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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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작가에게 나는 첫눈에 반했다.
 그가 발표한 가장 첫 번째 작품이자 내가 이 작가를 발견하게 된 계기인 [창백한 언덕 풍경]을 읽는 내내 나는 내가 기어코 이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게 되리라는 걸 알았다.

 어쩜 이렇게 잘 쓸 수 있을까?


 [남아 있는 나날]을 읽으며 나는 매 순간 싸웠던 것 같다. 작품을 동경하는 마음과 질투하는 마음, 둘 중 어느 쪽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남아 있는 나날]의 무대는 근대 영국이다. 주인공은 영국 귀족(달링턴 경)을 일생토록 섬겼던 그의 집사 스티븐슨이다. 
 스티븐슨은 위대한 인물인 달링턴 경을 모시며 그의 위업을 보좌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인물이다. 이 책은 그의 독백이다. 그는 품격 높은 자화자찬으로 이 책을 도배한다.

 

 위대한 집사들의 위대함은 자신의 전문 역할 속에서 살되 최선을 다해 사는 능력이다. 그들은 제아무리 놀랍고 무섭고 성가신 외부 사건들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점잖은 신사가 정장을 갖춰 입듯 자신의 프로 정신을 입고 다니며, 악한들이나 환경이 대중의 시선 앞에서 그 옷을 찢어발기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그가 그 옷을 벗을 때는 오직 본인의 의사가 그러할 때뿐이며, 그것은 어김없이 그가 완전히 혼자일 때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품위’의 요체이다.
57-58쪽

 

 스티븐슨이 가장 집중하는 화두는 ‘품위’다. 그는 자기자신이 집사로 태어나 위대한 집사에 걸맞는 능력으로 인류의 안녕에 공헌한 품격 있는 인간이라고 믿는다. 평생을 위대한 집사의 명성과 영광에 한 치의 흔들림이 없는 일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달링턴 경의 대저택을 오차 없이 관리감독해 온 치밀한 사람답게 자기절제와 품위 유지에 단 한 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은 대단한 인물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그러나 독자가 이 작품의 중반쯤에 도달하면 이러한 스티븐슨의 자기애(自己愛)는 치열한 자기방어이자 변명이라는 것을 서서히 눈치채게 된다. 스티븐슨이 ‘인류의 안녕에 기여한 위대한 일’이라고 높이 평가한 일들은 실은 말도 안 되게 멍청하고 우둔한 짓이었으며 그가 위대한 인물이라고 치켜세우는 달링턴 경은 세간의 비난과 악평을 듣는 세기의 바보다. 작가는 스티븐슨의 독백과 주변 인물과의 대화를 통하여 스티븐슨의 망상과 실제 상황을 서서히 드러낸다. 스티븐슨이 아무리 자화자찬으로 도배를 해도 현실은 가려지지 않는다. 작가는 스티븐슨이 바라보는 세상과 실체 세상을 함께 드러내는 놀라운 신통력을 발휘한다. 그 절묘한 밸런스란! 또한 그 대조를 통하여 스티븐슨의 우둔함과 위선을 극대화한다. 인물의 위선과 파렴치를 꼬집는 작품은 많았지만 이토록 노련하고 품위 있는 방법으로 인물의 부조리함을 드러낸 작품은 처음이다.

 

 여러분이나 나 같은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이 세상의 중심축에서 우리의 봉사를 받는 저 위대한 신사들의 손에 운명을 맡길 뿐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내 인생이 택했던 길을 두고 왜 이렇게 했던가 못했던가 끙끙대고 속을 태운들 무슨 소용이 잇을까? 여러분이나 나 같은 사람들은 진실되고 가치 있는 일에 작으나마 기여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 그 야망을 추구하는 데 인생의 많은 부분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결과가 어떻든 그 자체만으로도 긍지와 만족을 느낄 만하다.
301쪽

 

 이렇게라도 자기위안을 해야만 그 삶에 대한 자괴감을 피할 수 있나보다. 보통 어느 작품을 읽고 나면 그래도 주인공에게만은 동정이나 아주 희미한 애정이라도 생기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주인공에게 가차 없다. 일말의 동정도 남기지 않는다. 주인공은 끝까지 이해의 실마리도 남기지 않고 동정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끝까지 본래의 그 가증스럽고 못난 모습을 버리지 못한다. 갱생의 기회도 부여받지 못한다. 그는 조금의 발전이나 변화 없이 아마 그 모습 그대로 생을 마감하리라는 예감을 남긴 채 책장 마지막에서 이별을 고한다.

