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 - 진짜 여행에 대한 인문학의 생각
정지우 지음 / 우연의바다 / 2015년 12월
평점 :
아침에 눈을 뜨고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배가 고프다. 그러면 아침을 먹어야 한다.
출근하고 난 후 정신없이 일하다 허기를 느끼기 시작할 즈음, 시계를 보면 어김없이 열한시가 살짝 넘은 시간이다. 그러면 점심을 먹어야 한다.
퇴근시간까지는 삼사십분 정도가 남았는데 출출해서 견딜 수가 없어 초코바를 까먹는다. 서둘러 작업하던 건들을 마무리 하고 가방을 들고 퇴근을 하면서 메뉴를 검색한다. 저녁을 먹어야 하니까.
배꼽시계가 사람의 하루를 움직인다면 사람의 한 해를 움직이는 이런 시계도 있는 것 같다. 여행시계....
참 희안하지.
바람이 간질간질해지는 3월만 되면 평소 관심도 없던 꽃이 보고 싶어지고 5월이 되면 주말마다 그렇게 어디 근교라도 쏘다녀볼까 발이 근질근질하다.
이러다 7월부터는 대놓고 휴가철이라 여행지 검색을 하게 되지. 그러면 여행을 떠나야 한다.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땡... 이 아니라 사시사철 때마다 여행도 좀 가줘야 되는게 요즘 사람인가보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친구는 나에게, 어디 한국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에 여행이라도 다녀와서 에세이를 내보라고 했다. 여행 에세이가 잘 팔린다나.
근데 그건 못하겠다 싶었다. 내가 여행을 떠나서 느끼는 것이라곤 항상 '와... 좋다... 아... 좋네... 오오오오 완전 좋구나..' 정도니까.
더구나 밥상 위에 여행에세이가 종류별로 얼마나 많은데 여기에 내 그릇 얹을 자리가 있으려고.
그런 비슷비슷한 여행에세이들 사이에서 어떤 책 한 권이 송곳처럼 뾰족 튀어나왔다.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라며.
진짜 여행에 대한 생각, 여행지가 아닌 여행관을 쓴 이야기.
다양한 인문학 서적과 글을 써온 정지우 작가는 이번엔 여행을 화두로 삼았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나 감상을 얻고 싶어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를 읽기로 했다면 목표를 바꾸기를 권한다.
이 책은 여행지의 무엇을 보고 누군가를 떠올렸다거나 지나간 세월을 돌이켰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왜 여행을 가는지? 여행에서 '나'라는 개인이 실제로 느끼는 것은 무엇인지? 왜 여행을 하면서 그런 것들을 느끼게 되는지?
여행지가 아니라 '여행' 그 자체에 대해 집중한 책이다.
예전에 어느 세미나에서 이런 조언을 들었다. '여행에세이를 쓸 거면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이야기를 에세이로 쓰라'.
그때는 저 말이 알쏭달쏭했다.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이야기라.........
정지우 작가의 차분한 문장들을 따라가, 나는 이제 아주 조금이나마 저 의문에 답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앞자리 동료는 벌써 바다 건너 어딘가로 떠날 예정이라고. 남들보다 조금 일찍 휴가를 즐기겠다고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의지만 불태우지 말고 여행관에도 불을 지피고 떠나라고 모른 척, 이 책 한 권을 자리에 놓아주어야 겠다.
몸만 떠난 여행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생각까지도 '여행'에 충실하게 떠났다가 완벽히 돌아올 수 있도록.