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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 - 그림 한 장에 담긴 자기 치유 심리학
단 카츠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20년 2월
평점 :
“그런 거 먹으면 배 아파.” 내 입에 물고 있는 불량식품을 보면서 엄마가 하시던 말씀이다. 하교하는 길, 문방구에는 알록달록 포장도 예쁘고 값도 싼 달달구리들이 얼마나 많던지. 죄다 설탕과 색소 범벅이라는 것도 알고 이런 거 먹어봤자 피와 살이 되기는커녕 건강만 해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어쩐지 자꾸 자꾸 손이 갔다. 마음이 허해서 그랬나?
하교하는 길, 문방구를 서성이던 마음은 서점의 책 진열대 앞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표지도 예쁘고 제목도 마음에 드는 책들이 눈짓한다. 오늘 퇴근길에 허한 마음을 달래보려, 내 허한 마음이 왜 이러는지 문제를 해결해보려 심리학 책을 골라본다. 그래서 심리학 서적 좀 읽고 “형편 좀 나아지셨습니까?”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그간의 독서인생에 실례가 되지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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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의 저자 단 카츠는 스웨덴의 심리학자이자 심리치료사이다. 심리상담사로 오랫동안 일한 단 카츠 박사는 인지행동치료 CBT 전문가다. 저자는 정체모를 내면의 힘을 소환하는 사이비 심리학 서적과 전문가들이 썼지만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어렵고 재미가 없는 심리학 서적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겠다는 야심으로 이 책을 썼다. 대중에게 인기는 있지만 영 못 미더울 뿐 아니라 어떤 경우 해롭기까지 한 책들, 그리고 무시무시하게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과학적인 책들 속에서 저자는 ‘짧은 글과 명쾌한 일러스트’를 이 책의 무기로 내세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미술치료니, 뭐 그림심리니 이런 것들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그림이란 그 순간의 기분은 표현해줄 수는 있을지언정 심리라고 하는 내 마음의 작동 양식까지 파악하는 데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의 첫 장을 열기도 전부터 독자의 마음이 이렇게 강퍅한데 ‘명쾌한 일러스트’가 과연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내 예상보다 그림은 훨씬 힘이 셌다. 무엇이든지 뚜껑 열어보기 전에 얕잡아보면 안된다는 사실을 이렇게 또 한 번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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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년 사이에 내가 읽었던 가장 파워풀한 심리학 서적 첫 손에 꼽을만큼 이 책 [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는 훌륭하다. 왜 훌륭하냐? 저자가 말한 ‘짧은 글과 명쾌한 일러스트’로 독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심리적 도움을 주겠다는 집필의 목적을 완벽하게 달성했기 때문이다.
그림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인지작용이 언어를 거치지 않고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책 55쪽
[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는 사람의 뇌 속에서 공포를 감지하는 편도체 즉 파충류 뇌의 정체를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이 멍쳥한 도마뱀 녀석이 우리 뇌를 장악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누구라도 패닉에 빠진다. 진정하지 못한 도마뱀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불편함과 어려움들이 우리가 가지고 살아가는 여러 심리 문제다.
이 심리 문제의 해결은 단순히 ‘생각을 바꾼다’라는 설명과 암시 같은 걸로는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의 심리 상황을 은유하는 그림 32장을 이 책에 싣고 각 그림에 따라 짧은 설명글을 곁들였다. 틈만 나면 도망치고 싶은 뇌, 무작정 열심히 하는 뇌, 한 치 앞만 보는 뇌 등 공포와 두려움, 무분별, 집착과 편향 등에 빠져 있는 독자들의 심리 문제를 쉽고 평이한 언어로 풀어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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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야심과 포부에 100퍼센트 부응한 이 책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완독이 가능하다. 복잡하고 정교한 해설이 아닌데도 나는 [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를 읽으면서 상당한 위로와 환기를 경험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림은 정말 힘이 세다. 그림과 함께 짧고 명쾌하게 쓴 전문가의 글이 있다면 더더욱 힘이 강해진다. 시집을 읽으면서 받았던 위로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 심리학 책. 이도저도 아닌 심리학 서적과 정교하지만 너무 어려운 심리학 서적 사이에서 정말 환기가 될 심리학 서적을 찾는다면 이 책 [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를 감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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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대학교와 카롤린스카 연구소에서 20년 넘게 인지행동치료 CBT 임상시험과 강의를 해오면서 한 가지 신념을 굳혔다. 좋은 상담사란 뛰어난 교사이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담심리치료가 성공한 사례를 살펴보면 대부분 내담자 교육도 함께 이루어졌음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상담심리사는 모름지기 우리가 어째서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어째서 불안과 우울의 공격을 받으며, 또 그에 따른 변화가 어떻게 자신과 주변 사람들, 나아가 삶 전체를 보는 방식을 바꾸어가는지를, 믿을만한 연구결과를 근거로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책 12-13쪽
그림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인지작용이 언어를 거치지 않고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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