 

 주인공에게는 어떤 경외감도 들지 않지만 저자에게는 감탄을 멈출 수가 없다.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 자체도 너무나 훌륭하지만 그걸 다루는 방법은 훌륭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재미나 흥미로서의 소설이 아니라 사람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고 싶다면 가즈오 이시구로의 모든 소설을 강력 추천. 아, 진짜 이 사람 잘 쓴다.

그는 여기서 말을 멈추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는 아마추어이며, 오늘날의 국제 정세는 신사 아마추어들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유럽인 여러분들이 이 사실을 빨리 깨달을수록 좋을 겁니다. 점잖고 선량하신 신사 여러분, 제가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을 둘러싼 세계가 어떻게 변해 가고 있는지 혹시 아십니까? 여러분의 그 고상한 직관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다만, 여기 유럽인 여러분들이 아직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를 초청해 주신, 선량한 분 같은 신사분들은 스스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문제들에 끼어드는 것을 아직도 업으로 믿고 있습니다. 지난 이틀 동안 이 자리에서 시답잖은 얘기들이 너무나 많이 나왔습니다. 의도는 선량하지만 순진하기 짝이 없는 공론들이었죠. 유럽인 여러분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풀어 가기 위해서는 프로들이 필요합니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조만간 재앙으로 치닫게 될 것입니다. 건배합시다, 신사 여러분. 제가 선창하겠습니다. 프로페셔널리즘을 위하여!"
132-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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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청년 연암’에게 배우는 잉여 시대를 사는 법
고미숙 지음 / 프런티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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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운전을 시작하면서 나는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풍경을 도로에서 보곤 한다. 아니, 원래 항상 거기 있던 풍경인데 그 전에는 내가 별 관심이 없었다. 빨강과 초록, 불빛이 번갈아 바뀌고 차들은 신호에 따라 원만하게 흘러간다. 옆차가 주황색 등을 켜고 고개를 내밀면 달리던 차는 슬쩍 자리를 내준다. 도로는 차와 신호등이, 차와 또 다른 차가 서로 교감하고 소통의 공기가 막힘없이 흘러가는 공간이다. 그래서 도로에 나서면 나는 도시가 살아있다고 느낀다. 온통 콘크리트에 아스팔트, 쇳덩어리들이 즐비한 도로 한가운데에서 도시가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는 건 교신과 소통의 물결 때문이다.

 

 나는 고미숙 선생님을 좋아한다. 고 선생님이 하시는 강연도 챙겨보고 쓰신 책도 찾아 읽는다. 고미숙 선생님의 이야기가 좋아서다. 한 마을이 가족이었던 시대를 지나 혈족만이 가족으로 살아가던 시대마저 지나고 지금 우리들의 시대는 최후의 가족 단위마저 해체되고 개인만이 남은 외로움의 시대로 들어섰다. 혼자로 남겨졌기 때문에 혼자에 익숙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혼자를 즐기기 때문에 혼자로 남겨진 것인지 알 수 없는 시대다. 그런 우리들에게 고미숙 선생님은 혼자 있지 말라고, 혼자 있으면 안 되는 이유와 혼자가 아니면 좋은 이유를 조목조목 짚어준다.

 

 “산다는 건 생각과 말과 발의 삼중주다. 생각의 흐름, 말의 길, 발의 동선. 이 세 가지가 오늘 나의 삶을 결정짓는다. 외부의 힘을 받아서 내적으로 변용시키는 것이 핵심인데,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는 당연히 중요하다. 그다음이 말이다. 언어도 숨 쉬고 배설하는 것 못지않은 생명 활동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책을 읽지 않으면 말의 행로, 생각의 전제가 바뀌기 어렵다. 생각과 말이 제자리를 맴돌면 동선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혼공은 혼밥만큼이나 위험하다. 정말 박학다식한데, 그럼에도 도무지 사람들과 소통이 안 되는 지식인이 적지 않다. 지식이 자기 안에서 맴돌다 고인 탓이다. 그러니 대학생이 혼밥에 혼공을 한다면, 그 지식은 그야말로 ‘늪’이 될 확률이 높다.
92-93쪽 

 

 고미숙 선생님의 신간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에 다른 제목을 붙인다면 나는 이렇게 쓰고 싶다. [조선에서 더불어 살기] 혹은 ‘혼자서 살지 않는 법에 대하여’.
 4차 산업혁명이라고 세상은 떠들썩하지만 초연결 시대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으려면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고도로 발달한 기술 덕에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기쁨을 제대로 느끼려면 확보된 시간을 즐길 거리가 분명해야 한다. 우리 시대에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것 아닐까. 혼자 살면 뭔 재민겨.


