악한 나를 간직하고 있을 누군가에 대한 변호도 덧붙인다. 결국 우리 모두는 이 정도의 변호가 불가피한 사람들이니 서로서로 봐주자는 긍휼한 마음으로.

 

 

 은희경 소설가는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새의 선물](1996년 출간)의 에필로그에 이런 말을 썼다. ‘상처를 덮어가는 일로 삶이 이어진다.’ 불완전한 인간들의 세계는 불완전하다. 우리는 다 자기 빛에 눈이 멀어 스스로는 보지 못하는 허세, 욕망과 이기심을 지니고 살아간다. 소설이라는 현미경으로 해체해 보면 우리의 실상은 다 비슷비슷하게 누추하고 민망하고 그런 법이다. 그러니 관계가 조각나고 삶이 섬처럼 떠돌지 않으려면 우리는 적당히 상처를 덮어가야 한다.
 인간에 대한 환상과 긍정을 부수는 은희경 소설의 마력은 이 작품 [빛의 과거]에서도 여전하다. 환상과 긍정이 부서진 후에는 그럼 무엇이 남는가? 이 책의 결말에서 유경은 다 부서진 과거의 잔해를 저벅 저벅 밟고서도 희진을 좋아하지도 경멸하지도 않는 관계의 궤도를 유지한다. 부서지지 않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상처를 덮어가는 일로 이어지는 삶에 대한 은희경 소설의 냉소 역시 여전하다.


 

 

어차피 우리는 같은 시간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고 우리에게 유성우의 밤은 같은 풍경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책에서 말하듯 과거의 진실이 현재를 움직일 수도 있다. 과거의 내가 나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아니라면 현재의 나도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다.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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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 - 그림 한 장에 담긴 자기 치유 심리학
단 카츠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그런 거 먹으면 배 아파.” 내 입에 물고 있는 불량식품을 보면서 엄마가 하시던 말씀이다. 하교하는 길, 문방구에는 알록달록 포장도 예쁘고 값도 싼 달달구리들이 얼마나 많던지. 죄다 설탕과 색소 범벅이라는 것도 알고 이런 거 먹어봤자 피와 살이 되기는커녕 건강만 해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어쩐지 자꾸 자꾸 손이 갔다. 마음이 허해서 그랬나?

 하교하는 길, 문방구를 서성이던 마음은 서점의 책 진열대 앞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표지도 예쁘고 제목도 마음에 드는 책들이 눈짓한다. 오늘 퇴근길에 허한 마음을 달래보려, 내 허한 마음이 왜 이러는지 문제를 해결해보려 심리학 책을 골라본다. 그래서 심리학 서적 좀 읽고 “형편 좀 나아지셨습니까?”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그간의 독서인생에 실례가 되지 않을는지.

 

 

 [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의 저자 단 카츠는 스웨덴의 심리학자이자 심리치료사이다. 심리상담사로 오랫동안 일한 단 카츠 박사는 인지행동치료 CBT 전문가다. 저자는 정체모를 내면의 힘을 소환하는 사이비 심리학 서적과 전문가들이 썼지만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어렵고 재미가 없는 심리학 서적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겠다는 야심으로 이 책을 썼다. 대중에게 인기는 있지만 영 못 미더울 뿐 아니라 어떤 경우 해롭기까지 한 책들, 그리고 무시무시하게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과학적인 책들 속에서 저자는 ‘짧은 글과 명쾌한 일러스트’를 이 책의 무기로 내세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미술치료니, 뭐 그림심리니 이런 것들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그림이란 그 순간의 기분은 표현해줄 수는 있을지언정 심리라고 하는 내 마음의 작동 양식까지 파악하는 데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의 첫 장을 열기도 전부터 독자의 마음이 이렇게 강퍅한데 ‘명쾌한 일러스트’가 과연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내 예상보다 그림은 훨씬 힘이 셌다. 무엇이든지 뚜껑 열어보기 전에 얕잡아보면 안된다는 사실을 이렇게 또 한 번 배운다. 

 

 

 


 요 1년 사이에 내가 읽었던 가장 파워풀한 심리학 서적 첫 손에 꼽을만큼 이 책 [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는 훌륭하다. 왜 훌륭하냐? 저자가 말한 ‘짧은 글과 명쾌한 일러스트’로 독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심리적 도움을 주겠다는 집필의 목적을 완벽하게 달성했기 때문이다.

 

 그림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인지작용이 언어를 거치지 않고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책 55쪽

 

 [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는 사람의 뇌 속에서 공포를 감지하는 편도체 즉 파충류 뇌의 정체를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이 멍쳥한 도마뱀 녀석이 우리 뇌를 장악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누구라도 패닉에 빠진다. 진정하지 못한 도마뱀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불편함과 어려움들이 우리가 가지고 살아가는 여러 심리 문제다. 


 이 심리 문제의 해결은 단순히 ‘생각을 바꾼다’라는 설명과 암시 같은 걸로는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의 심리 상황을 은유하는 그림 32장을 이 책에 싣고 각 그림에 따라 짧은 설명글을 곁들였다. 틈만 나면 도망치고 싶은 뇌, 무작정 열심히 하는 뇌, 한 치 앞만 보는 뇌 등 공포와 두려움, 무분별, 집착과 편향 등에 빠져 있는 독자들의 심리 문제를 쉽고 평이한 언어로 풀어서 썼다.

 

 

 저자의 야심과 포부에 100퍼센트 부응한 이 책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완독이 가능하다. 복잡하고 정교한 해설이 아닌데도 나는 [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를 읽으면서 상당한 위로와 환기를 경험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림은 정말 힘이 세다. 그림과 함께 짧고 명쾌하게 쓴 전문가의 글이 있다면 더더욱 힘이 강해진다. 시집을 읽으면서 받았던 위로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 심리학 책. 이도저도 아닌 심리학 서적과 정교하지만 너무 어려운 심리학 서적 사이에서 정말 환기가 될 심리학 서적을 찾는다면 이 책 [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를 감히 추천한다.

 

 

스톡홀름 대학교와 카롤린스카 연구소에서 20년 넘게 인지행동치료 CBT 임상시험과 강의를 해오면서 한 가지 신념을 굳혔다. 좋은 상담사란 뛰어난 교사이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담심리치료가 성공한 사례를 살펴보면 대부분 내담자 교육도 함께 이루어졌음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상담심리사는 모름지기 우리가 어째서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어째서 불안과 우울의 공격을 받으며, 또 그에 따른 변화가 어떻게 자신과 주변 사람들, 나아가 삶 전체를 보는 방식을 바꾸어가는지를, 믿을만한 연구결과를 근거로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책 12-13쪽

그림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인지작용이 언어를 거치지 않고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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