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으로 읽는 한국어사전 - 거리의 말들을 주워 새로운 역사의 화살표로 재창조하는 한국어 뜻풀이
이어령 지음 / 문학사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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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본 우리말에 대한 책이다. 우리 말, 한자말, 서양말. 이 세 가지 분류의 여러 단어들이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뜻으로 단장하고 이 책에 실렸다.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뜻이나 유래, 탄생 배경도 재미있지만 저자가 새롭게 바라본 단어를 만나는 일도 무척 재미있다. 교양도 있고 재치도 있는 저자의 글은 십여 년 전의 글임에도 여전히 매력있다.

 

한자를 보면 꽃에 관한 두 글자가 등장한다. 하나는 화이고 또 하나는 영자이다. 화자는 워낙 복잡해서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꽃 화 자의 약자에 의해 대용되어 왔으면서도 용케 살아남은 글자이다. 화 자에는 십 자가 여섯 개가 들어 있고 거기에 일 자 한 개가 들어 있어 그 수가 모두 61이라 회갑 년을 뜻하는 글자로도 애용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 화 자의 원래 뜻은 잎과 꽃잎이 늘어져 있는 형상을 나타낸 것으로 모란이나 작약같이 문자 그대로 커다란 꽃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화려하다고 할 때의 화 자가 바로 그 뜻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니까 잡초에 피는 꽃이나 벚꽃같이 자잘한 것들은 화라고 부르지 않다.

그와는 반대로 작은 꽃들이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것은 영이다. 즉 한 송이 두 송이 피는 꽃들이 아니라 마치 수목을 둘러싸고 불타 오르는 것처럼 무리 지어 피어나는, 바로 개나리 같은 것이 영인 것이다. 영 자를 자세히 뜯어보면 화 자와는 달리 나무 위에 불이 활활 타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래서 모란같이 탐스러운 꽃송이와 개나리같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군집적인 꽃을 모두 합쳐 영화라는 말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38-39쪽 개나리 _ 문명의 봄을 몰고 오는 피플 파워

 

저자는 책 속 어느 글에서 '장미는 장미라고 부르지 않아도 향기롭다'는 셰익스피어의 명언을 인용했다.

나도 동의한다. 장미는 장미라는 이름이 없어도 향기롭다. 하지만 장미라는 이름을 얻었을 때 비로소 장미는 기억된다. 세상의 수많은 존재들 중에 그 존재의 자리와 위치를 당당히 새겨 넣는다.

 

나는 그것이 말의 역할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내용은 알뜰살뜰한 재미와 읽는 보람을 함께 준다. 먼지 묻은 단어들에 새옷을 입힌 저자의 손길을 타고 많은 단어들이 새롭게 기억되고 새로운 위치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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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리커버 특별판, 양장)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컬렉션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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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퉁>지는 자사 기자들에게 일어난 두 건의 살인 사건이 알려지자 상당히 유별난 태도를 취했다. 광적인 흥분! 대서 특필. 1면 기사. 호외 발행. 통례를 벗어난 크기의 부고. 어차피 피살 사건이란 늘상 일어나는 것인데도, 마치 저널리스트 살인 사건은 뭔가 특별한 것인 양, 은행장이나 은행원 혹은 은행 강도 살인 사건보다 더 중요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본문 16

 

세상에서 죄질이 가장 나쁘다고 해도 좋을 인간 부류가 둘 있다. 누가 더 나쁜지 우위를 매길 수가 없어서 두 부류가 다 죄질이 가장나쁘다고 해야겠다. 하나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인간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거짓말을 옮기는 인간이다. 이 두 부류는 한 사람의 인생을 한 번 끝장내는 게 아니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몇 번이고 거듭 거듭 끝장내는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아주 나쁜 부류들이다. 못된 것들..........

! 그러고보니 이 두 부류와 쌍벽을 이루는 부류가 하나 더 있다. 무지한데 염치까지 없는 종자들이 그들이다. 무지하지만 염치라도 있으면 그래도 연민이라도 드는데, 무지한데다 염치까지 없는 사람들은 정말 답이 없다.

