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청년 연암’에게 배우는 잉여 시대를 사는 법
고미숙 지음 / 프런티어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운전을 시작하면서 나는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풍경을 도로에서 보곤 한다. 아니, 원래 항상 거기 있던 풍경인데 그 전에는 내가 별 관심이 없었다. 빨강과 초록, 불빛이 번갈아 바뀌고 차들은 신호에 따라 원만하게 흘러간다. 옆차가 주황색 등을 켜고 고개를 내밀면 달리던 차는 슬쩍 자리를 내준다. 도로는 차와 신호등이, 차와 또 다른 차가 서로 교감하고 소통의 공기가 막힘없이 흘러가는 공간이다. 그래서 도로에 나서면 나는 도시가 살아있다고 느낀다. 온통 콘크리트에 아스팔트, 쇳덩어리들이 즐비한 도로 한가운데에서 도시가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는 건 교신과 소통의 물결 때문이다.

 

 나는 고미숙 선생님을 좋아한다. 고 선생님이 하시는 강연도 챙겨보고 쓰신 책도 찾아 읽는다. 고미숙 선생님의 이야기가 좋아서다. 한 마을이 가족이었던 시대를 지나 혈족만이 가족으로 살아가던 시대마저 지나고 지금 우리들의 시대는 최후의 가족 단위마저 해체되고 개인만이 남은 외로움의 시대로 들어섰다. 혼자로 남겨졌기 때문에 혼자에 익숙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혼자를 즐기기 때문에 혼자로 남겨진 것인지 알 수 없는 시대다. 그런 우리들에게 고미숙 선생님은 혼자 있지 말라고, 혼자 있으면 안 되는 이유와 혼자가 아니면 좋은 이유를 조목조목 짚어준다.

 

 “산다는 건 생각과 말과 발의 삼중주다. 생각의 흐름, 말의 길, 발의 동선. 이 세 가지가 오늘 나의 삶을 결정짓는다. 외부의 힘을 받아서 내적으로 변용시키는 것이 핵심인데,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는 당연히 중요하다. 그다음이 말이다. 언어도 숨 쉬고 배설하는 것 못지않은 생명 활동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책을 읽지 않으면 말의 행로, 생각의 전제가 바뀌기 어렵다. 생각과 말이 제자리를 맴돌면 동선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혼공은 혼밥만큼이나 위험하다. 정말 박학다식한데, 그럼에도 도무지 사람들과 소통이 안 되는 지식인이 적지 않다. 지식이 자기 안에서 맴돌다 고인 탓이다. 그러니 대학생이 혼밥에 혼공을 한다면, 그 지식은 그야말로 ‘늪’이 될 확률이 높다.
92-93쪽 

 

 고미숙 선생님의 신간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에 다른 제목을 붙인다면 나는 이렇게 쓰고 싶다. [조선에서 더불어 살기] 혹은 ‘혼자서 살지 않는 법에 대하여’.
 4차 산업혁명이라고 세상은 떠들썩하지만 초연결 시대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으려면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고도로 발달한 기술 덕에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기쁨을 제대로 느끼려면 확보된 시간을 즐길 거리가 분명해야 한다. 우리 시대에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것 아닐까. 혼자 살면 뭔 재민겨.


 그래서 고미숙 선생님은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에 ‘벗’의 존재에 하이라이트를 비추었다. 가족과 함께 해도 물론 즐거운 인생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한 사람이 한 존재로서 비로소 오롯이 서려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떠나 독립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고전평론가인 저자가 현 시대 인류가 배울만한 라이프스타일로 조선 후기 지식인인 연암이 누렸던 백수의 삶을 제시한다.

 

 연암은 수없이 정계의 러브콜을 받았던 인재였다. 권력과 명예 혹은 부를 좇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금으로 코팅한 꽃길이라고 불러도 아쉽지 않을 성공이 보장되어 있었지만 연암은 그를 물리쳤다. 아, 물리쳤다는 표현은 너무 약하다. 마치 그게 해로운 것이라도 되는 양 그로부터 피해 달아났다. 그리곤 백수가 되었다. 아, 무지하게 당당하고 에너지 넘치는 백수가 되었다. 참 백수!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는 연암의 일생에 가득했던 에너지 그러니까 생명력을 추적하는 책이다. 백수 주제에 어쩜 그렇게 명랑하고 열정 넘치는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 더 놀라운 건 그 어느 시대보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연암보다 더 밀도 높은 참 백수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인간의 종착지가 백수’라고 당당히 외치며 시작하는 이 책은 너무나 재미있다. 벗과 공부하고 대화하고 공감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이 책은 잘 알려준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나의 많은 벗들과 함께 읽고 싶다. 낯선 사람들과도 읽고 싶다. 이 책을 같이 읽으면 낯선 사람도 벗이 될 것만 같다. 최근 거울 속의 나에게 반백수라고 내뱉으며 자괴감에 빠져 있었는데 청년 연암과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힘을 내 본다.

 

"산다는 건 생각과 말과 발의 삼중주다. 생각의 흐름, 말의 길, 발의 동선. 이 세 가지가 오늘 나의 삶을 결정짓는다. 외부의 힘을 받아서 내적으로 변용시키는 것이 핵심인데,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는 당연히 중요하다. 그다음이 말이다. 언어도 숨 쉬고 배설하는 것 못지않은 생명 활동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책을 읽지 않으면 말의 행로, 생각의 전제가 바뀌기 어렵다. 생각과 말이 제자리를 맴돌면 동선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혼공은 혼밥만큼이나 위험하다. 정말 박학다식한데, 그럼에도 도무지 사람들과 소통이 안 되는 지식인이 적지 않다. 지식이 자기 안에서 맴돌다 고인 탓이다. 그러니 대학생이 혼밥에 혼공을 한다면, 그 지식은 그야말로 ‘늪’이 될 확률이 높다.
9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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