 그래서 고미숙 선생님은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에 ‘벗’의 존재에 하이라이트를 비추었다. 가족과 함께 해도 물론 즐거운 인생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한 사람이 한 존재로서 비로소 오롯이 서려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떠나 독립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고전평론가인 저자가 현 시대 인류가 배울만한 라이프스타일로 조선 후기 지식인인 연암이 누렸던 백수의 삶을 제시한다.

 

 연암은 수없이 정계의 러브콜을 받았던 인재였다. 권력과 명예 혹은 부를 좇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금으로 코팅한 꽃길이라고 불러도 아쉽지 않을 성공이 보장되어 있었지만 연암은 그를 물리쳤다. 아, 물리쳤다는 표현은 너무 약하다. 마치 그게 해로운 것이라도 되는 양 그로부터 피해 달아났다. 그리곤 백수가 되었다. 아, 무지하게 당당하고 에너지 넘치는 백수가 되었다. 참 백수!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는 연암의 일생에 가득했던 에너지 그러니까 생명력을 추적하는 책이다. 백수 주제에 어쩜 그렇게 명랑하고 열정 넘치는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 더 놀라운 건 그 어느 시대보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연암보다 더 밀도 높은 참 백수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인간의 종착지가 백수’라고 당당히 외치며 시작하는 이 책은 너무나 재미있다. 벗과 공부하고 대화하고 공감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이 책은 잘 알려준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나의 많은 벗들과 함께 읽고 싶다. 낯선 사람들과도 읽고 싶다. 이 책을 같이 읽으면 낯선 사람도 벗이 될 것만 같다. 최근 거울 속의 나에게 반백수라고 내뱉으며 자괴감에 빠져 있었는데 청년 연암과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힘을 내 본다.

 

"산다는 건 생각과 말과 발의 삼중주다. 생각의 흐름, 말의 길, 발의 동선. 이 세 가지가 오늘 나의 삶을 결정짓는다. 외부의 힘을 받아서 내적으로 변용시키는 것이 핵심인데,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는 당연히 중요하다. 그다음이 말이다. 언어도 숨 쉬고 배설하는 것 못지않은 생명 활동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책을 읽지 않으면 말의 행로, 생각의 전제가 바뀌기 어렵다. 생각과 말이 제자리를 맴돌면 동선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혼공은 혼밥만큼이나 위험하다. 정말 박학다식한데, 그럼에도 도무지 사람들과 소통이 안 되는 지식인이 적지 않다. 지식이 자기 안에서 맴돌다 고인 탓이다. 그러니 대학생이 혼밥에 혼공을 한다면, 그 지식은 그야말로 ‘늪’이 될 확률이 높다.
9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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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매력적인 친구와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심지어 처음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의 중심이 되는 쉽고도 놀라운 방법
김상중 지음 / 치읓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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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계발서라기보단 ‘매력적인 사람’을 주제로 쓴 에세이 같다. 저자가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지도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살아보니 이러하더라, 내가 해보니까 좋았으니 너도 해보면 어때?’라고 말을 거는 책이라는 뜻이다.

 

 [이 매력적인 친구와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목이 무척이나 긴 덕분에 이 책의 표지를 몇 번씩이나 거듭해서 본 지금까지도 나는 이 책의 제목이 헷갈린다. 표지를 보지 않으면 정확한 제목을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하지만 이 책의 주제만큼은 어렵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매력적인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자는 시종일관 이 주제에 충실하다.