카타리나 블룸이 왜 퇴트게스에게 총을 빼들었는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성실하고 바르게 살아온, 추근대는 것과 다정한 것의 차이를 명백히 아는 섬세하고 충실한 성품의 사람이 권총을 손에 들고 다른 이에게 사정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이건 명백한 사유가 있는 일이다. 분명한 당위성, 그러고도 남을만한 이유가 없이는 저런 유형의 사람이 저런 일은 저지르지 않는다. 카타리나 블룸의 이야기에 내가 너무 몰입하여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 건가? 잠시 성찰해 봤지만,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카타리나 블룸이 왜 그들을 죽여 버렸는지, 그러고도 후회도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읽는 내내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을 계획이 있는 분들에게 첨언하건데, 부디 냉수 몇 잔 옆에 준비해두시길 바란다. 그리고 각오도 하시길 바란다. 분노는 카타리나 블룸의 이야기가 현실과 무관한 허구라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내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세상, 이 세계 속에서도 쉽게 카타리나 블룸을 만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카타리나에 대한 연민과 동조가 단순한 독후감으로 남게 만드는 걸 거부한다. 그러니 각오해야 한다. 책장을 덮은 후에, 현실에서는 더 비정한 덫에 걸린 카타리나를 만날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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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크 스몰 - 큰 것을 이루고 싶다면 작게 생각하라
오웨인 서비스.로리 갤러거 지음, 김지연 옮김 / 별글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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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까지만 해도 나는 장롱면허 소지자였다. 운전면허를 몇 년 전에 따놓고 면허증이 발급된 이후로 한 번도 운전을 하지 않았다.

면허를 따기 위해 운전면허 학원에서 도로주행을 하면서 나는 불현듯 운전하는 게 너무 무서워졌던 거다. 엑셀을 밟을 때 엔진에 힘이 들어가면서 차체에서 느껴지는 진동, 그 속도감, 브레이크를 밟으며 앞차와의 거리가 가까워 질 때 느껴지던 왠지 모를 위기감. 운전하는 게 그렇게 무서운 일일 줄이야.... 기적적으로 면허는 땄지만, 그 이후로 운전대에는 손도 올리지 않았다. 내 차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가 자처해서 운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작년 12, 나는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하게 되었다. 해야만 하게 되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먼 길을 오고가야 하는 상황에 놓여, 나는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로 운전 연수를 받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연수를 받은 후에 나는 겨우 운전에 대한 엄청난 부담을 좀 덜었다. 그걸 시발점으로 해서 연수를 마친 다음부터도 나는 자체 연수에 들어갔다. 걸음마도 못 떼는 아기가 연수 며칠 받았다고 갑자기 100미터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달릴 수는 없는 법. 나는 한 술, 한 술 그리고 또 한 술 밥을 먹듯이 그렇게 차근차근 운전을 해보기로 했다. 자체 연수 첫 날은 오직 전진 주행만, 둘째 날은 후진 연습만, 그 다음 날은 T자 주차 연습만. 그렇게 천천히 나의 운전 능력을 끌어올려 나는 결국 혼자서 밥 한 그릇을 다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고속도로를 타야 한다는 엄청나게 무거웠던 목표를 하루하루 잘게 쪼개어 세부 목표로 나누었고 그렇게 자잘하게 나눈 목표를 하나하나 소화하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새해의 첫 책으로 이 책을 읽었다. [씽크스몰] 큰 목표를 이루고 싶다면 잘게 쪼갠 세부 목표를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세우고 그걸 이루는 걸 습관화 할 수 있도록 가이드해 주는 책이다. 나름 다이나믹했던 12월을 보내고 이 책을 읽는데 정말 느껴지는 감회가 남다르네.

넛지팀이라고 불리는 영국의 행동통찰팀이 낸 이 책은 도전하는 목표를 이룰 있도록 매뉴얼을 제시하기만 하는 책은 아니다. 매뉴얼이라기보다는 교관이라는 느낌. 무언가를 도전하고 그것을 이루고자 할 때, 계획을 세우는 단계부터 시작하여 그것을 실행하고 실행하는 동안 꼭 염두해야 하는 과정들을 잘 알려준다.

 

작게 생각하는 법은 체크리스트가 아니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싶다고 일곱 가지의 모든 세부적인 사항들을 그대로 따라할 필요는 없다.

대신 행동의 토대를 마련해줄 방법들을 이 책에서 찾고 각자의 목표를 세워 적당한 도구를 꺼내어 쓰고 도움을 받으면 된다.

본문 24

 

정초부터 이런 책을 읽고 나니까, 올해는 뭐든 다 해치울 수 있다!!!는 의욕이 마구마구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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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 저승편 세트 - 전3권 - 개정판 신과 함께 개정판 시리즈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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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예고편을 보고 진기한 변호사가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의 그.... 실망감....이란.....

