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 - 도덕을 추구했던 경제학자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다카시마 젠야 지음, 김동환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재택근무로 집에서 온 종일 지내게 되면서 뜻하지 않게 TV 시청이 잦아졌다. 어느 드라마 채널은 오래된 드라마들의 전편을 연이어 방영해 준다. 20여 년 전에 방영한 일일드라마를 보다가 고작 20년 만에 우리가 살아가는 양식이 이렇게 많이 바뀌었다는 걸 깨닫고는 적잖게 놀랐다. 삐삐, 구식 전화기(당시에는 분명 예쁜 디자인이었을 게 분명한), 고작 27살을 노처녀라고 부르는 사람들, 한복을 입고 식탁에 4대가 앉아 떡국을 먹는 모습. 20년이 아니라 한 세기 전인 것처럼 저 때가 아득하게 멀리 보였다. 겨우 20년도 이 정도의 거리로 체감되는데, 반 세기는 대체 얼마나 더 먼 걸까. 

 이 책이 일본에서 출간된 지 반 세기나 지난 책이라는 사실은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알았다. [도덕을 추구했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를 지은 다카시마 젠야 저자 역시 30년 전에 고인이 되신 분이다. 출간된 시간으로 치자면 이 책은 찍어 나온지 하도 오래되어 중고시장에서조차 자취를 찾을 수 없는 그런 책인 셈이다. 그런 책이 ‘보이지 않는 손’의 진의眞意를 알아야 한다며 부활하여 독자 앞에 섰다.

 

 

 

 ‘애덤 스미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경제학자와 자유방임이라는 두 가지 단어가 자동으로 연상되기 쉽다. 애덤 스미스가 저술한 [국부론]은 근대사회와 자본주의를 공부할 때에 가장 먼저 언급되는 18세기 저서들 중 하나다. 대충 여기까지만 알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걸 빌미로 무한 경쟁과 비열한 행태를 일삼는 현대 자본주의의 시원 격으로만 인식된다. 그가 [국부론]을 쓰기 전에 도덕, 정치, 법의 세계와 관련한 사회철학원리인 [도덕감정론]을 먼저 발표하여 일약 주목을 받았고, 그가 주창한 경제적 이기성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리公利의 원리 안에서 추구되어야 한다는 점은 웬만한 사람들에겐 생소할 것이다.

 

 

경제의 세계란 무법자의 세계도 아니며 내팽개쳐진 자유방임의 세계도 아니다. 스미스의 저술 어느 곳을 찾아봐도 자연적 자유나 자유경쟁이라는 말을 발견할 수는 있어도 자유방임이라는 말은 끝내 나오지 않는다.

104쪽

 

 자본주의의 뿌리이자 아버지라고 알려진 애덤 스미스의 진짜 목소리. 그것이 [도덕을 추구했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출간된 이유다.
 시간의 바다를 통과하여 애덤 스미스가 하고자 한 진짜 이야기를 건져 올리기 위해 다카시마 젠야 저자는 애덤 스미스가 살았던 시대를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18세기 영국 그리고 유럽의 정치 및 경제적 상황을 설명한 후 애덤 스미스가 자라고 공부하고 활동했던 시기를 간략하게 서술하면서 그가 쓴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사회적, 정서적 배경을 설명한다. 그리고는 애덤 스미스의 저서들을 근거로 그의 사상의 면면, 시민사회의 에토스와 로고스, 공감의 논리 등을 해설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부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풀어놓는다. 이후 ‘보이지 않는 손’의 진짜 의미, 근대화와 스미스, 스미스를 비판했던 시각들 등을 설명하고 애덤 스미스의 사상에 근거한 체제와 현대 등 저자 특유의 분석과 시각이 담긴 논설로 책을 마친다.

 

 물론 스미스는 이기심의 의의를 크게 강조했다. 또한 인간사회의 행복과 번영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교육, 문화의 제 방면에서 개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이 인정될 때 보다 잘 실현된다고 열심히 설파했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기심의 의의를 강조했다고 해서 그저 편협하게 이해타산만을 따지는 인간을 생각한 것은 아니며 또 그러한 인간을 모델로 상정한 것은 더욱 아니다.
7쪽
 
 이 책은 경제학자의 외연을 넘어 여태껏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사회철학자, 도덕철학자, 사상가, 법률가의 얼굴을 가진 애덤 스미스가 갈피를 잃고 방황하는 시장경제, 자본주의, 시민사회의 미래에 대해 적지않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현대판 고전이라 할 수 있다.
264 역자 후기 중에서

 

 

 이 책에 대한 감탄을 말하기 전에 먼저 <역자 후기>를 읽은 후에 느꼈던 동질감부터 써야 겠다. [도덕을 추구했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를 읽는 독자분들에게는 꼭 이 책의 맨 뒤에 역자 후기부터 읽고 이 책의 독서를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그렇게 분하고 안타까웠는지, 역자 후기를 읽고 난 다음에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실패했고 지금 전 세계는 그 실패의 여파를 온몸으로 앓고 있다. (실패한 당사자들-정치가들, 경제이론가들, 거대 자본가와 대형 금융회사-이 실패의 여파를 앓아야 하는데 왜 시장 참여자라는 이유로 이것을 개미들이 앓아야 하는지 정말 의문이다.) 조타수가 되어 방향을 돌릴 힘이 없다면 적어도 어떤 부분에서 실패했는지, 지난 100~200년 동안 신처럼 모셨던 자본주의 이론이 어디가 불완전한지는 알아야 밥이라도 넘기겠다. (그게 아니면 분해서 어쩌리...) 그런 분함의 살풀이를 이 책이 해주는 셈이다. 자본주의라는 나무를 배양한 그 토양에 실은 정의가 있었고, 윤리(에토스)와 논리(로고스)와 덕virtue이 있었다는, 역사 너머로부터 오는 쟁쟁한 애덤 스미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난 후에는 그 책으로부터 얻은 영감과 지식 덕분에 필연적으로 읽고 싶어지는 여러 개의 책들이 생긴다. 오늘은 [도덕감정론]을 찾아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것 하나 찾아 읽는다고 당장 오늘 내 경제사정에 어떤 호재가 생기진 않는다. 하지만 씨를 심을 때의 마음으로 책을 찾아간다. 흙 속에 씨를 심고 자라기를 기다리며 가꾸고 돌보았다가 나중에야 비로소 그 씨가 주는 응답을 얻듯이, 갈피를 잃고 방황하는 오늘날에, 어떤 신조를 가지고, 어떤 눈을 가지고 가야할지를 살피는 이때에, 한 사람이라도 더 이런 책을 읽고 ‘유덕한 경제인’의 길을 함께 걷는다면 간다면 애덤 스미스가 기대한 시민사회의 번영은 책이 아니라 현실에서 만날 수도 있으리라. 

이 책은 경제학자의 외연을 넘어 여태껏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사회철학자, 도덕철학자, 사상가, 법률가의 얼굴을 가진 애덤 스미스가 갈피를 잃고 방황하는 시장경제, 자본주의, 시민사회의 미래에 대해 적지않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현대판 고전이라 할 수 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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