 

 언젠가 <알쓸신잡>에서 유시민 작가가 리더의 자질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유시민 작가 본인은 매우 분석적인데 이런 성격은 리더가 못 된단다. 분석에 능한 사람은 2인자가 적합하다고 웃으며 리더는 분석 능력 같은 이성이 아닌 감성을 건드리는 사람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기억이 정확하지 않음주의, 분명 저 표현이 아니었는데 내 머릿속 타자기가 제멋대로 편집해서 저 내용이 되어 버렸네). 나는 유작가가 언급했던 저 리더의 자질을 매력이라는 말로 풀이한다. 카리스마니 아우라니 비슷한 말들이 많지만 가장 결정적인 단어는 단연코 저 매력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매력이라는 단어 때문에 이 책을 읽기도 전에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겠다. 인기 좋은 사람이 되려면 이렇게 하라, 는 팁을 알려주는 책처럼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본문을 읽어나가면 저자가 매력적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의 무게가 ‘매력’ 그 자체 보다는 ‘사람’에 있다는 걸 금방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여타의 책에 비해 이 책이 더 매력적인 이유도 이 지점에 있다. 저자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비법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선두에 ‘배려’를 놓았다.

 

 매력과 배려가 다르지 않은 면모임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은 152쪽에서 결정적으로 나온다. 사람을 만날 때 미리 장소를 확인하고 대상을 만나기 전 나의 모습을 점검하고 혹시라도 상대의 건강에 악영향 줄 수 있는 요소도 제거하고,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추어 인사하라는 등 10가지 준비 자세는 어떤 사람에게 대입해봐도 매력적이다. 썸남이 이래도, 친구가 이래도, 직장 후배나 상사가 이래도, 하다못해 어떤 계기로 내가 무척 싫어하게 된 사람이 이렇게 한다고 해도 매력 있다는 생각이 들겠구나 싶다.

 

 배려를 예의의 선상에서 놓고 보면 다소 따분하고 답답해 보이는 인상도 준다. 하지만 배려를 매력의 선상에서 놓고 보면 ‘배려’의 가치가 판이하게 달라지는 듯하다.

 

 매력 있는 사람에 대한 기준을 새롭게 세워주는 책이다.


처세술만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당연한 듯 여기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에서는 처세술이 직장생활의 최우선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런 일에 습관처럼 익숙해지는 겁니다. 호랑이의 위세와 같은 배경을 이용하는 여우의 처세술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자기 배경만 믿고 무례하고 교만하게 처세술만 할 줄 아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기만 얻는 사람이 되려고 순간의 처세술에 의존하여 자신의 매력을 갉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41쪽

칭찬도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타인을 칭찬하는 일에 인색한 사람이 있습니다. 타인을 칭찬하면 자신의 위치가 낮아질 것 같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독일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인간은 타인을 칭찬함으로서 자기가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상대방과 같은 위치에 놓는 것이 됩니다"
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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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필요한 순간 - 인간은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가
김민형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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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히든 피겨스]를 자주 본다. 좋아하는 영화는 몇 번이고 거듭 보는 나는 이 영화 역시 기분 내킬 때마다 보는 중이다. 볼 때마다 감탄하는 부분 중 하나는 ‘수학’의 존재다. 캐서린이 가진 능력은 단순한 연산력이 아니었다. 체감할 수 없고 눈으로 볼 수도 없는, 그래서 미지 혹은 허구나 다름없는 공간을 ‘수’로 규명해내는 능력, 그건 수학의 영역이었다. 생각해보면 거의 모든 과학 영화에서 빠지지 않고 수학의 존재를 확인 할 수 있다. 수학은 항상 거기 있었지만 그걸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수학이 필요한 순간>의 서문에서 저자 김민형 박사는 몇 세기 전에는 수학 전문가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수학 개념을 지금 우리는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이해하고 있다는 걸 상기시킨다. 뉴스로 강우량 몇 퍼센트를 확인하는 일이 그렇게 놀라운 일인 줄 나는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김민형 박사는 우리들의 일상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수학을 상기시키며 지금 우리가 어려워하는 수학적 문제들도 언젠가는 상식이 될거라고 썼다. 아하, 정말?

 

 이 글을 쓰면서 고백하건데 나는 이 책을 100% 이해하지 못했다. 100%는 무슨, 50%나 될까 모르겠다. 생활로서의 수학은 나의 삶 속에 이미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건만, 학문으로서의 수학은 여전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별 같은 존재. 저자의 서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아, 어렵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내용이라는 이유로 읽기를 포기하기엔 이 책이 너무 아깝다.

