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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 - 나의 삶이 너희들과 닮았다 한쪽 다리가 조금 ‘짧은’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한 ‘길고 긴 동행’, 그 놀라운 기적
황정미 지음 / 치읓 / 2020년 2월
평점 :
고개 숙인 아이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과 동일시되는 6년의 특별한 경험이 우선인 것은 맞다. 그 아이들의 엄마 아빠, 즉 어른의 무게를 이해하는. 그래서 글을 쓰는 것도 맞다
그런데,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과거를 비워내기도 했고, 그래서 아픔을 승화하고, 고개 숙인 아이들의 삶을 명료화하면서 아픔의 무게를 쪼개는 그 과정이 결국 나를 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91-292쪽 [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
장애인으로, 여성으로, 가장으로 살아오기가 얼마나 고되었을까. 삶이 저마다의 무게만큼 고된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나, 몇 가지 유형의 삶의 무게를 한꺼번에 감당하게 될 때, 그런 생 아래 깔린 운명이란 대체 얼마나 버겁고 숨막힐지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를 쓴 황정미 저자는 30년 간 아이들의 과외 선생님으로 살아왔다. 2살 때 앓은 소아마비로 거동이 자유롭지 않은 다리를 가진 그녀는 평생 목발을 짚고 일어서거나 네 발로 기어야 했다. 저자가 성장기를 거쳤던 1970~80년에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개인적 인식은 무척이나 냉혹했다. 심지어 가족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수용되지 못한 그녀의 아픔은 다리만 짧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부모와 그녀 사이 사랑의 거리, 마음의 거리마저 짧았다는 문장에 함축되어 있다. 종교를 가지게 되고 그토록 신에게 의지하며 결핍과 절망, 자기혐오와 외로움으로부터 구원 받기를 바랐지만 그녀가 바라는 것은 쉽사리 오지 않았다.
결혼 후 생계가 막막해지자 과외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저자는 그 이후 30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매진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아이들, 고개 숙인 아이들, 상처 받은 영혼을 꽁꽁 감추고 무표정이나 산만함이나 불안감이나 외설스런 욕으로 위장하고 그녀를 만나러 온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학교와 가정에서 늘 고개 숙이며 살아야했던 자신과 같은 표정의 아이들을 거울처럼 마주했을 때, 그녀는 외면할 수 없었다. 성적 향상과 학습 생활을 위해서라도 그녀는 아이들의 마음 속으로, 너덜너덜해진 아이들의 감정의 밑바닥으로 함께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심리를 공부하고 상담을 공부했다. 무엇보다도 한 아이, 한 아이에게 집중했다. 소리 내어 우는 법을 잊은 아이들의 눈물을 듣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아이들의 아픔을 발견했다. 이 책 [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는 그런 저자와 아이들의 솔직한 시간을 담은 심리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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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심리 분석이나 용어 설명을 목적으로 하는 이론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좀 더 우리 현실의 눈높이로 내려온 책이다. 사람의 영혼이 왜,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하여 상처 받는지 그리고 그 상처는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들고 그로 인하여 관계는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이 책 [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는 보여준다. 하지만 거기가 끝이 아니다. 저자는 실제 학생들과 그 학부모들과 나눈 대화와 상담, 그 사이에 진행된 일들을 상세히 기술하여 상처를 치유하는 개인과 가정이라는 결과를 수채화처럼 그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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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기 위하여 저자는 상담을 녹음한 내용을 수없이 다시 듣고, 수년간 기록해온 자신의 과외 및 상담 기록들을 들추고 확인하며 원고를 다듬었다고 했다. 혹시라도 교사로서, 상담사로서의 자신 그리고 학생과 그 부모의 모습이 사실과 달리 왜곡되게 전달되지 않도록 기울인 세심한 노력이 [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 전반에 무척이나 잘 드러난다.
거기에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저자의 태도는 너무나 솔직하다. 꾸밈이 없다. 저자를 전혀 알지 못하는데도, 귓가에 저자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는 듯 저자는 자신이 실수했던 상황, 여전히 타인의 눈을 신경 쓰곤 했던 자신의 약함, 선생과 상담사라는 두 개의 페르소나를 쓰고 있으나 그 속에 상존하는 연약한 자신의 모습을 저자는 진솔하게 털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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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책이 출간되어 나왔지만, 뒤늦게 이 책에 부제를 더한다면 ‘황제들의 치유기’라고 하고 싶다. 황정미(저자) 선생님의 제자를 약칭해서 ‘황제’라고 부르는 그녀의 제자들에게서 힌트를 얻었다. 이 책은 선생님과 그녀를 만난 제자들이 함께 치유되는 과정의 기록이다. 자기 상처가 너무나 아파서, 공기 같은 소리들에 스치기만 해도 바스러지는 영혼을 바싹 부둥켜 안은 채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치유되는 과정이다. 저자가 심리와 과외를 병행한 6년 동안 저자는 학생들의 상처 뿐 아니라 자신의 아픔 나아가 학부모들의 고통까지 들여다보았고, 그 내밀한 대화와 관계의 재건을 통하여 그들 대부분은 크거나 작게 ‘힐링’했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치유기라고 해야겠다. 젊은 시절의 뜨거운 신앙조차 그녀의 상처를 달래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 책에 쓴 간증에는 학생들이 성장하고 변화되는 과정을 통하여 그녀 역시 함께 성장하고 변화했음이, 그 모든 과정이 신이 그에게 선사한 길이었음이 잘 드러난다. 신성한 소명 의식과 절박한 치유기가 교차하는 책이라 이 책의 마지막을 읽었을 때 느껴지는 감동도 남다르다.
저자는 앞으로 상담 카페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다리가 불편해서 거동 범위가 적기에, 언제든지 자신이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게 카페를 열고 내담자들을 기다릴 거라고 한다. 자기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아이들과 이미 다 자랐지만 여전히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어른이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저자의 아름다운 마음을 응원한다. 그녀가 새로 여는 상담 카페에 그녀와의 대화가 필요한 사람들이 꼭 찾아가게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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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아이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과 동일시되는 6년의 특별한 경험이 우선인 것은 맞다. 그 아이들의 엄마 아빠, 즉 어른의 무게를 이해하는. 그래서 글을 쓰는 것도 맞다 그런데,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과거를 비워내기도 했고, 그래서 아픔을 승화하고, 고개 숙인 아이들의 삶을 명료화하면서 아픔의 무게를 쪼개는 그 과정이 결국 나를 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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