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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리커버 특별판, 양장) ㅣ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컬렉션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차이퉁>지는 자사 기자들에게 일어난 두 건의 살인 사건이 알려지자 상당히 유별난 태도를 취했다. 광적인 흥분! 대서 특필. 1면 기사. 호외 발행. 통례를 벗어난 크기의 부고. 어차피 피살 사건이란 늘상 일어나는 것인데도, 마치 저널리스트 살인 사건은 뭔가 특별한 것인 양, 은행장이나 은행원 혹은 은행 강도 살인 사건보다 더 중요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본문 16쪽
세상에서 죄질이 가장 나쁘다고 해도 좋을 인간 부류가 둘 있다. 누가 더 나쁜지 우위를 매길 수가 없어서 두 부류가 다 죄질이 ‘가장’ 나쁘다고 해야겠다. 하나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인간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거짓말을 옮기는 인간이다. 이 두 부류는 한 사람의 인생을 한 번 끝장내는 게 아니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몇 번이고 거듭 거듭 끝장내는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아주 나쁜 부류들이다. 못된 것들..........
아! 그러고보니 이 두 부류와 쌍벽을 이루는 부류가 하나 더 있다. 무지한데 염치까지 없는 종자들이 그들이다. 무지하지만 염치라도 있으면 그래도 연민이라도 드는데, 무지한데다 염치까지 없는 사람들은 정말 답이 없다.
카타리나 블룸이 왜 퇴트게스에게 총을 빼들었는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성실하고 바르게 살아온, 추근대는 것과 다정한 것의 차이를 명백히 아는 섬세하고 충실한 성품의 사람이 권총을 손에 들고 다른 이에게 사정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이건 명백한 사유가 있는 일이다. 분명한 당위성, 그러고도 남을만한 이유가 없이는 저런 유형의 사람이 저런 일은 저지르지 않는다. 카타리나 블룸의 이야기에 내가 너무 몰입하여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 건가? 잠시 성찰해 봤지만,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카타리나 블룸이 왜 그들을 죽여 버렸는지, 그러고도 후회도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읽는 내내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을 계획이 있는 분들에게 첨언하건데, 부디 냉수 몇 잔 옆에 준비해두시길 바란다. 그리고 각오도 하시길 바란다. 분노는 카타리나 블룸의 이야기가 현실과 무관한 허구라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내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세상, 이 세계 속에서도 쉽게 카타리나 블룸을 만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카타리나에 대한 연민과 동조가 단순한 독후감으로 남게 만드는 걸 거부한다. 그러니 각오해야 한다. 책장을 덮은 후에, 현실에서는 더 비정한 덫에 걸린 카타리나를 만날 각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