 

웹툰 [신과 함께]의 배경만 어느 정도 가져오고 거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에 반감이 있는 건 아니다. 매체가 다르면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다.

진기한 변호사를 보고 싶어 했던 건 원작팬인 나의 마음일 뿐.

그래도 영화가 흥행하고 있다는 소식에 기분은 좋다.

 

"착하게 살아야겠다"

 

나는 그랬다. 이 웹툰을 보고 나서, 그리고 단행본으로 출간된 세 권을 읽고 나서도 역시 '그래, 몸이 없어지고 나서 돌아봐도 부끄러울 일은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지들이 뭔데 나를 심판하냐는 둥, 어차피 한번 뿐인 인생 내 마음대로 살다 말겠다는 둥, 어차피 나중 일 아니냐는 둥, 사후 세계가 어디 있냐는 둥

수많은 사람의 여러 감상평이 난무하는 가운데, 나는 인간을 인간되게 만드는 건 양심이나 선심이 아니라 염치가 아닌가 한다.

 

착하게 살면 호구가 된다는 말이 아주 틀린 게 아니라는 인식은 '착함 = 계산할 줄 모름 = 바보'라는 기저인식에서 출발하는 듯 하다.

이런 인식은 피해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피해자에게만 비난을 가하면서 정작 가해자에게는 손가락질도 못하는 비열하고 이율배반적인 문화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바보 같이 살라는 말이 아니라, 착하게, 염치를 알고 양심을 지키며 살자는 것인데. 이런 말이 이렇게 설득력을 잃은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건 마음 씁쓸한 일이다.

 

내년 정초에는 정의롭지 못한 세상이 선량하게 변화하는 징후를 발견하고 흥분하면서 새해를 맞게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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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경영을 가꾸다 - 관찰학자 최재천의 경영 십계명
최재천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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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건 생명 그 자체다. 살아있다는 것. 호흡을 하고 변화하고 반응하는, 살아있다는 것. 나의 생명이든, 다른 존재의 생명이든 생명의 가치란 무엇에도 비길 수 없다. 생명은 단 하나라서 한 번 꺼져버리면 어떤 것으로도 되살릴 수 없으니까.

 

삶이 피폐해지는 순간은 이 생명의 무게와 가치에 대해 희미해지거나 잊어버리게 되는 순간인 것 같다. 내 존재가 귀한 것은 내가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라거나, 내가 어떤 잘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무게를 그런대로 짊어지고 생명의 가치를 부질없이 소비하지 않고 어쨌든 오늘 하루 호흡하고 변화하고 반응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귀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생명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세상의 그 어떤 학문을 하건, 어떤 일을 하건 간에 빛이 되는 법이라고 나는 믿는다.

 

공식적으로 세계적인 석학이라고 소개되고, 방송에도 많이 나오셨다는 최재천 교수를,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국립생태원의 존재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첫눈에 본 사람한테는 호감을 잘 못 느끼는데, 첫눈에 본 국립생태원에게는 단번에 호감을 느꼈다. , 내년에 꼭 여기를 가보고 말리라.

 

생태원이라는 장소 자체에 대한 동경과 선망 때문에 저런 목표를 세우긴 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국립생태원을 가보고 싶게 만든 또 다른 매력은, 이 생태원을 이끈 최재천 교수의 가치관과 경영관이다. 모든 생명에게서 배운다, 남보다 너무 많이 가진 건 결코 자랑이 아니다, 세상은 군림君臨이 아니라 군림群臨으로 유지된다, 두뇌 하나가 두뇌 열 또는 백을 능가할 수는 없다 등등 그의 경영 철학 혹은 삶의 철학은 정말 매력적이고 배울 점도 많다. 무엇보다도 생명을 존중, 아니 사랑하는 사람은 정치를 하든, 경영을 하든, 연구를 하든 결국 옳은 일을 한다는 내 가치관에 확신이라는 무게를 실어주었다.

 

이런 경영자가 더 많아진다면 우리나라는 적어도 불의와 부패 그리고 부조리 때문에 몸살을 앓는 일이 점차로 줄어들다 결국 사라지지 않을까.

 

개미처럼 작은 곤충 하나도 존중하고, 숲 어귀에 싯구와 함께 낭만을 새겨 넣는 멋이 있는 학자 그리고 경영자.

 

여러 가지로 많은 걸 배우고, 느끼게 한 책이다.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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