 

 김민형 박사가 강연을 듣는 사람들 (이 책은 김민형 박사가 1년 여 동안 강연한 내용을 대화 형식으로 엮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과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는 복잡한 것이 아니다. ‘수학은 무엇인가’. 이 두 마디의 간단한 주제는 사실 얼마나 어려운 건지 모른다. 나 같은 경우,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수학이 뭔지 전혀 알고 싶지 않다. 아니,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랬다.

 

 저자는 책의 도입부에서 수학이라는 학문을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추상을 체계적으로, 정밀하게 설명하려는 의도가 수학이라는 것. 그러면서 서서히 수학에 대해 하나도 관심이 없던 나조차 탐구심을 가지고 읽어볼 수밖에 없는 주제들로 독자를 이끌어간다. 확률론의 선악을 규명하는 내용, 수학은 발명되었는가 발견되었는가 등의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4강과 5강이었는데, 이 부분은 심지어 이해가 잘 가지 않았는데도 엄청 재밌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분명 거기 존재하는 추상과 정신 세계, 예를 들면 ‘호감’의 정도 같은 것들을 정밀하게 또한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수학이라는 학문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실용적인지 이 책을 통해 똑똑히 배우게 된다.

 

 아직 이 책에 선사하는 수학의 풍요로움에 제대로 미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병철 번역가가 이 책에서 인용한 결정적 문장들에 깊이 공감한다.

‘직관에 의존해도 세상을 무난하게 살아갈 수있다, 그러나 직관에 약간의 수학적 사고를 첨가하면 물리적 세계의 아름다운 속성이 들어나고,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 진다.’
 

‘직관에 의존해도 세상을 무난하게 살아갈 수있다, 그러나 직관에 약간의 수학적 사고를 첨가하면 물리적 세계의 아름다운 속성이 들어나고,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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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1 - 이중스파이 흑금성의 시크릿파일 공작 1
김당 지음 / 이룸나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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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혹은 공작 활동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컸다. 아주 어릴 때는 몰랐지만 자라면서는 어느 정도 가늠했고 아주 커서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간첩이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존재하는 허구가 아니라 내가 사는 세상에 현존하는 아주 현실적인 존재라는 것을. 적어도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간첩이니 스파이니 공작원이니 하는 사람들은 허구일 수가 없다. 공작원들이 일상 속에서 일반인들과 뒤섞여 함께 살아가며 각자의 목적을 은밀히 달성해가는, 영화에서만 있을 것 같은 일들이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그곳이 바로 여기 한반도다.

 

어릴 때는 간첩 신고 찌라시를 자주 보았다. 간첩 신고는 000번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쓰인 광고판이나 스티커도 길거리에 많았다. 실제로 간첩들이 체포되는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들을 차곡차곡 살아오면서 나는 정작 간첩들이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공작을 하는지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했다. 하긴, 내가 그렇게 쉽게 공작 내용을 알 수 있다면 이미 간첩 활동이라고 할 수 없겠지.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한반도의 현실에 디테일을 더해주는 증언을 책으로 만났다. 실제 공작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수감 생활을 했던 공작원 흑금성은 수감 기간 동안 자신의 활동을 생생하게 적어 수기로 남겼다. 격동의 대한민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기자는 그의 수기를 바탕으로 이 책 [공작]을 썼다.

 책은 저자 김당이 흑금성과 최초로 접촉하게 된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절대로 서두르거나 격앙되지 않고, 차분하게 흑금성과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흑금성의 성장과정과 그가 어떻게 공작원으로 일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 그리고 그가 북한까지 건너가 무엇을 진행했는지를 차례차례 이어간다.

 

 윤종빈 감독의 영과 [공작]의 개봉 즈음에 맞추어 이 책이 출간되었다 보니 이 책에는 영화 감독의 인터뷰나 영화에서 흑금성 역할을 맡은 황정민 씨와 찍은 사진 등 서비스 컷들이 실려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영화 내용의 원작 혹은 모티프로만 선전될 책은 아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우리가 거쳐 온 정권들의 물밑에서 북한과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우리가 뉴스와 기사로만 접했던 당시의 이슈들의 실상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는 믿을만한 증언들이 이 책에 있다. 첩보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실화로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지만 이 책의 진가는 무엇보다도 바로 이것이 우리가 살아온 우리 역사의 실재라는 걸 낱낱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은 99%의 사실과 1%의 허구로 구성되어 있다.

냉전의 섬 한반도에서 이중스파이는 언제든지 남과 북 양측에서 버림받기에 십상인 ‘극한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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